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Verses 1–8 are a microcosm of chapters 41—48, with their use of the image of the highway and new exodus; whereas vv. 9–11 correspond to chapters 49:14ff., with the themes of the return of Yahweh as ruler in Zion, the voice of the messengers, and the victory of Yahweh’s arm.
- Childs, Isaiah, 302.

"아름다운 소식"이란 문구로 시작하는 40:9-11은 이사야의 이스라엘 회복 선포의 절정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를 양 떼를 돌보는 목자로 비유한다. 또한 목자의 보호는 49:14 이후에서 야웨의 귀환으로 선포된다.

이 같은 구조는 스가랴 9-14에도 나타난다. 9-13장이 악한 목자를 향한 심판과 선한 목자의 등장을 그린다면, 14장은 야웨께서 천하의 왕으로 등극한다고 선언한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목자와 왕 심상으로 묘사하는 방식은 오랜 세월 동안 향유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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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다윗 왕권 사상을 옹호하는 선지자이다. 그는 다윗 왕권의 정통성을 지지하는 동시에 후대에 나타날 통치자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37:35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그에 반해 이스라엘을 심판할 고레스의 등장에 관한 예언은 상당히 이색적이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왕/지도자에게 사용했던 '목자'와 '종'이란 칭호를 이방 왕 고레스에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이런 사례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이 정당하며, 그 수단으로 고레스가 쓰임 받았다는 깨우침을 통해서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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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에서 목자-양 은유는 총 다섯 번 사용되었다 (5:17; 13:14; 38:12; 40:11; 44:28).

5:17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
13:14 그들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 같이 각기 자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각기 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나
38:12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 같이 나를 떠나 옮겨졌고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 같이 내가 내 생명을 말았도다 주께서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40: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이사야의 용례는 네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목양의 상태에 따라 다른 상황에 놓인 양 떼의 상황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를 그린다 (5:17; 13:14). 두 번째는 목자의 장막 이동을 통해 하나님의 거처, 즉 성전 파괴를 예고하고 있다 (38:12).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목자로서 이스라엘을 돌보신다는 약속이다 (40:11). 네 번째는 이례적인 이방 목자의 등장을 다루고 있다 (44:28).

이 같은 용례는 이사야가 목자를 하나님과 왕/지도자를 지칭하는 데 사용하며, 양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데 활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는 목자-양 은유 혹은 목자-왕 전승의 전형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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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스는 하나님으로부터 "내 목자"(44:28), "야웨의 기름부음 받은 자"(45:1)로 일컬어진다. 예언에 의하면 장차 고레스는 유대 포로 공동체가 다윗 계열의 후손이 성취할 업적으로 믿었던 그 일들을 성취하게 된다. 이러한 예언은 포로민들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저항에 부딪힌다.

 

여기서 우리는 고레스는 전쟁을 통한 새로운 질서 확립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라는 일시적인 임무를 맡은 하나님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고레스의 등장은 다윗 계통의 왕에 대한 기대를 꺾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다윗 후손 중에 왕을 일으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해서라면 이방 왕 고레스에게 다윗과 같은 임무를 맡기실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이든 사용하실 수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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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근, "페르시아 시대 이집트의 우자호레스네트와 유다의 에스라와 느헤미야," 구약논단 20/4 (2014): 311-335.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1942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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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더에서 고레스가 마르둑을 언급하는 내용 중 일부이다.

Marduk, king of the gods [x2]
Marduk, the great lord [x9]
Marduk, my lord [x3]

고레스가 진심으로 마르둑 신앙을 갖고 있었느냐는 별개로, 그가 자신의 업적을 마르둑과 연결하고 있고, 그가 마르둑을 자신의 신이자 국가의 신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반면 이 실린더에는 야웨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고레스는 이스라엘의 신 야웨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이사야 본문으로 돌아가보자.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사 45:3)

한글 번역은 마치 고레스가 나중에 자신의 업적이 야웨로부터 왔다고 알게 될거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NIV를 보면 이런 짐작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I will give you the treasures of darkness, riches stored in secret places, so that you may know that I am the LORD, the God of Israel, who summons you by name. (NIV)

will과 may의 용법을 고려한다면, 고레스의 업적은 하나님의 의지로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반면 고레스가 하나님을 알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신앙과 상관없이 자신의 뜻을 실현하신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Cylinder at the British Museum
https://www.britishmuseum.org/collection/object/W_1880-0617-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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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pting the Cosmological Tradition in Isaiah 40-45’, Scandinavian Journal of the Old Testament 25 (2011): 260-275
https://www.academia.edu/1939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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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the Messiah? The Historical Background to Isaiah 45:1.
https://www.academia.edu/2450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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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5: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16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17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19 나는 감추어진 곳과 캄캄한 땅에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혼돈 중에서 찾으라고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한 것을 알리느니라
20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함께 가까이 나아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구원하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니라
 
21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2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
24 내게 대한 어떤 자의 말에 공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에게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그러나
25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

예레미야의 예언(대표적으로, 렘 25:9)에도 불구하고, 당대 이사야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포로민들은 불신앙으로 가득하다. 오랫 동안 견지해온 새로운 다윗을 통한 회복이 현실적 가능성은 전혀 없다. 현대 사회에서도 개신교인들이 신앙을 저버리는 이유 중 하나가 믿음에 대한 배신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 믿음에 대한 정당성은 논외로 한다. 욥이 그랬듯이 고통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현존을 의심케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다(사 45:15).

오히려 하나님은 이방 왕 고레스를 통해서 역사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자신의 계획은 창조주로서 합당하다고 주장하신다(9-13절). 더 나아가 우상숭배를 비난하신다(16절). 비난의 근거는 다시 창조주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18절). 또한 나무 우상과 달리 여호와는 옛부터 듣게 하시고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하신다(19-21절). 예언과 성취. 이것이 바로 여호와가 창조주이신 근거이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패배는 창조주 신앙을 저버려야 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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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5: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10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3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여호와는 고레스를 "내 목자"(44:28), "그의 기름부음 받은"(45:1)라고 부르며, 그를 통해 열국을 정복하겠다고 말씀하신다(45:2-3). 이러한 예언은 청중의 저항에 부딪힌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새로운 다윗이 아닌 이방 왕을 통한 회복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냉담함에 여호와는 창조주로서 자신의 위치를 강조하신다. 예레미야를 통해 널리 알려진 토기장이 비유(렘 18-19)가 여기에서 사용된다(45:9). 고대 근동에서 패전국의 신이 자신을 창조주라 선포하는 것 자체가 청중들로부터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하지만 여호와는 창조주로서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며 다시 한번 고레스를 공의로 일으켰다고 말씀하신다(45:13). 공의로 세우진 고레스는 모든 길을 곧게 하며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며 이스라엘 포로민들을 해방시킨다(45:13).

 

성경에서 청중의 저항에 부딪혔을 때 여호와의 반응은 창조주로서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반응으로 일관된다. 이런 공식이 고레스를 향한 예언에서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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