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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교수의 <신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수록된 MP3를 들을 수 있는 곳.
신약 신학 - 신약성경 어떻게 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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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피플 알라딘 YES24 김세윤 교수의 <신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수록된 MP3를 들을 수 있는 곳. 신약 신학 - 신약성경 어떻게 읽을 것인가? http://crossvillage.pe.kr/?document_srl=23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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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제제자훈련원 "단순함이 주는 힘" 이러한 현상을 일찍 파악한 기업들은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애플사는 단순한 디자인과 플러그 앤 플레이 기능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구글은 다른 업체들과는 달리 단순하고 신속한 검색엔진을 제공함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역시 단순한 서비스로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이윤을 많이 남기는 항공사로 변모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사회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교회는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복잡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의 나열 속에서 지도자들은 지쳐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은 끊임없이 교회행사에 참여하지만 자신들이 갈망하는 진정한 영적 성장은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남침례교 라이프웨이 크리스천 리소시스의 회장인 톰 라이너와 에릭 게이거는 미국 내에서 3년 연속 연간 5퍼센트의 성장을 보이는 교회들과 같은 기간 동안 성장이 없거나 감소한 교회들을 비교한 결과, 성장하는 교회는 성장하지 못하는 교회들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단순한 제자도 과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그들의 저서 “단순한 교회”(생명의말씀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단순함이 의미하지 않는 것 첫째로 목회에 대한 단순한 접근은 교리나 확신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교회가 재치 있고 세련된 곳이기 때문에 단순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에 접촉하기 위해 세상을 흉내내지 않습니다. 셋째로 단순함이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실용적인 이유로 단순한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넷째로 단순한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더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단순함이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왜 단순함을 추구해야 할까요? 목회의 가장 중요한 본질 중 하나는 성도를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일, 즉 각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일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러한 영적 성장을 위한 적절한 사역과 환경을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는 여기에 실패합니다. 단순한 교회의 특징 그렇다면 단순한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미국 내에서 지난 3년간 5%이상 성장한 교회(불행히도 이런 교회는 미국 내 2% 미만이다)들과 그렇지 못한 교회들을 비교한 결과, 톰과 에릭은 성장하는 교회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1. 명료함 성장하는 교회들은 지도자와 성도들이 각 개인의 영적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지도자들은 교회가 목표로 삼는 제자도의 정의와 과정을 명확히 제시하고, 교회 내 각 프로그램들이 이런 과정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분명히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2. 활동 마치 계주의 바통터치처럼, 이들 교회들은 영적 성장하기 위해 지금 각 단계 다음에는 어떤 단계가 있는지 제시하고, 더 큰 헌신의 단계로 이끄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일련의 제자도 과정을 제시하고 각 단계는 단계의 수료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의 헌신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는 것입니다. 반면 대부분의 교회들은 형편없는 계주팀과 같이, 단일 프로그램에만 열중한 채, 영적 성장의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3. 조정 조정은 단일한 제자도의 과정에 모든 목회사역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특정한 사역에만 열정을 가진 지도자들과 프로그램들만 존재할 뿐, 교회 전체가 추구하는 목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결국 교회는 다수의 프로그램과 사역의 단순한 합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성장하는 교회들은 모든 목회 사역들을 단일한 제자도의 과정에 복종시키고 부속시키는 일에 적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4. 집중 집중은 조정을 너머 교회가 목표로 한 제자도의 과정 밖에 있는 것은 모두 버리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집중은 최선의 것에는 ‘예’,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에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좁은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들은 편협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집중할 때 단순한 사역이 주는 열매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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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제제자훈련원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는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와 같다”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처럼,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는 교회로부터 힘을 빼앗아 갈 뿐만 아니라, 교회 그 자체를 당대의 문화와 동화시키게 됩니다. 교회가 정의하는 도덕과 당대의 문화가 정의하는 도덕 사이의 차이점이 사라질 때, 교회는 그 능력과 권위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불행한 일은 오늘날 교회 사상의 대부분을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 문화는 제자도 없는 기독교, 즉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그분을 따르려는 노력이 없더라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자도의 추구와 실천은 오직 진지한 그리스도인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요,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은혜와 용서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라스 윌라드는 “우리는 은혜로 구원 받는 동시에, 은혜로 마비되고 말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자도 없는 기독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우리가 선포한 메시지 때문입니다. 