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개인 신상과 민감한 내용은 임의로 삭제 및 수정되었습니다.

--질문--

안녕하세요 목사님. 저는 유튜브를 통해 목사님을 알게 된 A라고 합니다. 

저는 B대학교에서 학부과정을 마쳤습니다. 학부 시절부터 신학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졸업후 직장을 다니면서 짬을 내어 공부를 해오던 중 여러가지 한계를 느껴 현재 대학원 입학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부 및 진학과 관련하여 여러 고민이 있는 상황인데요. 목사님께 상담을 부탁드리고 싶어 메일을 드립니다.

현재 학위 논문 작성을 위해 유학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우 바쁘시겠지만 아주 짧은 답변이라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보다 가독성있게 번호를 붙여 질문 드리겠습니다.


1. 목회자 소명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M.Div 과정 입학을 하는 것이 맞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저는 최종적으로 신학 석사(Th.M), 박사(Ph.D) 과정까지 완료 후(유학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제도권 신학 연구자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목회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신학으로 학부전공을 하지 않았기에 신학 전반을 공부하는 측면에서 M.Div 과정이 적합해 보입니다만, 엄연히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인지라 주저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지원서나 면접 과정에서 목회 소명에 대한 확신이 없는 모습을 보였을 경우 불합격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구요.

한편으로 추후 목회 소명이 확실해질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일반신학 석사(MTS, MA 등) 보다는 M.Div를 마치는 편이 안전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제 상황을 미루어 보았을 때 M.Div 입학을 하는 편이 옳은 선택일지 여쭙고 싶습니다.


2. 저와 같은 성향,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 적합한 신학대학원이 있을까요?

말씀드렸듯 저는 신학 박사 취득이 최종 목표이고 유학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향후 진로 방향성이 어떻게 될지 함부로 예측하긴 어렵습니다만, 이러한 전제 하에 입학하면 좋을 신학대학원이 있을까요?

아신대, 횃불트리니티 -> 두 신학대학원의 경우 영어 M.Div. 과정을 운영하고 있기에 유학을 준비하기에 적합하다 판단됩니다. 

이 학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쭐 수 있을까요? 

또한 신약학 및 원어(헬라어) 관련 커리큘럼이 탄탄한 국내 신학교가 있을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현재 신약학이 가장 관심있는 분야입니다.)


3. 신학대학원 입학 전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신학 공부를 하였으나 무작위성 독서를 해 왔습니다. 관심이 가는 제목의 책이 보이면 닥치는대로 읽는 방식의 공부였네요.

일단 '마운스 헬라어 문법'이라는 책을 추천받아 헬라어 기초를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추가로 신학 전반의 기초를 다질만 한 개론서가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전문 신학자 분께 추천을 받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여쭙고 싶습니다.


최대한 간략하게 질문드리려 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시간을 너무 뺏는 것 같아 송구스럽네요.

단답형으로 답해주셔도 정말 괜찮으니 시간 되실 때 메일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현재도 유학 중이신지 잘 모르겠지만 혹 그러시다면 부디 건강하게, 성공적으로 마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 올림.


--답변--

안녕하세요. A 형제님.
(혹시나 자매라면 죄송합니다)

제 유튜브를 꼼꼼히 보신 흔적이 보여서 바로 대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도권 신학 연구자가 되시려면 학교에서 선호하는 교수 요원 희망자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제가 교단 신학 목회학 석사(MDiv)를 추천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는데, 학교에서는 본 교단의 신학에 부합한 교수 요원을 선발하려고 합니다. 보통 교단 신학교는 본교 목회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본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해외 박사 소지자를 최우선 순위로 둡니다. 차선으로 목회학 석사를 타 교단에서 마치고 편목 과정을 거쳐 교단 신학교에 진입하기도 합니다. 제도권 신학 연구자가 되고 싶으시면 목회학 석사 과정을 하시는 쪽이 현실적으로 낫습니다.

현재 목회자 소명이 없더라고 공부하면서 혹은 공부를 마치고 나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으니 일단 목회학 석사 과정을 해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목회학 석사 과정이 맞지 않으면 나중에 다른 석사 과정으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목회학 석사 과정을 하지 않고, 교수가 되고 싶다면, 박사 학위 취득 이후 희망하는 교단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 과정을 하거나 해당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 학교로 가시면 됩니다. 만약 목회학 석사 학위 없이 교수가 되고 싶으시다면, 초교파 학교를 목표로 하셔야 하며, 학교는 옥스퍼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하버드대학교 정도여야 가능합니다.

