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1. 초대교회사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벨직 신앙고백서 13

 

틸리히는 <그리스도교 사상사>에서 카이로스(kairos) 대해 제일 먼저 서술하였고, 카이로스를 '그리스도교 신학의 예비'라고 보았다. 역사란 그저 흘러가는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진다는 분명히 밝히는데 가장 적합한 표현이 카이로스이며, 실제로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계획과 예비하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카이로스일까?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죽을 인류를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이다. 뮐러는 역사에 대한 자신의 필생에 걸친 최종적 연구 결과를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복음은 모든 희망의 성취이며, 모든 철학의 완성이고, 모든 혁명들에 대한 해석이며, 겉보기에는 모순처럼 보이는 모든 물리적·도덕적 세계의 열쇠이다; 그것은 생명이다. 그것은 불멸이다.” 틸리히의 말대로 모든 역사는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데, 목적을 뮐러의 표현을 빌린다면 복음이라 있고, 이런 역사를 구속사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써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으며, 따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바울 역시 사도들이 시작한 예루살렘 교회의 전통에 참여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도들의 교회에 역사적인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들의 증언과 그들이 전한 복음에, 그들에 의하여 혹은 그들로 말미암아 기록된 성경 말씀에 신앙과 생활의 근거를 두는 교회이다.

미국의 유명한 교회 역사가 빌헬름 파우크 박사와 자로슬라브 펠리칸 박사는초대교회를 모르면 기독교를 모른다 말했다. 그만큼 초기기독교 500년의 역사는 기독교 2000년의 역사에서 모판과 같이 매우 중요한 시대이다. 이유는 시대에 신앙의 원리인 정경이 확립되었고 참된 교회가 지향해야 신학적 교리가 체계화 되었으며 또한 예배의식과 교회의 조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것은 교회가 외적으로 로마의 오랜 박해를 받았으며 내적으로 이단과 분파주의자들의 등장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에 이런 어려운 문제들을 허락하셨는가?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전파되면서 초대교회 역사에서 사람들이 가장 크게 관심을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주님으로 믿는 신앙고백이 기독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때문인지 초대교회사 동안 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초대 교회 시대의 기독론은 예수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아들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 아버지와는 어떤 관계인지 하는 관심에서 삼위일체를 논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두고는, 그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그의 인격을 이루시는 것인지, 주로 존재론적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려고 했다. 필립 샤프가 지적했듯이 확실히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는 곳에 마귀도 곁에 예배당을 세운다.” 그러나 온갖 오류에도 섭리의 손에 들리면 진리가 확연하고도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틀림없이 이바지한다. 오류들은 연구를 자극하고 방어를 강요한다. 이단들과의 잦은 논쟁 덕분에 초대교회는 기독교 교리의 가장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견고히 다지게 되었다. 결국엔 처참한 심판을 받겠지만 악한 자들을 통해서도 선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경륜이다.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며, 초대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철저한 자기준비와 대처가 요구되었다. 이를 위해 교회의 전통을 수립하거나 조직하는 , 특히 이단들에 맞서 교리를 체계화하는 것은 교회의 상시적인 과제였다. 한때 교회는 삼위일체와 기독론 같은 신학논쟁으로 혼란에 빠졌으나 이로써 더욱 말씀에 견고히 서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결과 여러 이단들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진리는 소멸하지 않고 오늘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이는 세상의 어떤 도전과 박해에도 흔들리지 않고 말씀에 굳건히 결과였다.

초대교회는 교리 논쟁 외에도 모진 핍박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어려운 시기였다. 스테반의 순교 이후 사울의 교회 탄압이 있었고, 로마 대화재 사건을 계기로 네로의 박해를 받은 후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 하기 전까지 줄곧 이유 없는 핍박을 받았다. 게다가 유대인 전쟁이 있었고, 예루살렘은 멸망하기까지 하였다. 이단과의 논쟁은 교리를 체계화하는 계기로 허락하셨다면, 이런 일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로마의 패망 당시의 신자들이 그랬듯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며 혼란스러워해야 하는 걸까? 하나님은 사건들이 자연적으로 해결되도록 하시거나 아니면 아무런 상관조차 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만물을 내버려두시거나, 운명이나 우연에 맡기신 것이 아니라 그의 거룩하신 뜻대로 다스리시고 주관하심으로 세상의 어떤 일이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일어날 없음을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발생하는 어떤 죄에 대한 책임자가 없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그의 능력과 선하심은 너무나 위대하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기 때문에, 사단과 사악한 인간들이 불의를 행한다 할지라도 그는 가장 놀랍고도 의로운 태도로써 자신의 사역을 명하시고 이를 이루고 계시기 때문이다(3 방식).” 우리가 납득하지 어려운 사건들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필립 샤프는 예루살렘 멸망은 기독교 교회가 본격적으로 유대교라는 누에고치를 영원히 뚫고 나와 자신의 성숙을 깨우치고, 정치와 예배로 세상 앞에 단번에 독립된 자태를 드러낸 중대한 분기가 된다.”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하나님의 놀라우심에 대해 생각해 , 우리는 우리의 이해 능력의 한계를 넘어 있는 놀라우신 뜻을 호기심으로 감히 찾아 수는 없으며, 다만 지극한 겸손과 경외함으로 우리를 초월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을 따를 뿐이며,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서 계시하여준 사실만을 배울 말씀의 한계를 벗어나서는 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만족을 해야 것이다. 가르침은 우리에게 말할 없는 위로를 주는데, 이유는 어떤 일도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은혜로우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일어남을 교훈을 통하여 있기 때문이다.”라는 고백을 이해하게 된다.

