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세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9.15 누가복음 19장 10절 주해
  2. 2011.09.07 누가복음 19장 9절 주해
  3. 2011.08.25 누가복음 19장 7절 주해
예수께서는 구원을 선포한 이유를 자신의 사명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1]예수께서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 이러한 예수의 사역은 에스겔 34장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를 연상시킨다.[2]에스겔 34장은 백성들을 향한 의무를 무책임하게 등져버리고 개인의 탐욕에 빠져버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하나님에 의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다루고 있다.[3]즉 에스겔 34장은 일차적으로 정치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예수의 사역이 에스겔 34장과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한다.[4]하지만 에스겔 34장은 새출애굽 모티프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5]특히 ‘찾다’라는 의미의 דרשׁ는 잃어버린 양에 대한 목자의 헌신적인 사랑과 노력을 나타낸다.[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며( 34),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명을 통해 이 약속을 이루신다.[7]또한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 비유도 연상시킨다(4, 6).[8] 이 비유에서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까지 찾는다(15:4).[9] 안전한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더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10] 그 결과는 성공적이다(15:5).[11]목자는 친구와 이웃을 불러 모으고 자신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15:6).[12]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자신의 사역에 적용하셔서 하늘의 관점과 기쁨의 강도를 강조하신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15:7).[13]이 구절에서 회개에 대한 누가의 이해가 드러난다.[14] 누가복음에서 회개는 중요한 주제로, 삶의 변화를 의미한다(3:3, 8; 13:1-5; 15:7, 10; 16:30; 17:3-4; 24:47).[15] 그리고 회개는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결과가 아닌 구원자에 의해 이뤄지는 경험이다.[16] “이 비유는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의 사명을 정의하는데 도움을 준다.[17] 결국 삭개오가 예수를 보기 위해 시도했던 노력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에서 그의 자발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나, 모든 결과는 예수의 사역에 달려있다.[18]예수의 사명과 죄인의 회개에 대한 말씀은 5:31-32를 떠오르게 한다.[19]예수께서는 죄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오셨다(5:32).[20] 이 비유에서 건강한 자는 의인과 병든 자는 죄인과 연결된다(5:31-32).[21] 비록 예수의 제자들을 비방한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의인으로 언급되었지만, 그들을 의인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22]오히려 그들은 비난의 대상이다(특히, 11:37-52).[23]일반적으로 잃어버린 양은 “‘하나님의 언약을 떠난 죄인’ 혹은 ‘악인’과 동의어”로 사용된다.[24]하지만, 예수께서는 죄인을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으로 이해했다.[25]따라서 이 비유는 모든 사람들이 치료의 필요를 인정해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26]물론 여기서 치료는 육체적인 질병을 위한 치료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치료이다.[27]삭개오와 그의 집은 ‘잃어버린 것’에 해당한다.[28] 이 비유에서처럼 삭개오와 그의 집은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의미, 가치를 상실한 상태였으나, 예수로 인해 회복되었다.[29] 이 이야기는 청중/독자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된다.[30]삭개오처럼 공동체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수군거렸던 무리들과 같은 경향의 집단에게는 예수의 사명의 의미를 일깨우도록 도전하게 된다.[31]부자들에게는 자발적으로 회심한 부자의 사례를 제공한다.[32] 삭개오 이전에도 부자가 예수께로 나온 경우가 있었지만,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33]특히, 부자 관원이 그렇다(18:18-30). 하지만 삭개오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내놓기로 약속했고 구원을 받는다. 삭개오를 통해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18:27)라는 예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1] Bock, Luke 9:51-24:53, 1523; Tannehill, Luke, 278; OHanlon,The Story of Zacchaeus and the Lukan Ethic, 18.

[2] Bock, Luke 9:51-24:53, 1523;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8; OHanlon,Zacchaeus and the Lukan Ethic,18.

[3] Walther Zimmerli, Ezekiel 2: A Commentary on the Book of the Prophet Ezekiel Chapters 25:48,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3) 222.

[4] Tannehill,Luke, 278.

[5] Leslie C. Allen, Ezekiel 20-48, Word Biblical Commentary, Vol.29 (Dallas: Word, 1990) 162.

[6] Allen, Ezekiel 20-48, 162.

[7] Allen, Ezekiel 20-48, 165; Bock, Luke 9:51-24:53, 1523.

