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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6.13 원어민을 이기는 글쓰기: 논리

나는 토종 한국인이다. 영어 알파벳은 초등학교(라떼는 말이야... 국민학교라 그랬지)를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 겨울방학에 처음 배웠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수업은 문법과 독해 위주였고, 한 학기에 한두 번 정도 듣기 평가가 있었을 뿐이다. 대학생 시절 토익 시험은 한 번도 안 치렀고 교환학생을 해보지도 않았으며, 신학석사를 마칠 때까지 공인기관 영어성적을 요구받은 적이 없었다. 칼빈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 진학하려고 준비한 토플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요구받은 공인 영어 시험이다. 요점은 내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칼빈 재학 시절 수업 참여도가 전무하다시피하고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교수를 만나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지만 성적은 좋았다. 신학석사(ThM) 과정이 페이퍼에 점수를 많이 배정한 탓이다. 내용과 창의력보다 형식을 중요시하는 한 교수를 제외하고 All A를 받았다. 그래서 내가 영작을 잘하냐고? 아닌 거 같다. 유학 시절 페이퍼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박사 과정을 위한 연구 제안서도 내 기대 이상의 평가를 받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 스스로 영작을 잘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게 페이퍼를 어떻게 쓰냐고 묻는 한인 학생이 좀 있었다. 특히, 영국 박사 과정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매사에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는데, 요점은 한결같았다.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논리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만약 원어민 수준이라고 해도 논리를 강조했겠지만. 대체로 반응은 뭔 소린가 싶다는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영어도 힘든데 논리라니... 이런 반응이다.

영어 원어민에게 한국어는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한국어를 아주 잘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이 다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영작을 잘하는 게 아니다.

내가 그랬고 주변을 봐도 석사 과정에서 영어 실력이 확 느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말하기가 그렇고 영작도 그렇다. 한 영역에 집중해서 점수를 대폭 상승시키는 경우를 보기는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영작은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물론 오타나 문법 오류는 없어야 하고 글의 흐름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여기서 다시 강조하는데, 글의 흐름은 영작이 아니라 논리가 좌우한다. 학술 과정에서는 지식을 습득하는 수준을 넘어 논쟁점에 관한 개인의 생각을 요구한다. 최종적으로 교수에게 제출하는 페이퍼는 학생이 기존 자료와 얼마나 치열한 논리적 다툼을 벌였는지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교수는 창의력을 요구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그들이 엄청난 발견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개인의 주장을 도출하는 과정을 글로 보여주면 된다. 그 과정을 표현한 언어가 영어일 뿐이다. 글에 논리가 있으면 표현이 서툴고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종종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논리적 흐름이 미숙한 영작의 한계를 극복해주기 때문이다. 영작은 뛰어나지만, 논리가 없으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영작은 다소 서툴러도 논리가 탄탄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글로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면 논리력을 키우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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