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시작에 앞서 내 관심사는 목장-양 비유이며, 플라톤의 『정치가』에서는 신적 목자(divine shepherd)와 관련된 부분에 해당하므로,  이 글에서 다룰 저작의 저자가 주목한 정치가의 역할은 최소한으로 다룬다.

Jeffrey J. Fisher는 자신의 글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Jeffrey J. Fisher, “Statecraft and Self-Government: On the Task of the Statesman in Plato’s Statesman,” Ergo: An Open Access Journal of Philosophy 9/27 (2022): 702–726를 보라.

과거 크로노스의 시대는 신적 목자의 시대였으며,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목자를 따르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우스의 시대이며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급자족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정치가를 신적 목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정치가들이 실패하고 있다. 인간은 무기력한 양이 아니라 이성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크로노스 신화의 결론은 우리가 정치 지도자들을 마치 목자처럼 대하는 것이 실수라고 폭로한다. 정치가를 목자로 간주하는 사고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 사고였으며, 특히 호메로스의 저작에서 "shepherd of the people"이란 문구가 그 예이다. 신화를 우주를 모방하므로, 오늘 우리는 지금의 우주를 모방해야 한다. 즉, 크로노스 신화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이어 정치가는 법 제정을 통해 시민이 하나가 되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나는 그의 논리에 상당 부분 동의하지만, 최소 두 가지는 동의할 수 없다. 첫 번째는 과연 플라톤이 목자 모형의 무용론을 주장했는가이고, 두 번째는 폭군에 대한 간과이다.

1. 플라톤이 목자 모형의 무용론을 주장했는가?
앞으로 내가 몇 번 더 플라톤의 『정치가』를 정독해야겠으나, 현 내 이해에 의하면 플라톤은 목자 모형의 무용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목자 모형의 한계를 주장하며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행인은 목자의 역할에서 '먹임'(feeding)이 아니라 '돌봄'(care)에 주목해야 하며, 따라서 신적 목자가 아닌 인간 돌보미(human caretatker)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크로노스 신화에서 드러나듯이 플라톤은 신적 목자를 긍정한다. 다만 시대적 변화에 따라 신적 목자의 한계를 이상적인 정치가로 보완해야 할 뿐이다.

2. 두 번째는 폭군에 대한 간과 
저자는 정치의 실패가 시민이 정치가를 신적 목자로 간주하는 현상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저자는 폭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정치가의 권력 남용이나 통치자의 한계를 지적하지만, 플라톤이 언급한 폭군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저자는 결론부에서 페리클레스(Pericles)를 언급해 『정치가』 이외의 외부 사료를 통해 실사례를 제공한다. 내가 볼 때, 폭군은 목자 모형을 넘어서 이상적인 정치가를 논의하는 주요한 동기이다. 폭군에 대한 논의 없이는 플라톤의 논의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 크로노스와 제우스의 대비와 목자와 폭군의 대비는 플라톤의 논리 전개에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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