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Tiller는 "동물이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대표하듯이, 사람은 천사를 대표한다"라는 문장에 각주를 달아서 에녹 1서 17:1을 보라고 썼다(A Commentary on the Animal Apocalypse of 1 Enoch, 245 n.2).

 

And they took me (and) led (me) away to a certain place in which those who were there were like a flaming fire; whenever they wished, they appeared as human beings. (1 Enoch 17:1)

 

'활활 타오르는 불'(a flaming fire)은 천사의 외형적 특성으로 보인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천사는 자신의 외형을 사람처럼 보이도록 했다. 사람만한 활활 타오르는 불이 에녹을 안고 혹은 에녹의 팔을 잡고 공중 비행을 한다고 상상해보라. 중요한 사실은 천사는 사람이 아니다.

 

이 문장은 Tiller의 의도대로 사람이 천사라는 의미로 직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문장을 보면 천상의 외형을 서술한 87:2를 이해하게 된다.

 

heaven [beings] with the appearance of white men, (1 Enoch 87:2)

 

이 문장에서 천사들은 흰 사람들의 외형을 갖고 있다. 여기서 '희다'는 단순히 피부색이 아니라 천상적 특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하게도 다른 해석자들은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인종 차별에 민감한 서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고 본다.

 

하나님의 외형에 대한 유일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his appearance was majestic and fearful and mighty, (1 Enoch 89:30)

 

이러한 묘사로 하나님의 외형을 추측할 수 없다. 다만 지상에서 표현할 수 없는 형태를 갖고 있었다는 정도만 추정할 수 있다.

 

천사의 '활활 타오르는 불' 같은 모습은 충분히 하나님의 외형만큼이나 두려움을 유발할 수 있다. 천사의 변신을 언급한 이유가 되겠다.

 

출애굽기 3장 1-5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에녹 1서의 저자가 성경을 인용하지는 않았겠지만, 기원전 2세기 무렵에는 천상적 존재를 불꽃과 연결짓는 관행이 있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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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문장으로 읽는 신약 / 게리 버지 / 이철민 역 / IVP

 

게리 버지 교수는 자신의 경력 중에서 윌로우크릭 교회 성경 교사로 섬기는 사역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버지 교수를 학자보다 대중강연자에 가깝다고 본다. 당연히 박사 학위 소지자로 연구 활동을 하며 학교에서 25년 이상을 가르친 노련한 학자이지만, 학자라고 할 때 연상되는 학술 활동보다는 외부 강연이나 교회 사경회와 같은 활동에 더 가치를 둔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출판 이력을 보면 그가 어떤 성향의 글을 추구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일곱 문장으로 읽는 신약』은 그에게 적합한 성격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버지 교수는 다소 독특한 연구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요한복음의 성령론"으로, 지금까지 요한복음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보통 요한복음 전공자들은 요한계시록이나 요한 서신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경향이 있는데, 버지 교수는 로마서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그 덕에 신약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바울 서신을 다루는 데 아주 능숙하다.

 

버지 교수가 선택한 신약의 핵심 일곱 문장은 '성취', '하나님 나라', '십자가', '은혜', '언약', '성령', '완성'과 관련이 있다. 나는 아직 이런 주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떤 문장을 선택할지 모르겠으나, 그의 선택은 아주 탁월했다고 판단이 되며, 무엇보다 그의 글은 쉽게 읽혀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출판 의도대로, 그리고 버지 박사의 바람대로 교회 구성원들이 같이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여건이 된다면, 책 말미에 위치한 "나눔 질문"을 다뤄본다면 신약을 이해하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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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노아와 모세의 변형에서 사람은 천사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면 편해진다. 얼마 되지 않는 선행 연구이지만, 죄다 사람은 천사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근거도 여러 가지를 제시한다. 반면에 문자 그대로 인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 피곤해진다. 이 쪽 진영에 포함된 학자들은 근거 제시 자체를 안 한다. 오죽하면 내가 그들의 방법론이 그 근거라고 변호해줄 정도이다.

지난 글에 인간을 천사로 해석하는 경향을 '동일시의 오류'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천사의 외형을 설명하는 87:2(heaven [beings] with the appearance of white men)에서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이 천사 집단은 사람(men)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색상은 '희다'(white).

