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이사야서 5장은 "포도원의 노래"로 불릴 만큼 포도원 심상을 중점적으로 사용한다. 이사야 시대에 예루살렘은 포도원 경작이 보편적이었거나, 그의 청중이 포도주에 익숙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님은 이스라엘(=포도원)의 정의 실현(=좋은 포도)을 바라셨으나, 그들은 악행(=들포도)을 행하였다 (1-2절). 

이사야가 직접 설명하듯이, 포도원 비유는 이스라엘의 행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지도층의 쾌락 향유와 직무에 대한 무관심은 백성에게 고통을 가져온다 (11-13절).

다만, 이들을 향한 심판과 백성을 향한 위로(14-17절)는 두 가지 이유로 다소 의아스럽다. 첫 번째는, 심판과 위로로 전환되는 주제가 갑작스럽다. 5장 전체가 심판을 일관적으로 선포하는데, 유독 이 단락에서 위로(16-17절)가 자리하고 있다. 두 번째는, 심판과 위로라는 주제에 적용한 언어의 전환이 갑작스럽다. 5장 전체가 포도원 비유를 사용하는데, 심판을 위한 스올(14-15절)과 야웨-목자의 정의(16-17절)는 이질적인 언어 전환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질감은 14-17절이 후대 삽입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내 관심은 포도원 비유가 적실한 시대 상황에도 목자-양 비유를 회복 선언으로 사용할 만큼 목양 심상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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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Pseudepigrapha (JSP) 출판 심사를 위한 원고를 제출했다. 원래 1일(금)이 마감일이었으나, 담당자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서 마감일을 연장할 수 있었고, 다행히 약속을 지켰다. 지연 사유는 최신 자료를 반영하느라 일을 벌인 탓이다.

한숨 자고 산책을 즐긴 후 또 다른 출판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콘퍼런스 참가자 중 지원자에 한정해 원고를 선별한다. 워낙 쟁쟁한 발표자들이 많아서 선정 확률이 높지 않지만, 논문 작업의 일부라 피할 수 없는 작업이기도 하다. 원고가 선정되면 기쁜 일이지만, 그렇지 못해도 글 수준이 올라간다.

이미 자정이 지났으니 퇴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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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계획

끄적 2024. 11. 2. 03:16

논문 제출과 시험 안내서는 아래 링크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https://www.st-andrews.ac.uk/pgstudents/academic/theses/

벌써 11월 1일이다. 이제 2024년이 두 달이 채 안 남았다. 박사 과정을 2020년 10월 27일(화)에 시작했으니, 햇수로 4년을 넘겼다. 학교 행정상 내 학업 예상 종료일이 2025년 8월 26일(화)이며, 논문 제출 절차는 4월 26일(토)쯤 시작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남짓이다.

만약 내가 3월 중에 논문을 제출한다면, 졸업을 5개월이나 앞당길 수 있다. 이 발상은 A 군의 계획에서 비롯되었다.

A 군이 목표한 2025년 7월 졸업 계획은 다음과 같다.
3월 26일(수) 논문 제출하고, 두 달 후 5월 26일(월) 무렵에 구술시험을 치르고, 최종 심사 결과는 minor corrections (to be completed within a period of three months) 이하로 받는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획은 아니다. 구술 시험은 평균 3개월 후 일정이 잡힌다고 들었는데, 안내서에는 심사위원과 후보자의 협의로 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지도 교수가 외부 심사위원 선정을 재빠르게 하면, 구술시험 일정은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다. 논문 제출 이전에 교정을 최소 2월 26일(수)부터는 시작해야 한다. 이 말은 이전에 논문 초안이 완성되어야 의미이다.

나 역시 이 계획을 감안하고 7월 졸업을 목표로 진행하겠지만, 12월 졸업이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한다. 무엇보다 초안 완성 시기가 관건이고, 요한복음 전문가 중 외부 심사 위원 선정과 일정 조율이 쉽사리 진행될지 장담할 수 없으며, 최종 심사 결과가 minor corrections이 되리라 확신할 수 없다.  

