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 이 글은 내 구상을 정리하는 목적을 위해 작성되었으므로 자세한 인용은 생략한다.

요한복음에서 "헬레니즘과 유대주의"과 "반유대주의와 유대주의"는 주요 논쟁에 속한다. 

1. 헬레니즘 논쟁
요한복음이 헬레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주장의 근거로는 로고스, 이원론(생명과 죽음, 어둠과 빛 등), 시간 등이 있다.

하지만 로고스는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그 기원으로 설정할 수 있고, 지혜문헌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원론은 지혜 문헌이나 기타 유대 문헌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고, 이러한 대조는 인류 보편적 사고이므로 헬레니즘에 종속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야기의 전개가 로마식 시간을 사용한다는 주장은 요한이 강조하는 "Jesus' hour"로 반박이 된다. 대표적인 예는, 가나 혼례식에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2:4)라는 말씀에서 나타난다. 이후 예수께서는 이적을 행하시는데 주저하지 않으신다. 또 다른 예로는,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박해로 인한 살해 시도에는 물러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죽음의 시기를 조절하셨다. 내 기준에서는 절기가 요한복음의 유대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2. 반유대주의 논쟁
요한복음이 반유대주의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모세의 율법과 대립되는 양상, 회당 축출(9:22) 등으로 인해 고립된 기독교 공동체의 상황을 상정한다. 

하지만 예수는 모세의 율법과 자신의 가르침이 어긋나지 않다고 가르치신다. 대표적으로 5:45-46이 그 근거가 된다.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회당 축출의 역사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예수의 사후와 예루살렘 성전 파괴 사이 30년 정도 기독교 공동체를 형성한 상황에서, 회당이 큰 의미를 가질지 의문이다.


3. 요한의 유대주의적 사고
요한복음이 유대주의를 긍정적으로 사용한다는 단서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유대 전통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변형적으로 사용하여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 한다는 특수성을 유념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Davidic Messianism)과 유대 절기를 예로 다루어본다.

내가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이라고 풀어 쓰는 Davidic Messianism은 분열 왕국의 멸망 이후 예수의 지상 생애 당시까지 이어졌다. 요한복음에는 10:1-21과 12:12-16에서 그 사상이 나타난다.

10:1-21은 흔히 '선한 목자 담론'로 불리며, '새로운 다윗과 같은 왕'의 등장을 고대하는 목자-왕 전승을 사용했다. 다만 요한은 이 전통적인 목자-양 은유를 사용하여 대적을 물리치고 새로운 왕국을 세울 왕이 등장한다고 기술하지 않고, 예수의 가르침을 토대로 목자의 희생을 설파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12:12-16도 동시대 유대인들이 Davidic Messianism를 갈망했다는 단서가 된다.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유대인들은 다윗의 후손 중에, 아니면 다윗과 같은 지도자가 등장하여 열국을 제압하고 왕으로 추대되어 예루살렘에 입성한다고 믿었다(12-15절). 예수의 제자들도 그렇게 믿었었으나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제자들은 이 예언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다(16절).

요한복음의 저자는 유대인들이 갈망했던 Davidic Messianism를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절기는 또다른 유대주의의 증거이다. 요한의 예수는 절기에 맞추어 움직이신다. 물론 예수의 가르침과 행위는 유대인들로부터 반박을 일으키지만, 결과적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확고한 두 기둥을 위한 의도적인 장치로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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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문화와 유대교 전통의 충돌 / 박찬웅 / Canon & Culture 3권2호 2009-가을

http://www.itheology.kr/canon/cc_read.php?&mode=list2&mode=view&idx=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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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신앙과 헬라 문화, 그 만남과 갈등 -희생 제물의 경우 / 왕대일 / Canon & Culture 3권 1호 2009-봄

http://www.itheology.kr/canon/cc_read.php?&mode=list2&mode=view&idx=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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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의 유대이즘과 헬레니즘 / 송창현 / Canon & Culture 3권 1호 2009-봄

http://www.itheology.kr/canon/cc_read.php?menu=&mode=list2&mode=view&idx=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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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전 시대(Templeless age)는 질 미들마스(Jill Middlemas) 박사가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 용어의 한계를 알지만, 바빌로니아 침략으로 인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부터 느헤미야의 성전 재건 이전까지를 지칭하는 무성전 시대와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로 추정되는 요한복음 저작 시기 사이의 유사한 환경을 강조하려고 한다.

