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성경의 최종 형태에 관한 다양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실재를 바탕으로 기록되는 결론이 마땅하다고 본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을 선언하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이 자신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즉 하나님의 언약이 아니고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설명할 길이 없다. 예레미야는 이전에 보지 못한 강대국들이 출현하던 시기였고, 그 제국조차도 멸망의 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살아남았다.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난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관점은 언약이라는 신앙의 언어였다.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구약에서 언약과 목자의 출현에 관한 예언은 자주 결합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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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국가법이 유일무이한 효력을 갖는 경우가 많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종교법 또한 지대한 효력을 가졌다. 

고대 이스라엘은 사사 통치 시대에서 왕권 국가로 전환된 이후에도 (형식상으로라도) 율법이 최상위 권위를 가졌다. 신명기 사관으로 집약되는 유대인 사고는 이스라엘 왕국 멸망과 포로 귀환을 거치며 율법 준수에 관한 집착으로 귀결되었다. 에스라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스모니안 왕조 등장 이후 헬레니즘화된 개혁이 실시되면서도 율법 준수라는 기조는 유지된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이 율법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율법 준수를 강조하는 동시에 언약을 선포한 선지자들이 있다. 이스라엘 국가의 멸망과 유대 사상의 종말이라는 위기에서 이스라엘 회복과 갱신은 율법 준수가 아닌 언약으로 가능하다고 선포한다.

인간의 책임으로써 율법 준수는 매우 중요한 행동 강령이지만, 인간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그 결과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한다. 

예수 생애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과 언약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율법 준수를 통한 거룩한 이스라엘을 꿈꾸었고, 그러한 이유에서 규례를 어기는 자들을 정죄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대인들은 안식일 규범을 어기고 신성모독을 한 예수는 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cf. 요 5:18).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종교중독이라고 부르는 율법주의적 열심이나 신앙적 해이에 빠지는 이유가 바로 율법과 언약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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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과 시온

독서후기 2020. 4. 10. 22:07

역자 서문을 인용하여 저자와 책을 소개하는 게 가장 적절할 듯 하다.

존 D. 레벤슨은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 대화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는 유대교 성서학자이다. 그는 구약신학을 시내산과 시온이라는 두 축으로 풀어낸다. 시내산은 하나님과 계약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의무와 헌신에 대한 강령이다. 시온은 하나님께서 다윗이라는 한 사람의 신실함에 대한 대가로 준 영원한 약속을 대변한다. 한 마디로, 구약성서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와 하나님의 약속 혹은 은혜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9-10쪽). 


나는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해 모세와 다윗의 연관성을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일차적으로 두 인물이 목자-왕 전승과 관련이 있고, 이차적으로는 언약과 성전이란 주제와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240쪽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정말 알차다. 형광펜으로 주요 부분에 칠을 한다면 검은 글씨 위에 형형색색 하게 칠한 부분으로 가득 채워질 테고, 내 생각을 적어둔다면 구석구석에 필기가 남아야 할 정도로 내게 필요한 내용이 많이 있다. 

다만 레벤슨 박사의 연구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데다가 내 상식을 깨는 견해들이 있어서 신중하게 읽어야 했다. 중요도와 난해함 때문에 조만간 다시 정독해야 할 책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만약 구약신학의 진수가 무엇인지, 특히 유대교 성서학자는 어떻게 구약신학을 바라보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시내산과 시온
국내도서
저자 : 존 D. 레벤슨 / 홍국평역
출판 : 대한기독교서회 201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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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목적은 차후 연구를 위해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 있다. 내 기존 연구를 기반으로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했지만, 앞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구약에는 신명기 사관과 역대기 사관이 존재한다. 역사는 해석되며, 관점의 차이가 각자의 사관(史觀)을 만든다. 그러나 둘 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해석하는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역대기 사관에서 더 두드러진다.