다만 12월 졸업이 확실할 경우 2026년 7월로 연기해서 참석하려고 한다.

최소 4~6개월은 논문 작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7월이든 12월이든 졸업이 목표이고, 논문 제출 후 바로 한국으로 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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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에서 매년제(annual sacrifice)는 총 세 번(1:3, 21; 2:19) 사용된다. 초막절이 이 매년제의 정체라는 주장이 꽤 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려의 매년제의 정체(20:6, 29)도 규명되어야 하는데, 앞 세 용례와 달리 초막절이라는 주장은 없다. 대표적으로 수잔 애커만(Susan Ackerman)은 앞 세 용례는 초막절이고, 마지막 용례는 씨족 제사(clan festival)라고 주장한다.

애커만이 꼽은 초막절의 주요 특징은 매년 순례 절기(annual pilgrimage feast)와 여성 참여이다. 그녀는 다른 매년 순례 절기는 남자만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절기인 반면 초막절은 여성도 참여하는 절기라고 본다. 그래서 그녀는 사무엘상 1-2장의 매년제는 엘가나와 그의 가족이 참여한 매년 순례 절기라는 특징을 고려해 초막절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한나의 기도가 찬양이라는 해석을 통해 초막절에서 여성 참여로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인 춤과 연결한다.

애커만의 방대하고 치밀한 배경 연구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무엘상의 매년제가 초막절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상당히 빈약하다. 반박을 위해 내가 제시하는 첫 번째 근거는, 매년제가 매년 순례 절기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애커만의 연구에 따르면, 엘가나 가족의 거주지와 실로 사이의 거리는 하루 여행길이다. 사사 시대 실로의 종교적 중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군주제 이전과 이후 현실적인 이유로 거주지에서 하루 이동 거리 이내에 지역 성소가 존재했다면, 엘가나 가족의 이동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매년제를 순례 절기로 단정 지을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더하여 순례 절기가 실제로 시작되는 시점이 언제냐는 의문이 제기되는데, 나는 솔로몬이 초막절을 집행한 이후라는 잠정 결론을 갖고 있다. 엘가나 가족의 매년제는 가족 단위의 제사일 수 있다. 다윗은 사울과 동석해야 하는 초하루 식사에 결석하는 이유로, 매년제를 위해 자신의 가족이 거주하는 베들레헴으로 이동했다는 변명을 제시하는데, 이 말은 주거지를 중심으로 즉 실로 이외의 장소에서 매년제를 실시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두 번째 근거는, 초막절만이 여성이 참여하는 매년 순례 절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매년 순례 절기 명령은 남성에게 요구되는 절기이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가족을 대표할 뿐이며, 남성은 자신은 물론 가족 전체가 절기를 지키도록 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초막절에서 유독 여성의 참여가 부각되는 이유는 사사기 21:19-23에 나타난 대로 "춤추는 여자들" 때문인데, "즐거움"이 강조되는 추수감사제 성격의 초막절 고유의 특징 중 하나일 뿐, 이 절기만이 여성이 참여하는 절기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다윗의 매년제도 가족을 위한 제사라고 부연한다.

