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 중 하나는 약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지 않을까 싶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교회에 다니는 꽤 많은 사람이 절대적인 의미이든 상대적이든 약자에 속한다.

렘 49:10 그러나 내가 에서의 옷을 벗겨 그 숨은 곳이 드러나게 하였나니 그가 그 몸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 그 자손과 형제와 이웃이 멸망하였은즉 그가 없어졌느니라
11 네 고아들을 버려도 내가 그들을 살리리라 네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 것이니라

하나님은 에서를 향한 심판을 선포하시면서도, 사회에서 제일 연약하다 할 수 있는 고아와 과부는 잊지 않으신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고아와 과부를 향한 관심은 꽤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심판은 철저하게 실행하신다.

19 보라 사자가 요단 강의 깊은 숲에서 나타나듯이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라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에서 쫓아내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위에 세우리니 나와 같은 자 누구며 나와 더불어 다툴 자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냐
20 그런즉 에돔에 대한 여호와의 의도와 데만 주민에 대하여 결심하신 여호와의 계획을 들으라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고 다니며 괴롭히고 그 처소로 황폐하게 하지 않으랴

하나님의 진노는 성난 사자와 같아서 그를 맞을 목자, 즉 이방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양 떼의 어린 것들까지도 영향을 미치며 그 처소는 황폐하게 된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돌보시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철저히 심판하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약자의 하나님만 기억하는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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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박사 과정 3년 차이다. 학교에서 예정하는 학업 마감일은 2025년 8월 26일이다. 박사 학위 취득 평균에 맞춰서 영국 정부에서는 4년 비자를 주는 모양이다.

박사 과정 입학 후 학업 자질을 평가하는 Probationary Review를 통과해서 정식 박사 과정 학생으로 인정받고, Annual Review로 매년 학업 평가를 받고 있다. Probationary Review는 지도 교수(진)를 포함해 평가자 2명으로 진행되고, Annual Review는 지도 교수(진)의 보고서 이외에 두 명의 심사자(interviewers)와 10~20분 정도 면담을 거친다. 논문 작성을 마치면, 논문 제출 서약서를 제출하고 구술시험을 치룬다.

논문 관련 작업으로 보면, Probationary Review를 거쳐 Literature Review를 진행했고, 지금은 LR를 토대로 각 장을 쓰고 있다.

1년 차 학생을 보면 PR로 고민하고, 2년 차 학생을 보면 LR로 고생하고, 3년 차는 논문 마감과 향후 진로를 두고 고민한다. 매 과정이 어렵겠으나, 지내고 보면/통과하고 나면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금이 가장 어려운 과정이라고 생각되지만, 어쩌면 가장 쉬운 단계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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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학 전공자로서 구약에 미약한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래서 관련 논쟁은 제외하고, 내 연구 주제인 목자-양 은유로 접근할 때 이사야서는 최소 1~2차례 급진적인 신학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이사야는 다윗 계열의 메시아(Davidic Messianism)를 고대한다 (예를 들어, 37:35). 하지만 역사는 그의 믿음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특히 이방 왕 고레스는 다윗 후손의 과업 중 하나인 예루살렘 재건을 실시한다 (44:28). 이러한 과업은 이방 국가와 왕을 우상 숭배와 침략으로 정죄하던 관례와 달리 고레스에게는 "내 목자"(44:28)와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45:1)라는 칭호를 적용하도록 만든다. 

또한 이사야는 고난받는 종(52~53장)을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자(특히, 53:4)에서 민족의 죄악을 담당한 의로운 종(53:11)로 달리 생각하게 된다.

이사야는 여전히 다윗 계열의 메시아사상을 유지하지만, 메시아의 과업이 성취되는 방식에 신학의 전환이 일어난다. 이런 변혁은 하나님의 계시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과 후대에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재진술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사야서는 메시아사상의 변천 과정에서 중요한 본문이고, 예언 전통과 신학의 확장성이라는 주제에서도 깊이 있게 다뤄볼 만한 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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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년으로 주최되는 이 모임이 올 6월 4~5일에 센앤에서 열린다. 참석 대상은 Schools of Classics, History, and Divinity 소속 대학원생들이며, 학생들이 발표하고 청중과 질의응답을 하고, 교수가 조언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모임으로 보인다.