요한복음 저작 시기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 AD 70년 이후로 가정되고 있다. 우리는 바울의 초기 서신을 통해 신앙 공동체에 공통된 신앙 고백이 있었다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공관복음은 예수의 생애와 그의 사역에 관한 권위 있는 기록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복음의 저자는 또 다른 복음서를 기록했는데, 그 동기를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간주하는 게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여기서 나는 수많은 학자가 언급하는 출교 결의(9:22)보다 성전 파괴가 더 강력한 집필 동기로 작용했다고 가정한다. 결의문의 효력은 검증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이 실제로 심각했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그런데도 요한복음의 진술은 독자가 더이상 회당에 출입할 수 없는 처지라고 믿도록 만든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반면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스라엘 역사상 충격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요한공동체에게, 혹은 요한복음이 암시하는 독자에게는 더이상 회당도 성전도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교회가 있다.

요한복음의 저술 동기가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관련 있다는 내적 단서로는 요한이 예수를 성전으로 묘사하는 데 힘을 쓴다는 점이다. 첫 번째, 요한은 성전 청결 사건(2:12―22)을 예수의 공생애 초기로 보도록 배치했다. 이러한 의도는 성전 파괴를 경험한 세대에게, 그리고 더이상 성전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를 향한 함의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출교 결의로 인해 그들은 회당에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성전 청결 사건 이후에도 예수를 성전과 연결 짓는 본문이 여럿 있다. 저자의 의도는 명확하다. "예수가 성전이시다!"

유대인은 이미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앞서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한 솔로몬 성전 파괴를 경험한 적이 있다. 바빌로니아 포로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치욕의 세월 동안 이주민들은 이스라엘 멸망과 회복을 예고한 선지자들의 예언을 기억했다. 포로 귀환 이후 최대 관심사는 성전 재건에 집중되었고, 율법 준수 운동이 강조했다. 이스라엘 왕국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까지 귀환 공동체는 혁명적인 신학적 진보를 이루어냈다.

이와 유사하게, 요한은 2차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새로운 복음서를 써야 하는 의무감이 공관복음서와 다른 패러다임을 이끌어 냈다고 할 수 있다(=paradigm shift). 요한복음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가 많이 있지만, 최근 경향은 요한이 역사적 자료에 충실했다는 견해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요한이 처한 시대적 상황은 그가 역사적 사실보다는 신학적 의미에 중점을 더 주도록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요한이 역사적 자료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기반하면서 신학적 의미를 더 강조했다는 의미로, 그 과정에서 사실의 변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더이상 성전 재건은 의미가 없다. 교회 공동체로 충분하다. 더이상 율법 준수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복음으로 충분하다. 이렇듯 회당 출교 결의와 성전 파괴라는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요한은 기존 관습을 허물고 교회(에클레시아) 중심의 공동체를 위한 복음서를 기록해야 했다.

요한의 관점에서 현 상황에 가장 큰 장애물은 유대인의 성전 중심의 사고와 율법주의였다고 가정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요한복음의 암묵적인 독자는 유대인 혹은 유대계 기독교인으로 가정한다. 요한복음의 암묵적인 독자가 이방인이라고 가정하기에는 유대적인 진술이 넘쳐난다.

요한은 유대계 기독교인과 전도 대상인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술하면서, 성전 중심의 사고를 탈피하는 탈 성전주의(≠반 성전주의)와 유대주의와 결별하는 탈 유대주의(≠반 유대주의)를 강조하고자 했다.

