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와 사이먼 개더콜은 신약학계에서 손꼽히는 영국 출신 학자들이다. 각각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출신으로 모교를 중심으로 학계에 활동하고 있다. 두 거물급 학자가 예수의 죽음과 속죄에 관해 나눈 대담이 책으로 엮여 출간되었다.
두 학자는 본문 해석에 접근하는 방식이 미세하게 다르다. 라이트 교수는 본문 이면까지 관찰하는 거시적 접근을 선호하고, 개더콜 교수는 본문 자체에 집중하는 미시적 접근으로 천착한다. 내 차후 연구를 위해 라이트와 개더콜의 대담에서 내 머리를 스친 몇 가지 생각을 끄적여 본다.
TMI. 내 관심사에 십자가와 부활이 자리한다. 박사 학위 논문 주제가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의 죽음과 부활 선언으로 인한 갈등에서 출발한다. 선한 목자의 죽음 선포를 속죄라는 관점에서 고민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관련 논의는 거둬내고 차후 연구 주제로 미루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필연적 과제이다.
1. 플라톤의 영향력을 경시할 수 없다. 신약학계에서 플라톤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철학사에서 플라톤의 영향력은 지대하고, 제2성전기 문헌과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로마 사상을 배제할 수 없다. 나는 유대적 배경을 강조하는 견해지만, 그리스-로마 배경은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축이다.
1. 이사야 53장과 대리적 죽음은 필연적 과제이다. 예수의 죽음과 이사야 53장은 반박 불가능한 수준의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스-로마 배경에서는 고귀한 죽음(Noble Death)이 강력한 근거로 제시된다. 나 역시 이러한 경향성을 중요하게 다룬다.
1. 다니엘 7장과 인자는 기독론에서 중요하다. 현 단계에서는 내 연구와 긴밀한 관련성이 없지만, 기독론에서 다니엘 7장과 인자 기독론은 중요하다.
1. 라이트는 예수의 죽음에서 성전 신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개더콜은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라이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내 이해에 의하면,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에서 성전 신학은 중요한 기반이다. 특히, 예수의 죽음과 요한계시록의 성전신학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라이트가 관찰한 대로, 성막과 임재의 관련성이 요한계시록에서 나타난다.
1. 라이트는 요한복음을 주요 본문으로 사용한다. 라이트와 개더콜이 로마서를 빈번히 언급하지만, 현재로서는 내 관심사가 아니라 건너뛴다. 앞으로 나는 요한복음 전문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으며, 요한의 속죄 신학을 다룰 의향이 있다. 라이트가 언급한 창조-타락-성육신-새창조는 요한복음에서 중요한 틀이기도 하다. 라이트와 개더콜이 요한복음 3:16를 속죄의 주요 본문이라고 동의했다는 사실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몇 년 전 라이트가 요한복음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라이트가 활동 영역이 워낙 넓어서 요한복음에 관한 전문 연구서를 출판할 거 같지는 않다. 그의 생각이 궁금하지만, 이와 별개로 내 나름의 연구를 해보고 싶다.
1. 이 책의 가치는 무엇일까? 전형적인 개론서는 아닐 것이다. 책 뒷부분에 로버트 스튜어트가 추천한 도서 목록은 큰 도움이 될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은 일종의 경향성 혹은 방향성을 가늠하는 지표로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라이트와 개더콜은 성서학계에서, 복음주의 진영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낸다. 그들의 영향력을 고려하여, 신학도들이 지향해야 할 방향지시등으로 참고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영국 박사 과정 지원은 교수진과 연구제안서(Research Proposal)에 대한 합의에서 시작된다. 박사 과정 시작 후 첫 단계는 일종의 승격 시험이라 할 수 있는 Probationary Review를 통과해야 진정한 박사 과정생이 된다. 만약 PR을 통과하지 못하면 석사 과정으로 강등되며, 총 2년 과정을 거쳐 석사 학위를 받는다. 또한 다시는 본교 박사 과정에 지원할 수 없다.
이후 상황은 지도 교수에 따라 달라진다. 나와 내 주변에서는 문헌조사(Literature Review)를 진행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 단계를 통해 논문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분석하고, 학계 내 논문의 위치를 가늠한다.
문헌조사는 선행 연구의 한계와 자신의 연구가 기여할 지점을 명확히 파악하는 단계이다. 이후에는 자신의 연구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 보통 지도 교수가 범위를 설정해 준다. 내 기억에 의하면, 이 단계에서 유대 문헌을 넘어 그리스-로마 문헌까지 연구 범위를 확장했다.
마지막으로 본격적으로 논문을 작성하는 단계에 돌입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앞서 설정한 연구 범위 내에서 질적 성취를 내야 한다. 지도 교수의 요청 혹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연구 범위를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
단계마다 지도 교수의 영향력을 간과하면 된다. 지도 교수는 자신의 관심사를 학생이 충족시켜 주길 바라고, 동시에 학생의 역량을 박사 과정 기한 내에 최대한으로 끌어내길 원한다. 지도 교수는 당신을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학생은 자신의 역량과 관심사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지도 교수의 견해를 수용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학생의 유연성이다. 논문 주제에 관한 접근에 대한 유연성이 필요하다. 당연히 박사 학위에 걸맞은 품질이 수반되어야 한다.
방금 구술시험을 위한 심사용 논문을 제출했다. 난 완성도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고 추가 수정을 거쳐 막판에 내려고 했으나, 지도 교수가 몇 가지만 확인하고 최대한 빨리 제출하라고 말해주었다.
공식기록으로 2020년 10월 27일(화)에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논문 제출까지 총 2,157일을 소요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한국에서 distance learning으로 박사 과정을 시작하여 5년 기한이 이례적으로 1년 이상 연장되었다. full time 전환은 2022년 6월 말에 이뤄졌다. 영국 교육법상 내일 9월 23일(수)에 내 학생 신분이 종료된다. 오늘까지 영국 박사 과정생이고, 내일부터는 취준생이다.
박사 과정 동안 감정의 굴곡이 적지 않았다. 심리적 압박이 기본값이었다. 논문을 제출하고 나서도 별 감흥이 없다. 자고 일어나야 심리적 변화가 느껴질 듯하다. 곧 추석 연휴이다. 나 자신에게 휴식을 주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기 좋은 때이다.
사실 앞으로 석 달 동안 JSP 원고 수정과 구술시험을 대비해야 해서 홀가분한 기분이 그리 크지 않다.
방금 논문 제출을 위한 지도 교수의 전자 서명을 받았다. 이제 원고를 학교 규정 양식대로 편집해야 한다. 지도 교수는 이 최종본을 한 번 더 검토해 주겠다고 한다. 이제야 왜 지도 교수가 논문 제출일로부터 이틀 전까지 서명을 위한 파일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는지 이해했다.
막판 수정 단계에서 지도 교수의 성향을 더 확고하게 인지하게 된다. 학생에게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방향을 제시한다. 다만 지도 교수로부터 유익한 조언을 받으려면, 유의미한 수준의 원고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지도 교수의 의중을 잘 파악해서 논문의 방향성을 수정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특징은 좋은 평가를 받는 교수들이 갖고 있는 덕목이다. 지도 교수의 장점은 신속성이다. 자신의 바쁜 일정 중에도 피드백을 최대한 빨리한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는 박사 과정을 해 본 경험이 있다면 동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논문 제출에 집중해야 한다. 현시점에 다른 생각은 모두 잡념이다. 마지막 문장은 지도 교수의 격려이다.
You are almost there and I am proud of you for persevering! 거의 다 왔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낸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