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저자설에 관해서는 사도 요한이 대세이지만, 간혹 장로 요한을 주장하는 학자도 존재한다. 저자설과 무관하게 두 기록 사이에 유사성이 존재하는데, 내 관심사인 '어린 양'이 그중 하나이다.

앞으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현재는 요한복음이 '어린 양' 신학을 주창하고, 요한계시록이 완성했다는 잠정 결론을 갖고 있다. 요한복음의 '어린 양' (1:29)의 기원을 탐구하고 있으나, 아직 선례를 찾지 못했다. 요한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려는 목적대로 '어린 양'을 그의 기록 초반부에 위치시켰다고 가정하고 있다. 요한은 '어린 양'을 왕권 사상과 연결하는 중요한 기여를 남긴다. 요한의 고유한 절기 사용은 그의 목적에 부합한 기교이다.

요한복음이 '어린 양' 신학을 정립하는 시작점이었다면, 요한계시록을 그 사상을 계승하여 종말론적 심판과 부활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집중할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자연스럽게 '어린 양'을 왕권과 연결한다. 반면 요한계시록은 유대 절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요한복음과 달리 절기를 통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강조할 필요가 요한계시록에는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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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서에서 절기/명절은 총  네번 사용되었다(36:38; 45:17–25; 46:9, 11). 첫 번째 사례인 36:38은 이스라엘 백성의 번영을 표현하는 비유이므로 실질적으로는 절기에 관한 구절이 아니다. 두 번째 사례인 45:17–25에서는 ‘명절’에 포함되는 실례로 유월절(21–24절)과 초막절(25절)에 관한 규정을 선포한다. 여기서 ‘초막절’이란 단어는 사용되지 않았으며, 절기의 시기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세 번째 사례인 46:9는 절기에 백성이 출입해야 할 문에 관한 규정을 선포한다. 네 번째 사례인 46:11에서는 ‘명절’이란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소제에 관한 규정이 진술되어 있다. 에스겔서 40-48장에서 새 예루살렘에 관한 예언에서 절기에 관한 에스겔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은 차지하고 있다.

반면 에스겔은 안식일에 더 관심을 둔다(20:13, 20, 21; 22:26; 23:38; 45:17; 46:1, 4–5). 에스겔은 회복된 이스라엘이 ‘명절과 초하루와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명절’을 군주의 주도로 준수되어야 하며(45:17), 관련된 지침을 제시한다(45:18–25; 4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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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에 나타난 절기는 총 3번 사용되었다(1:14; 29:1; 33:20). 이사야의 기록을 보면, 특히 1:11-15, 이스라엘 백성은 절기를 비교적 성실히 이행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그들에게는 진정성이 없었다.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분노하시는 이유는 정의의 부재이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에서 자행되는 악의 근원을 정의의 부재로 정의한다.

1: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성일(holy day)는 안식일이다(56:6; 58:13[x2]; 66:23).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즐거운 날, 존귀한 날로 구별하셨다 (58:13). 참고로 스가랴에서는 초막절을 명령한다(14:16-19). 또한 이사야는 월삭/초하루(New Moon)에 대해서도 말한다(1:14; 66:23).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66:23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정리하자면, 회복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절기, 안식일, 초하루를 지켜야 한다. 이사야가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모세의 율법이 정한 모든 성일을 지키는 이상을 그렸으리라고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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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명령한 연례 절기는 무교절, 맥추절(칠칠절), 초막절이다 (출 23:15-16; 신 16). 출애굽 공동체는 광야에서 야영을 했으므로, 연례 절기가 순례 절기였다는 주장은 성립되기 어렵다.

모세의 후계자로서 새로운 출애굽 공동체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두 가지 의식을 지킨다. 첫 번째는 할례를 행했고 (수 5:2-9), 두 번째는 유월절이다 (수 5:10-11). 이외에 절기 준수에 관한 기록은 없다.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 사사 시대 동안 절기 준수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다. 다만 사사기 21:19–23에 실로에서 거행된 '매년 여호와의 명절'은 초막절로 추정된다. 당시 실로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사 18:31). 본래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절기로 추정되지만,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 우상 숭배가 팽배해지면서 지역 축제로 한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회중의 장로들이 이 절기를 알고 있었으나, 당시 열 두 지파가 지켰던 절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이 시기에 순례 절기는 시행되지 않았다고 가정해야 한다.

