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사무엘상 1장에서 한나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사사 시대에는 기혼 여성의 자율성이 상당히 보장되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한나는 자의로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 기도하며 서원했고, 사무엘을 낳은 후 매년제와 서원제에 참여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양육하였다. 젖을 뗀 후에는 사무엘을 엘리에게 의탁한다. 반면 엘가나의 매년제는 이스라엘 남성이 짊어진 의무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Mayer I. Gruber, The Woman of Israel by Grace Aguilar, Judaism in Context 15 (Piscataway, NJ: Gorgias, 2023), 438–40를 보라.

나는 매년제가 연례 순례 절기 중 하나로 간주하는 입장보다는 엘가나의 종교적 열심에 의한 가족 의례라는 해석을 지지한다. 사무엘상 1-2장은 매년제의 대규모 축제라는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엘가나 가족의 개인성을 강조한다. 엘가나의 종교적 열심은 그의 자발성에서 비롯되었고, 그의 가족을 향한 사랑도 그의 자발성에서 비롯되었다. 한나의 자율성에 대한 엘가나의 태도는 그의 포용력을 보여준다. 비록 한나에 대한 기울어진 애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해석자들이 지적하듯이, 사무엘상 1-3장은 엘가나 가족과 엘리 가족을 대조한다. 매년제는 엘가나와 그 가족의 종교적 열심을 보여주지만, 엘리의 자녀들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한다 (2:12-17). 사무엘은 자라면서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지만 (2:26), 엘리와 그의 두 자녀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다 (4장).

저자 혹은 편집자의 관심은 매년제를 통한 두 가족의 대조이다. 만약 매년제가 연례 순례 절기 중 하나라면, 한나의 불임은 하나님의 약속을 스스로 저버리는 모순에 부딪히게 된다. 출애굽기 23장 14-26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4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17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25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26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매년제가 연례 순례 절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설령 맞다고 하면 그 자체로 난관에 봉착한다. 본문은 분명히 말한다. 한나의 불임은 하나님의 의지라고 말이다. 

사무엘상 1장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본문은 매년제와 한나의 고통을 통해 엘가나 가족의 열심과 한나의 기도를 강조한다. 결국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킨다.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결론적으로, 엘가나 가족의 매년제는 남성과 여성 모두의 자율성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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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부터 학위 논문 제출을 위한 워크숍에 참여했다. 중요한 정보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논문 제출일이다. 절차상 예상 종료일(Expected end date)로부터 4개월 전에 제출 관련 절차를 시작하라는 안내를 받게 된다. 내 경우 예상 종료일이 2025년 8월 26일(화)이므로 4월 26일(토)쯤 제출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학위 논문 제출 후에는 시험(examination)이 있으며, 신학부는 구두시험(viva vose; oral examination)으로 논문 방어전을 치러야 한다. 구두시험 준비 시간은 보통 3개월 정도라고 들었고, 외부 심사자의 상황에 따라 앞당겨 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한다. 구두시험을 마치면, 심사진의 평가에 따라 수정 결과가 나온다. 평가는 무수정,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등으로 나눠지는 걸로 알고 있다. 3개월 수정을 받아도 비 영미권 출신은 잘했다는 평가를 듣는 모양이다. 3개월 수정을 예상하면, 10월 26일(일)이 최종 제출일이다. 그러면 학위 수여는 12월 졸업식에 이뤄진다.

타 분과 박사 과정 학생으로 들은 바로는, 내년 7월 졸업식에 참여하려면 3월 27일(목)까지 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구두시험 결과는 무수정이 나와야 7월 졸업이 가능하다.

현 상황으로는 서두를 필요는 있지만, 내년 12월 졸업은 무난해 보이고, 7월 졸업은 분발해야 한다. 어찌 되었든 내년에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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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친화적 글쓰기

성찰 2024. 10. 11. 06:30

CBA Emerging Scholars Conference 2024 Session 3은 출판사 관계자들로부터 조언을 듣는 시간이었다. Corrine L. Carvalho 박사는 University of St. Thomas 교수이자 CBQ General Editor이기도 하다. 그녀의 조언을 토대로 내 생각을 정리해 본다.

학위 과정을 기준으로 석사 과정까지는 독자(정확히는 평가자)가 과목 담당 교수로 한정되어 있다. 박사 과정에서는 일차적으로는 지도 교수진, 이차적으로는 논문 심사위원들까지 포함된다. 최소 1명에서 최대 5명 내외로 현직 학계에 몸담은 교수진을 대상으로 글쓰기 훈련을 받다가, 학위 논문 출판을 위해 출판사 담당자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자신의 독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 담당자들도 박사 학위 소지자로 학계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이지만, 그들의 역할은 학계 친화적인 원고를 독자 친화적으로 변모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만약 일반 대중을 독자층으로 고려한다면, 그 수준에 부합한 수준으로 대화할 수 있는 독자 친화적인 글쓰기 실력을 배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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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으로 논평자(respondents)로 학회에 참가했습니다. Respondents에 대응하는 번역어가 마땅치 않은데, 역할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논평자에 근접한다고 판단됩니다. 일부 학회에서는 commentator에 해당한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올해 다양한 학회에 발표자로서 기대한 기대 효과 중 하나가 논평과 질의응답에 관한 것입니다. 지도 교수진으로부터 조언과 평가를 받긴 하지만, 때로는 학교 외부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 경험에 한정되겠지만, 대체로 논평자를 별도로 두지 않고 질의응답이 전부이고, 원고를 학회 시작일 이전에 제출하고 공유하도록 하지 않는 이상 깊이 있는 질의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번 학회는 논평자를 별도로 배분하였고, 발표는 사전에 공유된 원고를 토대로 간략하게 진행하고, 논평과 질의응답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 말은 내가 맡은 역할이 제법 컸다는 의미입니다.

