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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교수의 <신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수록된 MP3를 들을 수 있는 곳.


신약 신학 - 신약성경 어떻게 읽을 것인가?
http://crossvillage.pe.kr/?document_srl=23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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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제제자훈련원 "단순함이 주는 힘"


단순함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복잡한 것은 이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듯 합니다. 적어도 유행에 뒤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세상이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사람들은 단순함에 더욱 매료되는 듯합니다. 오히려 단순한 것들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일찍 파악한 기업들은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애플사는 단순한 디자인과 플러그 앤 플레이 기능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구글은 다른 업체들과는 달리 단순하고 신속한 검색엔진을 제공함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역시 단순한 서비스로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이윤을 많이 남기는 항공사로 변모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사회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교회는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복잡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의 나열 속에서 지도자들은 지쳐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은 끊임없이 교회행사에 참여하지만 자신들이 갈망하는 진정한 영적 성장은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남침례교 라이프웨이 크리스천 리소시스의 회장인 톰 라이너와 에릭 게이거는 미국 내에서 3년 연속 연간 5퍼센트의 성장을 보이는 교회들과 같은 기간 동안 성장이 없거나 감소한 교회들을 비교한 결과, 성장하는 교회는 성장하지 못하는 교회들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단순한 제자도 과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그들의 저서 “단순한 교회”(생명의말씀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단순함이 의미하지 않는 것

첫째로 목회에 대한 단순한 접근은 교리나 확신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교회가 재치 있고 세련된 곳이기 때문에 단순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에 접촉하기 위해 세상을 흉내내지 않습니다. 셋째로 단순함이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실용적인 이유로 단순한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넷째로 단순한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더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단순함이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왜 단순함을 추구해야 할까요? 목회의 가장 중요한 본질 중 하나는 성도를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일, 즉 각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일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러한 영적 성장을 위한 적절한 사역과 환경을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는 여기에 실패합니다.
톰과 에릭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대부분의 성장하는 교회들은 제자도를 위한 확실하고 단순하고 간소한 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겨우 지탱하는 교회들은 제자도를 위한 분명한 과정을 가지고 있지 못한 채, 복잡하고 소란한 여러 프로그램들만 나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교회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모델들과 프로그램들, 새로운 개념들의 홍수 속에서 모든 것을 다시 조직하는 분주함과 부담에 짓눌려 지쳐 있는 것입니다.

단순한 교회의 특징

그렇다면 단순한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미국 내에서 지난 3년간 5%이상 성장한 교회(불행히도 이런 교회는 미국 내 2% 미만이다)들과 그렇지 못한 교회들을 비교한 결과, 톰과 에릭은 성장하는 교회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1. 명료함

성장하는 교회들은 지도자와 성도들이 각 개인의 영적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지도자들은 교회가 목표로 삼는 제자도의 정의와 과정을 명확히 제시하고, 교회 내 각 프로그램들이 이런 과정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분명히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2. 활동

마치 계주의 바통터치처럼, 이들 교회들은 영적 성장하기 위해 지금 각 단계 다음에는 어떤 단계가 있는지 제시하고, 더 큰 헌신의 단계로 이끄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일련의 제자도 과정을 제시하고 각 단계는 단계의 수료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의 헌신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는 것입니다. 반면 대부분의 교회들은 형편없는 계주팀과 같이, 단일 프로그램에만 열중한 채, 영적 성장의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3. 조정

조정은 단일한 제자도의 과정에 모든 목회사역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특정한 사역에만 열정을 가진 지도자들과 프로그램들만 존재할 뿐, 교회 전체가 추구하는 목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결국 교회는 다수의 프로그램과 사역의 단순한 합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성장하는 교회들은 모든 목회 사역들을 단일한 제자도의 과정에 복종시키고 부속시키는 일에 적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4. 집중