이제는 초대교회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있다. 기간을 통해 역사를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고, 기독교의 근본 되는 진리와 체계를 세우시고, 시대를 살아가는 자세를 배우도록 하셨다. 우리는 초대교회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벨직 신앙고백서 13장을 통해 이제는 사건에 매여 단편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아니라 사건에 대한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범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2. 어거스틴의 신학 정리

 

 

도나투스 논쟁

교회를 성도들의 회중으로 보는 도나투스파는 교회가 언제나 소수의 남은 자들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그들은 교회의 성결이 교회 구성원들의 성결에 근거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박해가 가라앉은 이후 배교한 자들이 교회로 복귀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3세기 중엽 노바티안과 그의 추종자들로 말미암아 야기되었던 상황과도 비슷하다.

도나투스파의 분파 운동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이가 어거스틴이다. 어거스틴은 도나투스파가 성결한 생활을 표방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실생활에서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설사 그들이 거룩한 생활을 실천한다고 하더라도 교회를 분열시키는 때문에 그들의 성결 생활은 무효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분파의 죄는 배교보다 무서운 죄라고 주장하였다. 교회내의 선한 자와 악한 자는 심판 때에 가려지는 것이며, 교회의 성결은 교인들의 성결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성결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도나투스파는 성례와 국가에 대한 이해와 태도에 있어서 가톨릭 교회와 견해를 달리하였다. 도나투스파는 자파 이외의 교회에서 받은 세례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도나투스파에서 받은 세례도 신자가 가톨릭 교회에 돌아올 때는 그대로 유효하다고 했다. 교회는 로마 정부에게 핍박을 받아왔으나 국가에 대하여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다.

도나투스파는 교회가 세상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가와 세상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지를 견지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통치자들과 아무 상관이 없고, 감독들은 재판소에 관여할 바가 없다고 했다. 도나투스파 신도가 되기 위해서는 이방 문학이나 지식과 이방의 생활 양식 전부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도나투스파가 염세적이며 분리주의적인 견해를 가지게 것은 그들이 로마 제국에 반감을 가졌던 정치, 사회적 배경과 금욕, 고행, 순교, 기적 등을 내세우고 강조하는 그들의 토속 종교의 배경 때문이라고도 한다. 비타협적 독립 정신을 고취하는 토속 종교의 배경에서 살아온 하층 계급의 대중들은 국교화되어 가는 로마의 가톨릭 교회를 거부하고 반로마적인 도나투스파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도나투스파의 분파 운동이 교회의 도덕 생활과 경건을 강조함으로써 독선적인 면을 가졌다. 운동은 기독교의 근본적이며 정통적인 교리에 충실하면서 국교화되고 세속화되어 가는 가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교회의 성결을 강조한 나머지 비타협적이며 극단주의적 교회 분립을 단행한 운동이다.

411 호노리우스 항제의 칙령으로 411 카르타고에서 신학 논쟁을 위한 회의가 열렸는데, 논쟁을 주도한 신학자는 어거스틴과 도나투스파 감독 페틸리안이었다. 황제의 대리인은 가톨릭 측의 승리를 선언하였다. 회의 이후 도나투스파는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7세기에 아프리카가 이슬람에게 점령을 당하면서 도나투스파 교회는 아프리카의 가톨릭 교회와 함께 소멸되었다.

