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미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9.19 삭개오 이야기 연구의 결론
  2. 2011.09.02 누가복음 19장 8절 주해
누가복음19:8의 동사 δίδωμιἀποδίδωμι는 삭개오 이야기의 해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동사를 미래적 현재로 해석하느냐 습관적 현재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삭개오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라 예수의 구원사역에 대한 이해에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누가의 용례를 분석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석서에는 이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에서는 이러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누가의 용례를 분석한 후에 그에 따른 해석을 제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 결과 누가는 미래적 현재와 습관적 현재를 혼합하여 사용하며, 해석방향을 결정하는 요소인 문맥은 미래적 현재가 적합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아마도 삭개오는 세리장이라는 직위를 남용하여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삭개오의 집에 머물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죄인의 집에 머문다고 수군거렸을 것이다. 무리들의 수군거림을 들은 삭개오는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만약 누군가의 것을 토색했다면 네 배로 갚아주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결단은 당시의 관례와 비교할 때 다소 파격적인 수준이다. 그만큼 삭개오는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대가를 치르겠다는 남다른 각오를 보여준다. 이에 예수께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말씀하신다. 세례 요한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자손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이다. 따라서 삭개오의 고백은 회개로 여길 수 있다. 그리고 구원 선포는 예수의 사명과 관련이 있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주위에 있던 무리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며 무시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를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잃어버린 양으로 여기셨다. 예수의 잃어버린 양에 대한 언급은 에스겔 34장과 누가복음 15장을 연상시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목자의 역할을 하신다. 특히 누가복음 15장의 잃어버린 양의 비유는 회개에 대한 누가의 이해를 드러낸다. 누가복음에서 회개는 하나님의 약속과 예수의 사역에 의한 결과이다. 본문을 통해 부자 관원과 대조되는 삭개오의 자발적인 모습이 부각되면서도, 예수의 사역이 한층 더 강조된다.오랫동안 삭개오 이야기는 ‘세리의 회개’로 읽혀져 왔다. 즉 토색 행위로 부자가 되었으나 예수를 만나 회개하고 구원 받은 삭개오라는 인물로 그린 이야기로 해석한다. 하지만 청중/독자의 상황에 따라 더 풍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교회공동체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자들은, 예수께서는 자신들을 통해 교회공동체를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교회공동체에서 사람들을 정죄하고 소외시키는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사역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또한 부자들은 삭개오의 모습을 통해서 재물에 대한 태도를 바꾸도록 도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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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가 서서 말하는 상황이 분명하지 않다.[1]예수께서 이미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는지, 무리들과 떨어져 계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2]다만, 9절의 예수의 말씀을 통해 무리와 떨어져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건 추측할 수 있다.[3]또한, 이러한 반응이 무리들의 수군거림에서 비롯되었다는 건 분명하다.[4]삭개오는 예수를 “주”(κύριος)라 부른다.[5] 소경 역시“주”라 불렀다(18:41). 그리고 소경은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18:38, 39). 소경은 예수를 “주”라 부름으로써, 다윗의 자손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준다.[6]즉 소경에게 예수는 메시아였다.[7] “다윗의 자손”이란 칭호는 1:27, 31-33에 언급되어 있다.[8]그렇다고 해서 소경이 예수를 문자 그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여겼다고 볼 수는 없다.[9]당시에는 “다윗의 자손”은 회복과 치유를 가져온다고 믿었다.[10] 실제로, 예수께서는 4:17-18에서 이사야 61:1을 인용하시며, 자신의 사역을 밝히신다.[11]그렇지만, 소경의 경우에는 누가가 마가복음 10:51ῥαββουνίκύριε로 수정한 결과이다(참조. 20:33).[12] 누가는 셈어적 표현인 ῥαββουνί를 피하고,[13] 19:8과 통일성을 주기 위해 κύριε를 사용하였다.[14] 누가복음에서 소경이 예수를 주라 부른 대가는 구원(18:42)과 병 고침이었다(18:43).삭개오 역시 예수를 주라 불렀으니, 소경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은혜가 주어질 것이다. ἰδοὺ는 예수께서 자신의 말을 집중해서 듣도록 유도한다.[15]동사 δίδωμιἀποδίδωμι를 습관적 현재로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적 현재로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전체적인 해석과 주제가 달라진다.[16]습관적 현재로는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있으며, 만약 누군가의 것을 토색했다면 네 배로 갚아주고 있습니다.”로 번역하여 해석해야 하고, 미래적 현재라면 “제 재산의 절반을 주고 만약 누군가의 것을 토색했다면 네 배로 갚아주겠습니다.”로 번역하여 해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두 동사를 미래적 현재로 보고, 삭개오의 회심에 따른 서역으로 해석한다. , 세리장으로서 지금껏 행해온 불법적인 행위들을 회개하고, 자신의 재산을 올바로 사용하겠다는 다짐으로 해석한다. 이와 달리 동사의 형태가 현재형이므로 습관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17]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삭개오는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있고 토색했을 경우 네 배로 갚아 주고 있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재산의 절반(τὰ ἡμίσιά μου τῶν ὑπαρχόντων)은 아마도 일 년 수입의 절반을 의미할 것이다.[18]그렇지 않고 실제로 재산의 절반을 구제로 사용하고 있다면 그는 부자로 남을 수 없다(2절에서 누가는 삭개오를 부자로 소개한다). ‘만일 누군가의 것을 토색했다면’(εἴ τινός τι ἐσυκοφάντησα)은 세금을 징수하다가 실수가 발생했을 경우로 해석해야 한다. 토색과 네 배 보상의 공존은 어불성설이다. 네 배로 보상하는 삭개오가 의도적으로 토색할 리 없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다른 세리들과 달리 토색 없이 정당한 수입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삭개오는 재산을 아끼지 않고 구제에 힘쓰고 있으며, 직업을 악용하지 않는 윤리적인 사람이다. 삭개오라는 이름대로 의로운 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의로운 행실은 그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보여주게 된다(9).[19]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삭개오를 죄인으로 여긴다(7). 바리새인들이 세리라는 직업에 대해 “부당한 전제와 종교적인 위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20]그들은 삭개오의 의로운 행실을 보지 않고, 오직 세리장이란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죄인으로 취급하였다.[21]바리새인들은 삭개오가 “세리라는 이유로 거부하지만, 예수께서는 그의 회복을 도우신다.[22] 따라서 삭개오의 구원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성취”이자, 누구나 지위에 상관없이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23] 이렇듯 이 동사 해석의 두 가지 경향은 본문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누가는 습관적 현재와 미래적 현재를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으므로, 오로지 문맥으로 해석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미래적 현재가 더 적합하다.[24]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으로 여겼다(7).세리 요한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세리들이 죄인으로 취급받지는 않았으며, 카피토처럼 정당하게 부자가 된 세리도 존재한다(7절 주해). 따라서 세리를 죄인으로 정죄하는 기준은 그들의 직업이 아닌 편법행위이다. 그렇다면 누가가 삭개오를 소개할 때 느끼게 되는 청중/독자들의 부정적인 인식은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2절 주해).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고 가난한 자들에게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고 말한다.[25]삭개오의 재산 규모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지만, 발언 자체가 다소 충격적이다(토비트 10:10에서 라구엘은 토비아에게 자신의 신부 사라와 재산의 절반을 넘겨준다).[26]삭개오의 자발적인 반응은 부자 관원과 대비된다(18:23).[27] 그리고 토색에 대해서는 네 배로 갚아주겠다고 말한다. 이러한 보상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레위기 6:4-5과 민수기5:6-7은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라고 명한다.[28] 미쉬나에 의하면 2배로 보상해주도록 되어 있다(m. Ketub.3:9).[29]양의 경우에는 특별히 네 배로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m. B. Qam. 7:1).[30]그럼에도 토색에 대한 네 배 보상은 율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출애굽기 22:1에 따르면 양 한 마리를 훔쳐 죽이거나 팔면 네 마리로 갚아야 한다. 사무엘하 12:6에서 다윗은 양 새끼를 빼앗아 손님에게 대접한 자는 네 배로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헤롯은 절도에 관한 처벌을 강화하여 도둑은 네 배로 갚도록 했다.[31]그러므로 삭개오의 보상은 적절하다. 더욱이 삭개오는 자신의 지난 잘못을 청산하고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치르겠다는 각오를 담고 있다.