엘가나는 그의 가족을 동행하여 매년 실로에서 제사를 드렸다 (삼상 1). 혹자는 이 매년제를 초막절이라고 주장한다. 혹자는 순례 절기로 주장한다. 현 내 가정은 매년제가 '초막절'과 '순례 절기'였을 가능성을 배제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초막절과 관련된 어휘가 등장하지 않는다. 혹자는 여성이 참여하는 절기라는 근거로 초막절을 주장하지만, 여성이 참여하는 절기가 초막절에 한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두 번째, 엘가나와 그의 가족이 실로로 이동하여 마치 순례를 연상케 하지만, 그는 에브라임 사람(삼상 1:1)이었으므로 그의 이동은 지파의 지역 내에서 이루어졌다. 즉 지파 전체가 준수했던 국가적 차원의 절기가 아닌 지파 내 절기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순례라는 용어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 이후 봉헌식을 위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한다 (대하 5:2-3). 성전 봉헌식 이후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킨다 (대하 7:8-9). 이 사건이 첫 연례 순례 절기로 드린 초막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솔로몬이 "일년의 세 절기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을 지켰다 (대하 8:13).

이스라엘 연례 순례 절기의 시작은 언제인가? 이 질문에 대한 내 잠정적인 결론은 솔로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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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유대인의 명절’(5:1)을 부림절로 보는 해석자들이 대세라고 한다. John Bowman의 “Identity and Date of Unnamed Feast”는 그 중 하나이다. 영역본에 따라 이 절기를 ‘익명의 절기’라고 하는데, 저자가 특정 절기를 밝히지 않으므로 갖는 효과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청중/독자로 하여금 명절의 특성을 연상하지 못하는 효과가 있다.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에서 총 여섯 차례나 절기를 언급하는데, 예외적으로 이 명절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명절의 특성을 연상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로 해석해야 한다. 이와 반대로 의도적으로 청중/독자가 그 절기를 추적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기에는 개연성이 낮다고 여겨진다.

절기의 특성을 연상시키지 않으려고 했으면, 요한이 절기를 언급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요한은 굳이 절기를 언급한다. 그 이유는 요한이 의도하는 두 번째 효과라고 불수 있다. 요한은 청중/독자이 어떤 절기인지 바로 알 수 없어도, 절기라는 시기를 염두케 한다.

이러한 의도는 명절의 특성과 동떨어진, 그러나 요한이 반드시 서술하고 싶은 사건과 연관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대다수의 견해대로 저 절기가 부림절이라고 한다면, 요한에게 부림절이라는 다른 절기에 비해 큰 비중을 갖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절기 중에 일어난 베네스다 사건은 꼭 전하고 싶었다고 봐야 한다.

내가 볼 때 요한복음은 절기와 그에 맞닿은 사건이 아주 중요한 해석적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요한은 절기의 의미를 살려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유월절, 초막절, 수전절), 반대로 절기의 의미를 퇴색시켜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기도 한다(유대인의 명절). 현재 이 부분을 틈틈이 살펴보고 있고, 일부 내 박사 학위 논문에 포함되겠지만, 세부 사항은 박사 과정을 마치고 난 이후 진행될 연구 과제로 넘길 예정이다.

부림절은 하만의 유대인 말살 정책로부터 구제된 민족적 구원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만약 요한이 이 절기의 의미를 살리고자 했다면, 5장은 민족 구원과 관련된 이야기가 서술되어야 한다. 하지만 5장은 베네스다의 행각 중 한 곳에서 서른여덟 해 동안 앓고 있는 병자를 고친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볼 때 요한의 절기 사용 중 절기의 유래와 의미와 동떨어진 사건 진술은 이 곳이 유일하다. 그래서 나는 요한이 부림절이란 절기를 명시하지 않았다고 본다.