모임의 목적은 영국과 독일 학술교류에 있으며, 박사후과정(post-doctoral studies)까지 연계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나는 이 모임에 플라톤의 『정치가』로 발표 제안서를 제출하려고 한다. 이미 작성해둔 제안서가 있는데, 어디서 발표하나 싶었는데, 이 모임이 제격으로 보인다. 만약 제안서가 채택되면 Schools of Classics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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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연례 평가(Annual Review)를 위한 양식 작성을 마치고 제출까지 끝냈다. 지도 교수에게는 지난주 모임에서 토론했던 내 2023~2024 활동 명세와 현재 작업 중인 원고를 보강해서 이메일로 보냈다.

학위 논문에 관해서는 "Chapter 4. The History of the Feast of Tabernacles"를 8,000자 정도 썼고, 지도 교수로부터 1차 검토를 마쳤다. 지금은 "Chapter 2. The History of Shepherd-Sheep Analogy"를 진행 중이고 지도 교수와 공유한 부분은 12,000자 정도이고, 아직 정리 안 된 부분을 합치면 19,000자 정도가 된다. 연례 평가를 기준으로 일 년 동안 최소 20,000자 이상 최대 27,000자 정도를 쓴 셈이다. 작업 속도가 더딘듯해도 꾸역꾸역 진도는 나가고 있다. 학교 규정과 관례에 따르면 최소 60,000~최대 80,000자까지 쓸 수 있으며, 나는 70,000자 내외로 완성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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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교수는 네 등급 중 최고 등급인 Green (satisfactory)을 매겼다.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야심 찬'(ambitious)이다. 논문 작업만 진행한다면, 여유로운 일정이겠지만, 학회 발표를 포함하면 촉박한 계획이 되므로, 이러한 평가를 했다고 짐작된다. 아래는 그의 총평이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했다.

광수는 내년에 논문을 완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한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매우 야심적이지만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조금 걱정되는 점은 그가 학회 발표를 하면서도 논문을 쓸 시간을 꼭 확보한다는 점입니다. 그가 이러한 발표를 활용해 작업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야심 찬 완료 계획에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이에 대해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Gwangsoo has laid out a clear plan for what he needs to do if he wants to complete the thesis in the next year. This plan is very ambitious but not at all impossible. My slight concern is that he makes sure to find the time to write the thesis in the midst of all the conference presentations he is doing. If he uses these presentations to help him advance his work, they can be helpful. But he will need to be careful and strategic about this in order to help keep them from distracting him from his ambitious plan for completion.

이미 충분히 쉬었고, 연구는 지체 되었지만 제법 진행되었고, 이제는 시간 관리를 잘해서 야심 찬 계획을 성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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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객관성을 위해 고대 근동, 구약성경, 제2성전기 문헌, 그리스-로마 문헌을 포괄한 배경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내 판단에 의하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독자적인 위치에 있다.

그동안 수많은 주장이 제기되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주장들이 나오고 있지만, 결론은 예수의 가르침을 토대로 한 복음이야말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가령, 예수의 죽음을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과 비교하지만, 엄밀히 말해 누구도 고난받는 종의 정체를 알 수 없으며, 그가 메시아사상과 연관이 있던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 확실하다. 이사야 본문은 이사야 자신도 종의 정체를 잘 몰랐다고 고백한다. 후대에 사도들의 고백에 의해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과 예수를 연결하는 해석이 정당화되고 있으나, 이 같은 해석은 예수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혹은 설명하려는 시도의 일부이며, 이사야서의 본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혹은, 그리스-로마 배경에서 고귀한 죽음과 예수의 죽음을 연결하지만, 예수의 대속적 죽음과 같은 부류의 고귀한 죽음은 없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료 분석이 요구되지만, 지금껏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히브리 전통이든 그리스-로마 전통이든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견줄 만한 사례는 없다.

박사 학위라는 자격 취득과 학문이라는 틀 안에서 활동해야 하는 학자로 훈련받고 있는 자로서 배경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을 뿐, 더 많은 시간을 성경 본문 해석에 치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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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Reading the Lamb of God (Jn 1:29) as a Johannine Christological Title"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마쳤다. 이번 발표는 설계 자체를 화상 회의와 녹화 기술을 접목해서,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접속해서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발표자는 Presenter Backstage는 시간을 통해 미리 발표 준비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기술적으로나 진행 방식 등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요한복음 1장 29절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에 관한 토론은 대체로 어린 양의 정체에 이목이 쏠려 있다. 이미 학계에서 이런 논의는 만족스러운 설명에 이르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요한복음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요한복음 전체의 흐름에서 예수의 죽음을 검토하고, 어린 양에 관한 논의를 정체에서 요한의 왕권 사상, 더 정확히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에 집중하자고 주장한다.

