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Jørn Varhaug은 시편 23, 구약,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로마 문헌 등을 토대로 목자 은유가 왕을 지칭하는 목자-왕 사상은 목축 사회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점차 사용 빈도수가 줄어들었으며, 그 용례에 관해 설명한다.

Consequently, it is possible to express the reason why the shepherd metaphor as a standard image for the ruler disappeared in the following three closely related points:
1. From Persian times, the international model monarchs were no longer related by traditions to the trade of shepherding.
2. In the pre-Persian times shepherd-imagery was demonstrated in significant acts of royal self-presentation, as coronation-rituals and royal correspondence. The Persian rulers did not use such imagery.
3. There were established an understanding of the pre-Persian shepherd-kings as abominable, characterized by violence, luxury, sloth and other vices. 

(구글 번역) 따라서 통치자에 대한 표준 이미지로서의 양치기 은유가 사라진 이유를 다음의 세 가지 밀접하게 관련된 요점으로 표현할 수 있다.
1. 페르시아 시대부터 국제적 모범 군주는 전통적으로 양치기 무역과 관련이 없었다.
2. 페르시아 이전 시대에 양치기 이미지는 대관식 의식과 왕실 서신과 같은 왕의 자기 표현의 중요한 행위에서 나타났다. 페르시아 통치자들은 그러한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3. 페르시아 이전 양치기 왕은 폭력, 사치, 게으름 및 기타 악덕을 특징으로 하는 가증스러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출처] Varhaug, “The Decline of the Shepherd Metaphor as Royal Self-Expression,” 22.


현재 목자-양 은유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논문 제출 후 공개될 내용이지만, 내 관찰에 의하면 목자-양 은유는 대체로 목자-왕 사상과 관련이 있고, 고대 근동부터 기원 1세기까지, 그리스-로마 문헌을 포함해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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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에게 야곱과 라반은 목자(a shepherd)와 사육사(a cattle-rearer) 구별을 위한 적합한 예시 중 하나이다. 야곱이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라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협상하여 방목하는 장면(창 30:25ff)에 대한 해석에서, 필론은 야곱은 양 떼를 바람직하게 양육하는 목자이므로 열악한 상황에서 자신의 재산을 증식했고, 라반은 탐욕스러운 주인이라서 양 떼를 올바로 양육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Philo, Agr. 10). 

Thus, for Philo, the human being will inevitably be subject to the passions and other evils that beset created beings. Yet God will ‘accomplish the work that is proper to him in proclaiming redemption and liberty to the souls who are his suppliants’ (Her. 272–3). It remains to define how to live in the least imperfect way in the world as it is. One of the most frequent answers to this question is the distinction, made paradigmatically in the De Abrahamo, among three types of men who strive toward the good. The first, Abraham, is characterized by the effort to know; the second, Isaac, by the simple fact of his happy nature; and the third, Jacob, by the practical struggle against everything in human nature that involves the senses and the passions.

(구글 번역) 따라서 필론에 따르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창조된 존재를 괴롭히는 정욕과 다른 악에 굴복할 것이다. 그러나 신은 '그의 간청자인 영혼에게 구원과 자유를 선포하는 데 있어서 자신에게 합당한 일을 성취할 것이다'(Her. 272-3). 세상에서 가장 불완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는 방법을 정의하는 것이 남았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빈번한 답변 중 하나는 De Abrahamo에서 패러다임적으로 선을 향해 노력하는 세 가지 유형의 인간을 구별하는 것이다. 첫 번째 아브라함은 알고자 하는 노력으로 특징지어지고, 두 번째 이삭은 행복한 본성이라는 단순한 사실로 특징지어진다. 그리고 세 번째 야곱은 감각과 정열을 포함하는 인간 본성의 모든 것에 대한 실제적 투쟁을 통해 태어났습니다.

출처 Kamesar, “3. Biblical Interpretation in Philo,” 164–165.