무엇보다, 한나의 기도는 노래라는 주장으로, 사사기 21장의 "춤추는 여자들"처럼, 한나를 노래하는 여인으로 초막절의 주요 특징을 드러낸다는 해석의 허점이다. 한나의 기도가 노래라는 주장은 차치하고, 개인의 노래가 집단 축제의 춤과 동일시 될 수 있다는 해석은 초막절의 여성 참여라는 전제을 위한 과도한 주입식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사무엘상은 매년제의 정체를 규정할 만한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반면 매년제를 통해 엘가나 가문과 엘리 가문의 대조, 그리고 엘리 가문에서 사무엘에게 정치적 종교적 지도력 이양을 서술한다. 이같은 특징을 고려한다면, 매년제는 가족 중심 제사로 결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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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장에서 한나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사사 시대에는 기혼 여성의 자율성이 상당히 보장되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한나는 자의로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 기도하며 서원했고, 사무엘을 낳은 후 매년제와 서원제에 참여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양육하였다. 젖을 뗀 후에는 사무엘을 엘리에게 의탁한다. 반면 엘가나의 매년제는 이스라엘 남성이 짊어진 의무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Mayer I. Gruber, The Woman of Israel by Grace Aguilar, Judaism in Context 15 (Piscataway, NJ: Gorgias, 2023), 438–40를 보라.

나는 매년제가 연례 순례 절기 중 하나로 간주하는 입장보다는 엘가나의 종교적 열심에 의한 가족 의례라는 해석을 지지한다. 사무엘상 1-2장은 매년제의 대규모 축제라는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엘가나 가족의 개인성을 강조한다. 엘가나의 종교적 열심은 그의 자발성에서 비롯되었고, 그의 가족을 향한 사랑도 그의 자발성에서 비롯되었다. 한나의 자율성에 대한 엘가나의 태도는 그의 포용력을 보여준다. 비록 한나에 대한 기울어진 애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해석자들이 지적하듯이, 사무엘상 1-3장은 엘가나 가족과 엘리 가족을 대조한다. 매년제는 엘가나와 그 가족의 종교적 열심을 보여주지만, 엘리의 자녀들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한다 (2:12-17). 사무엘은 자라면서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지만 (2:26), 엘리와 그의 두 자녀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다 (4장).

저자 혹은 편집자의 관심은 매년제를 통한 두 가족의 대조이다. 만약 매년제가 연례 순례 절기 중 하나라면, 한나의 불임은 하나님의 약속을 스스로 저버리는 모순에 부딪히게 된다. 출애굽기 23장 14-26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4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17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25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26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매년제가 연례 순례 절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설령 맞다고 하면 그 자체로 난관에 봉착한다. 본문은 분명히 말한다. 한나의 불임은 하나님의 의지라고 말이다. 

사무엘상 1장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본문은 매년제와 한나의 고통을 통해 엘가나 가족의 열심과 한나의 기도를 강조한다. 결국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킨다.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결론적으로, 엘가나 가족의 매년제는 남성과 여성 모두의 자율성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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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부터 학위 논문 제출을 위한 워크숍에 참여했다. 중요한 정보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논문 제출일이다. 절차상 예상 종료일(Expected end date)로부터 4개월 전에 제출 관련 절차를 시작하라는 안내를 받게 된다. 내 경우 예상 종료일이 2025년 8월 26일(화)이므로 4월 26일(토)쯤 제출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학위 논문 제출 후에는 시험(examination)이 있으며, 신학부는 구두시험(viva vose; oral examination)으로 논문 방어전을 치러야 한다. 구두시험 준비 시간은 보통 3개월 정도라고 들었고, 외부 심사자의 상황에 따라 앞당겨 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한다. 구두시험을 마치면, 심사진의 평가에 따라 수정 결과가 나온다. 평가는 무수정,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등으로 나눠지는 걸로 알고 있다. 3개월 수정을 받아도 비 영미권 출신은 잘했다는 평가를 듣는 모양이다. 3개월 수정을 예상하면, 10월 26일(일)이 최종 제출일이다. 그러면 학위 수여는 12월 졸업식에 이뤄진다.

타 분과 박사 과정 학생으로 들은 바로는, 내년 7월 졸업식에 참여하려면 3월 27일(목)까지 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구두시험 결과는 무수정이 나와야 7월 졸업이 가능하다.