 

도나투스 논쟁과 연관 지어 생각해 있다. 그건 바로 일제 강점기를 거친 부류 그리스도인들이다. 칠흙 같은 시대를 거치면서 살아간 그리스도인들은 순교자, 지혜로운 같은 자들, 회개자, 배교자로 나눠지는데, 안타깝게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이들은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 지혜로운 같은 자들이었으며 배교자들도 많았다. 해방 이후에는 배교자들 중에서 신앙을 저버린 대한 가책을 느끼고 회개하며 교회로 돌아온 이들이 있는데, 회개자의 처리는 한국교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감싸주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노바티안파와 도나투스파가 교회의 순결을 외치며 분파 운동을 일으켰듯이 그들을 배척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걸까? 쉽게 결론을 내릴 없지만, 노파티안파와 도나투스파의 분파운동의 어떻게 되었는지를 살펴본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는지 교훈을 얻을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가 알기로는 노파티안파는 서방에서 로마의 감독 코넬리우스의 지도하에 60명의 감독들이 노회로 모여 노바티안과 그의 추종자들을 출교시켰고, 노바티안은 발레리안의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도나투스파는 411년에 열린 신학 논쟁 이후 세력이 약화되면서 7세기에 소멸되었다. 이를 보더라도 우리는 회개자들을 포용하기를 힘써야 한다. 나머지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맡겨드려야 한다.

좀더 말하자면 교회의 성결을 강조하는 바람직하지만, 그로 인한 분파는 된다. 사도들도 항상 완전하면서도 현실적인 교회, 다양한 지역들과 국가들 그리고 다양한 시대에 존재하는 신자들의 모임들이 구체적으로 출현되는 교회의 몸을 염두에 두었지만, 교회가 여전히 허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교회의 기반이 되는 실재의 계시이며 세세토록 수행되어지는 하나님의 모략의 현실화이다.

 

 

펠라기우스 논쟁

펠라기우스 논쟁에 대해 서술하기 전에 1세기부터 어거스틴 이전의 서방교회까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유는 펠라기우스 논쟁 이전까지 구원에 있어서의 자유의지와 은혜의 교리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전통적인 교회 지도자들 조차도 각기 다른 견해를 가져온데다가 구원 사역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단들의 끊임없는 반론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음을 밝히고자 함이다.

 

1세기에는 동방과 서방을 막론하고 은혜 교리가 언급되는 글을 찾아볼 없다. 속사도 교부들과 변증가들이 은혜 교리에 관심을 갖지 못한 이유를 꼽아 있다.

먼저는 유대교적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율법주의적인 전통과 배경에서 산상보훈의 엄격한 윤리적 요청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보다 나은 의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이런 뜻에서 교회에서 행하는 참회를 회개의 은혜라고 하였다. 둘째로는 이와 전혀 다른 방향의 영지주의의 영향을 있다. 영지주의는 4세기 초까지 기독교를 위협하는 사상이었다. 영지주의는 물질을 악으로 보는 이원론적 사상이었으므로, 교부들은 이에 대항하여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변증하였다. 그리고 지식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영지주의의 논의에 대항하여 사람은 선한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과 윤리적으로 새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밖에 고대의 신비주의와 금욕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과 짝해서는 되고 멀리해야 하며 금욕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상을 갖게 되었다. 말하자면, 이들은 일반 종교적인 구원 이해를 별로 벗어나지 못한 데서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보다는 율법을 지키는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속사도 교부들과 변증가들은 은혜 교리를 영지주의의 영향 때문에 철학적으로 이해하였다. 하나님 이해와 그리스도 이해, 삼위일체 교리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까 하나님의 초월과 내재 간의 긴장 관계에 초점을 두었다. 그래서 은혜 교리도 이러한 테두리에서 이해하였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능력의 일이 하나님의 경륜, 구원 사역이라고 한다. 때문에 초대 교부들의 은혜 교리를 면밀히 이해하려면 창조와 구원 사이의 구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타나시우스는 사람 아담과 하와는 계속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고 물질세계에 정신을 빼앗겼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형상의 은혜를 박탈당하여 부패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본성이 무지와 우상 숭배로 실추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가르침을 받아 이런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비록 사람이 몸의 불사(不死) 상실했다고 하더라도 영혼의 불사는 그대로 보유하며 자신의 의지도 자유롭게 유지한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지워져 없어지는 것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말씀을 활용하여 말씀을 이해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고 한다. 사람이 가진 하나님의 형상은 먼지로 뒤덮인 그럼처럼 되었으나 형편없이 망가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담의 범죄가 모든 사람에게 전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 아담의 죄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다거나 혹은 도덕적인 정죄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견해는 4세기 동방 교회에 영향을 미쳤다.

