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요한복음 9-10장의 주제적 연속성에 동의하는 학자들이 많다. 일부는 모세 메시아사상을 주제적 연속성으로 주장한다. 설명하자면 9장 회당 축출은 모세의 율법을 고수하는 바리새인 집단과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무리 사이의 갈등을 묘사한다. 그리고 10장 선한 목자 담론에서 선한 목자를 모세와 같은 목자로 해석한다(대표적으로 웨인 믹스와 J. 루이스 마틴)

실제로 모세는 이스라엘 지도자로 부름을 받기 이전에 목자였다. 불타는 떨기나무를 통해 이스라엘 지도자로 부름을 받은 모세는 자기 민족을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하였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으며, 성막 제작 등 이스라엘 공동체의 관습을 규정한 인물이다.

회당 축출이 모세의 율법에서 촉발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선한 목자를 모세 메시아사상이 기반한 모세 기독론으로 해석하는 경향은 본문의 의도를 벗어난다.

내가 분석한 목자-양 유비의 용례에 의하면, 고대 이스라엘에서 이 유비는 대부분 다윗 목자-메시아와 연결이 되어 있다. 결정적으로, 선한 목자가 선언한 "한 무리 한 목자" (10:16)는 에스겔의 언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 목자는 다름 아닌 다윗이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겔 34:23)

따라서 선한 목자는 모세가 아닌 다윗과 연결되어 있을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요한은 선한 목자 담론에서 다윗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뒤이은 그리스도론적 질문에서도 다윗을 연상시킬 만한 단서를 전혀 주지 않는다. 

더구나 요한복음은 예수가 다윗 메시아사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인다 (7:41-42). 그렇다고 해서, 요한은 예수를 다윗 메시아로 기대한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12:12-13). 여기서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요한은 예수에 대한 다윗 메시아적 기대에 서로 다른 입장을 서슴없이 보여주는가?

내 관찰에 의하면, 예수를 향한 군중의 기대는 제각각일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상 지배적인 메시아사상은 없었다는 견해는 예수의 생애 당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요한복음에서 언급한 메시아사상도 다양성을 갖는다.

확신하건대 요한은 예수를 다윗 메시아를 직접 언급하기를 꺼린다. 왜냐하면, 요한은 청중이 다윗 메시아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청중은 다윗 메시아를 군사적 메시아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간접적이지만 공의회에서 대제사장 가야바는 메시아적 인물에 동조된 군중의 반란을 두려워했다 (11:48).

10장의 선한 목자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 공동체의 회복과 확산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것이 "한 무리 한 목자"의 비전이다. 하지만, 청중이 기대대로 다윗 목자를 언급하는 순간 선한 목자의 비전은 청중의 기대로 왜곡되어 수용되고 만다.

선한 목자의 비전은 훗날 예수와 베드로의 대화에서 재확인된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를 명령을 내린다 (21:15-23). 선한 목자이신 예수는 자신의 제자 베드로에게 목자의 삶을 명령한다. 요한은 베드로가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순교로 삶을 마감했다고 기록한다 (21:19). 

선한 목자의 사명은 죽음과 부활이다. 베드로도 예수를 따라 복음 전도자로 살다가 죽음으로 삶을 마감한다. 복음 전도의 궁극은 하나의 신앙 공동체, 즉 "한 무리와 한 목자"의 실현이다. 회당 축출을 통해 유대교와 예수 공동체의 분립을 경험하고 있는 현실에서, 다시 유대교로 회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수 공동체가 꿈꿀 수 있는 미래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 기록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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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 사본 발견 이후 전형적인 유대 메시아사상은 없다는 의견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메시아사상 연구자들 가운데 매튜 노벤슨(Matt Novenson)이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관련 저서는 『The Grammar of Messianism: An Ancient Jewish Political Idiom and Its Users』). 노벤슨은 유대 메시아사상과 초기 메시아사상의 연결점과 본문의 시대적 상황에 따른 메시아사상의 변화 등을 자신의 언어로 제시한다. 노벤슨의 관찰은 유대 메시아사상과 요한 공동체의 기독론 사이의 중요한 통찰을 준다. 그러나 유대 메시아사상에 관한 그의 한계는 명확하다.