나와 함께 논평을 맡은 또 다른 논평자가 준비를 상당히 잘했고, 참여자들이 질문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덕분에 세션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원고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채, 역할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질문을 준비한 수준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발표자로서 논평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에, 논평자로서 발표자에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실망감이 있네요.

앞으로 학회 발표를 자발적으로 줄일 예정이고, 박사 학위 취득 이후에는 발표보다는 논평할 기회가 더 많지 않을까 싶은데, 앞으로 논평자로서 더 잘 준비해야겠다는 각오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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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각 아침 8시부터 30분 동안 온라인으로 "Jewish Davidic Messianism and Jesus’s Kingship and Sonship in John 10"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원래 현지 참여를 희망했으나, 일정과 경비 등 내 사정과 맞지 않아 온라인 발표로 전환했습니다.

오늘 참여한 단체 이름은 이탈리아종교고등연구소(Centro Italiano di Studi Superiori sulle Religioni, Italian Centre for Advanced Studies on Religions)입니다. 연례 모임 분과 중에서 '성경과 갈등'(THE BIBLE AND CONFLICT)이 내 관심사에 부합하여 발표를 지원했었네요.

이제 올해 학회 발표 일정(총 14회)은 다 소화했습니다. 이제 내년 학회 발표를 위한 제안서를 틈틈이 준비하면 됩니다. 당분간 저널 원고 수정과 논문 집필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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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금)까지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Pseudepigrapha (JSP) 출판 심사를 위한 원고를 제출해야 한다. 내 최우선 순위는 논문 완성이지만, 저널 명성을 고려하면 기회를 잡아야 한다.

학회 발표를 위해 준비한 원고라 완성도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했다. 다행히 이 원고 역시 학위 논문에 포함되는지라, 지혜롭게 시간 관리를 하며 원고 수정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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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내 마지막 학회 발표가 될 "Jewish Davidic Messianism and Jesus’s Kingship and Sonship in John 10" 원고를 완성했다. 내 원고는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에 대한 유대인 내부 분쟁 (19–21절)에서 시작해 유대 다윗 메시아사상과 예수의 왕권과 아들됨을 비교한다. 이 주제는 내 학위 논문에서 핵심 주장에 해당한다. 원고 작업을 통해 몇 가지 이득을 취했는데, 그중 하나가 에스겔서 34장과 선한 목자의 연속성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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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논쟁이 촉발된 베데스다 연못 치유 사건(5장)에서 예수의 변론,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7절)라는 말씀에서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치유 사역의 정당성을 위한 근거로 이해하는 해석이 있다.

나는 하나님의 구속사와 관련이 있다고 가정하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예수의 신적 정체성과 구속 사역을 선포하려는 의도로 읽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예수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the Father-Son relationship) 혹은 '하나됨'(oneness)으로 묘사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자발적인 순종으로 실현하신다. 아버지의 계획과 아들의 실행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만큼이나 하나를 이룬다. 따라서 예수는 아들로서 구속자와 심판자로서 권한을 갖는다.

유대인은 모세의 율법을 근거로 예수를 정죄하지만, 도리어 예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유대인들의 불신을 지적하신다 (45-47절). 예수의 베데스다 연못 치유 사건에서 촉발된 안식일 논쟁은 이후 초막절 기간에 유대인을 마주하며 재점화된다. 안식일 예외 규정 중 하나가 할례이다 (7:22-23). 예수는 모세를 초월하는 존재이며, 안식일의 의도에 따라 예수의 치유 사역은 정당성을 갖는다 (23절).

결국 안식일 논쟁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의 신적 정체성과 그의 구속 사역을 선포하는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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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4는 한 목자의 등장은 다윗 언약의 유효성 선포이며, 이어 화평의 언약 체결을 선포한다 (v. 25). 이와 유사하게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에서는 한 목자의 등장은 다윗 언약의 성취이자 계명과 관련이 있다. 화평의 언약이 악한 짐승 제거와 양의 평안을 약속한다면, 계명은 양 떼를 위한 영생에 대한 약속이다 (vv. 25–28).

언약과 계명 사이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 차이가 언약 대신 계명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목자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종이자 왕자이다. 하나님과 다윗은 주종의 관계이다. 반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와 하나이다. 또한 다윗은 생전에 왕국의 통치라는 의무를 감당하지만, 예수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영생이라는 영적 사역을 감당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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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영국 대학교 순위를 매기는 또 다른 언론사 The Times and Sunday Times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곳에서도 올해는 2위를 기록했다. 샌엔은 매번 Research quality와 Graduate prospects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한다. 학교 특성이라 쉽게 개선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선방하고 있다.

The Good University Guide 2025
https://www.thetimes.com/uk-university-rankings/league-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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