어거스틴 이전의 서방 교회에서는 인간의 초기 상태는 초자연적 상태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였다. 암브로시우스는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죄를 범한 것은 그의 영혼이었으나 범죄 행위가 육체도 부패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죄가 안에 거하게 되었으며, 몸을 죄의 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류의 죄는 아담과의 연합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본다.

암브로시우스는 은혜가 공로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만 주시는 이의 뜻을 따라 주어지는 것이며, 기독신자가 되겠다는 결정은 하나님에 의하여 미리 준비된 것이다. 우리가 가지는 모든 거룩한 생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빅토리아누스 역시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 자체까지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은혜에 대한 어거스틴의 이해가 그러한 서방의 전통에서 나온 것임을 있다.

동방과 서방의 이러한 차이점은 서방의 전통이 헬라 철학이나 동방의 신비 종교 율법주의적인 유대교의 영향에서 멀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방이 형이상학적 사색에 관심을 보였지만 서방에서는 실제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인간과 구원에 대한 교리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거스틴 당시에 바울 서신의 연구가 활발하였으며, 인간론 중심의 은혜 교리가 발전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적으로 교리의 합의점에 다다름과 동시에 대립을 나타내는 부분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이러한 과정을 예정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간의 논쟁을 통해 잘못 이해해왔던 바를 바로잡도록 하셨고, 체계적으로 교리를 다듬어 갈수 있도록 하셨다. 이단들을 통해서 전통적인 교리를 확립해나가도록 하신 것이다. 이제 남은 구원에 있어서의 자유의지와 은혜의 교리의 상관관계이다. 또한 펠라기우스와 어거스틴 간의 논쟁을 통해 명확한 답이 내려지게 하셨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견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펠라기우스는 도덕주의자로서 인간성에 대한 비관적 견해를 혐오하였다. 인간은 어쩔 없이 죄를 짓게 마련이라는 견해는 창조의 원리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였다. 펠라기우스는 동방 신학에서 말하는 것과 동일한 말을 하였다. ,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이성과 자유를 가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창조의 은사에 포함되어 있으며, 우주적인 양육과정에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계명과 언약과 교육, 그리고 종국에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를 통하여 상실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다시 회복시키신다고 한다.

펠라기우스는 어거스틴이 참회록에서 말하는 당신께서 명하시는 것을 주시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을 명하소서라는 기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면 인간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펠라기우스는 이에 반발하여 그의 신학 사상의 핵심이 되고 있는 무조건적인 자유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펠라기우스는 자유의지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심어 주신 죄짓지 않는 가능성을 비롯하여, 영원한 상급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하나님의 율법의 계시, 그리고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교훈과 그의 모범적인 행위 등이 은혜라고 한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원한다면, 죄를 짓는 없이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행할 있다고 한다.

펠라기우스의 제자 켈레스티우스는 한층 과격하게 잘못된 교리를 가르쳤다. 아담은 창조될 때부터 그가 죄를 범한 사실과는 관계없이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원죄를 강력히 부인하면서 아이들이 세례를 받지 않아도 영생을 얻을 있다고 말하며, 은혜와 자유의지가 양립할 없는 개념임을 역설한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완전한 자유를 향유한다고 한다. 결국 켈레스티우스는 412 카르타고에서 정죄를 받았으며, 416년에는 카르타고와 밀레붐에서, 그리고 418 카르타고에서 열린 아프리카 대회에서 정죄를 받았다. 렐라기우스의 사상은 431 7 22 에베소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파문되었다.

어거스틴이 서방을 대표하는 신학자로서 은혜의 교리를 말하게 데에는 가지로 배경을 있다. 로마나 동방과는 대조적으로 북아프리카에는 일찍이 원죄 사상이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점에서 어거스틴은 첫째로 터툴리안의 원죄론을 유산으로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북아프리카에는 이미 죄로 물든 인간의 성품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고는 은혜를 논할 없게 되어 있었다. 죄로 물든 인간의 성품이라는 개념은 인간 안에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개념과도 다를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행해지는 우주적인 교육의 고정을 통하여 인간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는 동방 신학과도 다르다. 둘째로 어거스틴은 자신이 철학과 마니교에 탐닉했던 ,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는 육의 정육을 이길 없었던 , 인간의 부패성과 죄에 대한 자신의 무능함을 통감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나름대로 은혜의 교리를 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성경 공부를 통하여, 특히 바울 서신의 연구를 통하여 은혜의 교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원죄의 실재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로 인간의 성품이 손상되고 타락하게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아담 안에서 우리가 타락함으로 인해 아담이 향유하던 자유를, 죄를 피할 있으며 선을 행할 있는 자유를 상실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중점이 되는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망을 선택할 있는 권리로 이해하고 있음을 있다.

