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최근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스가랴 9-14장의 목자 은유(shepherd methaphor)가 나타나는 본문은 3-4곳 정도이다.

◎Anthony R. Petterson (10:1–11:3; 11:4–17; 13:7–9)
◎Joseph Blenkinsopp (11:4–17; 12:10–14; 13:7–9)
◎Kelly D. Liebengood (9:9–10; 11:4–14; 12:10; 13:7)
◎Mark J. Boda (10:1–3; 11:1–3, 17; 13:7–9)
◎Paul L. Redditt (10:2–3a; 11:3, 4–16[17]; 13:7)
◎Young-Sam Chae (9:9–15; 10:1–6; 11:4–17; 12:6–14; 13:1–9)

학자들마다 목자 은유에 대한 견해는 조금씩 다르지만, 스가랴 9-14장의 주제가 심판과 회복이며, 그 중심에는 목자 은유가 있다는데 다들 동의한다. 특히, 11장의 목자의 두 막대기 상징 행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에 대한 강조에 대해서는 모두 한 목소리를 낸다.

나는 기존 견해 보다 더 나아가서 9-14장 전체에 걸쳐 목자 은유가 나타난다고 주장하는데, 그 단서가 스가랴가 목자 은유를 사용할 때 꼭 목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데 착안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고대근동에서 오랫 동안 목자가 왕을 상징하는 은유로 사용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도 주목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은 목자이고, 목자는 왕이었다. 이를 전문용어로 '목자-왕'(Shepherd-king)이라고 한다. 주변 국가에서는 이 용어를 왕에게 적용했으나, 이스라엘에서는 일차적으로 야웨에게 적용했고, 그 다음으로 왕을 지칭하는데 사용했다. 이러한 의도는 너무나 분명하다. 현세의 왕은 야웨의 대리인이며,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 한 분이기 때문이다.

고대근동에서 왕의 주요임무 중 하나는 정의의 실현이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강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심판은 정의 실현의 방편이다. 스가랴 9장의 시작은 이방 국가들을 향한 심판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여호와의 전쟁(Divine Warrior)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 경우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큰 그림을 놓치기 쉽다. 대신에 왕의 정의 실현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스가랴 9장은 처음부터 목자-왕 은유로 시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4장의 야웨의 날 역시 동일하게 목자-왕 은유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9절의 왕의 등극 선언은 14장 전체의 핵심이자 목자-왕 은유의 절정이다. 그리고 이방국가들을 향한 초막절 준수 명령을 통해 하나님의 열방통치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스가랴서가 마무리 된다.

이렇듯 고대근동의 목자-왕 은유를 염두에 두고 9-14장을 읽으면, 선지자 스가랴가 꿈꾸었던 그리고 전하고자 했던 심상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책 읽다가 스가랴 9장의 도입부부터 목자-왕 은유로 해석할 수 있다는 글을 쓰다니, 아닌 밤 중에 홍두깨인가 신령한 은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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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The shepherd imagery in Zechariah 9-14>

[저자] D. F. O’Kennedy (University of Stellenbosch)

[출처] http://www.scielo.org.za/pdf/ote/v22n2/1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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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연구주제로 삼은 <Reading John 10:1–18 in light of Zechariah 9–14>를 통해 은혜를 많이 받는다. 포로귀환 이후 에스겔과 스가랴가 목자 모티프를 사용해야 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솔직히, 내가 요한복음의 목자 모티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는 박사학위 취득의 용이함 때문이다. 내 신학석사 논문 <요한계시록의 목자 모티프>에서 참신한 해석적 가능성을 개진했으므로, 요한복음의 선한 목자 비유에서 내 전제를 증명할 수 있다면, 요한복음 전공으로 박사과정에 진학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거라고 예상했다. 목자 모티프란 주제 하나로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이라는 두 분야에 숫가락을 얹을 수 있는 기회는 덤으로 주어진 셈이다.


그런데, 이 연구를 진행하고 학기말이 다가오면서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한때 내 관심사가 포로기 신학이었다는 사실말이다. 당시에는 포로기 시대를 거쳐 묵시문학이 발현되므로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차후 방향설정에 도움이 될거 같았다. 이러한 이유로 신학석사 과정에서는 신약 내 묵시문학으로 간주되는 요한계시록을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여러 사정이 있어서 내 관심사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요한계시록의 목자 모티프>를 졸업논문으로 제출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스가랴 9-14장은 구약 내 묵시문학으로 알려진 본문이다.


요한복음의 선한 목자 비유를 통해 에스겔 34장과 스가랴 9-14장에 집중하면서, 다시 예언자들의 심령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포로기에 대한 아픔과 상처, 그리고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을 반복적으로 묵상하게 된다. 그리고 포로귀환 이후 쓰인 구약성경과 목자 모티프가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목자 모티프야말로 예언자들의 심상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수단이자 독자들을 설득하는 강력한 언어였던거다. 내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신약성경을 통해서 포로기 문학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제야 내가 왜 목자 모티프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이 되는듯 하다. 지금껏 나는 내 연구와 포로기 신학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칫 '우연' 혹은 '편의성'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끊임 없이 나에게 역사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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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가 다윗 왕조의 멸망을 경험한 세대들에게 목자 모티프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가,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선포하는 이유를 고민해 보게 된다. 스가랴의 목자 모티프를 통해 절망 속에 한 줄기의 희망을 바라보는 예언자의 절규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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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 매카이(Cameron Mackay)은 "Zechariah in relation to Ezekiel 40–48"란 소논문에서 스가랴가 에스겔 40–48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는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번째는, 스가랴의 생존연대이다. 스가랴는 포로의 귀환을 목격한 세대이다. 두번째는, 스가랴서와 에스겔 사이에 존재하는 본문의 유사성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과 회복 등 서로 중첩되는 주제가 존재한다. 세번째는, 지형적 배경이다. 두 본문 모두 예루살렘이 지형적으로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의 글은 매우 흥미로우며, 실제로 그의 주장대로 스가랴가 에스겔 40–48장에 대한 이상을 계승 받았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현재 내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나는 에스겔 34장의 이스라엘 목자들을 향한 예언이 스가랴 9–14장의 목자 모티프와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의 근거는 두 본문 모두 동일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데 있다. 첫번째, 이스라엘 목자들을 향한 심판. 두번째, 여호와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신다.

만약 내 전제가 옳다면, 이스라엘 목자들을 향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구조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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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5th-century Ravenna mosaic illustrates the concept of The Good Shepherd.

 

저의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학석사(Th.M) 학위 논문인 "요한계시록의 목자 모티프 - 스가랴 14장, 요한계시록 7:9-17, 21:1-8 상호본문성 연구 -" (지도: 김경식 교수) PDF 파일입니다. 한글로 작성한 파일을 영어로 번역하며 원본의 틀린 부분을 바로 잡았습니다. 언어는 한글과 영문으로 제공합니다. 한글판의 경우 첨부파일의 용량 제한으로 압축해서 올립니다. 영문판은 초록과 약어표, 목차를 붙였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목자 모티프.7z

A Study on the Shepherd Motif in the Book of Revelatio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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