[8] Bock, Luke 9:51-24:53, 1523;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8; Tannehill, Luke, 278; OHanlon, Zacchaeus and the Lukan Ethic, 18.

[9] Bock, Luke 9:51-24:53, 1300.

[10] Bock, Luke 9:51-24:53, 1300.

[11] Bock, Luke 9:51-24:53, 1301.

[12] Bock, Luke 9:51-24:53, 1301.

[13] Bock, Luke 9:51-24:53, 1302; Tannehill, Luke, 238.

[14] Tannehill,Luke, 238.

[15] Bock, Luke 1:1-9:50, 499.

[16] Tannehill,Luke, 238.

[17] Tannehill,Luke, 239.

[18] Tannehill,Luke, 278.

[19] Bock, Luke 9:51-24:53, 1302.

[20] Bock, Luke 1:1-9:50, 498; Bock, Luke 9:51-24:53, 1523.

[21] Bock, Luke 1:1-9:50, 498.

[22] Bock, Luke 1:1-9:50, 498; Tannehill, Luke, 238.

[23] Bock, Luke 1:1-9:50, 499; Tannehill, Luke, 238.

[24] Evans, Saint Luke, 664.

[25] Bock, Luke 1:1-9:50, 499.

[26] Bock, Luke 1:1-9:50, 499.

[27] Bock, Luke 1:1-9:50, 498.

[28] OHanlon,The Story of Zacchaeus and the Lukan Ethic, 19.

[29] OHanlon,The Story of Zacchaeus and the Lukan Ethic, 19.

[30] Tannehill,Luke, 278.

[31] Tannehill,Luke, 278.

[32] Tannehill,Luke, 278-279.

[33] Bock, Luke 9:51-24:53, 1523.

'개인논문 > 삭개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삭개오 이야기 연구의 결론  (0) 2011.09.19
누가복음 19장 9절 주해  (0) 2011.09.07
누가복음 19장 8절 주해  (0) 2011.09.02
누가복음 19장 7절 주해  (0) 2011.08.25
누가복음 19장 6절 주해  (0) 2011.08.16
,
삭개오의 다짐을 들은 예수는 그에게 말씀하신다.[1]하지만 예수께서는 삭개오와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까지 염두에 두고 말씀하셨다.[2]삭개오가 사람들의 불평을 의식하고 있다면(7-8),[3]예수께서도 이들을 의식하고 계셨을 터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무리들의 반응(7)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4]예수께서는 삭개오의 집에 구원을 선포하시고, 그 이유가 삭개오 역시 아브라함의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신다.[5]누가복음에서 σωτηρία는 총 3번 사용되었으며(1:69, 71, 77), 이 구절들은 모두 예수와 세례 요한의 사역을 예고하는 사가랴의 예언과 관련이 있다.[6]사가랴의 예언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맹세에 따라 구원을 베푸신다(1:68-73).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한다(3:8). 그에게 회개는 신학이나 종교의식의 변화가 아닌 삶의 변화이다.[7]그래서 요한은 무엇을 해야 되는지 묻는 세리들에게 부과된 세금만 걷으라고 답한다(3:13).[8]결코 직업을 변경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9] 그렇다면 세리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공정한 세금 징수이다(3:12-13).[10] 따라서 삭개오의 회개에 대한 기록이 없어도, 그에 상응하는 신앙고백을 했다고 볼 수 있다(8절 주해).[11] 더 중요한 점은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죄와 회개를 연관 짓지만(5:32; 13:2-3; 15:7, 10; 17:3-4), 회개에 대한 언급이 없어도 죄를 용서하신다(5:20-24; 7:47-49).[12] 또한 누가복음은 세리의 반응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5:27-30; 7:29, 34; 15:1; 18:9-14).[13]실제로 세리들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했으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3:12). 그리고 결국에는 요한의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의를 드러냈다(7:29).[14]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한 세리 역시 의롭게 여겨졌다(8:14). 구원의 대상은 삭개오와 그의 집 전체를 포함하며, 이와 같은 사건은 사도행전에서도 나타난다(10:2; 11:14; 16:15, 31; 18:8).[15]


[1] Bock, Luke 9:51-24:53, 1522.

[2] Bock, Luke 9:51-24:53, 1522.

[3]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7.

