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장차 성서학(구약/신약)을 전공할 계획인 나로서는 외국어에 대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어느 전공을 선택하던 영어, 히브리어, 성서 그리스어와 씨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본문주해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히브리어와 성서 그리스어가 어렵긴 하지만, 각종 도구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다. 나에게 큰 도움을 주는 도구 자체가 영어로 되어 있고, 참고할 주석들은 전부 영어권에서 출판되었다. 그러니 실제적으로 성서연구에 험난한 시험을 주는 건 다름아닌 영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주석번역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영어의 부담을 제거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 달갑지 않다. 한글판이 주는 유익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글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떠한 형태로든 본문연구란 다양한 주석을 통해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그러니 기존 주석에 얽매여 있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독해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도 그 본문 자체를 온전히 이해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연구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올바른 주해에 있고, 주석독해는 주해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단지 독해과정을 도와주기 위해 주석번역을 추진하는 건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내 관점의 연장선에서 보면, 주석비평(metacommentary)이라는 분야는 그 존재자체가 의문점이다.[각주:1] 그렇다고해서 의도조차 무시하는 건 아니다. 올바른 주해를 위해서는 주석에 대한 비평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주석비평이 필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석비평을 하지 않아도 올바른 비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주석은 비평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더구나 주석은 번역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성서학자에 의한 번역은 더 반대한다. 그 시간에 개인연구물을 출판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엉뚱한 소리를 할거라면 번역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만.

오히려  나는 주석번역 보다는 주석집필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주석을 집필할 만한 저자들을 확보하려는 노력하기 보다는 번역이 더 수월하겠지만,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일이다.

  1. 주석비평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 내의 "Metacommentary"란 글을 읽어보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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