유학 준비 과정으로 아신대와 횃불트리니티 목회학 석사 영어 과정은 추천합니다. 지금은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 사역하고 계시지만, 횃불트리니티 목회학 석사 영어 과정을 거쳐 영국에서 신약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신 분이 있습니다. 두 학교 모두 신약학 교수진이 좋기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배울 수 있어 보이고, 차후 유학 상담에도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신학대학원 입학시험이 있어서 지원을 희망하는 학교에서 관련 자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성경 시험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입학처에 문의하시면 관련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는 신대원 입학 후 먼저 배우는 과목 중 하나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하신다면 외국어를 처음 배울 때 느끼는 막막함은 낮출 수 있을 테니 책 전체를 훑어보며 단어에 익숙해지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신학 전반에 대해 알고 싶으시면 조직 신학 개론서를 읽어야 합니다. 조직 신학이야말로 학교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방향이 좌지우지되지만, 둘 중 하나를 택하시면 무난할 듯합니다. 참고로 저는 목회학 석사 시절 그레츠 책으로 공부했습니다.

웨인 그루뎀 조직신학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3712058

스탠리 그레츠 조직신학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8865895

사담이지만, 제 경우 2006년에 목회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고, 올해 박사 학위 논문 제출 후 내년 7월 졸업식에 참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대원 입학후 박사 학위 취득까지 20년이 걸리겠네요. 유학을 결심한 지는 12년 정도 된 거 같고요. 요점은 신학 박사는 기나긴 여정이라 심지 깊은 결단과 학문성 등 다양한 조건이 요구됩니다. 고민이 많으실 텐데 제 답변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광수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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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이성적 존재라 주장하지만, 실상은 감정의 동물이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있다면, 이성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이성적 존재라 주장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이성으로 자신을 통제하지 않는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

플라톤과 플루타르코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은 이성을 통한 절제된 삶을 향유하는 인간을 이상화한다. 열정은 이성을 마비시켜 불법을 저지르도록 유도할 수 있지만, 그 열정이 이성을 북돋아서 이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플라톤의 유산은 개인의 윤리, 그리고 정치가의 덕목에 집중한다. 내가 현실에서 낙심하는 이유는 플라톤 철학에서 경계했던 현상이 지금 만연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내 연구에서 플라톤에 깊이 개입하고 싶지 않지만, 현 상황은 내 바람과 반대로 가야 할 명분을 주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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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해 문외한에 가깝지만, 내 박사 학위 연구과 관련해 플라톤의 저작과 철학에 엮여 버렸다. 플라톤의 저작에서 목자-양 유비는 큰 지분을 차지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독특한 용례이고, 궁극적으로 파생하는 결과물이 독보적이라서, 내 목적을 위해서라도 목자-양 유비를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플루타르코스(Plutarch)와 필론(Philo)는 플라톤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내 관심사에 한정하면, 이성과 감정에 따른 플라톤의 윤리관을 고스란히 두 후대 저자가 사용한다.

목자-양 유비 사상에서 세 저자는 모두 정통적인 용례를 인정한다. 하지만 셋 사이에 차이점도 존재한다.

플라톤은 자신의 정치철학을 위해 신적 목자(divine shepherd)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인간 목자의 정치적 역량을 강조한다.

플루타르코스는 플라톤의 철학과 고대 그리스-로마 목자-양 유비 전통을 전적으로 수용한다. 플라톤과 달리 신적 목자와 인간 목자 사이에 대한 관찰이 없다. 

필론은 그리스-유대 철학자로 플라톤의 철학을 수용하며, 고대 그리스와 유대 전통의 목자-양 유비 사상을 따른다. 다만 유대 전통에 더 근접한다.

플라톤의 영향은 지대하다. 이 말은 플라톤 철학을 차후라도 내 논문에 더 녹여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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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학 전공자로서 지금까지는 유대 문헌의 영향이 그리스-로마 문헌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내 박사 학위 논문에 한정해도,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은 로마 압제라는 상황 속에서도 유대 전통의 영향이 더 크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 전체에 미친 영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성경 본문 이해를 위해서는 유대 문헌에 더 열중해야 하지만, 그리스-로마 문헌이 주는 유익이 있다. 교회와 세상이라는 이분법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굳이 나눠서 표현하자면, 유대 문헌은 성경 이해에 유익을 주고, 그리스-로마 문헌은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를 준다.