[4] Robert C. Tannehill, Luke, Abingdon New Testament Commentaries (Nashville: Abingdon Press, 1996) 278.

[5] Evans, Luke, 280.

[6]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8.

[7] Evans, Luke, 48..

[8] Bock, Luke 1:1-9:50, 312.

[9] Bock, Luke 1:1-9:50, 312.

[10] Bock, Luke 1:1-9:50, 312; Double, The Paradox of Salvation, 116.

[11] Ravens, "Zacchaeus: The Final Part of a Lucan Triptych?," 23.

[12] Ravens, "Zacchaeus: The Final Part of a Lucan Triptych?," 23. 삭개오가 죄를 고백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무죄를 입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18:9-14)를 근거로 삭개오의 무죄를 주장하는 시도가 있다(Evans, Luke, 280).

[13] Bock, Luke 1:1-9:50, 310; Ravens, "Zacchaeus: The Final Part of a Lucan Triptych?," 22.

[14] Ravens, "Zacchaeus: The Final Part of a Lucan Triptych?," 22.

[15] Bock, Luke 9:51-24:53, 1522;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8.

'개인논문 > 삭개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삭개오 이야기 연구의 결론  (0) 2011.09.19
누가복음 19장 10절 주해  (0) 2011.09.15
누가복음 19장 8절 주해  (0) 2011.09.02
누가복음 19장 7절 주해  (0) 2011.08.25
누가복음 19장 6절 주해  (0) 2011.08.16
,
예수께서 삭개오의 집에 머물려고 하시자 모든 사람이 불평한다.[1]예수께서 죄인의 집에 머무시려고 하기 때문이다.[2] 하지만, 실제로 불평한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πάντες)이 아닌 세리를 죄인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3]그렇다면, 이들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수께 불평하는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이기 때문이다(5:30; 15:2).[4] 실제로, 동사 διαγογγύζω의 주체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이다(15:2).[5]동사 γογγύζω의 주체 역시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다(5:30). 그 중에서도 특별히 바리새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실질적인 적대세력은 바리새인이기 때문이다.[6]사실, 누가복음에서 율법학자(γραμματεῖς)는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νομοδιδάσκαλος)을 가리킨다.[7]이러한 사실은, 5:17 5:21의 평행을 통해 알 수 있다. 실제로 두 단어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누가는 자신의 독자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였다.[8]또한, 사도행전 5:34(ΦαρισαῖοςὀνόματιΓαμαλιήλ νομοδιδάσκαλος)는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활동했다는 정보를 준다. 비록 율법을 가르치던 자들이 모두 바리새인들로 구성되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두 집단이 바리새인적 관점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9] 더군다나, 바리새인들이 세리를 죄인으로 여겼다는 증거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예수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은 세리를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와 동일하게 여겼다(18:11).[10]바리새인들의 전승을 이어받은 랍비 역시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랍비들은 세리를 도둑과 동일하게 여겼고(m. B. Qam. 10:2),[11] 급기야 살인자와 동등하게 여기기도 했다(m. Nedarim 3.4).[12] 이렇듯 세리는 부정한 존재로 여겨져서, 그들이 들어간 집은 물론 내부에 있는 물건도 부정하게 된다고 여길 정도였다(m. Ohar. 7:6).[13]이러한 증거에 따르면, 세리를 죄인으로 여긴 사람들은 바리새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14]그러므로, πάντες는 과장법이다.[15] 더구나, 모든 세리들이 죄인 취급 당하지는 않았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가이사랴의 유대인들과 그리스 사람 간의 토지 분쟁이 생겼을 때 유대 유명들과 세리 요한이 함께 플로루스(Florus)에게 중재를 부탁했다는 기록이 있다.[16]또한, 8 달란트를 제공하고 중재에 대한 약속을 받아두었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지도자들과 요한이 앞장서서 플로루스에게 호소하다가 옥에 갇혔다는 기록도 있다.[17]이 기록에 의하며, 요한은 세리였음에도 지도자들과 함께 분쟁을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유대사회에서 부정한 자로 취급 받고 배척 당하는 세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뿐만 아니라 유대인들 전체가 세리를 죄인으로 여겼다는 견해[18]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더구나 누가는 세리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3:12; 5:27; 7:29; 15:1; 18:10).[19]그렇다면 세리들은 모두 불법적인 행위를 통해서 부자가 되었을까? 유대 지역 세리였던 카피토(Capito)는 세금 행정관(administrator of taxes)으로서, 가난했지만 부자가 되었다.[20] 여리고의 세리장인 삭개오 역시 정당하게 부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여리고 지역은 무역 중심지이다.[21] 더구나 그는 세리장이다. 삭개오를 죄인이라 부르는 것은 세리는 토색으로 부자가 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준수할수록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부자였으므로 유대사회에서 존경을 받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세리장이라는 이유로 죄인 취급을 받았다.[22] 이 구절에서는παρὰ ἁμαρτωλῷ가 강조되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세리들과 그들의 편법 행위에 대한 감정이 반영되었을 것이다.[23] 동사καταλύω는 문자적으로 “짐 싣는 동물의 장구를 풀어주다”(to unhitch pack animals)라는 의미이다.[24] 9:12에서는“유숙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문맥상 식사교제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유대 사회에서 죄인의 집에 머무른다는 것은 그의 죄를 나눈다는 의미이므로, 예수께서 죄인인 삭개오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된다.[25] 그러므로 예수의 상식에 어긋난 행동은 이들이 불평하는 원인이 된다.[26] 하지만, 예수께서는 죄인들과의 식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기념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죄인들을 환영하신다(참조 7:34).[27] 이 구절에서 중요한 사실은, 일군의 무리들이 삭개오를 죄인으로 여겼다는 점, 그리고 오직 예수만이 죄인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28]


