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이번 봄 학기에는 지난 가을 학기의 주제였던 "Readings in Septuagint and Sacrifice"를 이어서 세미나가 진행된다. 지난 학기에는 칠십인역(Septuagint)에 집중했다면, 이번 학기에는 희생제사(Sacrifice)에 방점이 맞춰져 있다. 레위기 본문을 마소라 본문(MT)와 칠십인역(LXX)와 비교하는 시간은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

봄 학기 첫 모임에서 다룰 책은 Jonathan Klawans의 『Impurity and Sin in Ancient Judaism』이다. 희생제사와 속죄에 대해 다루려면, 그 전에 부정(impurity)과 죄(sin)라는 개념이 정립되어 있어야 하므로, 이 책은 일련의 연속성을 위해 제일 먼저 다룰 가치가 있다. 

이 책에서는 레위기 15:19-24와 18:24-30에 대한 의문점들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인의 월경(15:19-24)과 성적 타락(18:24-30)을 두고 상이한 해석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두 주제로부터 제의적 부정(ritual impurity)와 도덕적 부정(moral impurity)로 범주를 나누고, 각 범주에 대한 해석 방법은 비유(metaphor)와 문자주의(literalism)를 두고 적합성을 다룬다. 또한, 제의적 부정은 범위와 해결방법이 명확한 편이라 도덕적 부정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연구 본문은 고대 유대문헌들이다.

희생제사와 속죄 등에 관심이 있다면, 선행적으로 읽어봐야 할 자료로 보인다.

[아마존 링크] Impurity and Sin in Ancient Judaism / Jonathan Klawans / Oxford University Press
https://www.amazon.com/dp/0195177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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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링과 죄

성찰 2015. 7. 1. 03:06

어제 난생 처음 스케일링을 했다. 6월말까지 의료보험으로 저렴하게 할 수 있다는 신문기사에 혹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간 치과라 엑스레이를 찍은 후 스케일링을 받기 시작했다. 눈은 가려졌고 벌린 입안으로 금속물질이 들어가 치석을 제거하는데 살짝 겁이 났다. (치과의 경험은 다들 똑같은 걸로 알고 있으니 부끄럽지 않다.) 스케일링이 원래 아픈건지 모르겠지만, 치아와 치아 사이를 계속 쑤시고 잇몸과 계속 부딪혀서 도중에 '그만할께요'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랫 쪽을 한 후 잠시 쉬어 가는데, 간호사 분이 좀 힘드셨는지 치석이 많다고, 양치질을 제대로 하고 있냐고 묻었다. 하루에 최소 두 번씩 꼬박꼬박하고 혀크리너로 설태제거까지 하고 있는데, 이런 질문은 좀 무례하게 느껴지지만, 오쭉 힘들면 이런 질문을 하다 싶었다. 스케일링을 마치고 의사의 진료를 통해서 충치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고, 결제할 때 5년만에 치과에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대체로 양치질을 제대로 안 한다는 위로(?)로 들었다.

우리는 자신이 나름 규범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런 생각에서 예외이지 않다. 법 없이 살 정도는 아니지만, 예의 바르게 모범적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그건 나의 기준이다. 혹은 타인의 기준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여전히 허물이 가득한 인간이다. 양치질을 하고 설태제거까지 해도 내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치석이 구석구석에 존재하듯이, 죄 역시 나도 모르게 나의 삶을 뒤덮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분이 아니시라 우릴 정결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는 죄까지 제거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내어드려야 한다. 마치 내 눈이 가리워져도 의사가 제대로 진료를 해줄 것을 믿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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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의 다짐을 들은 예수는 그에게 말씀하신다.[1]하지만 예수께서는 삭개오와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까지 염두에 두고 말씀하셨다.[2]삭개오가 사람들의 불평을 의식하고 있다면(7-8),[3]예수께서도 이들을 의식하고 계셨을 터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무리들의 반응(7)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4]예수께서는 삭개오의 집에 구원을 선포하시고, 그 이유가 삭개오 역시 아브라함의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신다.[5]누가복음에서 σωτηρία는 총 3번 사용되었으며(1:69, 71, 77), 이 구절들은 모두 예수와 세례 요한의 사역을 예고하는 사가랴의 예언과 관련이 있다.[6]사가랴의 예언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맹세에 따라 구원을 베푸신다(1:68-73).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한다(3:8). 그에게 회개는 신학이나 종교의식의 변화가 아닌 삶의 변화이다.[7]그래서 요한은 무엇을 해야 되는지 묻는 세리들에게 부과된 세금만 걷으라고 답한다(3:13).[8]결코 직업을 변경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9] 그렇다면 세리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공정한 세금 징수이다(3:12-13).[10] 따라서 삭개오의 회개에 대한 기록이 없어도, 그에 상응하는 신앙고백을 했다고 볼 수 있다(8절 주해).[11] 더 중요한 점은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죄와 회개를 연관 짓지만(5:32; 13:2-3; 15:7, 10; 17:3-4), 회개에 대한 언급이 없어도 죄를 용서하신다(5:20-24; 7:47-49).[12] 또한 누가복음은 세리의 반응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5:27-30; 7:29, 34; 15:1; 18:9-14).[13]실제로 세리들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했으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3:12). 그리고 결국에는 요한의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의를 드러냈다(7:29).[14]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한 세리 역시 의롭게 여겨졌다(8:14). 구원의 대상은 삭개오와 그의 집 전체를 포함하며, 이와 같은 사건은 사도행전에서도 나타난다(10:2; 11:14; 16:15, 31; 18:8).[15]


[1] Bock, Luke 9:51-24:53, 1522.

[2] Bock, Luke 9:51-24:53, 1522.

[3]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7.

[4] Robert C. Tannehill, Luke, Abingdon New Testament Commentaries (Nashville: Abingdon Press, 1996) 278.

[5] Evans, Luke, 280.

[6]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8.

[7] Evans, Luke, 48..

[8] Bock, Luke 1:1-9:50, 312.

[9] Bock, Luke 1:1-9:50, 312.

[10] Bock, Luke 1:1-9:50, 312; Double, The Paradox of Salvation, 116.

[11] Ravens, "Zacchaeus: The Final Part of a Lucan Triptych?," 23.

[12] Ravens, "Zacchaeus: The Final Part of a Lucan Triptych?," 23. 삭개오가 죄를 고백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무죄를 입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18:9-14)를 근거로 삭개오의 무죄를 주장하는 시도가 있다(Evans, Luke, 280).

[13] Bock, Luke 1:1-9:50, 310; Ravens, "Zacchaeus: The Final Part of a Lucan Triptych?," 22.

[14] Ravens, "Zacchaeus: The Final Part of a Lucan Triptych?," 22.

[15] Bock, Luke 9:51-24:53, 1522; Marshall, The Gospel of Luke, 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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