다음 발표는 6월에 예정되어 있고, 6~8월은 발표 준비와 참여로 바쁠 예정이다. 당분간 발표 준비와 잠시 미뤄둔 논문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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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학기는 "Readings in Intertextuality"라는 제목으로 Doctoral Seminar가 진행되고 있다. 작년 가을 학기부터 "기호학과 상호본문성"이라는 주제로 연계된 세미나이다. 작년에 내가 한국에 두 달 가량 가 있었고, 이번 봄학기는 논문 작업과 학회 발표에 집중하느라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지난주 Dr. Stefan Alkier가 본교 NT Research Seminar에서 발표하고 doctoral Seminar에 특별 손님으로 참석해서 두 모임에 모두 참석했다. 오늘은 어제 지도 교수 면담에서 doctoral Seminar를 언급해서 참석했다.

Dr. Stefan Alkier는 독일 학자로 Goethe-Universität에서 신약과 초기 교회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Dr. Richard B. Hays와 공동 집필 작업을 여럿 진행했고, 지금은 그의 제자인 Dr. David M. Moffitt과 협업을 하고 있다.

이날은 특별히 저녁 식사를 하며 자유로운 대화 시간을 가졌는데, Dr. Alkier과 Dr. Moffitt의 돈독한 관계로 가질 수 있는 특혜였다. Dr. Alkier는 독일 학자로, 독일 학계와 교회가 가진 한계성을 직시하고 영미권 학자와 대화하며 자신의 학문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었다. 이날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Dr. Moffitt의 학자로서의 정체성이다. Dr. Moffitt은 자신을 신학자로 규정하고 있었고, 이와 관한 이야기를 풀어 주었다. 그의 말을 듣고, 그가 내가 가진 생각과 상당 부분 통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오늘은 "Structuralism versus Hermeneutics"와 "Literary Allusion"을 다루었다. 나는 성경 해석에서 유독 "교차대구법"(chiasm)과 "평행법"(parallelism)을 강조하는 분석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 같은 해석은 구조와 핵심 단어에 대한 강조에 도움이 되지만, 더 큰 의미를 축소한다는 한계가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Dr. Moffitt이 성서학 상호본문성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Dr. Hays의 제자이고, 여전히 이 방법론을 가르치지만, 중립적 입장을 취할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상호본문성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나를 포함해 그의 지도를 받고 있는데, 상호본문성에 관해 대화할 때마다 그의 입장은 한결 같다.

또한 그는 세미나의 목적이 학생들이 생각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미나가 단순히 지식을 얻는다거나 논문 작업에 도움을 얻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학생은 자신의 연구 주제에 갇히지 않고, 열린 자세로 지적 탐구를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의 취지에 동의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빡빡한 일정으로 인한 현실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음.

다음 세미나를 끝으로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데, 나는 학회 발표와 논문 작업으로 인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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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교수 면담

끄적 2024. 4. 3. 06:36

오늘 오전에 지도 교수를 만났다. 조만간 실시될 연례 평가(Annual Review)를 위해 내 내년 계획을 공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도 교수의 편의를 위해 2023~2024년 활동 명세와 함께 현 작업 중인 "The History of Shepherd-Sheep Analogy"의 원고를 정리해 인쇄해 가져갔다. 중요한 대화는 10분 이내에 끝났고, 몇 가지 대화를 추가하여 20~25분 정도 면담을 가졌다.

논문 작업이 더디지만, 작업이 진척되고 있고, 학회 발표 일정이 올해만 10회가 잡혀 있어서 연례 평가는 무난하게 진행될 듯하다. 지도 교수도 내 활동과 일정을 문제 삼지 않았다. 더구나 올해 졸업을 목표로 삼은 일정을 내년으로 조정할 예정이라 일정에서 차질을 빚을 변수가 사라졌다. 작년 연례 평가에서 유일한 변수는 촉박한 일정이었음.

학회 발표는 올해 일정만 소화하고, 논문 작업에 집중해서 끝맺을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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