동물묵시록에서 짐승의 종류와 색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담의 자손을 예로 들어 보겠다. 아담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다. 하나는 '검정'으로 가인을 지칭하고, 다른 하나는 '빨강'으로 아벨을 지칭한다(85:3). 검은 송아지가 붉은 송아지를 죽인다(85:4). 여기서 우리는 색상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검정'은 죄악된 속성을 의미하고, '빨강'으로 죽음을 가리킨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 새로운 자녀가 출생하는데, 창세기에서 그의 이름은 '셋'이며, 그는 흰 황소이다. '흰색'은 순수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천사에게 '희다'라는 속성을 부여한 의미는 그들이 천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물묵시록에서 천사는 반복적으로 '흰 사람들'(white men)으로 등장한다. 타락한 천사들은 점차 짐승의 무리를 일꾼다고 묘사되어 있음을 명심하라.

반대로 노아와 모세의 변형에서 ‘became a man’과 ‘had become a man’라는 문구가 사용하지만, 그들의 외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나는 '희다'라는 단어에서 이미 사람과 천사의 구별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노아와 모세의 변형 자체가 그 두 인물의 남다른 위치를 드러내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어떠한 묘사도 더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이라는 존재와 사람의 외형을 한 존재는 동일시될 수 없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수많은 해석자들이 천사의 외형에서 'man/men'에 집착하고, 전부라고 해도 될 만큼 'man/men'을 천사로 해석한다.

심하게는 those first seven white men(90:21–22)이라고 해서 명백하게 천사를 지칭하는 본문을 모세의 변형과 연결시킨다(James VanderKam and Dulcinea Boesenberg).

나로서는 노아와 모세의 변형을 천사라고 주장해도 된다. 내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이 주장이 대세라서 내가 이 주장을 따라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이 천사가 아니라는 근거가 자꾸 발견된다. 그것도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다. 다만 내가 열폭하는 이유는 명백한 근거 없이 주장을 난발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학계에서 손꼽히는 대가라는 사람들 조차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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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d는 89:59–64에 등장하는 70 목자와 관찰자가 모두 인간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는 예언적 역사주의(mantic historicism)를 통해 이 단락을 지상 영역에서 펼쳐진 사건이라고 보는 듯 하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또다른 자’(another one, 89:61)를 복수로 해석하여 인간 관찰자들(human watchers)과 서기관들(the scribes)라고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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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elsburg는 89:59–64이 지상 세계와 천상 세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1 Enoch, 388).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목양의 권한을 수임한 70 목자가 활동할 영역(59–60절)은 지상이며, 천사 서기관이 70 목자의 활동을 기록하고 하나님께 보고할 곳(61–64절)은 하늘 법정으로 본다.

또한 Nickelsburg는 이 단락의 배경이 하늘이라고 서술한다(1 Enoch, 389). 그의 관점에 의하면 지상에서 발생한 사건(54–58절) 이후 하늘 법정(59–64절)으로 공간이 바뀐다. 그는 ‘양의 주인’(=하나님)을 대신에 양떼를 치리할 ‘70 목자’와 목자의 관찰 임무를 수행할 ‘또다른 자’(another one, 89:61)는 천사라고 서술한다. 대다수 후대 연구자들은 Nickelsburg의 주장을 기반으로 개인의 연구를 개진하는 경향이 있다.

내 관찰에 의하면, 70 목자는 천사가 아니다. 한동안 나는 70 목자를 사람으로 가정했으나, 며칠 사이 중요한 발견을 통해 내 관점에 변화가 생겼다. 다행히 내 주장과 근거는 더 견고해짐. 현 단계에서는 70 목자를 여전히 지상적 존재라고 보고 있으며, ‘또다른 자’는 천사이며 서기관 역할을 한다고 가정하고 있음을 밝힌다.

내 주장과 근거를 제시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서 ’70 목자의 천사설’을 헤아려보고자, Nickelsburg가 89:59–64의 배경을 하늘로 설정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는 지상에서 하늘로 바뀌는 공간 전환이 급작스럽다고 인정한다(1 Enoch, 389). 그럼에도 그의 공간 설정으로 위해 얻는 이득이 두 가지 정도 된다. 하나는 70 목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과정이 쉬워진다. 대체로 ‘또다른 자’에 관해서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Stephen Breck Reid가 ‘또다른 자’를 인간으로 간주하지만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내 관점에서는 Nickelsburg와 마찬가지로 하늘 서기관으로 보는 견해가 타당해 보인다. 여기서 또다른 이득이 발생하는데, 새로운 두 집단의 등장을 연출하는데 용이해진다. 70 목자를 지상적 존재로 보고 다른 인물을 하늘 서기관으로 보면, 하나님이 소환하는 장소가 지상과 하늘로 나뉘어 지고, 해설자 입장에서는 이 상황을 설명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배경을 하늘로 설정하면 이 두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동물묵시록에 등장하는 인물은 지상적 존재와 천상적 존재로 나뉜다. 지상적 존재는 아담부터 인류를 지칭하며, 타락한 천사와 그의 후손이 포함된다. 천상적 존재는 하나님과 천사가 있다. 문제는 동물묵시록에서 70 목자의 기원과 외형을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소환에 의해 홀연히 등장한다(89:59). 또한 ‘목자’라는 직위는 동물묵시록의 특징을 감안하면, 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혼란을 야기한다.