내 박사 학위 논문이 유대 문헌과 그리스-로마 문헌을 다룬다는 강점을 가진 덕분에 학위 취득 이후에도 두 분야 모두 교수할 가능성이 높다. 내 선호와 상관없이 학교와 학생, 또는 학계의 요구가 예상된다.

학생 입장에서는 나와 공부하고 싶다면, 유대 문헌이든 그리스-로마 문헌이든 선택지가 높아지겠으나, 그것이 과연 학업 만족도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 학습 요구량이 상당히 높아질 가능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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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The History of Shepherd-Sheep Analogy 원문 분석을 끝냈다. 지금은 선행 연구를 찾고 분석하며 내 연구에 적용하고 있다. 어디 하나 쉬운 본문이 없으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저작은 플라톤,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쿰란문서이다. 저마다 독특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 용례라서 분석이 정말 쉽지 않았다.

앞으로 2~3주 정도 선행 연구로 원고를 보완하고 초안을 지도 교수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을 진행하려고 한다. 

현 원고를 20개월가량 붙들고 있었는데 조만간 잠시라도 떨쳐 낼 수 있다니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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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쿠스 문헌(Damascus Document)의 약어는 CD이다. Cairo Genizah에서 발견되어서 지역명과 문헌 내용의 특징을 결합해 CD로 부르는 모양이다. 이 문헌의 본문을 표기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사례로 나눠진다.

첫 번째는 A와 B를 삽입 여부이다. 간혹 CD-A 혹은 CD-B로 표기하여, 사본 A와 B를 구별한다. 그러나 사본 A는 1-16, B는 19-20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굳이 A와 B를 삽입할 필요가 없다. 숫자만으로 A와 B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CD-A XIII이나 CD-B XⅨ는 과잉이다. CD XIII이나 CD XⅨ로 충분하다.

두 번째는 로마 숫자 혹은 아라비아 숫자 사용 여부이다. 사해 사본은 fragment-column-line 순서로 표기한다. 여기서 column을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하는 사례가 더 잦다. 예를 들어 4Q270 7 2:1–21 라는 식으로 말이다. 아라비아 숫자는 사용자의 편의성이 그 원인으로 판단된다. The SBL Handbook of Style은 로마 숫자를 사용하라고 안내하고 있음(자세한 내용은 8.3.5 Dead Sea Scrolls and Related Texts를 보라).

앞서 예로든 문서는 다음과 같이 표기해야 한다.
CD XIII, 7–12; CD XⅨ, 7–13; 4Q270 7 Ⅱ, 1–21

혹시나 틀린 내용이 있다면 수정할 것.

--추가--

MS A: 7:4-8:2와 MS B: 19:1-14로 표기하는 사례.  Menahem Kister, “The Development of the Early Recensions of the Damascus Document,” DSD 14/1 (2007): 6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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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학 석사 학위 논문부터 줄곧 논문작성법에 신중히 처리하고 있지만, 박사 과정에 와서 정통하지 못하고 여전히 헤매고 있다. 가장 낯설었던 건 쿰란문서와 그리스-로마 문헌 표기법이다.

쿰란문서는 문서 발견과 연구 결과에 따라 문서 이름과 배열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며칠 동안 쿰란문서 본문 분석을 하고 있는데, 연구서에 따라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로마 문헌의 경우 라틴어 제목과 영어 제목에 따라 축약이 다르다. 많은 작품이 대체로 통일된 축약법을 따르지만, 여전히 제각각 사용되는 경우도 발견된다.

내 경우 웨신과 칼빈 시절 이와 관련하여 배운 적이 없다. 웨신 시절에는 기독교 교육 전공자로부터, 칼빈 시절에는 조직신학 전공자에게 논문작성법을 배운 탓이다. 성서학 전공자에게 배웠더라도 석사 과정생에게는 이르다고 판단했을까? 현 센앤에서는 코스웍이 없어서 논문작성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한국 박사과정에는 코스웍이 있으니 논문작성법 시간에 쿰란문서와 그리스-로마 문헌 표기법을 가르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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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34에 나타난 언약을 언급하는 박사 학위 논문