집중은 조정을 너머 교회가 목표로 한 제자도의 과정 밖에 있는 것은 모두 버리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집중은 최선의 것에는 ‘예’,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에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좁은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들은 편협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집중할 때 단순한 사역이 주는 열매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들 단순한 교회가 갖고 있는 특징을 당신의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하실 수 있습니까? 정작 목회의 본질은 놓친 채, 다양하고 복잡한 프로그램들만이 나열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의 교회는 목표로 삼는 제자도의 목표와 과정이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는지, 이를 위해 교회 내 모든 사역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사역간 바통터치는 잘 되고 있는지, 불필요한 사역들은 과감하게 정리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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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제제자훈련원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는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와 같다”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처럼,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는 교회로부터 힘을 빼앗아 갈 뿐만 아니라, 교회 그 자체를 당대의 문화와 동화시키게 됩니다. 교회가 정의하는 도덕과 당대의 문화가 정의하는 도덕 사이의 차이점이 사라질 때, 교회는 그 능력과 권위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불행한 일은 오늘날 교회 사상의 대부분을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 문화는 제자도 없는 기독교, 즉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그분을 따르려는 노력이 없더라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자도의 추구와 실천은 오직 진지한 그리스도인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요,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은혜와 용서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라스 윌라드는 “우리는 은혜로 구원 받는 동시에, 은혜로 마비되고 말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자도 없는 기독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우리가 선포한 메시지 때문입니다. 빌 헐은 그의 책 “온전한 제자도”에서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를 만들어 내는 가르침의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말합니다.

1. 은혜를 죄 용서에 국한시킨다.

오늘날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은혜의 초점을 신앙의 여정 전체보다는 회심에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강단으로 걸어나가거나 손을 들어 예수님을 믿겠다고 피력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회심을 강조하는 것은 은혜에 대한 이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교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멈추고 10절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는 하나님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선물이 있기에 우리는 선한 일을 할 수 있고 큰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과 회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도 역사하시고, 강력하시며,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는 대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평생, 우리가 걸어가는 신앙의 여정 내내, 거룩한 능력을 제공해 줍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우리가 사는 날 동안 내내 풍성하게 흘러 넘치길 기대해야 합니다.

2. 칭의와 성화를 구별한다.

물론 칭의와 성화는 각각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칭의는 거듭난다는 실재를 의미하고, 성화는 예수처럼 되어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둘을 구별하려고 그어 놓은 경계선을 아예 이 둘을 갈라놓는 장벽으로 만드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 분리 때문에 복음에 끼친 해악은 대부분 미세하며 악의가 없는 것들입니다. 문제는, 이 둘을 갈라 놓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보호받는 안전한 위치를 얻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부르심에는 그분을 따르라는 요구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구원의 순간(칭의)은 마지막 지점이 아니라, 평생을 걸어가야 할 여정(성화)의 출발점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새생명에서 시작하여 매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쁨으로 올곧게 전진하는 부단한 변화의 여정이 복음이라고 제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제자도는 번성하게 됩니다.

3. 일련의 사실들에 동의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자도가 없는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에 대한 일련의 사실들에 동의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는 믿음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바울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곧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고, 이 명령은 단지 회심자만을 만들어 내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원합니다. 즉 그분의 가르침과 그분의 길에 복종할 사람들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판단 기준을 행위가 아니라 교리로 전락시켰습니다. 예배당 통로로 걸어 나와 그리스도를 영접하겠다고 기도하거나, 교리 선언문에 서명하는 의식 차원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분을 따르는 삶, 즉 겸손과 희생과 복종과 순종의 삶입니다.
구원의 증거는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공로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구원의 여부가 아니라 구원의 증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실추된 기독교의 권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제자도를 회복하는, 제자도가 있는 기독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다름 아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바로 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만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회복하려면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질을 다시 정의할 것을 요구해야 할지 모릅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 내면의 인격을 형성하는 믿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다시 정의할 것을 요청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는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 제자도가 없는 복음을 가르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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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제제자훈련원 "전도의 사명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는 방법"


얼마 전 한 기관에서 조사한 보고에 의하면, 한국 내 기독교인의 수가 144,000명이나 줄었다고 합니다. 이미 교계 내에서도 1990년대부터 시작된 마이너스 성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이 보고는 특히 기독교 내에서 144,000이라는 숫자가 차지하는 의미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전도의 동기를 점검하라

사실 한국교회는,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전도단이나 전도 프로그램들을 갖고 있고 설령 그런 것이 없더라도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를 통해 목회자가 지속적으로 전도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전도에 관한 한 엄청난 열정과 의욕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교회의 다른 어떠한 사역도 그동안 전도만큼 강조되어 온 사역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엄청난 열정과 의욕을 가지고 강조하는 것과 달리, 그 열매는 그리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어쩌면 열매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더 강조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어쨌든 그렇게 전도를 강조하는데도 불구하고 전도가 안 된다고 한다면 분명 뭐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전도의 동기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이제까지 교회가 무엇을 위해 전도를 강조해왔는가 하는 점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동기가 어떠하든지 간에, 세상에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교회와 기독교의 세를 불리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분명 엄청난 오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만, 과연 그것을 세상의 오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교회를 키우는 것보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우리의 관심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자연스럽게 교회의 성장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교회를 키우기 위해 전도를 강조한다면, 그것은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된 것입니다.