‘또다른 자’의 등장은 ’70 목자’의 정체를 규정하는 작업의 어려움을 더한다. 글의 흐름은 일련의 연속성을 갖고 있어서, 두 사건을 별개의 장소에서 발생했다고 단정짓기 쉽지 않다. 하나님의 소환이 발생한 장소가 한 곳(하늘 혹은 지상)이라는 입장과 두 곳이라는 주장 중 설명이 손쉬운 방향은 어디일까?

89:59–64의 배경을 하늘로 설정하면, 70 목자는 천사로 규정되며 두 집단의 소환은 한 곳에서 발생한 사건이 된다. 70 목자의 징벌을 설명하기도 쉬워진다. 하나님이 위임한 70 목자를 징벌할 근거는 확실해진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 범위를 넘어설 때이다. 하늘 서기관의 소환이 바로 이 지점과 맞물려 있다. 이것이 Nickelsburg가 89:59–64의 배경을 하늘로 설정한 이유이다.

나 역시 이러한 설명이 간결하다고 본다. 하지만 몇 가지 가정을 머리 속에서 돌려 보고 있는데,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의문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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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서 89:59-64에 등장하는 70 목자가 천사가 아닌 실제로 사람이었다는 주장을 하려고 한다. 그 전에 '천사'와 '사람'의 차이를 살펴보고 있다. 내 짐작에 "동물묵시록에 등장하는 천사와 사람의 차이"이란 글을 쓰고 나면, "동물묵시록에 등장하는 70목자의 정체"는 쉽게 다듬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학교 도서관 이용이 제한적이라 자료 수집이 쉽지 않지만, 수급 가능한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그 중 George W. E. Nickelsburg의 주석서 『1 Enoch: A Commentary on the Book of 1 Enoch』는 매우 유용하다. Nickelsburg의 관찰은 정교하고 섬세하다. 후대 연구자들이 그를 못 따라간다. 동물묵시록의 첫 주석서라는 Patrick A. Tiller의 『A Commentary on the Animal Apocalypse of 1 Enoch』는 어제 주문해 두었다.

 

여러 자료를 보고 생각을 많이 해보지만, 결국 Nickelsburg의 글을 통해 내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와 나는 비슷한 생각을 하지만, 대부분 내가 그의 의견을 따르지만, 최소한 70 목자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그의 관찰은 정교하고 섬세하지만, 중요한 단서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70 목자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쓴 글들 모두 박사 학위 논문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여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솔직히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내가 선행 연구와 다른 나만의 주장과 논리를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지도 교수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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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e, Philip L. "Textual and Redactional Aspects of the Book of Dreams (1 Enich 83-90)." Biblical Theology Bulletin 31/3 (2001): 106-120. 아래 내용은 112쪽에서 가져옴.

 

This earthly destruction is also complemented with a cosmic judgment of seventy shepherds as well as a group of shepherds to keep account of the other, first, group of shepherds, making sure they note how many are killed by the first group beyond the allotted number permitted by God (89:61). Although the first group of shepherds likely refers to the nations used by God to bring judgment upon Israel-the reference to “seventy” alone indicates the nations of the world-the second group likly refers to an angelic or cosmic group of shepherds who keep records for future judgment. Davidson (104), however, holds that even the seventy shepherds are angelic beings set up by God to bring destruction to Israel. I am taking a slightly more cautious position, relating these shepherds to the nations of the world, an identification which is plausible given the number seventy. But the motif of angels standing over nations who war against one another should not be discounted (cf. Dan 10:10-14), and thus perhaps these seventy shepherds fit both Davidson’s angelic connection and my political connection.

 

본인은 입장은 70 목자는 '국가들'(the nations)이며, 그들의 행위를 기록하는 관찰자는 목자의 천상적 혼은 우주적 그룹으로 본다. 또한 70 목자의 천상적 존재를 주장하는 Davidson의 입장을 서술하며, 본인은 열방 가운데 70 국가를 가리키는 입장에 더 기운다고 밝힌다. 그런데, 마지막 결론에서는 천상적 존재를 지지하는 입장을 무시할 수 없다며, 70 목자는 Davison의 천성적 연결과 자신의 정치적 연결 모두 가능할거라는 입장으로 끝맺는다.