빌 헐은 그의 책 “온전한 제자도”에서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를 만들어 내는 가르침의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실추된 기독교의 권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제자도를 회복하는, 제자도가 있는 기독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다름 아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바로 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만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회복하려면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질을 다시 정의할 것을 요구해야 할지 모릅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 내면의 인격을 형성하는 믿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다시 정의할 것을 요청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는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 제자도가 없는 복음을 가르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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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제제자훈련원 "전도의 사명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는 방법"
얼마 전 한 기관에서 조사한 보고에 의하면, 한국 내 기독교인의 수가 144,000명이나 줄었다고 합니다. 이미 교계 내에서도 1990년대부터 시작된 마이너스 성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이 보고는 특히 기독교 내에서 144,000이라는 숫자가 차지하는 의미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전도의 동기를 점검하라 사실 한국교회는,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전도단이나 전도 프로그램들을 갖고 있고 설령 그런 것이 없더라도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를 통해 목회자가 지속적으로 전도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전도에 관한 한 엄청난 열정과 의욕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교회의 다른 어떠한 사역도 그동안 전도만큼 강조되어 온 사역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엄청난 열정과 의욕을 가지고 강조하는 것과 달리, 그 열매는 그리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어쩌면 열매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더 강조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어쨌든 그렇게 전도를 강조하는데도 불구하고 전도가 안 된다고 한다면 분명 뭐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전도의 동기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이제까지 교회가 무엇을 위해 전도를 강조해왔는가 하는 점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동기가 어떠하든지 간에, 세상에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교회와 기독교의 세를 불리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분명 엄청난 오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만, 과연 그것을 세상의 오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교회를 키우는 것보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우리의 관심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자연스럽게 교회의 성장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교회를 키우기 위해 전도를 강조한다면, 그것은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된 것입니다. 복음 증거는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예수께서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죄인인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마 1:21)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며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하셨습니다(눅 4:43). 그리고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증인이 되라는 최후의 명령을 남기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땅에 남겨진 예수의 제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바로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전 4:2)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은 복음을 전하는 것, 쉽게 말해 ‘전도’를 사명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가…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을 비롯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 복음을 우리의 마음 속에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나는 전도에 은사가 없기 때문에”라며 자신에게는 전도의 사명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전도를 교회에서 어떤 중직이나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키우기 위해 해야 될 일 중 하나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1년이 지나도록 단 한 사람에게도 이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 전도의 새로운 전략: 대각성 전도집회 그런 의미에서 지난 1982년부터 사랑의교회에서 시작한 대각성 전도집회는 오늘날 전도의 사명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사명을 다시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각성 전도집회가 기존의 전도 프로그램들과 다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사랑의교회는 이 대각성 전도집회를 통해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이 귀한 전도의 사명에 전 성도들이 함께 동참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결과 해가 갈수록 그 열매가 더욱더 풍성히 맺히고 있으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미 많은 형제교회들로부터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각성 네트워크를 통해 전도의 사명을 회복하십시오 이러한 대각성 전도집회의 유익을 더 많은 형제교회와 나누기 위해, 국제제자훈련원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대각성 네트워크 모임을 실시하였습니다. 대각성 네트워크란, 가을 전도집회를 구상하는 여러 형제교회들이 함께 모여서 전도집회에 대한 철학과 전략, 그리고 기획단계부터 실제 전도집회까지 대각성 전도집회에 대한 노하우를 함께 공유하는 자리를 말합니다. 또한, 전도지를 비롯한 각종 전도자료와 도구들을 함께 제작함으로써 보다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전도 도구들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무엇 보다도, 대각성 네트워크에 소속된 교회에서 전도 사역과 관련된 목회자와 평신도 스탭들이 지속적으로 네트워크 모임에 참석함으로써 전도사역에 관한 다양한 이론과 실제를 배우고 훈련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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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제제자훈련원 "불황을 극복하는 리더십의 6가지 포인트" 불황기에는 모두가 두려운 마음을 갖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두려움의 전염성입니다. 특히 리더가 보이는 두려운 기색은 일파만파로 조직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전염되지 않게 하려고 과장된 행동을 하거나, 근거가 없는 기대감을 심어주려 해서는 곤란합니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이 적다거나 두려움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아니라, 두려움을 지배할 줄 아는 지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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