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시편과 고통"(The Psalms and Distress)

- 필립 존스턴(Philip S. Johnston, 옥스퍼드 위클리프 홀 구약학)


"시편과 고통"은 오늘 시편연구방법론 시간에 다룬 주제입니다. 의인의 고난을 다룬 욥기가 가장 먼저 기록된 성경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고통의 문제는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분명합니다.


수업시간 중 가장 화제였던 주제는 "공동체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물을 수 있는가?"였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을 적어보겠습니다.


Communal distress is much more pointedly attributed to enemies, who are identified as its main cause. But the blame is often also directed to God for allowing it to occur, whether or not it is accepted by the community as deserved. - p.67


불신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로 대개 다음과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뭘 하고 계시단 말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고통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다."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이런 답변이 고통의 문제에 버거워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있을까?'라고 묻는다면, 확신은 서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계기가 되므로 쉽사리 말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다시 존스턴의 글로 돌아가 답변을 해보자면, "가능하다"입니다. 비록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직접 야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적 관계를 맺습니다. 성경에서 둘의 관계는 목자와 양으로 비유되곤 하지요. 이러한 관계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의 자리에 있을 때, 당연히 목자 없는 양과 같게 되지요. 한스-요아킴 크라우스(Hans-Joachim Kraus)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없이 산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통의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께 그 책임을 묻으십시요. 우리에게는 그러한 권한이 있습니다. 단 크라우스의 말에서 인간의 책임 역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지 않으면,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없이 산다"라는 말이 나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니까요.



[참고문헌]

* Philip S. Johnston and David G. Firth eds., Interpreting the Psalms: Issues and Approaches. Downers Grove: IVP Academic, 2005.

* 한스-요아킴 크라우스, 시편의 신학, 신윤수 역. 서울:비블리카아카데미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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