내 관점에 요한복음에서 유대 메시아사상에 관한 연구 중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의 관찰은 매우 유용하다. 보컴의 관찰대로, 요한은 예수 생애 당시에 주요한 메시아상을 언급한다. 하지만 그의 통찰은 1, 7장에 집중되어 있어서, 10장에 적용하려면 추가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웨인 믹스(Wayne A. Meeks)는 『The Prophet-King: Moses Traditions and the Johannine Christology』에서 모세를 선지자-왕 유형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해한다. 또한 그는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의 선한 목자를 모세로 해석하기도 한다. 요한복음에서 모세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 축을 차지하지만, 요한이 제시한 메시아사상에 대한 이해는 보컴의 글을 참고해 보강할 필요가 있다.

J. 루이스 마틴(J. Louis Martyn)은 『요한복음의 역사와 신학』에서 회당 축출(9:22; 12:42; 16:2)을 근거로 요한복음이 동시적 두 상황의 드라마(two-level drama)라고 주장한다. 즉, 요한이 기록한 예수와 요한 공동체가 처한 상황이 투영되어 있다. 마틴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회당 축출의 실재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노벤슨의 평화적 공존과 바르 코시바(Bar Kosiba)에 의한 갈등에 대한 진술은 요한복음의 회당 축출 진술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초래한다. 아니면 회당 축출과 같은 사건은 요한 공동체의 특정 경험에 한정될 수 있다. 내 관찰에 의하면, 요한복음에 예루살렘 파괴에 대한 암시는 있지만, 물리적 충돌에 관해서는 직접적인 진술이 없다. 실질적인 반란에 대한 진술이 없다. 위협과 진압은 예수와 유대인들 사이에서만 발생한다. 이러한 혼돈 혹은 이견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유대교와 예수의 제자들 사이의 경계가 견고해지는 과정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유대 반란이 요한복음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마틴은 메시아를 기적을 행하는 자로 한정한다. 또한 모세를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의 전형으로 해석한다. 그 역시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에서 선한 목자는 모세 전승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마틴은 회당 축출을 통해 요한 공동체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기여에도 불구하고, 메시아사상에 관해서는 믹스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한계에 봉착한다.

요한복음에서 모세를 강조하는 이유는 모세의 율법이 강조하는 바리새 유대교(Pharisaic Judaism)의 영향이 분명하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다윗 메시아사상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믹스와 마틴이 간과하는 지점이 이것이다. 반대로 노벤슨은 모세의 영향을 간과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모세와 다윗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난 9-10장의 주제적 연속성에는 동의한다. 9장이 바리새인이 강조하는 모세의 율법이 주요 논쟁 대상이었다. 10장에서는 선한 목자의 대조군인 삵군이 바리새인을 상징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모세가 선한 목자라는 주장은 성립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내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선한 목자 담론에서 사용하는 목자 언어는 에스겔 34장의 다윗 목자를 배경으로 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해석자들은 9-10장의 연속성을 통해 모세 목자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에서 다윗 목자로 화제가 전환되는 이유에 집중해야 한다.

내 박사 학위 논문에서 자세히 다루겠으나, 요한복음 10장은 모세의 율법은 강조되지만, 다윗 메시아의 도래를 선언할 수 없는 시대를 상정한다. 즉 여전히 유대 반란의 가능성이 높으면서도, 바리새 유대교가 대세로 자리를 잡아가는 시대적 흐름이 요한 공동체가 처한 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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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기독론과 관련해서 『요한복음의 역사와 신학』(J. 루이스 마틴)를 다시 읽고 있다. 마틴은 회당 축출(9:22)을 중심으로 요한복음의 저작 상황을 재구성한다. 혹자는 요한이 적시한 회당 축출이 실제 발생한 사건이었는지 의심받기도 한다. 회당 축출의 실재 여부를 떠나서, 요한이 이 사건을 자신의 복음서에서 중요한 실마리로 사용했다는 가정은 무게감이 있다. 마틴은 동시적 두 상황의 드라마(the two-level drama)라는 자신의 해석틀을 제시한다. 또한 그는 이 틀을 유대 묵시록에서 기원을 찾는다.

요한이 동시적 두 상황의 드라마라는 문학적 양식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대 묵시론(Jewish apocalypticism)의 사상적 토양에서 생겨난 것이다. 묵시 사상가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사고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하늘의 무대와 땅의 무대에서 일어난다.
[출처] J. 루이스 마틴, 『요한복음의 역사와 신학』, 246.