 

긍정적인 부분을 먼저 말하자면, 70 목자는 지상적 존재이고 관찰자는 천상적 존재라는 관찰이다. 현재 나는 한 장면에서 하나님은 서로 다른 차원의 존재들을 부르셨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나는 Tite가 관찰자를 목자로 보는 견해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목자의 천상적 혼은 우주적 그룹'이란 용어 자체가 생경하다. 난 그냥 천사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Davidson의 입장과 자신의 견해를 타협 혹은 융화하려는 시도이다. 내가 볼 때 두 입장은 섞일 수가 없다. 그냥 드는 생각은 저자 스스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Davidson의 입장을 존중해주려는 차원에서 자신의 생각을 한 발 뒤로 빼준 모양새이다.

 

논외로, Tite는 노아와 모세의 변형을 다루면서 그들이 동물에서 사람으로 변했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그 존재가 실제로 사람인지 아니면 천상적 존재인지 다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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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묵시록에서 요시아 왕의 등장에 관한 서로 다른 주장이 존재한다. 하나는 요시아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주장이고, 또다른 하나는 요시아가 등장한다는 주장이다.

Nickelsburg는 요시아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한다(1 Enoch, 384). 그는 "국가적인 배교가 완성되었다; 그곳에는 더이상 선지자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The nation's apostasy is complete; there will be no more prophets)라는 표현을 쓴다. 이 말은 왕의 완악한 통치와 백성의 우상 숭배,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살해하는 태도 등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등졌다는 의미이다. 그는 선지자의 존재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또한 Nickelsburg는 므낫세의 배교를 전복하는 요시아의 선한 통치에 대한 언급이 누락되어 있고, 선지자 예레미야의 사역과 메시지에 관한 언급 역시 생략되어 있다고 본다.

Nickelsburg의 입장과 달리 Laato는 요시아 왕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The Chronology in the Animal Apocalypse of 1 Enoch 85–90, 3–19). 나는 진작 이 주장을 접했으나, 현재 시간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 내 주제와 관련성이 깊지 않아서 세밀한 검토는 추후 작업으로 미뤄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내 입장은 조심스럽지만 Nickelsburg를 따르고 있다고 밝히겠다.

앞으로 내 견해가 달라질 가능성이 없지 않으나, 내가 Nickelsburg의 주장을 따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에녹과 엘리야의 역할. 두 번째, 이스라엘의 배교에 그에 따른 종말론적 심판과 회복.

동물묵시록은 선지자들 가운데 엘리야의 비중을 높게 두고 있다. 설령 요시아 왕이 언급되었다는 입장을 취해도, 예레미야에 대한 진술이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엘리야의 중요성은 에녹과 연결하려는 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동물묵시록에서 에녹은 계시의 수령자라는 중대한 역할을 맡는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에녹의 삶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는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 예외적인 경험을 한 사람이다. 또한, 종말론적 심판 이후 에녹과 엘리야가 지상으로 내려온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앞서 다룬 "동물묵시록에 나타난 계시와 비밀"을 보라.

요시아 왕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더라도, 이스라엘의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배교는 전복되지 않고 지속되며,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배교에 따른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과 회복이라는 흐름 속에서 요시아 왕의 행적을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동물묵시록에서 요시아 왕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다루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있다.

혹시나 참고 문헌 정보가 필요하다면 아래 정보를 보라. 자료 표기는 각주 인용 방식으로 함.
Antti Laato, "The Chronology in the Animal Apocalypse of 1 Enoch 85–90,"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Pseudepigrapha, Vol 26.1 (2016): 3–19.
George W. E. Nickelsburg, 1 Enoch: A Commentary on the Book of 1 Enoch, ed. Klaus Baltzer, Hermeneia—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Minneapolis, MN: Fortress,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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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논증법 명칭은 모르겠으나, 동일시의 오류로 보이는 주장을 반박하는 중이다. 현 학계에서는 70 목자를 천사로 주장하는 견해가 우세하다. 나는 70 목자가 지상적 존재라고 주장할 예정이다.

70 목자의 천사설을 주장하는 진영에서 논리가 가장 탄탄한 인물은 
George W. E. Nickelsburg이다. 후대 연구자들이 Nickelsburg의 주장을 계승하지만, 그들의 근거는 설득력이 덜하다.

내 짐작에 70 목자를 천사로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heaven [beings] with the appearance of white men"(1 Enoch 87:2)

노아와 모세의 변형을 천사로 주장하는 근거도 위 구절에 기반한다. 내가 볼 때 이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문자적 동일성.