따라서 어거스틴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우리의 자유의지로는 삶에서 당면하는 유혹들을 극복할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일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동하시는, 내적이며 신비한 능력이다. 그것은 놀라운 능력이어서 필설로 표현할 없는 것이라고 한다.

예정과 자유의지의 문제를 두고 어거스틴은 단계로 해결책을 말한다. 첫째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임의로 선택할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실제로는 정욕으로 대기 속에서 숨을 쉬고 있으므로 죄를 택할 뿐이라고 한다. 둘째로, 어거스틴은 우리의 의지에 은혜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의지는 불가항력적이라고 한다. 여기서 그는 모든 인간의 의지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를 전제한다. 셋째로 어거스틴은 자유의지와 자유를 구별한다. 자유는 선한 일을 하는 자유의지며, 죄와 유혹에서 해방된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람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의 역사는 시대의 교리적인 지식을 거점으로 하여 성경의 진리를 보다 새롭고 풍부하게 발견해온 역사이다. 기독교 교리의 역사는 헬레니즘적인 견해나 편견과 주변의 종교적인 견해를 제거하고 성경의 진리를 발견하고 밝히 드러내려는 과정의 역사이다. 이는 펠라기우스 논쟁을 통해서도 밝혀진다. 지금껏 불분명했던 구원에 있어서의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각기 다른 이해가 펠라기우스 논쟁을 통해 모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요 은혜로 되어졌다는 명백해졌다.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이요,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름이니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이다.

 

참고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은 창조타락구속으로 보고, 성경적 세계관은 예정창조타락구속완성으로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지금껏 일반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기독교 세계관 보다는 성경적 세계관을 따라야 한다는 결론도 내려보게 된다.

 

 

참회록

어거스틴은 경건한 어머니와 이교도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오류와 악의 길로 빗나가 오랫동안 이단과 회의주의의 미로를 헤맸으나, 마음은 안식을 몰랐고 하나님께 대한 향수에 괴로워했다. 마침내 서른세 살이 되었을 (386 9) 아프리카 고향집에서 멀리 떨어진 밀라노 근처의 어느 정원에서 영혼의 열기가 이상 주체할 없을 정도로 달아올랐다. 그때 성령꼐서는 모니카의 끊임없는 기도와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와 안토니우스의 수행과 키케로와 플라톤, 이사야와 바울에 대한 공부를 사용하셔서 실로 굉장하지는 않지만 사도 바울이 겪었던 것과 같은 진실하고 지속적인 변화를 일으키셨다. 어거스틴은 재에 앉은 심정으로 회개하고 구원 문제를 놓고 기도로 하나님과 씨름을 하고 있을 갑자기 하늘에서 다정한 음성이 들리기를 집어들어 읽으라, 집어들어 읽으라!” 하였다. 성경을 펴니 바울의 권고가 눈에 들어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음성에 순종했고, 삶의 방향을 철저히 바꾸었으며, 결과 당대의 가장 뛰어나고 유익한 교사가 되었다.

 

어거스틴의 인생을 보면 하나님의 열심과 도나투스의 분파 운동에 대한 교훈이 떠오른다. 하나님의 열심에서 확실하게 배운 사람에 대해 세우신 바는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는 하나님의 열심이다. 어거스틴 역시 하나님께 설득 당한 자이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이었던 아브라함을 불러 믿음의 조상이라 하셨듯이 오랜 세월을 방탕하게 살고 이단에 빠져 있었던 어거스틴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셨기에, 지난 날을 뉘우치고 기독교 정통교리의 초석을 다지는데 쓰임을 받아 기독교 역사에서 루터와 칼빈과 함께 손꼽히는 자가 되도록 이끄셨다. 유진 포탈리(Eugene Portalie) 기술하기를, “고백론 영혼 속에 체험된 것으로서의 신학이요, 하나님이 개인 속에서 활동하시는 역사이다. 하나님의 도성 인간의 역사 체계 속에 존속하는 것으로서의 신학이며, 세계 속에서의 하나님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했는데, 참으로 적합한 말이다. 어거스틴의 삶은 죄인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구원사를 보여준다. 더구나 이는 개인적인 사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어거스틴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맛보는 자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은 인격적인 것이고, 개인적인 것이며, 대상의 이름이 하나님께 알려진 구체적인 인류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 그리스도의 몸과 신부를 형성할 있는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선택의 목적은 유기적 조직체의 창조, 하나님의 위대성을 선포하고 이마에 분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거듭난 인류의 구속이요 갱생이요 영화이다. 하나님이 시간 내에서 선택을 실행하실 , 하나님은 오직 은혜언약을 통해서만 일을 수행했으며, 또한 하나님은 모든 다른 사람들과 독립되어 있는 개인을 언약 속에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사람 안에서 가정과 세대를 동시에 부르신다.