마틴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확연히 다른 특징이 있다. 요한복음의 저술 시기와 그 기독론을 고려한다면, 유대 묵시론적 기원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연관성이다.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그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내가 요한복음 전공을 한 것이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요한계시록을 연구할 기회가 온다면, 요한복음을 익히며 갈고닦은 실력이 요한계시록 해석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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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저술 시기에 대한 논의는 성전 파괴와 회당 축출이 최종 완성 단계를 특정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저술 시기에 관한 다른 접근법으로는 기독론으로 실마리를 풀어갈 수도 있다. 혹자는 모세 기독론(Mosaic Christology)과 다윗 기독론(Davidic Christology)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요한이 예수를 태초에 계신 말씀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육신해 세상 죄를 짊어진다고 소개한다 (1:1-36). 요한의 서론에서 예수를 신적 존재인 동시에 인간으로 소개한다. 예수는 이미 모세와 다윗을 능가하는 존재이다.

요한복음 9-10장은 주제적 연속성을 갖고 있다. 9장이 진술하는 회당 축출(22절)은 예수와 갈등을 빚는 대상이 바리새인이며, 바리새인과 갈등이 결국 예수의 죽음으로 치닫는 전개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10장에서 예수가 비난하는 대상이 바리새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요한복음에서 모세와 다윗에 관한 진술은 빈번하게 나타난다. 9-10장은 모세와 다윗을 예수와 대조하는 중요한 본문이다. 더 자세한 내용을 학위 논문에 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 확신이 드는 방향은 다음과 같다.

결론적으로 요한복음의 최종 완성은 군사적 반란의 위협이 여전히 존재하고, 유대 사상은 랍비 유대교로 가는 발전하는 시기로 가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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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종 논문 제출일
최종 논문 제출일이 결정되었다. 내 논문 제출 마감일은 8월 26일(수)이지만, 학칙상 9월 22일(화)까지 제출하면 된다. 달리 말하면, 나는 23일 이후로는 더는 학생이 아니다. 영국 법에 따르면, 나는 학생 신분을 연장할 방법이 없다.

TMI. 앞서 3개월 추가 연장을 신청했으나, 학교 행정 고위직으로부터 허가가 나지 않았다. 영국 학교 수학 연한은 5년이며, 예외적인 사항이 인정되면 최대 1년 연장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예외는 예외적으로 발생한다.

현 마감일에 27일이 연장되었다.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수정과 교정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추가로 생겼다. 결론적으로 9월 22일(화)은 더 이상 뒤가 없는 최종 논문 제출일이다.

2. 추후 계획
JSP(Journal for the Study of the Pseudepigrapha) 원고 작업을 재개하려고 한다. 원고 마감일은 12월 31일이다. 이번이 마지막 기한이라 여기고 제출을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또한 구술시험(Viva)을 대비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논문 제출 후 90일 이내에 구술시험을 치른다. 연말 연초 연휴 일정을 고려하면, 크리스마스 연휴 이전에 일정이 잡힐 듯하다.

논문 제출 후 추석 연휴를 보내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려고 한다. 가능하다면 강사를 시작해 보고 싶지만, 박사 학위가 없으니 쉽지 않으리라 예상한다. 학위 취득 전까지 아르바이트하려고 한다. 단조로운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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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사 과정은 본교 출신이 아니라면 대개 연구 계획서로 잠재적 지도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영어 점수, 학교 성적 등 기본 요건은 입학 담당자들이 처리할 업무이고, 지원자의 합격 여부와 지도 교수진은 위원회에서 심사를 통해 결정된다.

먼저 잠재적 지도 교수와 지원자 사이의 관심사가 공유되어야 하고, 잠재적 지도 교수의 연구 계획이나 학생 선발 여부 등 여러 상황이 잘 맞아야 한다. 지원자가 조절할 수 없는 사항들이 많지만, 최소한 준비가 잘 된 연구 계획서는 선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연구 계획서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는 없다. 박사 과정의 시작은 지도 교수를 만난 첫 회의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연구 계획서의 가치는 이 시점에서 재고되어야 한다.