복음 증거는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예수께서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죄인인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마 1:21)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며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하셨습니다(눅 4:43). 그리고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증인이 되라는 최후의 명령을 남기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땅에 남겨진 예수의 제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바로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전 4:2)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은 복음을 전하는 것, 쉽게 말해 ‘전도’를 사명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가…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을 비롯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 복음을 우리의 마음 속에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나는 전도에 은사가 없기 때문에”라며 자신에게는 전도의 사명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전도를 교회에서 어떤 중직이나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키우기 위해 해야 될 일 중 하나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1년이 지나도록 단 한 사람에게도 이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 전도의 새로운 전략: 대각성 전도집회

그런 의미에서 지난 1982년부터 사랑의교회에서 시작한 대각성 전도집회는 오늘날 전도의 사명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사명을 다시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각성 전도집회가 기존의 전도 프로그램들과 다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대각성 전도집회는 교회 안에서 어떤 특정 부류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전 성도가 함께 전도에 동참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대각성 전도집회는 모든 성도들에게 그 해에 자신이 복음을 전할 태신자를 작정하게 하고 그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게 함으로써 전도의 사명을 일깨워 줍니다.

2. 기존의 전도 프로그램들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초청하거나 데려오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대각성 전도집회는 단순히 그들을 교회에 데려오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태신자를 작정하고(잉태) - 접촉하며(태교) - 결신하도록 도와주고(출산) - 양육함으로써 그가 또 한 사람의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책임진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도 프로그램들과 구별됩니다.

3. 대각성 전도집회는, 태신자를 작정할 때,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 이웃, 직장동료, 친구 등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을 찾는 관계전도를 우선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번 복음을 전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그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전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지난 30년 동안 사랑의교회는 이 대각성 전도집회를 통해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이 귀한 전도의 사명에 전 성도들이 함께 동참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결과 해가 갈수록 그 열매가 더욱더 풍성히 맺히고 있으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미 많은 형제교회들로부터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각성 네트워크를 통해 전도의 사명을 회복하십시오

이러한 대각성 전도집회의 유익을 더 많은 형제교회와 나누기 위해, 국제제자훈련원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대각성 네트워크 모임을 실시하였습니다. 대각성 네트워크란, 가을 전도집회를 구상하는 여러 형제교회들이 함께 모여서 전도집회에 대한 철학과 전략, 그리고 기획단계부터 실제 전도집회까지 대각성 전도집회에 대한 노하우를 함께 공유하는 자리를 말합니다. 또한, 전도지를 비롯한 각종 전도자료와 도구들을 함께 제작함으로써 보다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전도 도구들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무엇 보다도, 대각성 네트워크에 소속된 교회에서 전도 사역과 관련된 목회자와 평신도 스탭들이 지속적으로 네트워크 모임에 참석함으로써 전도사역에 관한 다양한 이론과 실제를 배우고 훈련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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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제제자훈련원 "불황을 극복하는 리더십의 6가지 포인트"


요즘과 같은 위기의 시대를 흔히 난세(亂世)라고 합니다. ‘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시스템만으로도 별 사고 없이 잘 돌아가지만, 위기 속에서는 언제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난세에는 인재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아집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옛말의 의미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이번 리더십 네트워크에서는 불황을 극복하는 리더십의 6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2009년 1월 7일자 LG Business Insight에 실린 김현기 책임연구원의 “되돌아 보는 CEO 리더십의 기본”에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1. 두려움을 다스리는 용기 

불황기에는 모두가 두려운 마음을 갖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두려움의 전염성입니다. 특히 리더가 보이는 두려운 기색은 일파만파로 조직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전염되지 않게 하려고 과장된 행동을 하거나, 근거가 없는 기대감을 심어주려 해서는 곤란합니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이 적다거나 두려움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아니라, 두려움을 지배할 줄 아는 지혜’입니다.

2. 흔들림 없는 소신

위기에 빠진 닛산社를 회생시킨 카를로스 곤은 극심한 위기에 빠졌을 때 냉철한 현실인식으로 위기 상황을 돌파한 CEO로 유명합니다. ‘버릴 것은 철저히 버린다’며 어려운 구조조정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진가는 구조조정에 성공했다는 표면적 이유보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밀어붙였던 그의 소신과 어려운 현실을 정면으로 돌파했던 용기에 있었습니다. 사실 최악의 위기 상황에 놓인 기업에게는 구조조정이란 카드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인재와 구성원의 소중함을 외치던 회사들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쉽사리 정리해고라는 카드를 들고 나오는 것은 문제입니다. 소신도 없이 ‘남들이 하니까’라든지, ‘줄이고 보자’는 식의 접근은 절대 금물입니다.