분열 왕국 시대 예언자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백성을 향하여 심판이 임하기 전에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예언을 무시하여 예언자들은 심판을 집중적으로 선포하게 된다. 때로는 심판이 대부분의 예언을 차지하면서도, 심판 이후 회복이 빠지지 않고 선포된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남유다는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오히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계보를 대조하며 자신이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가진다고 주장하고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신학을 견고히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속설이 있듯이, 북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남유다 중심의 기록만 존재해서 당시 주변 국가의 기록을 참고해야 좀 더 객관적인 역사 기술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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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다의 멸망 이전에는 목자-왕 전승에 관한 기록이 별로 없는데, 예언서에는 미가서와 예레미야서가 있다. 미가는 목자-왕 전승을 자신의 예언에 가장 먼저 적용한 예언자라고 볼 수 있다.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미가의 목자-왕 전승에 관한 연구는 매우 미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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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3장은 대표적인 목자-왕 전승 본문 중 하나이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다윗 계열의 왕이 등장한다고 선포한다. 이 본문에서 목자-왕 전승과 창조 언약이 연결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바빌론 2차 침공으로 포로가 된 에스겔은 남유다의 멸망에 낙담한 동족을 향해 회복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이때 이방인을 향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동시에 선포하는데, 목자-왕 전승이 그 틀로 사용된다(34-37장). 여기서 다윗의 등장(다윗 언약)과 화평의 언약이 선포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뒤이어 에스겔은 회복의 정점으로 성전 재건을 말한다.

포로 귀환 이후 스가랴는 성전 재건을 독려했다. 몇몇 학자는 스가랴가 에스겔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그 배경에는 스가랴서 1-14장 전체를 관철하는 '성전 재건'이란 메시지가 에스겔 40-48장을 계승했다는 인식에 있다. 장르로 스가랴서를 크게 1-8장과 9-14장으로 나누지만, 전체 흐름이 '성전 재건'으로 일관되어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스가랴의 목자-왕 전승 역시 주목할 만하다. 묵시문학으로 분류되는 스가랴서 9-14장은 '심판'과 '회복'이란 주제를 목자-왕 전승으로 풀어간다. 또한, 다윗 언약이 기반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구약은 여러 장르로 구성되어 있다. 장르에 따라 서술 방식이 다르고, 저자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구약 저자가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과 미래를 전망하는 토대는 동일하다. 구약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구심점에 두고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최상의 권위를 갖게 된 사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출애굽'은 하나님의 실존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각인시킨 사건으로, 모세의 출현 이후 요한계시록까지 반복되는 주제 중 하나이다.

역사서에서 이스라엘 왕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이었고, 그 비교 대상은 다윗이었다. 통일 이스라엘의 수립과 분열 왕국의 멸망을 토대로 다윗 언약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바빌론 유배 후 귀환을 경험하면서 다윗 왕조의 부활(혹은 새로운 왕조의 출현)을 꿈꾸게 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예언서는 하나님의 계시와 수령자인 예언자를 분석해야 하는데, 앞서 언급한 사례를 통해 역사의 전진 가운데도 예언이 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정 언약과 전승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예언자는 언약과 전승 등 다양한 사료를 알았고, 활동 당시 상황을 몸소 경험했으며, 예언을 토대로 미래의 양상을 추측할 수 있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그대로 전달하려고 힘쓰면서, 동시에 메시지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언자는 언제나 소수이었고 청중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때론 예언자 스스로 내적 갈등을 극복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역사에서 수많은 예언이 선포되었고, 그중 몇몇 예언은 실현되었기에,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시가 자신에게 주어졌기에 누구보다 먼저 예언자 내면에 예언을 향한 믿음이 형성되었다. 예언자에게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긴장감이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리라는 믿음이 허물어진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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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양면성