[1] Bock, Luke 9:51-24:53, 1519.

[2] Bock, Luke 9:51-24:53, 1519.

[3] Fitzmyer,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X-XXIV, 1225.

[4]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7.

[5] Danker, Jesus and the New Age, 305.

[6] Bock, Luke 9:51-24:53, 1510.

[7] Bock, Luke 9:51-24:53, 1507-1508; Evans, Luke, 282;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3.

[8] Evans, Luke, 282.

[9] Evans, Luke, 282.

[10] Bock, Luke 9:51-24:53, 1508.

[11] Bock, Luke 9:51-24:53, 1508.

[12] Evans, Luke, 282;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4.

[13] Bock, Luke 9:51-24:53, 1510;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4.

[14]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4

[15]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7

[16] 습관적 현재로 해석하는 학자로는 Alfred A. Plummer, Craig A. Evans, Frederick L. Godet, Joseph A. Fitzmyer, Luke T. Johnson이 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미래적 현재로 해석하며, Darrell L. Bock, Robert H. Stein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17] Evans, Luke, 280

[18] Godet, Commentary on the Gospel of Luke, 218.

[19] Evans, Luke, 280; Mitchell, "Zacchaeus Revisited: Luke 19, 8 as Defense," 162.

[20] Evans, Luke, 281.

[21] Richard C. White, "A Good Word For Zacchaeus? Exegetical Comment on Luke 19:1-10," Lexington Theological Quarterly 14 (1979): 89.

[22]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Luke's Gospel, 942.

[23] Mitchell, "Zacchaeus Revisited: Luke 19, 8 as Defense," 162-163.

[24] di,dwmi의 용례 분석과 미래적 현재의 해석적 적합성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신현우, “부자 삭개오의 구원,프로에클레시아 17 (2010): 122-123를 참고하라.

[25] Bock, Luke 9:51-24:53, 1521.

[26] Bock, Luke 9:51-24:53, 1521.

[27] Bock, Luke 9:51-24:53, 1521.

[28] Stein, Luke, 468.

[29] tr. Dandy,Mishnah, 249.

[30] tr. Dandy,Mishnah, 340.

[31] Josephus, Jewish Anitiquities Books ⅩⅤ-ⅩⅦ, Ⅹ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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