베네스다 치유 사건은 그 자체로 은혜롭다. 주변에 도와주는 이가 없어 서른여덟 해 동안 고통받은 병자를 치유하는 예수의 긍휼하심은 분명 기억될 만하지만, 요한의 절기 사용과는 이질감이 있다.

오히려 요한은 이 치유 사건을 안식일과 연결시킨다. 안식일 논쟁에서 예수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역을 강조하신다. 예수는 안식일을 초월하는 존재이시다. 그러나 예수를 대적하는 유대인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를 접하는 청중/독자도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에 요한은 예수께서 절기를 준수하시며, 그때마다 예루살렘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요한복음의 예수는 유대 절기를 준수하는 분이시다. 또한 요한은 안식일이라는 규범은 그에게 족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Craig S. Keener는 자신의 요한복음 주석에서 5-10장이 재판의 기능을 한다고 주장하는데(634-662쪽), 나는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베네스다 치유 사건과 안식일 논쟁은 연속되는 이야기이며, 각각 베네스 치유사건은 유대인의 명절, 안식일 논쟁은 안식일이라는 유대인들의 규범과 결속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의 절기 사용과 예수의 정체성이라는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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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목자 담론에서 "자기 희생"과 "유대 절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관련 글: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에서 자기 희생과 절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자기 희생에 관해서는, 세례 요한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는 가르침에 주목하고, 그 배경을 이사야 53장으로 결론짓는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앞서 "요한복음 10장에 나타난 예수의 죽음에 관한 가르침의 기원, 이사야 53장과 대안"에서 다루었듯이, 이러한 경향에 의문을 제기하는 해석자들이 있다.

나는 선한 목자의 "내어놓음"(lay down; vv. 15, 17, 18)이 1:29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 기원에 관해서는 이사야 53장을 포함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해야 한다.

절기에 관해서는, 우선 초막절을 언급해야 한다. 선한 목자 담론을 다룬 연구들을 보면, 7장에서 시작되는 내러티브의 연속성을 간과하고 초막절을 배제한 연구들이 많다. 반면 초막절을 언급하지만, 그 배경에 관한 연구가 미흡하다.

다음에는 유월절을 언급해야 한다. 현재 나는 1:29와 유월절을 연결하려고 한다. 선행연구에서 이미 1:29이 유월절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주장할 예정이다. 나는 단순히 유대적 배경으로서 유월절이 아니라, 요한의 절기 사용에 근거한 유월절과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할 예정이다. 아마도 내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논증이 될 수 있다.

"자기 희생"과 "유대 절기"라는 주제는 선한 목자 담론과 세례 요한의 "어린 양" 선포에서 모두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박사 과정에서 이 연구를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나는 더나아가 요한복음을 설명하는 기둥으로 "자기 희생"과 "유대 절기"를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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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은 기독교 신자들에게 꽤나 익숙한 본문이다. 특히 선한 목자의 자기 희생(self-sacrifice, 본문에서는 lay down; vv. 15, 17, 18)이라는 표현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보여준다.

내가 이 본문에서 주목하는 주제는 두 가지, 목자-왕 은유와 유대 절기(Jewish Festivals)이다.  

목자-왕 은유에서는 고대근동문헌(ANET), 구약성경, 제2성전기 문헌을 다루고, 요한복음 10장에 나타나는 특이성을 강조해야 한다. 하지만 선행연구는 대체로 에스겔 34장과 스가랴 9장 등 목자-왕 은유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구절을 언급하고, 약간의 해설을 붙이는 선에서 머물고 있다. 해석자는 목자-왕 비유에 나타난 선한 목자의 자기 희생이라는 주제를 강조해야 한다. 이러한 강조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이자 요한이 의도한 유대 메시아 사상의 전복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유대 절기에 관해서는 선한 목자 담론을 초막절을 배경으로 읽어야 한다. 이 초막절이라는 배경이 목자-왕 은유와 연결되는 주요한 단서가 된다. 왜냐하면 요한이 영향받았을 구약 본문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그가 구약 시대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의 자기희생을 통해 유월절로 시작하는 요한의 절기 흐름을 이해하는 결정적 단서를 풀 수 있다. 물론 본문의 순서에 의하면 순서가 바뀌어야 하지만, 내 연구 범위에 의해 역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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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절기가 갖는 기능을 분석하고 있다. 지난 번에 "요한복음에 언급된 절기의 기능과 의문점들"이란 글을 남겼는데, 요한복음을 분석할 수록 의문점이 더 쌓여간다.
 