어거스틴의 인생에서 도나투스의 분파 운동에 대한 교훈이 떠오른다고 함은 불신자와 이교도들을 포함한 어떤 죄인이라도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백성들을 향한 계획에 맞추어 이끄신다. 누가 알았겠는가! 어거스틴이 회심하여 귀한 일들을 감당하게 될지를!

 

 

하나님이 도성

어거스틴이 그의 대작 하나님이 도성 쓰게 동기는 로마가 패망하게 되자 사람들이 기독교와 관련 지어 던진 질문에 답하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중략) 비기독교인들은 로마가 옛날 신들의 보호 하에서 동안이나 안전했는데 기독교의 신은 어떻게 로마를 지키지 못하는 것인가 의문하면서, 로마 제국을 보호하던 신들을 버렸기 때문에 로마가 재앙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기독교의 신은 이교의 신이어서 로마를 지키지 못하며, 또한 로마는 로마제국을 지키는 신을 버린 대가로 이런 어려움을 당하며 로마가 재앙을 받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 와중 410 고트족의 왕인 알라리크(Alaric) 군대를 이끌고 와서 로마시() 함락하면서 이러한 설명이나 주장들은 더욱 탄력을 받고 분명한 근거를 제시 받는 하였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어거스틴은 이러한 주장이나 의문에 대하여 분명하게 변호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의문이나 문제제기는 사실 불신자들이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들 가운데 제기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로마제국을 기독교가 국교이기 때문에 마치 메시아 왕국의 실현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로마의 패망은 도저히 이해할 없었던 것에 대하여 어거스틴은 자세하게 변증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413년부터 427년까지 로마가 패망하게 위기 상황에서 로마의 국교가 되고 있는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하여 심혈을 쏟았다. 하나님이 도성에서 그는 로마의 다신교 신앙을 논박하며, 종말의 문제, 창조, 시간과 영원 등의 문제를 두고 그리스 철학을 신플라톤적인 견지에서 비판함과 동시에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를 변증한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 신이시요, 밖에 모든 신들은 로마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루 없는 잡신일 임을 역설한다.

그러나 교회는 지상의 모든 제국들과 문명들의 성쇠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존재한다고 하며, 로마가 기독교적인 제국이라고 하더라도 야만족들의 침공으로 인한 혼돈과 멸망에서 면제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거스틴은 로마 제국의 이해(利害) 하나님의 나라의 이해와 일치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부는 교회와의 관계에서 평화와 자유를 보존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기능을 다해야 하는 것이지만, 제국을 공략하는 야만족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도성에 ()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인간의 진정한 목적은 현세를 넘어서는 것이므로 지상의 국가가 외적인 공격이나 내적인 붕괴를 막아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어거스틴은 예정론에 근거하여 교회를 구원으로 예정된 자들의 공동체(communio praedestinatorum)라고 한다. 그는 간혹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구원으로 예정하실 있다는 말을 하지만, 구원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교부 키프리아스의 전통을 철저히 따른다.

이미 약술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도성은 어거스틴이 410 야만인들이 로마를 침공하고 약탈함으로써 기독교의 도성 로마가 멸망의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 것이다. 내용은 어거스틴이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고찰하면서 기술하는데, 크게는 부분으로 구분될 있다. 먼저 전반부인 1권에서 10권까지는 이교도에 대한 반론을 적고 있으며, 후반부인 11권에서 22권까지는 하나님의 나라와 지상 나라의 관계를 적고 있다.