필론은 도덕적 진보와 목자-양 은유를 그리스 철학과 다른 방향으로 사용한다. 그리스 철학을 사용하지만, 히브리 전승에 더 권위를 부여해서 독자적인 해석을 도출한다. 필론은 목자-양 관계를 통해 도덕적 진보를 설명한다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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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이 저술한 Allegorical Commentary로 알려진 그리스어로 쓰인 히브리 전승 해설서를 살펴보면, 그가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mind (마음), soul (영혼), body (신체)와 같은 당대 그리스 철학 용어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필론은 Hellenistic Judaism 선구자라 할만하다.

필론은 그리스 철학을 사용하되 유대주의에 더 친화적이다. 내 연구 주제인 목자-양 은유에서 그 특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플라톤이 목자-양 은유를 통해 구시대(크로노스 시대)와 현시대(제우스 시대)를 구별하고, 구시대처럼 신의 은총으로 양육 받는 시대가 아닌 현시대 기술을 사용하여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필론의 목자-양 은유에서 구약 성경, 제2성전기 문헌, 그리스-로마 문헌 등 다른 문헌사에는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용례가 발견된다. 그중 하나는 목자-양 은유를 개인의 선행 혹은 하나님 말씀을 향한 순종에 적용하는 용법이다.

We do find, on the other hand, the hope for a better ‘near future’, a utopia within history, characterized by observance of the law. This may include the figure of a historical messiah, who has Moseslike traits. One may discern here the traditionalist bent in Philonic thought, because the ideas he expresses are rooted in a deuteronomic/ istic theology of retribution and in the message of the ancient prophets. 

(구글 번역) 반면에 우리는 더 나은 '가까운 미래', 즉 역사 속의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을 발견합니다. 이는 모세와 같은 특성을 가진 역사적 메시아의 모습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필로의 사상에서 전통주의적 성향을 알아볼 수 있는데, 그가 표현한 사상은 보복에 대한 신명기적/주의적 신학과 고대 선지자들의 메시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Philo’s more profound hope is in a human soul at peace with itself on the inside, which, with the sanction of divine blessing, is able to transform the realities in both the natural and the political worlds.

필로의 더 심오한 희망은 내면에서 자신과 평화로운 인간의 영혼에 있으며, 이는 신의 축복의 허가를 받아 자연과 정치 세계 모두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출처 Kamesar, “3. Biblical Interpretation in Philo,” 110, 111.


필론은 목자-양 은유를 비중 있게 사용하며, 대다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한다. 참된 목자는 자신의 양 떼를 이롭게 하듯이, 사람의 마음은 그 개인을 선행 혹은 하나님 말씀을 향한 순종으로 나아가게 한다. 필론은 목자-양 은유를 왕권 사상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용례를 따르면서도, 개인을 향한 실천적인 측면에 적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내 과제는 이 특이성을 그리스 철학과 비교해 필론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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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성서학에서 '삶의 자리'(독일어: Sitz im Leben)에 대한 연구는 해석의 기초이다. 하지만, 이 단계에 충실하다고 해서 뒤이은 해석이 정당하지는 않다. 한편 작품 저작 시기와 동시대 인물이라고 해서, 그가 '삶의 자리'에 인식을 공유하고 올바른 이해를 하고 있다고 볼 수만은 없다. 해석자는 '삶의 자리'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올바른 해석'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현대인의 역사의식과 해석 능력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현 국가적 혼란 상황 속에서, 과거에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어른들을 보더라도 그들이 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순간들이 많다. 그 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그 시대에 대한 올바른 비평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진정한 어른은 단순히 나이와 경험 등이 많아서 어른이 아니라 시대를 읽고 앞을 내다볼 수 있어야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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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과 플라톤

끄적 2025. 1. 5. 07:36

필론이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내 의도와 무관하게 플라톤의 저작을 살펴본 후라서 그런지 필론의 글에서 플라톤 철학의 영향과 차이점이 보인다. 현재로서는 플라톤 철학을 사용하지만, 히브리 전승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는 인상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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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은 목자-양 은유를 여러 작품에서 사용한다. 내 분석에 의하면, 11 작품이 그 범위에 해당한다.

