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출처 : 조선일보 "신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지 모른다"


인생에서 끔찍한 게 하나 있다면 죽음이다. 즐거운 하루 하루가 실은 피할 길 없는 총살대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다. 때문에 우리는 오랫동안 종교가 주는 위안, 자애로운 하느님과 영생(永生)에 마음이 기울어 왔다.

하지만 종교의 핵심, 요컨대 신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은 영원히 살리라는 믿음에는 이렇다 할 과학적 근거가 없다. 인생의 위기에 처하면,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잃고 이렇게 묻는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해, 어째서 이토록 아무 근거가 없단 말인가?” 그들은 자신의 신앙이 가령 아이들이 산타 클로스를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들이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아는 데’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신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었던 순간은 몇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나마 따져보면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모순에 찬 타협에 이른다. 일주일 중 엿새 동안 완벽하게 분별력 있던 사람들이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처녀가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죽었다 살아났으며, 어느 날엔가 똑같은 육체로 부활하리라고 경배 드린다.

이처럼 도저히 논리적으로 옹호하기 어려운 믿음이 오랫동안 살인을 부추겨 왔다. 젊은 무슬림이 “자살 테러를 해서 최대한 많이 인명을 살상하면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믿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하여 서구 지식인 사회에서는, ‘신(新) 무신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처럼 어처구니 없고 치명적인 신앙이 과연 시대의 흐름에 맞는지 따져 묻기 시작했다.

신간 ‘신(神)이 있다는 착각(The God Delusion)’을 펴내 종교를 맹공격한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대표 선수다. 도킨스가 이 문제를 처음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 ‘눈먼 시계공’, ‘조상 이야기’ 같은 전작을 통해 누구보다 명료하고 적극적으로 과학을 옹호해왔다.

도킨스는 당신을 자극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얘기를 맨 처음 들은 사람이 보인 반응은 자기는 이 책은 물론 이와 비슷한 그 어떤 책도 읽을 생각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책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불쑥 내게 논쟁을 걸기까지 했다. 어쨌든 나는 종교가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신(神)을 다시 생각해 볼 계기로 삼도록 추천한다.

같은 또래 영국 중산층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도킨스는 기독교에 친숙하되, 신학을 배운 적은 없고, 무엇보다 영적인 체험이 전혀 없다. 종교의 본성과 “신을 믿는다”고 고백한 과학자들에 대한 그의 단순화가 또 다른 종류의 옹졸한 편견(bigotry)으로 보일 수 있다. 책의 상당 부분이 무신론을 옹호한 도킨스 자신의 경험담이라는 것도 짜증스럽다. “이 책에서 신(神) 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도킨스 자신”이라고 비꼬는 서평도 있을 정도다. 이런 비판은 그러나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다. 도킨스는 신의 존재 혹은 부재가 논증의 대상이자, 과학적인 가설이라고 생각한다. 주류 종교에서 주장하는 ‘전지전능한 신’ 개념은 착각(delusion)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도킨스는 주장한다.

그는 이어 수많은 논제를 체계적으로 논증해간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없이는 도덕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프로그램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종교가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신 무신론자들은 빈자와 약자를 돕는데 가상의 신보다 더 나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신을 믿지 않고도 우리는 열정적이고 영적일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째서 종교를 개인의 선택에 맡겨두지 않는가? 그건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게 도킨스의 주장이다. ‘종교가 뭐가 잘못됐나?’라는 장(章)에서 도킨스는 우리가 왜 종교에 유의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악행의 예를 찾느라 굳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 자살 테러범, 탈레반, 낙태 시술을 하는 산부인과에 폭탄을 던진 미국 기독교도들 등 현대 사회의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을 도킨스는 줄줄이 예로 든다.

언론과 비평가들은 이런 악행의 원인을 사회경제학적 맥락에서, 혹은 정책적 실패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9·11 테러의 원인을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찾는 식이다. 도킨스는 그러나 이런 악행에는 보다 명쾌한 배후가 있다고 본다. 종교가 바로 그것이다. 극단주의자들은 문자 그대로 믿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은 악당들과의 전쟁이 아니다. 도킨스는 이렇게 썼다. “자살테러범들은 악행을 저지르려는 게 아니다. 객관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종교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했을지 몰라도, 자기네 나름대로는 자신이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정의로운 행동을 한다고 믿는 것이다. 낙태 시술 하는 산부인과 의사를 살해한 기독교도들과 마찬가지로.” 도킨스는 따라서 우리가 종교적 극단주의가 아니라, 종교 그 자체를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킨스는 선량하고, 점잖고, 법을 지키는 종교적 온건파들도 비판한다. “온건하고 중도적인 종교조차 장차 극단주의가 자라날 토양을 만든다”고 도킨스는 썼다. 이 책은 당신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도 독자는 도킨스가 진실을 찾는 사람이라는 것만은 인정할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고, 나아가 그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검증 받는 것마저 완강하게 거부하는 인간의 행태에 대해 도킨스가 마음 깊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만약 그가 주장하는 대로, 우리가 듣고 배운 바와 같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치자. 신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지 모른다. 고대의 예언자들이 제대로 설명할 능력이 없었을 뿐인지 모른다. 다시 말해, 신은 아직 설명되지 않은 미지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게 아닐까? 누가 알겠는가? 도킨스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그는 신이 없는 세상에서 더 행복해하고 있으며, 우리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이기적 유전자’를 쓴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이며 옥스포드대학 교수다. ‘신이 있다는 착각(The God Delusion)’은 작년 9월 처음 나온 뒤 9개월 째 영미권 주요 베스트셀러 리스트의 윗순위에 올라있다.


그렇다면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E. McGrath)의 강의도 들어보라.
1.
리처드 도킨스와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과학과 신앙에 대한 토론을 담은 비디오[각주:1]  
2. "Dawkins God: Genes, Memes, and the Meaning of Life."[각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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