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성경과 주석

끄적 2017. 11. 30. 12:43

신학석사(Th.M.) 과정까지는 성경과 주석서로 소논문을 쓰는데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웨신대 시절만 해도 학위논문은 방법론이나 신학적 주제를 다뤄야해서 더 폭넓고 깊은 연구가 필요했었지만, 이곳 칼빈신학교(CTS)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졸업은 가능한듯 하고 박사과정 진학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니 석사과정까지는 열심히 성경책 읽고 주석서 보면서 다양한 해석적 가능성을 고민하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원어(히브리어와 헬라어)와 영어는 기본이다. 주석서에 대한 평가는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라.


Best Commentaries

https://www.bestcommentari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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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i Gregoriana Series

추천도서 2017. 11. 28. 12:42

<Tesi Gregoriana Series>는 Pontifical Gregorian University 최상급 박사학위 논문들 중 대중적으로 공유할 만한 논문들을 선별하여 출간한 책이다. 유용한 자료들을 몇 권 발견했다.

 

<Tesi Gregoriana Series>

https://www.unigre.it/tg/index_en.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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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학과 제2성전기의 중요성]


최근 신약학계의 경향은 신약학자들에게 구약과 제2성전기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보다 정확한 본문해석을 위해서는 배경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므로 이러한 추세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특히 학생의 입장에서 겪고 있는 나의 문제는, 배경연구를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연구범위로 삼은 구절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데, 배경연구에 소홀할 수는 없으니 자료조사에 쏟아붓는 시간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이 과정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때문에 정작 내 논리를 세우고 글로 일목정연하게 정리하는데 있어 시간의 압박을 느낀다.


나는 학생이라 연구의 질 보다는 학점이 더 중요한데, 이럴 때마다 적당히 할 줄 모르는 무식할 정도의 근면함과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봐야 하는 속이 후련한 승부욕(?) 때문에, 학습량과 비례하지 않는 성적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신약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할 생각이지만, 구약학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신약학계의 경향 덕분이기도 하고, 한때 구약학을 전공할 생각을 갖고 있었던 시절의 영향이기도 하다.


현 학계에서 배경연구를 중요시하는 만큼, 그리고 신약의 구약사용이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그 어느 시대보다 구약학과 제2성전기가 중요해지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분야에 관련되어 있는 분들에게 자신들의 연구에 빚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달고 부탁하고 싶다. 때로는 구약본문의 해석부터 판을 새로 짜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입장에서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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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저자들의 구약인용에 대한 위험한 전제]


성경암송의 중요성을 예전 만큼 강조하지 않는 시대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특정 성경 구절을 읊으면 바로 맞추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특정 본문을 읽을 때 해당 구절과 유사한 본문들을 기억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유대인들은 성경암송에 능통한 사람들이다. 보통 성년이 되면, 우리는 구약성경이라고 지칭하고, 그들은 히브리 성경이라고 부르는 책 전체를 머릿 속에 통째로 저장하게 된다.


오늘날 신약의 구약사용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신약학자들은 신약 저자가 어떤 구약성경 구절을 인용했을지 밝히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추세이다.


문제는 연구자 자신에게 익숙한 구절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근본적인 제약에 있다. 그리고 여러 해석적 가능성 중에서 가장 근접한 언어적 유사성과 신학적 유사성을 결정하는 순간에 작용하는 기존 연구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요한계시록의 목자 모티프>에서 요한계시록 7:9-17이 칠십인역 에스겔 34:23와 이사야 49:10의 영향이 컸다는 대다수의 견해와 달리 나는 스가랴 14장과의 연관성이 더 긴밀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논문을 지도해주신 김경식 교수님의 격려로 일관성 있는 논리를 이끌어 내는데 집중할 수 있었지만, 결과물을 내놓기까지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했다. 논문심사를 맡아주신 3분의 교수님들의 매서운 질문에 40여분 동안 방어해야 하는 고충은 덤이었다.


지금 요한복음 과제물을 진행하면서 동일한 문제에 봉착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한복음 7: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이 에스겔 47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지만, 나는 스가랴 14:8의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 스가랴 14장의 배경 아래 놓았을 때 요한복음 19:34의 의미도 명확해진다. 이 부분은 다음 연구주제로 삼을 예정이다.