요한복음에 언급된 절기의 기능과 의문점들

 
그 이유를 간략하게 말하면, 요한이 유대 전통에 따른 절기의 의미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자로서 창조적으로 변형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 나열된 절기는 다음과 같다.
 
1. 첫 번째 유월절(the first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2:13)
 
2. 유대인의 명절(a feast of the Jews)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5:1)
 
3. 두 번째 유월절(the second Passover)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6:4)
 
4. 초막절 (the Feast of Tabernacles)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7:2)
 
5. 수전절(the Feast of Dedication)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10:22)
 
6. 세 번째 유월절(the third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11:55)
 
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은 요한복음의 절기 순서가 유대 달력과 맞지 않는다는 의문이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유월절, 칠질절, 초막절 순서로 나열되어야 한다. 참고로, 이 세 절기는 유대 3대 절기이다(신 16:1-17). 하지만, 두 번째 유월절의 위치는 요한이 예수의 공생애를 1년 주기로 기록했는지 2년 주기로 서술했는지 다루도록 한다.
 
그 다음은 절기의 기능이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지만, 요한복음 2장에서는 성전청결이 주요 사건으로 배열된다.
 
칠칠절은 추수감사절이라고도 하며, 일년 농사의 열매를 거두는 시기에 하나님께 감사과 응답하는 절기이다. 하지만 5장에서 베데스다 사건 이후 안식일 논쟁이 핵심으로 자리매김한다.
 
두 번째 유월절은 본문의 위치부터 논쟁이 되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릴 지역에 있었다는데서 또다른 논쟁거리가 된다. 또한 6장에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모세의 만나 사건과 연결짓고 있다.
 
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하나님의 구원과 임재를 기념하는 절기이지만, 7장부터 유대인의 적대감과 모세의 율법에 관한 논쟁이 증폭되고 있다. '생수의 강'(7:38)은 초막절과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주지만, 전통 유대인들의 사고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취된다. 내 관심사인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에서 예수의 죽음은 전통적인 목자-왕 전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르침이다.
 
수전절은 1세기 유대인들에게는 안티파네스와 마카비 항쟁을 연상시키는 절기로 성전성결과 하나님의 임재를 기념한다. 하지만 11장에서는 선한 목자 담론에 대한 논쟁으로 번져 예수의 정체성을 다투고 있다.
 
세 번째 유월절은 나사로의 부활 이후에 위치하여 예수의 죽음을 향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익숙한 해석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 요한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를 증언하기 위해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하였으며, 본인의 의도대로 유대 절기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요한의 유대 절기를 변형적으로 사용하여 해석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유대 절기의 역사를 조사하는 차원에서 선행연구가 끝나지 않는다. 요한이 이같은 구조를 사용한 의도를 파악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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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박사 학위 논문에서 결정적인 논증은 유대 절기(Jewith festivals)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여전히 선한 목자 담론(10장)을 주요 본문으로 설정하겠지만, 몇 가지 논의를 위해 목자-왕 전승의 중요성을 덜 부각시킬 예정이다.
* 이 글은 내 구상을 정리하는 목적을 위해 작성되었으므로 자세한 인용은 생략한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절기는 총 여섯 가지이다.

