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선지자 예레미야는 목자-양 비유를 약 17번 정도 사용하였는데, 이 빈도는 성경에서 가장 많은 활용이고, 그 용례는 다양하게 적용된다.

예레미야는 '목자'라는 칭호를 이스라엘 왕 혹은 지도자와 하나님만이 아니라 이방 민족에게도 사용한다. 목자의 '선함'과 '악함'은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 모두에게 적용된다. 심판이란 주제도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 모두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예언에 있어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예레미야는 목자-양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리지만, 바벨론을 향해서는 철저한 심판을 선포한다. 대표적으로 23:1-8은 전자에 속하고, 50장은 후자에 속한다. 흥미롭게도 목자-양 비유의 빈도는 후자가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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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 2장 12-13절은 원래 4장 7절 이후에 위치했으나 언젠가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2장 12-13절이 심판 선포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끊으며, 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회복에 대한 소망을 선포하지 않았고 오로지 심판만 선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이러한 견해를 거부하고, 심판과 회복이 동시에 선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학자는 선지자들의 이같은 예언이 논리적 연속성을 내포하지 않는다고 본다.


this passage concludes a major section of the book having the general pattern: doom, then grace, it must still be acknowledged that there is no logical or natural continuity with the foregoing.

- Delbert R. Hillers, Micah, Hermeneia: 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4), 39.


정확한 출처가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대본 작가들은 비극 보다는 희망적인 결말로 이야기를 완성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화 관람객들이 해피 엔딩을 기대하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은 비관적인 결말 보다는 희망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결국 삶의 원동력은 절망이 아닌 희망에 달려 있기 떄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궁극적인 회복으로 이끄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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