결정은 둘 중 하나이다. 하나는 자신의 연구 계획서에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는 방향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연구 계획서의 골격을 염두에 두되, 지도 교수의 방향에 맞춰 수정하는 방향이다. 현실적으로 후자가 지혜로운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전자에 가깝지만, 논문의 진행되면서 지도 교수의 조언을 고려해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둘 중 어느 방향이 더 쉬운 길인지, 혹은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확신이 드는 건, 논문 작성 단계에서는 지도 교수진의 관심사, 논문 제출 이후에는 내외부 심사자의 관심사에 따라 논문의 방향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초기의 연구 계획서에 얼마나 충실한 논문을 완성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나는 단계마다 교수와 심사자의 조언을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훈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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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절은 마카비 가문의 예루살렘 수복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유대인 사회에서 하스모니안 왕조에 대한 호불호가 존재한다. 일반 유대인에게 비 다윗계 왕조로서 하스모니안 왕조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했다. 반면 요세푸스는 제사장 가문의 후손으로서 하스모니안 왕조에 대한 독자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당시 유대인들이 수전절을 준수한다고 기록한다 (10:22). 요한의 절기 사용을 고려하면, 요한이 수전절이란 시간적 지표를 기록한 이유를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수전절의 원 의미는 하스모니안 왕조의 정당성 정립이다. 하스모니안 왕조는 비 다윗계 왕조이자 제사장 가문으로서 유대인들이 고대한 메시아사상과는 거리가 있다. 그들은 이러한 거리를 좁히고 자신의 통치적 정당성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수전절 축제는 그 중요한 장치이다. 수전절은 마카비 가문의 이방 세력을 향한 폭력성을 정당화하려는 선전 수단이다. 

요한복음의 저술 기간에는 반란 발생 가능성이 높았다. 예수의 생애 이후이지만, 유대 반란 (제1차 유대-로마 전쟁, 66~73년)은 요한복음의 편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요한복음에는 유대 메시아사상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만, 편저자의 진술과 예수의 발언에서는 유대 메시아사상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 아닌 요한 공동체의 그리스도론적 관점에서 변형된 형태로 발전된다.

요한은 수전절 내러티브에서 예수의 정체성을 선포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수전절의 고유적 발전사와 결을 달리한다. 내 생각에 요한은 수전절의 기원에 내포된 군사적 저항, 즉 이방 세력을 향한 폭력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대 그리고 메시아의 도래를 염원했던 유대인들의 기대를 동시에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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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제출일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런지 지도 교수로부터 빠른 피드백을 받았다. 다행히도 "확연한 개선이 있다 (I can see definite improvement)"고 평가해 주셨다. 또한 개선해야 할 사항을 남겨주셨다.

내 논문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요한복음 10장이다. 그래서 다른 부분이 미흡하다 싶더라도, 제출 전에 한 번 더 검토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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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후 참고를 위한 기록 보관용

요한복음 서론에 관한 주석을 읽다 보면, 가장 빈번하게 접하는 이름이 루돌프 불트만이 아닐까 싶다. 만약 불트만의 이름이 언급된다면, 주석의 저자는 요한의 로고스 본문에 대한 설명으로 불트만의 영지주의에 관한 견해가 소개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읽었던 요한복음 주석에 대한 경험은 이러하다.

나는 요한복음이 유대적 배경을 강하게 갖고 있다는 견해를 가졌다. 요한복음의 진술과 저술 상황을 고려해, 그리스-로마 문헌 등 다양한 배경을 검토하겠지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내 전제를 뒤흔들 만한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앞으로 내 견해를 바꿀 여지는 얼마든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이 책은 불트만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돕는 책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불트만에 대한 얼개를 그린 후 더 궁금한 내용은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면 된다. 나에게는 그의 탈신화화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앞으로 요한복음 강의를 준비할 때 다시 탈신화화에 대해 살펴볼 기회가 있을 거다.

불트만의 성서 해석은 바울과 요한의 영향이 뒤섞여 있다. 아마 바울의 영향이 더 클지 모른다. 또한 루터교 신자가 갖는 한계점도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요한복음 전공자인 나에게 불트만은 그리 큰 인상을 받지 못한다.

만약 불트만을 다룰 기회가 있다면, 요한복음과 초기 기독교에 관한 연구에서는 일부분 언급될지 모르겠다.

루돌프 불트만 신학 안내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300009

 

루돌프 불트만 신학 안내서 | 데이비드 W. 콩던

루돌프 불트만을 처음 만나는 이에게 친절한 길잡이다. 데이비드 콩던은 종말론, 변증법적 신학, 케리그마, 신화 등 열 가지 핵심 주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불트만 신학을 안내한다. 이 주제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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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핵심부인 요한복음 10장 원고 2차 수정본을 지도 교수에게 발송했다. 글의 틀과 흐름을 최대한 유지하되, 내 최신 견해가 반영된 서론의 방향성에 맞춰서 수정 작업을 진행했다.

확실히 내 연구 범위가 넓다. 독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깊이는 상대적으로 얇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최종 논문 제출일이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8월 26일을 제출일로 가정하고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전보다 조바심 난다. 그러나 내 논문의 파급력에는 의심이 전혀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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