1. 첫 번째 유월절(the first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2:13)

2. 유대인의 명절(a feast of the Jews)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5:1)

3. 두 번째 유월절(the second Passover)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6:4)

4. 초막절 (the Feast of Tabernacles)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7:2)

5. 수전절(the Feast of Dedication)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10:22)

6. 세 번째 유월절(the third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11:55)

유월절이 여섯 번의 절기 중 처음과 나중에 등장하고, 중간에도 언급되어 있다. 그만큼 요한복음은 유월절을 강조하는데, 이를 통해 저자가 유월절과 예수의 구속사를 연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요한복음은 유월절을 통해 예수의 죽음을 강조해야 한다. 군사적 메시아를 고대하던 유대인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의 죽음이 갖는 차별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후에 펼쳐지는 예수의 부활이라는 사건을 위해서 더욱 그렇다. 현재로서는 유월절의 기능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문제는 나머지 절기와 관련되어 있다. 첫 번째, 요한이 두 번째로 언급한 명절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유대인의 명절'(a feast of the Jews)이라고 일컫은 이유에 대한 의문이다. 선행연구에서는 이 명절을 '익명의 명절'(anonymous festival)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초막절과 수전절에 대한 언급이다. 앞서 '유대인의 명절'에서 명절의 이름을 고의로 생략했다면, 이번에는 특정 명절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두 절기가 선한 목자 담론과 연관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 두 절기와 선한 목자 담론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 글에서는 '유대인의 명절'(5:1)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초막절과 수전절, 그리고 선한 목자 담론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두 절기와 선한 목자 담론을 같이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한 목자 담론의 앞부분이 초막절(7:2-10:21)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고, 그 이후 발생한 예수의 선한 목자에 관한 가르침에 대한 논쟁은 수전절(10:22-39)과 관련이 있다.

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시작된 절기이다. 절기의 의미는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의 통치를 기념하는데 있다.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은 광야로 나가는 대신 자신의 집 지붕에 천막을 치고 이 절기를 지켰다.

수전절은 마카비 가문을 필두로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에피파네스가 모독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한 사건에서 시작된 절기이다. 이 절기는 성전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두 절기는 예루살렘 성전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념하는 절기적 기능을 한다.

여기서 요한이 예수의 성전 파괴와 회복에 관한 가르침을 2장에 배치한 이유가 설명이 된다. 독자들이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연결짓도록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앞으로 각 절기의 유래와 요한복음 내에서의 기능을 더 분석해야 한다. 그럼에도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여섯 절기는 모두 '순례'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는 건 분명하다. 각 구절마다 예루살렘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유대인들은 특정 절기를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야 하는 종교적 의무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요한복음이 구전되고 저술될 시기는 성전이 파괴된 이후로 합의를 보고 있다. 여기서 다시 요한복음의 핵심 주장이 명백해진다. 즉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유지했던 유대인들에게, 성전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이처럼 요한복음에서 절기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독특성을 파악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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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전 시대(Templeless age)는 질 미들마스(Jill Middlemas) 박사가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 용어의 한계를 알지만, 바빌로니아 침략으로 인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부터 느헤미야의 성전 재건 이전까지를 지칭하는 무성전 시대와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로 추정되는 요한복음 저작 시기 사이의 유사한 환경을 강조하려고 한다.

요한복음 저작 시기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 AD 70년 이후로 가정되고 있다. 우리는 바울의 초기 서신을 통해 신앙 공동체에 공통된 신앙 고백이 있었다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공관복음은 예수의 생애와 그의 사역에 관한 권위 있는 기록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복음의 저자는 또 다른 복음서를 기록했는데, 그 동기를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간주하는 게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여기서 나는 수많은 학자가 언급하는 출교 결의(9:22)보다 성전 파괴가 더 강력한 집필 동기로 작용했다고 가정한다. 결의문의 효력은 검증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이 실제로 심각했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그런데도 요한복음의 진술은 독자가 더이상 회당에 출입할 수 없는 처지라고 믿도록 만든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반면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스라엘 역사상 충격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요한공동체에게, 혹은 요한복음이 암시하는 독자에게는 더이상 회당도 성전도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교회가 있다.

요한복음의 저술 동기가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관련 있다는 내적 단서로는 요한이 예수를 성전으로 묘사하는 데 힘을 쓴다는 점이다. 첫 번째, 요한은 성전 청결 사건(2:12―22)을 예수의 공생애 초기로 보도록 배치했다. 이러한 의도는 성전 파괴를 경험한 세대에게, 그리고 더이상 성전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를 향한 함의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출교 결의로 인해 그들은 회당에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성전 청결 사건 이후에도 예수를 성전과 연결 짓는 본문이 여럿 있다. 저자의 의도는 명확하다. "예수가 성전이시다!"