1. 탈 성전주의
요한복음에서 성전 청결 사건과 예수의 부활 예고(2:13―22)는 공생애 초창기로 추정하도록 의도되어 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더이상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신다(4:20―24). 또한, 요한은 종말론적 성전을 묘사한 스가랴 14장의 예언이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다고 묘사할 뿐 아니라 성령에 대해 언급한다(7:37―39). 이외에도 여러 본문이 있음.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성전 재건과 유대주의로의 회귀를 염두에 두고, 요한이 탈 성전주의를 의도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본다.

2. 탈 유대주의
요한복음은 유대주의에 적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요한은 유대인의 전통을 잘 활용한다. 일례로, 초반에 자주 등장하는 모세에 대한 언급은 의도적이다. 유대인은 오랫동안 모세와 같은 선지자(the prophet like Moses)를 고대했다. 요한은 이러한 기대를 반영하여 예수를 메시아라고 선포하는데, 단순히 모세 기독론(Mosaic Christology)이 아니라 모세를 능가하는 예수(More than Moses)로 묘사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율법의 성취자이시다.

교회 공동체 내부에도 여전히 율법 준수를 강조하는 유대계 기독교인이 존재했을 텐데, 요한에게 율법주의는 교회 내부나 외부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절기의 기능
요한복음에서 절기의 역할은 아주 중요한데, 이를 간과한 해석이 너무나 많다. 내 박사 학위 논문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주제이다. 내가 볼 때 요한복음에서 절기의 기능은 매우 정교한데, 현재 가정하는 바로는 예수를 절기의 의미를 성취하신 분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탈 성전주의와 탈 유대주의를 아우르는 역할을 한다.

정리하자면,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가 야기한 교회 공동체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고, 대외적으로는 복음 전도 전략 차원에서 공관복음과 다른 관점의 복음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내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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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학계에서는 E. P. 샌더스의 영향인지, 역사적 예수 연구 영향인지, 바울의 새 관점 파급효과인지 모르겠지만, 유대주의를 율법적 공로주의로 단정 짓지 않고 다양한 노선이 존재했다는 전제하에 연구를 진행하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요한복음에 국한하면, 이 복음서는 오랫동안 헬레니즘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전제로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유대주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 가운데, 헬레니즘의 영향보다 유대주의의 영향이 더 크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근래에는 요한복음을 유대주의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사설이 길었는데, 나 자신부터가 요한복음을 읽으면 읽을수록 헬레니즘의 그늘보다는 유대주의의 웅장한 배경이 보인다. 요한복음의 사상적 모태가 헬레니즘이냐 유대주의냐를 밝혀야 하는 이유는 청중을 가늠하는 주요 척도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한복음이 유대주의의 웅장한 배경 아래 있다고 생각하므로, 청중 역시 유대인이나 유대계 기독교인으로 상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모세 기독론과 다윗 기독론은 요한복음의 청중이 이스라엘 역사에 해박하다는 증거일 수 있다. 며칠 전에 작성한 "요한복음에 나타난 모세 기독론과 다윗 기록론"에서 더 나아가, 나는 요한의 모세 기독론과 다윗 기독론에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세 기독론은 교회 내부에서 모세의 율법을 강조하는 유대계 기독교인들을 향해 예수가 모세보다 위대한 메시아(the better than Moses Christology)로 가르치고, 다윗 기독론에서는 다윗 계통의 구원자 사상(Davidic Messianism)을 추종하는 유대인이나 유대계 기독교인이 많았을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역으로 다윗을 강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요한의 다윗 기독론에 대한 태도는 이스라엘 회복을 열망했던 열광주의자로 인해 성전 파괴가 이루어진 후 분위기를 반영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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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aism Through Its Scriptures

https://www.class-central.com/mooc/5820/edx-judaism-through-its-scrip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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