1. Agr. De Agricultura (On Husbandry)
2. Fug. De Fuga et Inventione (On Flight and Finding)
3. Jos. De Josepho (On Joseph)
4. Legat. Legatio ad Gaium (Embassy to Gaius)
5. Mut. De Mutatione Nominum (On the Change of Names)
6. Opif. De Opficio Mundi (On the Creation of the World)
7. Post. De Posteritate Caini (On the Posterity of Cain and His Exile)
8. Prob. Quod Omnis Probus Liber Sit (Every Good Man is Free)
9. Sacr. De Sacrificiis Abelis et Caini (On the Sacrifices of Abel and Cain)
10. Somn. De Somniis (On Dreams)
11. Virt. De Virtutibus (On the Virtues)

라틴어 축약어 순서대로, 가장 먼저 『De Agricultura』를 분석하고 있다. 목자-양 은유는 총 여섯 단락에 나타난다 (6, 10–14). 이 작품에서 저자는 창세기 9:20에서 자신의 진술을 펼쳐 나간다.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저자는 노아의 농사직에서 출발하여, 농사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농부(husbandman)와 농인(soil-worker)를 구분한다. 농부는 단순히 작농하는 자가 아니라 영적 유익을 추구하는 자이며, 농인은 문자 그대로 근로자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 개념을 목자(a shepherd)와 사육사(a cattle-rearer)에 적용하고 (6) 그 실례를 뒤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10–14).

필로에게는 목자와 소양육사의 구별은 단순히 직무 수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하다 (6).

저자는 왕에게 목자의 직무에 빗대어 "백성의 목자"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관례가 타당하다고 진술한다. 저자는 목자와 양의 관계를 왕권 사상과 연결하는 관행에 동조한다. 저자는 야곱과 모세를 목자직을 합당하게 수행한 인물로 거론한다 (10). 여기서 저자가 목자-양 은유와 왕권 사상 간 연관성을 전제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통치자와 인도자로부터 방치된 양떼의 위험을 법을 무자비하게 무시하는 지도자에 비유한다. 법을 무시하는 무리는 소들이며, 그 주징은 사육사이다. 반면 목자는 자신의 양떼를 유익한 길로 인도하듯이, 참된 지도자는 백성을 위해 유익한 선택을 한다 (11). 여기서 저자는 지도자와 그 집단의 행실을 통해 참과 거짓 지도자를 구별한다.

저자는 목자로서 하나님의 통치에 관심을 돌립니다. 이와 관련하여 시편 23:1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만물 통치와 그의 대리인의 통치를 선하다고 평가한다 (12). 여기서 관행적인 신적 목자와 인간 통치자라는 개념이 나타난다.

저자는 다시 시편 23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통치와 그의 부르심을 말한다.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저항이 있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수용하는 자들은 충만함을 누린다. 저자는 부요의 개념을 참된 부요와 헛된 부요로 나누며, 두 개념을 목자와 양떼에 적용한다. 요셉과 재회한 가족을 바로에게 소개하는 장면을 그 예시로 제시한다 (13).

저자는 요셉이 자신의 가족을 바로에게 목자로 소개하는 장면을 상세히 설명한다. 이집트에서 목자는 하천한 직업으로 인식되어 요셉의 형제들이 자신을 목자라고 소개하길 꺼리지만, 요셉은 그들의 요청과 달리 목자라고 소개한다. 저자는 요셉의 대처가 목자에 대한 바른 이해에 기초한 자부심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그는 야곱의 자녀들이 이집트에 정착하지 않는 이유를 목자-양 은유를 통해 설명하고, 목자와 사육사 사이를 구별한다 (14). 마지막 두 단락에서는 하나님의 통치와 이스라엘 족장들의 목자직을 연결한다는 특징이 보인다. 야곱과 그 자녀가 목자로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통치을 수용하는 자들에게 허락된 참된 부요의 길이며, 반면 이집트는 거짓된 부요의 길이다. 따라서 요셉이 자신의 형제들을 목자로 소개한 것은 바람직하며, 탐욕의 땅인 이집트는 야곱의 자녀들이 정착할 곳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스라엘은 참된 부요를 추구하는 목자로, 이집트는 거짓된 부요을 추구하는 사육사로 비유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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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활동 명세