노아의 변형을 언급하는 구절은 89:1, 9이다.
It was born a bull but became a man. (89:1)

That white bull who had become a man came out of that vessel, and the three bulls with him. (89:9)

모세의 변형을 언급하는 구절은 89:36, 38이다.
And I saw in this vision, until that sheep became a man and built a house for the Lord of the sheep and made all the sheep stand in that house, (89:36)

And that sheep that had led them, that had become a man, was separated from them and fell asleep, and all the sheep searched for him and cried bitterly because of him, (89:38)

노아와 모세의 변형에서 became a man과 had become a man라는 문구가 사용된다. 둘 다 사람이 되었다는 진술 이후 그 변형을 초래한 동기로 보이는 건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다시 천사의 외모를 설명하는 구절을 보자.
heaven [beings] with the appearance of white men (87:2)

내가 주목하는 문구는 "the appearance of white men"이다. 천사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흰 색을 띄고 있다. 동물묵시록에서 색상은 해당 짐승의 속상을 반영한다. 그 중 흰 색은 거룩 혹은 순결함을 의미한다. 이 천상적 존재는 흰 색을 띄고 있다. 반면 타락한 천사의 후손은 검은 황소로 묘사되기도 한다(86:2). 또한, 천사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오해가 발생한다고 보는데, 사람의 형체를 갖고 있다는 것과 사람을 동일시해서는 안되다.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내 기준에서 말이다. 내가 볼 때는 어이가 없지만, 그 오류의 원인이 단순히 문자적 동일성에 있다.

현재 나 스스로 검증하면서 글을 쓰고 있어서 결론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내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면, 천사와 사람을 동일시하는 해석이 우세한 현실에 대해 씁쓸함이 느껴지게 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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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C. Olson은 숫양이 왕을 의미한다면, 종말의 때에 등장하는 흰 황소(90:37)는 평범하게 예루살렘의 통치자를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또한 그 흰 황소는 다윗 계열의 왕권을 상징하는 모형이 아니라고 본다(A New Reading of the Animal Apocalypse of 1 Enoch, 167). 이 글에서는 숫양과 흰 황소로 주제를 한정한다.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Davidic Messianism)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룰 주제인데, 나 또한 에녹1서는 이 사상을 따르지 않는다고 가정한다고 밝힌다.

앞서 "동물묵시록에 나타난 황소와 숫양의 의미"와 "동물묵시록에 나타난 계시와 비밀"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여기에서는 간략하게 정리하겠다.

숫양은 왕이 아니라 지도자를 가리킨다. 지도자에서는 군사적 행정적 종교적 의미가 다 포함된다. 예외적으로 야곱은 이스라엘 국가의 시발점이자 열두 아들의 아버지로 숫양으로 나온다(89:12). 야곱의 아들 중에서는 요셉이 숫양으로 묘사된다(89:14). 군사적 행정적 지도자, 즉 왕 중에서는 사울(89:42), 다윗(89:46), 솔로몬(89:48b)이 숫양으로 묘사된다. 왕은 아니지만, 마카비 항쟁을 주도한 유다 마카비도 숫양으로 그려진다(90:13, 16). 종교적 지도자, 즉 선지자 중에는 하늘에서 하강하는 엘리야를 숫양으로 묘사한다(90:31). 이러한 용례를 통해서, 숫양은 단순히 왕에 한정되지 않고, 지도자에게 폭넓게 적용되는 상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종말론적 흰 황소(90:37)를 해석하려면 그의 등장 시점이 중요하다. 먼저 "큰 뿔 달린 숫양"이 등장하고 최후의 전쟁을 치른다(90:9–16). 흥미롭게도 이 숫양조차도 전쟁에서 힘겨워하며 '양의 주인'(=하나님)의 참전으로 승리하게 된다(90:12–19). 종말론적 전쟁 이후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다(90:20–27). 새로운 성전이 건축되고(90:29), 이방 세력이 하나님을 예배하며(90:30), 에녹과 엘리야가 하강하고(90:31), 모든 양무리가 정결하게 된다(90:32). 이러한 일련의 종말론적 심판과 회복이 실현된 이후에 종말론적 흰 황소가 태어난다(90:37). 모든 맹수와 하늘의 새가 그를 두려워 한다(90:31). 여기에서 흰 황소의 등장은 족장 시대로의 회귀가 아니라 아담의 창조를 회복했다는 의미라는 Nickelsburg의 주장은 타당하다. 결론적으로, 이 흰 황소는 메시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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