성찰 2020. 4. 8. 01:35

수많은 학자들이 구약은 신명기 사관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나는 구약의 밑바탕은 언약이며, 더 나아가 신약까지 아우르는 거대 담론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기술된 가장 최신의 책은 토마스 R. 슈라이너의 『언약으로 성경 읽기』(기독교문서선교회)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언약을 다룰 때 유의해야 할 것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그것이 항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약속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약은 율법, 신약은 은혜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있지만, 구약에 이미 조건적인 은혜와 무조건적인 은혜라는 개념이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 가령 존 D. 레벤슨은 『시내산과 시온』(대한기독교서회)에서 '시내산 언약'은 조건적인 은혜, '다윗 언약'은 무조건적인 은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규정한다. 그의 주장이 옳다면, 늦어도 다윗 왕정 시대에 무조건적인 은혜라는 개념이 있었다.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에 율법과 은혜라는 모형론을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주장은 신약 저자들이 오랫동안 행위와 구원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노력했듯이, 그에 앞서 구약 저자들이 언약이란 개념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순종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구약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무조건적인 은혜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궁극적인 승리라는 확신을 주는 동시에 조건적인 은혜는 죄를 탐하는 본성을 향한 씨름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순종이라는 권면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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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 관심사라서 유독 눈에 잘 들어오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 학계에 그런 흐름이 있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최근 몇몇 학자들을 중심으로 '언약'이란 개념이 더 자주 다루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사실 기독교 신학에서 '언약'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 역사적으로 항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는 했다.

며칠 전 토마스 R. 슈라이너의 『언약으로 성경 읽기』(기독교문서선교회)가 번역되었는데, 독서 중 떠오른 생각을 글로 정리하였다.

이 책은 서론, 제1장 창조 언약, 제2장 노아 언약, 제3장 아브라함 언약, 제4장 이스라엘과의 언약, 제5장 다윗 언약, 제6장 새 언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론에서 언약의 개념을 다루는데, 고대 근동 문화에서 왕의 하사 언약, 종주-봉신 조약, 혼인과 비교하여 성경적 언약 개념을 정의한다. 하지만 고대 근동과 이스라엘 사이의 차이점, 특히 이스라엘 언약사의 독특성을 강조하지 못했다는 인상이 남는다. 이 부분은 존 D. 레벤슨의 『시내산과 시온』(대한기독교서회)에서 잘 다루고 있다.

1장에서는 창조 언약이란 제목으로 아담과 하와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다룬다. 나 역시 창세기 1-3장이 창조 언약의 근간이라고 보지만, 몇 가지 동의할 수 없는 진술들이 펼쳐진다. 여기에서는 세 가지를 예로 들겠다.

사례1. 아담을 '하나님의 아들'로 정의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로 연결 지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사례2. 아담과 하와를 제사장-왕으로서 에덴동산을 통치할 책임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주장은 뒤이어 진술한 제사장-왕으로서 예수와 연결 지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사례3. 에덴동산이 성막을 거쳐 성전으로 바뀌면서 신학적 발전이 일어나는데, 그 반대로 성막 시대에 시작되고 성전 시대에 절정을 이룬 제사장의 역할을 에덴동산에 살았던 아담과 하와에게 적용한다.

저자는 아담과 예수 사이에 모형론적 해석을 적용한다. 이 부분은 예수를 제사장-왕으로 묘사하는 <히브리서>의 영향으로 보인다(특히, 156-161쪽에서 그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참고로 저자는 히브리서 주석을 쓴 적이 있다(역서 제목은 『토머스 슈라이너 히브리서 주석』, 장호준 역, 복있는사람). 나는 이러한 시도가 시대착오적 오류(anachronism)로 보인다. 

5장에서는 다윗 언약을 다룬다. 저자는 예레미야 23장, 에스겔 34, 37장, 스가랴 12장(130-132쪽)을 언급한다. 이 본문은 다윗 언약에서 아주 중요한 본문이 맞다. 하지만 이 세 본문이 모두 목자-왕 전승과 다윗 언약이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래서 신약에서의 다윗 언약의 성취라는 소제목 부분에서 요한복음 10장을 언급하지 못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참조 133쪽).

제2성전기문헌에서 다윗 혈통, 다윗 언약을 말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중요하다. 