내 관점은 좀 더 치밀한 검증을 거쳐야겠으나, 신약학자들이 신약 저자들의 사용한 구약본문을 결정할 때 작용하는 오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부디 구약인용을 결정할 때에는 해당 본문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약학자가 짊어진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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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들의 솔직한 인터뷰]

로고스바이블에서 신학자(biblical scholar)들을 대상으로 신학공부방법(“What Makes a good Biblical Scholar or Theologian?”)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https://academic.logos.com/category/what-makes-a-good-biblical-scholar/


박사학위 취득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는 매우 유익한 조언들이 담겨 있다. 여기에 소개된 신학자들 모두 한때는 학생이었고 지금은 교수로 섬기고 있기에 , 학생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조언 보다 더 공감되는 글들이 있다. 최근 에딘버러대학교 뉴컬리지(New College)에서 신학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바로 그것이다. 평소에는 표현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가 재밌으면서도 버겁다. 유학생으로서 버거움을 느끼고 있다면, 아래 인터뷰 내용들이 위로를 줄거라 믿는다.


Rebecca Runesson, Master's student in Biblical Studies

https://www.facebook.com/SchoolOfDivinityEdinburgh/photos/a.525389447543170.1073741831.167868063295312/1646672165414887/?type=3


Nuam Hatzaw, Master's student in World Christianity

https://www.facebook.com/SchoolOfDivinityEdinburgh/photos/a.525389447543170.1073741831.167868063295312/1646739425408161/?typ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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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phronesis]


이 용어에 대한 이해는 Perseus Digital Library의 설명이나 아래 글을 읽으면 된다.


Philophronesis (필로프로네시스; 헬. “논법의 일종”) — Benevolentia.

온화한 연설과 겸허한 복종으로 분노를 완화시키기 위해 시도하는 것. 따라서 할(Hal) 왕자는 과거의 과오에 대해 자신의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했다.


당신의 권위를 기뻐하듯, 나는 내가 확실한 해명으로 모든 공격을 물리칠 수 있게 하고 싶소.

뿐만아니라 나는 내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수많은 것에 대해 스스로 일소할 수 있다는 것에 의심하지 않소.

아직까지 이러한 정상참작은 내게 요청되지 않고 있소.

수많은 이야기들에 대한 재증명은 종종 고귀한 경청으로 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고안했소.

명랑한 아첨꾼과 상스러운 수다쟁이에 의해

젊은 시절 몇 가지 사실에 대해 나는 방황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과오를 범했오.

나는 진실한 순종으로 용서를 찾았소.

(1 Henry IV, III, ii)


Richard A. Lanham, A handlist of rhetorical terms : a guide for students of English literature. Lond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1.


출처: http://cafe.naver.com/hwplus/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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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헬라문화

추천도서 2017. 11. 10. 08:05

종교사학파의 영향인지 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중요시 하는 성서학자들의 출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신약성경과 헬레니즘을 비교하는 연구가 활발한 시기가 있었다. 덕분에 지금은 본문연구를 할때 배경연구는 기본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 되었다. 참고할만한 주석으로는 헤르메네이아(Hermeneia) 시리즈가 단연 독보적이다.

문제는 신약성경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전제 하에 성경을 해석하려는 학자들이 제법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었고, 증명되지 않은 자신의 전제를 기반으로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루돌프 불트만이다.  

이 책은 신약성경과 헬레니즘을 비교하여 과연 이러한 경향성이 합당한가를 검증한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독창성을 드러낸다. 여전히 신약성경을 헬레니즘의 영향 하에 해석하려는 입장을 가졌다면, 이 책을 통해 그 틀을 깨길 바란다.


복음과 헬라문화
국내도서
저자 : 로날드 H.내쉬 / 이경직,김상엽역
출판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2017.05.05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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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nativistic'이란 단어는 없으며 'nativism'을 참고해야 한다.


nativism

1. 원주민 보호주의; 토착 문화 부흥[보호]

2. (철학) 선천설, 생득설(生得說)


대체로 성서학에서는 이스라엘 고유의 문화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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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과 신실

성찰 2017. 11. 5. 07:57
<회심과 신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대부분 회심한 이방인들이다. 그들은 기독교로 전향한 이후 당시 데살로니가 지역의 우상숭배를 저버렸다. 그래서 회심 이전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당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신실하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이웃에게도 신실하다(살전 1:3). 물론 그들에게도 "믿음의 부족한 것"(살전 2:10)이 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온전하기를 원했다(살전 3:13).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려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
그 답은 너무나 명확하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이미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행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바로 신실함에 있다. 주님이 곧 오실 듯이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느 시점에 시들어진 열정을 보이는 순간에 놓인 이들을 보게 된다. 이러한 태도에 나도 예외는 아닐지 모른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일시적인 열정이 아니라 내 삶이 다할 때까지,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변치 않는 신실함이다. 하나님만 신실하신것이 아니라 우리도 신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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