3. 희망의 불씨가 되는 진정성

불황 극복을 위해서는 흔들림 없는 소신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꼭 진정성이 녹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희망의 불씨가 구성원의 가슴에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진정성은 구성원의 마음을 얻고 희망을 심어주는 토대입니다. 환경이 어려우니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너부터 졸라매라’라는 식이 아니라, 리더부터 ‘나부터 졸라매겠다’라는 진정성을 보여야 합니다. 이를 실천할 때야 비로소 구성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4. 무난함에 대한 경계심

리더에게 무난함은 독(毒)일 수 있습니다. 모토로라社의 사례는 이에 대한 좋은 본보기입니다. 1983년 세계 최초로 휴대폰을 발명하는 등 휴대폰 업계의 선두주자였습니다. 그런데 2000년 당시 CEO였던 크리스토퍼 갤빈은 PC사업, 메인 프레임 컴퓨터, 인공위성 사업 등 여러 분야에 역량을 분산시킨 바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휴대폰 시장의 위기 속에서 때마침 휴대폰의 디지털 전환이 늦어졌고, 이는 휴대폰 시장 1위 자리를 노키아에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로 인해 2003년 갤빈은 해임되었습니다. 평소 그의 무난한 리더십은 호황기에는 통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위기 상황 속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위기가 느껴질 때라도 빠른 의사결정으로 반전의 기회를 잡았어야 하는데 그것이 힘들었던 탓입니다.

5. 사소함에 대한 관심

면도날을 갈아야 하는 불편함처럼 사소한 문제가 킹 질레트(King Gillette)에게 일회용 면도기를 개발하게 했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것만이 창조적 영감을 자극하고 반전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사소함 속에서도 ‘안 되는 일’보다 ‘되는 일’을 찾으려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의 하나마나 소시지社의 사례입니다. 회사는 매출이 급감하며 곤경에 처하자, 궁여지책으로 대대적인 가격세일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쉽게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속이 타던 사장이 하루는 공장을 돌아보다가 부러진 소시지를 재가공하는 공정을 목격했습니다. 조금은 내키지 않았지만 사장은 “그것 말이야, 그냥 팔지. 가격도 많이 내렸는데…”하고 부러진 것들도 그냥 포장해서 팔도록 지시합니다. 며칠이 지나자, 의외로 부러진 제품에 대한 반응이 좋게 나타났습니다. ‘싼 이유가 부러진 것 때문이라면, 먹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소비심리가 제품 판매를 부추긴 것입니다. 우연한 발상으로 회생의 기회를 맞이한 사장은 오히려 “다 부러뜨려라!”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6. 바닥을 두루 살피는 소통

Mach3라는 블록버스터급 제품들에 힘입어 성장가도를 달려오던 질레트社는 2000년대 초반 조직 병리 현상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매출이 제자리걸음을 하자 소매상들에게 분기 마지막 날이면 할인혜택을 제공하며 재고를 밀어냈습니다. 이로 인해 영업이익과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구성원들이 이러한 문제를 감추며 책임을 회피했던 것이 회사의 어려움을 키우게 했습니다. 사실상 현장 가까이에 있지 않는 CEO들이 이러한 문제를 좀처럼 알아채기 쉽지 않습니다. 상황이 악화되고 나서야 ‘그게 문제였구나!’라고 뒤늦은 후회를 할 뿐입니다.
그런데 2001년 2월 짐 킬츠라는 새로운 CEO를 맞이하면서 회사는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취했던 행동은 조직 전반에 원활한 소통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몇 달 전부터 외부인의 시각에서 질레트의 강약점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구성원들과 진솔하게 대화했습니다. 그리고 주간 스텝 미팅, 주간 글로벌 경영자들과의 사업 리뷰 미팅, 분기별 경영층과의 이틀짜리 오프사이트 미팅, 사내 인트라넷에 CEO 홈페이지 개설 등을 통해 현장과의 소통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홈페이지의 경우, 모든 직원들이 자유롭게 질문을 올리면 CEO가 직접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사실 킬츠가 더욱 신경 썼던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양보다 질이었습니다. 투명한 대화로 숨겨진 사실들을 노출시키는데 주력했습니다. 과거 실수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기보다 문제의 원인을 깊이 분석하고 미래를 위한 해결책 마련에 집중했습니다. 구성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동시에 위기 돌파의 묘책을 구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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