[1] Bock, Luke 9:51-24:53, 1518.

[2] 참조.Bock, Luke 9:51-24:53, 1519.

[3] Bock, Luke 9:51-24:53, 1519.

[4] Johnson, The Gospel of Luke, 285. Johnson이 언급한 7:34, 39는 동사 γογγύζω 혹은 διαγογγύζω가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제외되어야 한다.

[5] BockEvans는 별다른 설명 없이 바리새인으로 단정 짓지만(Bock, Luke 9:51-24:53, 1519; Evans, Luke, 283), 본문은 분명히 바리새인과 율법학자 모두를 가리키고 있다.

[6] Evans, Luke, 91, 97.

[7] 참조.Bock, Luke 1:1-9:50, 479; Bovon, Luke 1, 178; Marshall, The Gospel of Luke, 212.

[8] Bock, Luke 1:1-9:50, 479. Bovon의 지적대로, νομοδιδάσκαλος5:17에서 한 번 사용되고, 이후로는 줄곧 γραμματεῖς로 사용된다(Luke 1, 178).

[9] Bock, Luke 1:1-9:50, 479.

[10] Evans, Luke, 282.

[11] H. Danby e.d. & tr., The Mishnah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33), 346.

[12] tr. Danby,Mishnah, 267.

[13] tr. Danby,Mishnah, 726.

[14] Evans, Luke, 91.

[15] Nolland, Luke 18:35-24:53, 905; Stein, Luke, 467.

[16] Flavius Josephus, The Jewish War Books -, Vol. ,trans. H. St. J. Thackera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7), . 285-288.

[17] Josephus, The Jewish War Books -, .292.

[18]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7.

[19] Bock, Luke 9:51-24:53, 1513 n.2; D.A.S. Ravens, Zacchaeus: The Final Part of a Lucan Triptych?,JSNT41(1991): 22.

[20] Philo, On Embassy to Gaius, Vol. , trans. F. H. Colson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7), §199.

[21] Evans, Saint Luke, 662.

[22] Johnson, The Gospel of Luke, 287.

[23] Bock, Luke 9:51-24:53, 1519.

[24] Bock, Luke 9:51-24:53, 1518; Fitzmyer,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X-XXIV, 1224;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Luke's Gospel, 940.

[25]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7.

[26] Plumm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t. Luke, 434.

[27] Evans, Luke, 120.

[28] David A. Neale, None But The Sinners: Religious Categories in the Gospel of Luke,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Supplement Series 58 (Sheffield: JSOT Press, 1991), 183.

'개인논문 > 삭개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19장 9절 주해  (0) 2011.09.07
누가복음 19장 8절 주해  (0) 2011.09.02
누가복음 19장 6절 주해  (0) 2011.08.16
누가복음 19장 5절 주해  (0) 2011.08.10
누가복음 19장 4절 주해  (0) 2011.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