유대인은 이미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앞서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한 솔로몬 성전 파괴를 경험한 적이 있다. 바빌로니아 포로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치욕의 세월 동안 이주민들은 이스라엘 멸망과 회복을 예고한 선지자들의 예언을 기억했다. 포로 귀환 이후 최대 관심사는 성전 재건에 집중되었고, 율법 준수 운동이 강조했다. 이스라엘 왕국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까지 귀환 공동체는 혁명적인 신학적 진보를 이루어냈다.

이와 유사하게, 요한은 2차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새로운 복음서를 써야 하는 의무감이 공관복음서와 다른 패러다임을 이끌어 냈다고 할 수 있다(=paradigm shift). 요한복음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가 많이 있지만, 최근 경향은 요한이 역사적 자료에 충실했다는 견해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요한이 처한 시대적 상황은 그가 역사적 사실보다는 신학적 의미에 중점을 더 주도록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요한이 역사적 자료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기반하면서 신학적 의미를 더 강조했다는 의미로, 그 과정에서 사실의 변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더이상 성전 재건은 의미가 없다. 교회 공동체로 충분하다. 더이상 율법 준수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복음으로 충분하다. 이렇듯 회당 출교 결의와 성전 파괴라는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요한은 기존 관습을 허물고 교회(에클레시아) 중심의 공동체를 위한 복음서를 기록해야 했다.

요한의 관점에서 현 상황에 가장 큰 장애물은 유대인의 성전 중심의 사고와 율법주의였다고 가정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요한복음의 암묵적인 독자는 유대인 혹은 유대계 기독교인으로 가정한다. 요한복음의 암묵적인 독자가 이방인이라고 가정하기에는 유대적인 진술이 넘쳐난다.

요한은 유대계 기독교인과 전도 대상인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술하면서, 성전 중심의 사고를 탈피하는 탈 성전주의(≠반 성전주의)와 유대주의와 결별하는 탈 유대주의(≠반 유대주의)를 강조하고자 했다.

1. 탈 성전주의
요한복음에서 성전 청결 사건과 예수의 부활 예고(2:13―22)는 공생애 초창기로 추정하도록 의도되어 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더이상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신다(4:20―24). 또한, 요한은 종말론적 성전을 묘사한 스가랴 14장의 예언이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다고 묘사할 뿐 아니라 성령에 대해 언급한다(7:37―39). 이외에도 여러 본문이 있음.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성전 재건과 유대주의로의 회귀를 염두에 두고, 요한이 탈 성전주의를 의도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본다.

2. 탈 유대주의
요한복음은 유대주의에 적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요한은 유대인의 전통을 잘 활용한다. 일례로, 초반에 자주 등장하는 모세에 대한 언급은 의도적이다. 유대인은 오랫동안 모세와 같은 선지자(the prophet like Moses)를 고대했다. 요한은 이러한 기대를 반영하여 예수를 메시아라고 선포하는데, 단순히 모세 기독론(Mosaic Christology)이 아니라 모세를 능가하는 예수(More than Moses)로 묘사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율법의 성취자이시다.

교회 공동체 내부에도 여전히 율법 준수를 강조하는 유대계 기독교인이 존재했을 텐데, 요한에게 율법주의는 교회 내부나 외부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절기의 기능
요한복음에서 절기의 역할은 아주 중요한데, 이를 간과한 해석이 너무나 많다. 내 박사 학위 논문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주제이다. 내가 볼 때 요한복음에서 절기의 기능은 매우 정교한데, 현재 가정하는 바로는 예수를 절기의 의미를 성취하신 분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탈 성전주의와 탈 유대주의를 아우르는 역할을 한다.

정리하자면,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가 야기한 교회 공동체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고, 대외적으로는 복음 전도 전략 차원에서 공관복음과 다른 관점의 복음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내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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