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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02 느헤미야와 에스라, 그리고 신명기사관

흔히 유대교의 기원으로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꼽는다. 흥미롭게도 포로기 문학에서도 이 둘의 영향은 지대하다고 한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관료로 아닥사스다 왕을 섬겼다(1:1; 특히 2:1-10). 우리는 그가 유대 포로민 중 엘리트 계층에 속한 가문 출신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그가 모세의 율법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1:7-9).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 출신이다 (7:6-9, 그의 가문에 관해서는 7:1-5를 보라).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7:6)이었고,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7:10)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 모두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의 성전 재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 관료로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으로 성전 재건을 가능케 하는 공헌을 했고, 에스라는 율법 교사로 귀환 공동체가 성전 재건 이후 야웨 신앙 공동체로 회복되도록 이끈다. 둘 다 모세의 율법에 익숙했었다. 바벨론 유수 이후 로마 제국의 통치 이전까지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의 정착과 신앙 회복이란 측면에서 이 둘의 공헌은 역사에 길이 남을만하다.
 
그런데도 이 두 거인의 의도와는 무관한 부정적인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예루살렘 멸망과 포로민의 바벨론 이주 이후 팔레스타인 거주민을 적대시하는 소위 "텅 빈 땅 신화" 그중 하나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역사 해석에서 신명기사관이 과도하게 영향력을 갖도록 한 것이다.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이스라엘 엘리트 가문 후손이자 바벨론 포로민의 후예라는 출신 성분과 모세의 율법에 익숙했다는 공통점이 바로 이 두 지점에서 한계로 나타난다. 에스라가 "주의 종 선지자들"(9:11)의 말씀을 인용하지만, 그 의도는 이방인으로 인해 예루살렘 땅이 더러워졌다는 비판을 하기 위해서다. 이어서 에스라는 통혼 금지 조치를 취한다.   

예언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원인이라고 수없이 말한다. 아마도 느헤미야와 에스라, 그리고 후대 신명기사관 편집자는 이 지점에 주목했음이 분명하다.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은 신명기사관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회복은 신명기사관으로 해석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예언자들이 언약을 선포하는 이유이다. 신명기사관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심판은 필연적 결과이지만, 이스라엘의 회복은 그 어디에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반대로 언약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렇듯 신명기사관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래서 나는 신명기사관에 대한 의구심이 들고 있다. 또한 내가 언약 신학의 기능에 일차적 관심을 두고, 더하여 신명기 사관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연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언서의 위치는 어디인가? 모세의 율법은 신명기사관으로 요약할 수 있는가?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비롯해서 수많은 후대 해석자들이 신명기사관에 집착하는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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