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를 적대했다. 그들은 예수께서 유대 전통을 어길 뿐 아니라 신성모독을 범했다고 판단한다. 반면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유대 메시아 사상이라는 렌즈를 통해 예수를 모세와 같은 기적의 선지자, 다윗과 같은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 등으로 믿기도 했다. 오늘날 사도로 불리는 예수의 제자들 역시 예수의 십자가 도상과 부활, 승천 이후에야 스승의 가르침을 깨달았다.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이 동시대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관례가 아니었고, 그들이 기대하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예수의 공생애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요한은 예수의 구속사를 설파하기 위해 유대 절기와 안식일와 같은 유대 규례와 전통을 사용했다. 유대인들의 선지식을 사용해 각각의 의미를 떠오르게 하고, 예수의 구속사를 통해 의미의 재부여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의 정체성을 규정해야 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은 흔히 '로고스 기독론'이라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예수의 선재성와 정체를 선포하며 시작한다. 예수의 구속사적 사역은 유대 관습에 익숙하지 않지만, 그의 사역의 핵심이기 때문에 세례 요한의 입을 빌어 그의 사역을 세상에 드러낸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유대 메시아 사상 가운데 메시아의 죽음에 관한 가르침은 전무하다. 그러나 예수의 사역이 그러했기 때문에 요한은 유대 절기 가운데 유월절을 밀착시킨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여섯 번의 절기 가운데 세 번이 유월절(2:13; 6:4; 11:55)이다. 나머지 세 번은 익명의 절기(5:1), 초막절 (7:2), 수전절 (10:22)이다.

요한은 유대 달력과 달리 자신의 의도대로 유월절을 세 번 배치하고 있으며, 특히 절기 시작은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가르침과 연결하고 있고, 세 번째 유월절은 수난 사화와 연결하고 있다.

'어린 양' (1:29)의 정체에 관해서는 유월절과 연결하는 게 가장 타당해 보인다. 여러 근거 중에서 19:31–36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 19: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유월절 규례와 관련된 구절들이 떠오르게 된다.

출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민 9:12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특히, 민 9:11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1 둘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

어쩌면 세례 요한이 선포한 '하나님의 어린 양'은 유월절 어린 양과 긴밀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물론 예수와 유월절 어린 양 사이에 존재하는 변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하나님의 어린 양' (1:29)과 이사야의 네 번째 노래에 등장하는 '고난받는 종'(52:13-53:12)을 연결하는 해석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선 나는 '하나님의 어린 양'과 '고난받는 종' 사이에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더라도, '고난받는 종'과 유월절 희생양과 연결짓는 해석에는 반대한다.

Paul M. Hoskins는 “Deliverance from Death by the True Passover Lamb: A Significant Aspect of the Fulfillment of the Passover in the Gospel of John”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1:29)과 유월절을 연결짓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요한복음에서 유월절과 초막절이 긴밀하게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이같은 접근은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과 유사하지만, 그는 유대 절기의 기능에 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유월절과 초막절이 긴말하게 연결되는 이유는 당연히 예수의 사역과 관련이 있다. 유대 전통에서 유월절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의 구별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11:5–7; 12:1–15). 초막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므로, 초막절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후대에 초막절은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을 기념하는 절기가 된다 (특히, 슥 14:16–21).

이러한 유대 전통이 예수에게 새로운 의미로 적용된다. 예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1:29). 이러한 선포에서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 양과 갖는 공통점과 차별점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된다. 요한은 유월절을 통해 예수의 대속 사역을 강조한다. 또한 초막절, 특히 스가랴 14장과 연결해 종말론적 회복을 선포한다. 유대 메시아 사상은 이스라엘의 영토 회복 이후 왕이 등장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 도상과 부활을 통해 세상 죄를 무르시고 인류에게 종말론적 회복을 가져오신다. 유대 전통에서 유월절과 초막절이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듯이 요한복음에서도 대속을 통해 두 절기가 연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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