후반부인 11-22권의 12권에서는 도성에 관하여 서술한다. 먼저 11-14권에서는 하나님의 도성과 세상의 도성의 기원과 종국에 관하여 설명하는데, 여기서 어거스틴의 신학적인 중요한 전제를 먼저 밝힌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을 없다는 것과 정경의 권위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시간에 대한 설명과 죽음 종국에 대한 변증을 하고 있다. 15-18권에서는 어거스틴이 역사의 필연성이라는 이러한 전제를 기초로 하여 도성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설명한다. 먼저 세상의 도성은 자신의 동생을 살해한 가인을 시조(始祖) 말하고, 이에 반하여 하늘의 도성은 지상에서 은총을 통해 순례자의 삶을 살다가 후에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하늘나라의 시민이 아벨을 시조로 말한다. 어거스틴의 설명은 나아가 아벨이 지상에서는 이방인이었으나, 동시에 하나님의 도성도 세상에 대해서는 이방인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세상의 도성에 있어서 시조인 가인은 세상에 도성을 세웠으나, 아벨은 도성을 세우지 않았다. (중략) 세상의 도성은 그리스도 이전에 이방왕국들의 발자취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반면에 하나님의 도성은 아담으로부터 그리스도의 탄생까지의 하나님의 백성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19-22권에서는 그들의 마지막 운명에 간하여 논한다. 성도들은 비록 여기에서는 땅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나라가 도래할 때까지 순례자로 사는 것이며, 육신이 부활할 때에 하늘의 도성은 나라의 시민들을 그곳으로 불러 모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놀라운 일이 있을 근거는 바로 창조주의 전능하심으로 돌린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civitas Dei) 악마의 도성’(civitas diaboli) 대조하여 비교한다. 그러나 지상의 어느 사회나 공동체도 도성에 일치하는 것은 없다. 교회는 하나님의 도성을 대표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도성 자체는 아니고 하나님의 도성을 지향해야 하는 공동체일 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교회의 지체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도성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이러한 기술에 있어서 먼저 어거스틴은 정확한 이해를 위하여 오직 역사를 살펴보기를 원한다. 그리고 질문자들을 향하여 로마 제국이 기독교화하기 이전의 시대가 결코 소위 말하는 황금시대 아닌 것을 먼저 역사적으로 증명한다. 또한 로마가 아무리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제국이라도 그것이 결코 메시아 왕국과는 무관하며,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다는 것이 이민족 혹은 야만족의 침입이나 멸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있는 것이 아니며, 보이는 제국인 로마의 이해관계가 하나님 나라의 이해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관점을 먼저 제시한다. 그래서 로마를 공격하는 야만족이 하나님의 공격하는 적으로 보는 도식적인 구조를 벗어나 야만족 가운데도 하나님의 도성에 속한 자가 있고, 심지어 로마 안에 있으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적인 사람들이 있을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며, 인간의 진정한 목적은 현세를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결국 전체적인 구성을 요약하자면, 지상 나라는 망하지만 하나님의 도성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영구불변하다는 것을 변증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지상 나라의 관계를 역사신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인간의 전체 역사를 시작점에서부터 종국에 이르는 시간까지 도성, 하나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을 통하여 인간의 역사를 분석하며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도성을 통해 새로운 역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 어거스틴에 있어서 도성의 분석과 이해는 성경에 기초를 두고 역사와 문화에 제반 현상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특징으로 보인다. 그는 정경으로 인정된 성경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간이 역사의 진행과정에 대한 설계 세부사항과 연관이 있는 정보를 얻을 있는 주요자원이라고 확신하며 이것을 바탕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이에 대해 마티누스 버스펠드(Marthinus Versfeld) A Guide to the City of God에서 만일 역사의 의미가 섭리적 계획 속에서만 발견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다시 말해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그의 신적인 생명과 의지에 관해 우리에게 부여한 계시를 통해 우리를 그의 계획에로 끌어들이지 않는 역사의 의미는 영원히 우리에게 닫혀져 있게 것이다. 이것이 어거스틴이 성경에 기초를 두고 도성을 설명하며, 저술작업에 있어 인간적인 기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그처럼 자주 요청하고 있는 이유이다.”이라 했다. 어거스틴은 그의 성경적인 배경을 힘입어 역사에 대해 보다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거스틴에게는 하나님의 도성이 이상적인 것도 아니고 단지 신화적인 언어로만 묘사할 있는 어떤 것도 아니다. 그것은 철학과 상상적 지식이 아니라 계시된 진리에 대한 확신을 필요로 하는 실제적으로 현존하는 사회이다. 다시 말해서 어거스틴이 성경의 정경을 계시된 진리로 믿는 그에게는 이상향적인 요소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거스틴이 신학이나 역사 그리고 여러 문제들을 변증함에 있어서 철학을 사용한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대신 판단이나 이해의 기준도 지성에 대한 신적인 조명을 말하며, 이것이 자신의 평가의 근거임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는 제반 문제에 대한 바른 이해가 가능하지만, 이에 비견되는 손상당한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으로는 그것이 바르지 않음을 나타내 보인다. 이에 대해 고든 링컨 키이스(Gordon Lincoln Keyes) Christian Faith and the Interpretation of History에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는 어떤 선험적인(a priori) 전제들로부터 시작한다. 전제들은 역사적 증거에 대한 그의 자세와 역사과정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 양면을 모두 지배하고 있다. 전제들은 믿음에 근거해 있는 것이지만, 모든 것들이 전제들을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 () 문학이 좋건 싫건 간에 한결 같이 원형적 전제들의 그럴듯함을 증거하도록 강요를 받는다.”라고 했다.

