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서는 에스겔과 스가랴의 연관성을 분석하고, 두 본문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려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아래 출처는 Mark J. Boda, Haggai, Zechariah, The NIV Application Commenta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9) 201이다. 각주 20번에 언급된 자료들은 나중에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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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um Testamentum>의 60주년을 기념하여 올 한 해 동안 몇 편의 소논문들을 무료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처음 공개하는 여섯 논문들은 5월 16일까지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http://www2.brill.com/Free_articles_from_Novum_Testamen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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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서 다윗 계열의 메시아 사상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 사상은 지도자들을 향한 심판과 새로운 지도자의 등극이라는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독자들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목자 모티프를 사용하는 경우가 잦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셉 블렌킨솝(Joseph Blenkinsopp)은 『David Remembered: Kingship and National Identity in Ancient Israel』에서 다윗 계열의 메시아 사상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었다. 

마지막 9장은 로마 제국에 대한 저항에 대해 다룬다. 일부 자치권이 보장되는 지역이 있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로부터 해방되기를 염원했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다윗과 같은 메시아의 등장을 고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메시아의 표적들을 행하셨고 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메시아로 여겨졌지만, 하나님의 구원사를 위해 십자가형벌을 짊어지셔야 했다. 바로 이 지점이 오늘 날까지 수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이다.

다윗 계열의 메시아 사상에는 지도자들을 향한 심판과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주제는 목자 모티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비유에서는 목자의 자기희생을 말한다. 오랜 전통과 달리 목자 모티프를 사용하면서 지도자들을 향한 심판과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우리는 요한복음의 선한 목자 비유의 독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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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후서 전문가 중 한 명인 칼 돈프라이드(Karl P. Donfried)는 사도 바울의 수사적 기법에는 다음과 같은 목적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2 Thessalonians is attempting to persuade the Thessalonian Christians both to think and to act differently. - Karl P. Donfried and I. Howard Marshall, The Theology of the Shorter Pauline Letters, 99.

데살로니가후서는 데살로니가 기독교인들이 다르게 생각하고 또한 다르게 행동하도록 설득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기독교인의 본질은 세상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데 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이유는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하고 자신들과 별 차이점을 보이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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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소개된 기사는 짦막해서 영문 기사들을 찾아 보았다. 이번에 발견된 인장이 선지자 이사야의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성서고고학은 성경의 역사성을 검증하는 아주 중요한 분야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입증한 사건이다.


Is This the Prophet Isaiah’s Signature?

https://members.bib-arch.org/biblical-archaeology-review/44/2/7


Has Eilat Mazar Discovered Archaeological Evidence of Isaiah the Prophet?

https://www.thetrumpet.com/16947-has-eilat-mazar-discovered-archaeological-evidence-of-isaiah-the-proph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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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몇 일 전 에스겔과 스가랴의 연관성에 대한 글을 썼는데, 오늘 제 주장을 뒷받침해 줄 근거를 찾았습니다. 출처는 가장 최근에 출간된 마크 J. 보다(Mark J. Boda)의 스가랴 주석서입니다. 보다 교수는 현재 캐나다 맥매스터대학교에 재직 중이며, 스가랴 전문가입니다.


Interestingly, 12:2–13:6 follows 11:4-16, which, as noted in the commentary on that section, is heavily influenced by Ezekiel 34 and 37. Thus, the battle/spirit unit in Ezekiel 36–37 follows after the shepherd unit in Ezekiel 34, and the battle/spirit unit in Ezekiel 38–39 follows after the shepherd unit in Ezekiel 37.- Mark J. Boda, The Book of Zechariah,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Eerdmans, 2016)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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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의 생존

끄적 2018. 3. 3. 08:39

내가 유학을 결심했을 때 정말 심각한 고민들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경력단절과 자산감소의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해도 향후 진로에 대한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서 한국어로 공부한다? 영어에 대한 부담 없이 모국어로 해외 신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다는 장점 이외에는 다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국내에서 공부하면 되는데 왜 굳이 외국일까? 국내에 실력 있는 한국인 교수가 없어서? 혹은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국내에서는 미흡해서?


신학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왜 영어권 국가에서 한국어 과정을 만들었을까. 자국내 한국어 사용자들을 위해 만들었을까? 아니면, 해외 유학생들을 고려하여 만들었을까?


풀러신학교의 경우 박사학위 장사에 대한 소문이 자자해서 지금은 예전처럼 이 학교 출신이라고 자랑하는 경우가 드물긴 하지만, 지금도 수요는 여전한듯 하다. 오히려 코리안센터를 개원하면서 한국교회를 향해 더욱더 적극적인 구애를 하는 모양새이다.


나 역시 이러한 움직임이 신학교의 생존과 폭넓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방안 중 하나라는 점을 알고 있다. 또한, 이 학교의 교수진이 매우 훌륭하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 학교 관계자들이 미래지향적인 구조조정 보다는 단기적인 관점에서 한국교회를 돌파구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관련기사] 풀러 코리안센터 개원 “한국교회와 깊은 관계 맺길 기대”


* 이 글은 드림투게더에 게재되었습니다. (업데이트 2018. 3. 3 미시간 기준)

http://www.thedreamtogether.com/news/articleView.html?idxno=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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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 매카이(Cameron Mackay)은 "Zechariah in relation to Ezekiel 40–48"란 소논문에서 스가랴가 에스겔 40–48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는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번째는, 스가랴의 생존연대이다. 스가랴는 포로의 귀환을 목격한 세대이다. 두번째는, 스가랴서와 에스겔 사이에 존재하는 본문의 유사성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과 회복 등 서로 중첩되는 주제가 존재한다. 세번째는, 지형적 배경이다. 두 본문 모두 예루살렘이 지형적으로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의 글은 매우 흥미로우며, 실제로 그의 주장대로 스가랴가 에스겔 40–48장에 대한 이상을 계승 받았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현재 내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나는 에스겔 34장의 이스라엘 목자들을 향한 예언이 스가랴 9–14장의 목자 모티프와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의 근거는 두 본문 모두 동일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데 있다. 첫번째, 이스라엘 목자들을 향한 심판. 두번째, 여호와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신다.

만약 내 전제가 옳다면, 이스라엘 목자들을 향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구조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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