현 상황으로는 서두를 필요는 있지만, 내년 12월 졸업은 무난해 보이고, 7월 졸업은 분발해야 한다. 어찌 되었든 내년에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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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친화적 글쓰기

성찰 2024. 10. 11. 06:30

CBA Emerging Scholars Conference 2024 Session 3은 출판사 관계자들로부터 조언을 듣는 시간이었다. Corrine L. Carvalho 박사는 University of St. Thomas 교수이자 CBQ General Editor이기도 하다. 그녀의 조언을 토대로 내 생각을 정리해 본다.

학위 과정을 기준으로 석사 과정까지는 독자(정확히는 평가자)가 과목 담당 교수로 한정되어 있다. 박사 과정에서는 일차적으로는 지도 교수진, 이차적으로는 논문 심사위원들까지 포함된다. 최소 1명에서 최대 5명 내외로 현직 학계에 몸담은 교수진을 대상으로 글쓰기 훈련을 받다가, 학위 논문 출판을 위해 출판사 담당자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자신의 독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 담당자들도 박사 학위 소지자로 학계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이지만, 그들의 역할은 학계 친화적인 원고를 독자 친화적으로 변모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만약 일반 대중을 독자층으로 고려한다면, 그 수준에 부합한 수준으로 대화할 수 있는 독자 친화적인 글쓰기 실력을 배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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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으로 논평자(respondents)로 학회에 참가했습니다. Respondents에 대응하는 번역어가 마땅치 않은데, 역할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논평자에 근접한다고 판단됩니다. 일부 학회에서는 commentator에 해당한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올해 다양한 학회에 발표자로서 기대한 기대 효과 중 하나가 논평과 질의응답에 관한 것입니다. 지도 교수진으로부터 조언과 평가를 받긴 하지만, 때로는 학교 외부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 경험에 한정되겠지만, 대체로 논평자를 별도로 두지 않고 질의응답이 전부이고, 원고를 학회 시작일 이전에 제출하고 공유하도록 하지 않는 이상 깊이 있는 질의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번 학회는 논평자를 별도로 배분하였고, 발표는 사전에 공유된 원고를 토대로 간략하게 진행하고, 논평과 질의응답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 말은 내가 맡은 역할이 제법 컸다는 의미입니다.

나와 함께 논평을 맡은 또 다른 논평자가 준비를 상당히 잘했고, 참여자들이 질문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덕분에 세션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원고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채, 역할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질문을 준비한 수준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발표자로서 논평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에, 논평자로서 발표자에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실망감이 있네요.

앞으로 학회 발표를 자발적으로 줄일 예정이고, 박사 학위 취득 이후에는 발표보다는 논평할 기회가 더 많지 않을까 싶은데, 앞으로 논평자로서 더 잘 준비해야겠다는 각오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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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각 아침 8시부터 30분 동안 온라인으로 "Jewish Davidic Messianism and Jesus’s Kingship and Sonship in John 10"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원래 현지 참여를 희망했으나, 일정과 경비 등 내 사정과 맞지 않아 온라인 발표로 전환했습니다.

오늘 참여한 단체 이름은 이탈리아종교고등연구소(Centro Italiano di Studi Superiori sulle Religioni, Italian Centre for Advanced Studies on Religions)입니다. 연례 모임 분과 중에서 '성경과 갈등'(THE BIBLE AND CONFLICT)이 내 관심사에 부합하여 발표를 지원했었네요.

이제 올해 학회 발표 일정(총 14회)은 다 소화했습니다. 이제 내년 학회 발표를 위한 제안서를 틈틈이 준비하면 됩니다. 당분간 저널 원고 수정과 논문 집필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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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금)까지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Pseudepigrapha (JSP) 출판 심사를 위한 원고를 제출해야 한다. 내 최우선 순위는 논문 완성이지만, 저널 명성을 고려하면 기회를 잡아야 한다.

학회 발표를 위해 준비한 원고라 완성도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했다. 다행히 이 원고 역시 학위 논문에 포함되는지라, 지혜롭게 시간 관리를 하며 원고 수정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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