역사의 과정은 예정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도성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다. 도성은 없을 정도로 안에 뒤섞여 있지만, 도성의 일원들은 최종의 만족으로 추구하는 대상에 따라 구분된다. 그들이 자신을 위해 향유하기 원하며, 그들이 추구하는 관심이 달려 있는 대상에 따라 구분이 된다. 하늘의 시민들은 하나님 외에는 어느 것도 궁극적인 헌신의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지상의 도성에 속한 시민들은 보다 저급한 (Good) 좋아한다. 다시 말해서 도성은 어거스틴의 말처럼 상이한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성에 관한 설명을 통하여 진정한 구분은 외적이거나 정치적인 기준에 의하여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이며 영적인 기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함을 언급한다. (중략) 따라서 어거스틴의 주장의 핵심은 진정한 나라는 눈에 보이는 도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성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결국 어거스틴은 역사 눈에 보이는 역사나 그것을 넘어선 역사를 계시에 비추어 이해하는데, 모든 상황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섭리를 본다.

역사를 취급함에 있어서 어거스틴 당시의 역사이해와 비교할 , 분명한 차이점은 순환적인 역사를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공간과 시간을 창조하셨으며, 창조하셨으므로 공간과 시간이 있게 되었다. 영원은 오리겐이 말하는 에이온 끝없는 연속이 아니고, 연속 혹은 연장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며, 영원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속하는 전적으로 단순하며 불변하는 현재이다. 역사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예정하신 계획에 따라 목표점을 향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하면 역사과정은 하나님의 의지와 예정대로 전진해나가며, 동시에 역사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우주는 완전하며, 창조된 모든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으며, 그렇게 역사와 우주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조화된 우주의 과정을 거쳐 예정된 목적지로 반드시 인도될 것임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의 침공도 로마가 이민족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것도,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섭리되고 있음을 밝힌다. 따라서 어거스틴의 역사이해는 방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으로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것을 간단하게 신학적인 용어로 예정이라고 있다.

교회란 잠정적으로 순례자며 육신이 다시 부활 때까지 완전히 하나님의 도성과 통합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교회 자체는 도성이 혼동되어 있는 무대이다.

하나님이 의도한 창조의 완성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이다. 교회는 잠정적인 제도이다. 세상 속에 독특하게 잠정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와 세상의 이중성은 단지 종말론적인 나라에서만 없어지게 것이다. 현시대 또는 마지막 시대에 교회는 주님과 다가오는 그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해 세상 속에 존재해 있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자신이 살아가며 체험하는 격변의 시기 혹은 험난한 역사의 전환점에서 하나님의 도성을 기술하였다. 당시의 많은 신자들 혹은 불신자들마저도 로마제국 흥망성회에 대하여 고민하고 관심 가지고 의문을 제기하던 현실속에서, 어거스틴은 유한한 로마의 기원과 성장 그리고 발전과 패망을 보면서도, 시작을 유한한 세상에만 그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필립 샤프는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은 하직을 고하던 이교의 세계 제국에게 던지는 장엄한 조사(弔辭)이며, 다가오는 기독교의 세계 질서를 맞이하는 숭고한 환영사라고 했다.

 

기독교인들이 보는 역사의 특징은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경륜을 이루는 것으로 알파 포인트(alpha point)에서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 향해 직선적으로 나아간다. 스위스의 신학자 오스카 쿨만은 이를 구속사적 개념으로 설명하고 하나님은 소명과 순종의 왕복과정을 따라 그의 구원의 드라마를 이끌어가신다고 보았다. 뢰비트는 이것을 단선적인 하나님의 중심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이는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에도 분명히 나타난다. 충격적인 로마의 패망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최고조로 달했을 어거스틴은 사건 역시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고, ‘하나님의 도성 악마의 도성 대조하면서 지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삶의 자세를 제시해주었다. 때문에 학자들은 하나님의 도성 두고 역사신학이라고도 하는데, 위에서 언급한대로 유진 포탈리가 하나님의 도성 인간의 역사 체계 속에 존속하는 것으로서의 신학이며, 세계 속에서의 하나님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상기해본다면 충분히 공감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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