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전승의 신뢰성

성찰 2019. 11. 13. 07:27

1. 예언서
예언이 하나님의 계시에서 예언자의 발화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기 어렵지만,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예언자의 의미 해석과 청중을 향한 전달 방식을 고민했다는 추측은 가능하다. 신탁을 받은 예언자는 그 의미를 깨닫기 위해 자신의 신학과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통찰을 결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나님의 계시는 예언자의 해석을 거쳐 원 의미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더 하는 동시에 열린 해석을 가능케 한다. 하나님의 계시가 예언자의 발화와 행위로 바로 이어지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물론 하나님의 계시 자체가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청중의 상황에 따라 이해는 또 달라질 수 있다.

예언은 후대 예언자에게 계승되기도 한다. 이때 후대 예언자들은 전 예언자들의 신학과 선포의 성취 여부 등을 고려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해석하고 선포한다.

목자-왕 전승의 경우 예레미야, 에스겔, 스가랴의 용례가 전부 다르다. 셋 모두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지만, 그 양상은 저마다 다르다. 그리고 심판에 대한 견해도 다 다르다. 그 차이는 시대 변화에 맞추어 예언자들의 해석이 달라졌거나 계시의 점진성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려면, 역사적 배경과 기록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2. 복음서 
복음서 분야에서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차이에 관한 연구로 Q의 존재를 가정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증언자들의 구두 전승은 공통 자료에 의존하지 않아도 복음서가 기록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복음서가 예수의 사후 최소 40~50년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전제로 인해, 인간의 기억력에 관한 연구로 유대 구두 전승의 신뢰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특히 사복음서에서 발견되는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른 기록이 회의론자들에게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인간의 기억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지만, 유대인에게 구두 전승을 암송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사실을 주지한다면, 복음서의 신뢰성은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고 본다. 또한 동일한 사건이지만 다른 기록의 존재는 저자의 신학이 원인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원론을 주장하는데, 역사 기록 자체가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데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복음서라는 장르에서 드러나듯이 저자는 역사 그 자체를 기록한 게 아니다. 현대 역사가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복음서는 역사적 기록인 동시에 저자의 신앙 고백이기도 하다.

3. 발화자와 기록자에 대한 이해
예언서와 복음서에 제기되는 문제는 대체로 발화자와 기록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출발한다. 해석자의 전제로 예언서와 복음서를 투영해서 분석하기 때문에 원래 의도에서 벗어난 문제 제기를 하게 된다. 아마도 이런 현상을 시대착오(anachronism)라고 할거다.

4. 바트 어만(Bart D. Ehrman)
내가 쉽게 비판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지만, 내가 볼때 어만은 사본의 변이를 추적하다가 길을 헤매어 회의주의자가 된 사람이다. 그리고 토론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상당히 경솔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복음서의 신뢰성을 주장하는 토론 상대에게 "당신은 근본주의자이며, 그러한 태도는 역사가로서 부적합하다"라던가 "잘못된 믿음에서 회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어만이 많은 지식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전부 설익은 상태라는 느낌을 받는다. 

[전승의 신뢰성]

1. 예언서
예언이 하나님의 계시에서 예언자의 발화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기 어렵지만,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예언자의 의미 해석과 청중을 향한 전달 방식을 고민했다는 추측은 가능하다. 신탁을 받은 예언자는 그 의미를 깨닫기 위해 자신의 신학과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통찰을 결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나님의 계시는 예언자의 해석을 거쳐 원 의미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더 하는 동시에 열린 해석을 가능케 한다. 하나님의 계시가 예언자의 발화와 행위로 바로 이어지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물론 하나님의 계시 자체가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청중의 상황에 따라 이해는 또 달라질 수 있다.

예언은 후대 예언자에게 계승되기도 한다. 이때 후대 예언자들은 전 예언자들의 신학과 선포의 성취 여부 등을 고려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해석하고 선포한다.

목자-왕 전승의 경우 예레미야, 에스겔, 스가랴의 용례가 전부 다르다. 셋 모두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지만, 그 양상은 저마다 다르다. 그리고 심판에 대한 견해도 다 다르다. 그 차이는 시대 변화에 맞추어 예언자들의 해석이 달라졌거나 계시의 점진성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려면, 역사적 배경과 기록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2. 복음서 
복음서 분야에서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차이에 관한 연구로 Q의 존재를 가정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증언자들의 구두 전승은 공통 자료에 의존하지 않아도 복음서가 기록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복음서가 예수의 사후 최소 40~50년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전제로 인해, 인간의 기억력에 관한 연구로 유대 구두 전승의 신뢰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특히 사복음서에서 발견되는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른 기록이 회의론자들에게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인간의 기억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지만, 유대인에게 구두 전승을 암송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사실을 주지한다면, 복음서의 신뢰성은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고 본다. 또한 동일한 사건이지만 다른 기록의 존재는 저자의 신학이 원인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원론을 주장하는데, 역사 기록 자체가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데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복음서라는 장르에서 드러나듯이 저자는 역사 그 자체를 기록한 게 아니다. 현대 역사가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복음서는 역사적 기록인 동시에 저자의 신앙 고백이기도 하다.

3. 발화자와 기록자에 대한 이해
예언서와 복음서에 제기되는 문제는 대체로 발화자와 기록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출발한다. 해석자의 전제로 예언서와 복음서를 투영해서 분석하기 때문에 원래 의도에서 벗어난 문제 제기를 하게 된다. 아마도 이런 현상을 시대착오(anachronism)라고 할거다.

4. 바트 어만(Bart D. Ehrman)
내가 쉽게 비판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지만, 내가 볼때 어만은 사본의 변이를 추적하다가 길을 헤매어 회의주의자가 된 사람이다. 그리고 토론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상당히 경솔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복음서의 신뢰성을 주장하는 토론 상대에게 "당신은 근본주의자이며, 그러한 태도는 역사가로서 부적합하다"라던가 "잘못된 믿음에서 회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어만이 많은 지식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전부 설익은 상태라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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