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 사본 발견 이후 전형적인 유대 메시아사상은 없다는 의견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메시아사상 연구자들 가운데 매튜 노벤슨(Matt Novenson)이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관련 저서는 『The Grammar of Messianism: An Ancient Jewish Political Idiom and Its Users』). 노벤슨은 유대 메시아사상과 초기 메시아사상의 연결점과 본문의 시대적 상황에 따른 메시아사상의 변화 등을 자신의 언어로 제시한다. 노벤슨의 관찰은 유대 메시아사상과 요한 공동체의 기독론 사이의 중요한 통찰을 준다. 그러나 유대 메시아사상에 관한 그의 한계는 명확하다.
내 관점에 요한복음에서 유대 메시아사상에 관한 연구 중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의 관찰은 매우 유용하다. 보컴의 관찰대로, 요한은 예수 생애 당시에 주요한 메시아상을 언급한다. 하지만 그의 통찰은 1, 7장에 집중되어 있어서, 10장에 적용하려면 추가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웨인 믹스(Wayne A. Meeks)는 『The Prophet-King: Moses Traditions and the Johannine Christology』에서 모세를 선지자-왕 유형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해한다. 또한 그는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의 선한 목자를 모세로 해석하기도 한다. 요한복음에서 모세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 축을 차지하지만, 요한이 제시한 메시아사상에 대한 이해는 보컴의 글을 참고해 보강할 필요가 있다.
J. 루이스 마틴(J. Louis Martyn)은 『요한복음의 역사와 신학』에서 회당 축출(9:22; 12:42; 16:2)을 근거로 요한복음이 동시적 두 상황의 드라마(two-level drama)라고 주장한다. 즉, 요한이 기록한 예수와 요한 공동체가 처한 상황이 투영되어 있다. 마틴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회당 축출의 실재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노벤슨의 평화적 공존과 바르 코시바(Bar Kosiba)에 의한 갈등에 대한 진술은 요한복음의 회당 축출 진술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초래한다. 아니면 회당 축출과 같은 사건은 요한 공동체의 특정 경험에 한정될 수 있다. 내 관찰에 의하면, 요한복음에 예루살렘 파괴에 대한 암시는 있지만, 물리적 충돌에 관해서는 직접적인 진술이 없다. 실질적인 반란에 대한 진술이 없다. 위협과 진압은 예수와 유대인들 사이에서만 발생한다. 이러한 혼돈 혹은 이견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유대교와 예수의 제자들 사이의 경계가 견고해지는 과정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유대 반란이 요한복음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마틴은 메시아를 기적을 행하는 자로 한정한다. 또한 모세를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의 전형으로 해석한다. 그 역시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에서 선한 목자는 모세 전승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마틴은 회당 축출을 통해 요한 공동체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기여에도 불구하고, 메시아사상에 관해서는 믹스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한계에 봉착한다.
요한복음에서 모세를 강조하는 이유는 모세의 율법이 강조하는 바리새 유대교(Pharisaic Judaism)의 영향이 분명하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다윗 메시아사상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믹스와 마틴이 간과하는 지점이 이것이다. 반대로 노벤슨은 모세의 영향을 간과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모세와 다윗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난 9-10장의 주제적 연속성에는 동의한다. 9장이 바리새인이 강조하는 모세의 율법이 주요 논쟁 대상이었다. 10장에서는 선한 목자의 대조군인 삵군이 바리새인을 상징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모세가 선한 목자라는 주장은 성립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내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선한 목자 담론에서 사용하는 목자 언어는 에스겔 34장의 다윗 목자를 배경으로 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해석자들은 9-10장의 연속성을 통해 모세 목자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에서 다윗 목자로 화제가 전환되는 이유에 집중해야 한다.
내 박사 학위 논문에서 자세히 다루겠으나, 요한복음 10장은 모세의 율법은 강조되지만, 다윗 메시아의 도래를 선언할 수 없는 시대를 상정한다. 즉 여전히 유대 반란의 가능성이 높으면서도, 바리새 유대교가 대세로 자리를 잡아가는 시대적 흐름이 요한 공동체가 처한 실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