6장에서는 새 언약을 다룬다. 저자는 새 언약이 새로운 다윗의 도래와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하는데, 특히 예레미야 23장과 에스겔 37장에 관한 언급은 매우 중요하다(164-168쪽). 뒤이어 새 언약과 창조 언약을 연결하며 예레미야 23장, 에스겔 34, 37장을 언급하는 부분도 매우 중요하다(189-191쪽). 앞서 지적했듯이, 이 본문은 모두 목자-왕 전승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데, 저자는 단 한 번도 이러한 지적을 하지 않는다.

저자는 새 언약을 여섯 가지 주제로 정리하지만, 그에 앞서 새 언약의 출현 배경과 고유한 특징에 관한 연구는 미흡해 보인다. 더 나아가 새 언약과 신약에서의 성취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개별적으로 다루었으면 어떠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유독 집중력이 떨어졌다.

언약이 내 연구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보니 신랄한 비판으로 남을 수 있지만, 애초에 대중을 위한 개론서로 기획되었다면 상당히 완성도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언약으로 성경 읽기
국내도서
저자 : 토마스 R.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 / 임요한역
출판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20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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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의 사례?]
후대에 정립된 개념을 선대에 적용할 수는 있다. 대체로 특정 개념이 탄생할 당시에는 핵심 뼈대를 가질 뿐 구별되는 이름이나 명확히 규정된 정의를 갖지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확장된 개념을 가지고 선례를 규정짓는 행위는 위험하다. 이런 실수를 학계에서는 '시대착오'(anachronism)라고 규정한다.

좀더 들여봐야겠지만, 시대착오의 사례가 될 수 있어 보이는 문장을 간략하게 남겨본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종과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을 통치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그들은 제사장-왕의 역할을 해야 했다는 증거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왕과 여왕으로서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중재해야 했다. 


(중략) 


이 모든 증거는 아담과 하와가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의존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동산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고,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중재하면서, 에덴동산에서 제사장-왕이었다는 개념을 뒷받침한다. 


출처: 토마스 R. 슈라이너, 언약으로 성경 읽기, 40-42.


하나님의 임재가 에덴동산이 성막을 거쳐 성전으로 바뀌면서 신학적 발전을 했다고 해서, 성막 시대에 시작되고 성전 시대에  절정을 이룬 제사장의 역할을 에덴동산에 살았던 아담과 하와에서 적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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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과 언약으로 읽는 그리스도의 구원』 (우병훈, SFC)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불현듯 '나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구원을 얻는 자들에 속하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때가 있다. 죄책감을 느꼈거나 자신의 믿음 없음을 발견했을 때 그렇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자들을 예비하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그렇게 교회에서 가르침을 받으므로,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해보게 되는 질문이다.

이러한 탐구는 자연스럽게 예정론으로 이어지고, 그에 대한 답변은 늘상 자신이 소속한 교회의 교단에 따라 이중예정이나 예지예정 둘 중 하나로 결론짓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어느 정도의 신학적 훈련이 되어 있을 때나 가능한 거고, 대개의 경우는  낙심하지 말고 더욱더 굳세게 신앙생활하라고 권면을 받는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는 예정론에 앞서 1장에서 구원론과 기독론에 대해서 다루면서, 십자가에 매달리심으로 구원사역을 감당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모한다. 2장에서는 예정과 언약의 관계를 살피면서, 오랫동안 오해되어 왔던 구원에서의 언약의 위치를 바로 잡아준다. 최근 들어 언약신학의 비중이 커지면서 예정론과 상반되는 이론인듯 오해되어 온 부분을 지적하고 둘 사이의 관계를 바로잡아 준다. 3장에서는 언약신학을 중심으로 예정을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칼빈과 바빙크의 저술을 중심으로 예정과 언약의 상호관계를 간결하게 다루고 있다.

지금껏 예정론과 언약신학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는 저마다 심도깊게 다뤄져 왔는데, 본서에서 이 두 신학을 연결하여 구원론을 다룬점은 실로 기여하는 바가 크다. 구원론, 예정론, 언약신학에 관심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예정과 언약으로 읽는 그리스도의 구원
국내도서
저자 : 우병훈
출판 : SFC(학생신앙운동) 2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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