Abstract
The majority opinion in scholarship holds that the Essene use of the term ברית חדש ה (‘new covenant’) in the DSS was intended as an appropriation of the ‘new covenant’ prophecy of Jer 31:31–34, as this is the only passage in the entire HB to contain this term. This study seeks to question the validity of this assumption, and, in light of the contribution of the (relatively) recently published 4QD Fragments, will argue that despite the presence of the term ברית חדש ה in Jer 31:31 and the DSS, there are solid grounds to suggest that the Essenes did not in fact conceive of their ‘new covenant (in the land of Damascus)’ as an appropriation and/or fulfillment of Jer 31:31–34. Rather, the Essene use of the term ברית חדש ה is more adequately explained on other grounds. The present study is divided into four chapters. Chapter 1 serves as an introduction wherein the research questions, research context (historical review of scholarship), course of analysis, and methodology will be discussed. Chapter 2 is devoted to an exegesis of the text of Jer 31:31–34, wherein the LXX and MT versions of this passage (and their relation to one another) will be evaluated. The conclusions reached in this chapter will serve to inform our discussion in Chapter 3, which is itself devoted to four separate but related tasks: (1) an in-depth study of the Essene concept of the ‘new covenant’ in the two DSS texts in which this term appears: the Damascus Document (D) and Pesher Habakkuk (1QpHab); (2) a synthesis of key Essene ‘new covenant’ concepts based on the aforementioned study; (3) a comparison of these Essene ‘new covenant’ concepts with the concepts of the Jeremian ‘new covenant’ obtained from Chapter 2; (4) an examination of the research questions in light of our findings. Chapter 4 serves to conclude this study by summarizing key points from each chapter and exploring additional questions of interest prompted by the results of this study.


New take on the New Covenant: a reconsideration of the 'New Covenant' and Jeremiah 31:31-34 in the Masoretic Text, Septuagint, and Dead Sea Scrolls
https://era.ed.ac.uk/handle/1842/4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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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Pseudepigrapha 원고 재심사 결과가 공지되었다.

익명 심사자는 자기 관심사는 성, 불임과 장애(gender, infertility and disability)이며 그와 관련된 수정을 요청했으나, 내 수정은 그 견해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참조된 이메일로 검색해 보니 익명 심사자는 여성이다...

내 원고 제목 "The Identity of the Feast in 1 Samuel and Jubilees: The Feast of Tabernacles as a Prayer for Birth or as a Celebration of Birth"에 나타나 있듯이, 내 주요 관심사는 절기의 정체이고, 그 절기가 초막절인가를 묻는다. 또한 출산과 연관성을 따진다.

심사자는 마지막 문단에 "but I am very much open to the possibility that I am being too critical. 제가 너무 비판적일 가능성에 매우 열려 있습니다."라고 남겼다. 내 관점에서 익명 심사자는 여성이라는 자기 성적 정체성에 기반한 자기 관심사를 나에게 강요한다고 생각된다.

결론은 저널 담당자가 추가 수정을 해서 올 1호는 아니지만, 2호 혹은 3호에 포함될 수 있다고 했다. 나로서는 저널 게재는 뒷순위이고, 논문 완성이 최우선 순위이다. 지도 교수도 학회 발표나 저널 게재와 같은 활동을 요구하지 않으며, 논문 제출에 집중하고 있다.

사무엘상 본문은 내 논문에서 제외될 본문으로 이리저리 내 시간을 갈아 먹고 있다. JSP 투고로 만회하려고 했으나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한다니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일단 논문 작업에 집중하고 여유 시간에 짬짬이 저널 원고 수정을 해야겠다. 저널 담당자가 게재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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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여유롭게 원고를 보완하고 자료 화면을 만든 후 느긋하게 College Hall에 도착했다. 강의실에 나 혼자 도착해서 학교 정원을 걷고 다시 강의실로 돌아왔다. 참석자는 8명으로 교수 4명, 학생 4명이다.

오랜만에 발표했으나 침착하게 원고를 읽었고 40분 정도에 마쳤다. 주제는 "The Shepherd-Sheep Analogy of Plato and Philo"이고, 두 저자의 용례를 바탕으로 신적 목자와 인간 목자에 관한 견해 차이를 부각하였다.

5분 휴식 시간에 작년 가을 학기부터 구약 강사로 활동하는 Dr Doren Snoek와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질의응답 시간은 참석자가 열심히 참석해 주어서 마감 시간까지 알차게 대화가 오갈 수 있었다.

지도 교수는 오늘 모임 분위기가 마치 모의 구술 시험(mini viva)과 같았고, 내가 침착하게 발표와 질의응답까지 잘 마쳤다고 격려해 주었다. 오래간만에 뒷풀이에 참여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모임을 마칠 때 다시 한번 지도 교수가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이제는 정말 학위 논문 마감만 남았다. 이 주제는 내년 정도에 저널 출판을 목표로 수정해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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