끄적 2025. 1. 1. 07:23

학회 발표: 14회
학회 논평: 1회
출판 지원: 2회 (1회는 미채택, 1회는 현재 진행형)
Travel Awards: 2회 수상
외부 장학금: 1회 수상

해외 여행: 독일, 오스트리아, 캐나다,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국내 여행: 런던, 버밍엄, 에든버러, 하일랜드, 스카이섬, 안스트루더, 글라스고

2024년은 논문 작업을 위한 학회 발표에 집중했다. 그 연장선으로 두 곳에 출판 지원을 했다. 하나는 원고 미채택 통보를 받았고, 다른 하나는 심사 중이다.

학회 발표를 위해 영국 현지와 해외로 나돌아다녔다. 해외 학회는 Travel Awards로 조금이나마 재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학회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논평자로 참여할 기회도 가졌다.

덕분에 올 한 해 논문 작업을 꽤 진척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알찬 한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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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연구자의 무게

끄적 2024. 12. 30. 07:33

박사 과정 자체가 독립 연구자를 위한 훈련 과정이지만, 여전히 학생이라는 자리에서 훈련을 받는다. 

박사 학위 논문을 완성하기 전까지, 정확히는 수정까지 포함하여, 단 하나의 논문을 위해 수년 동안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출발은 개인의 역량이지만, 학교와 지도 교수 그리고 심사 위원의 기준에 따라 논문의 최종 품질이 결정된다.

박사 학위 취득은 개인 연구자로서 독립을 의미한다. 더 이상 지도 교수는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독립 연구자로 증명받는다.

논문 작업을 통해, 그리고 저널 기고 작업을 통해 독립 연구자의 무게가 점차 무겁게 느껴진다. 아직은 학생이라 교수들로부터 갖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학위 취득 이후에는 모든 과정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학생 신분에서 수용 가능한 실수를 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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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P 원고 제출

끄적 2024. 12. 30. 07:02

방금 JSP 원고 제출을 완료했습니다. 곧 검토 절차를 거쳐서 게재 여부가 결정됩니다. 몇 달 동안, 이 작업에 매달렸는데,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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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안녕하세요 목사님! 
저는 A 교회에 다니고 있는 청년 B입니다.

선교사이신 아버지 밑에서 자라오며 선교사역에 대한 비전을 품어오다가 다음세대를 향한 마음들을 새롭게 부어주셔서 여러 방향성들을 열어놓고 기도중에 있습니다.
현재는 M.div 석사 과정을 앞두고 꽤 오랜시간 고민해오고 있는데요, 미국 웨스트민스터에서 100%장학금 기회가 주어져 기도하던 중 목사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방향성중에는 후에 신학교 교수나,목사안수까지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가보지않은 길이라 어떤 쪽으로의 학위가 제게 유익할지 자문을 구할 분이 없어 기도중에 있었습니다.

추후 한국에서의 사역을 생각한다면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받는것이 좋다고 하신 의견을 보고 목사님께 여쭤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메일을 드려봅니다!
조언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B님.

제 유튜브 영상이 제 경험과 지인의 경험 등을 포함하고 있어 좁디 좁은 신학 유학의 길에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이메일이나 기타 경로로 조언을 구하시는 것 역시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답해 드리고 있습니다.

보통 한국에서 목회나 교수 사역 등을 고려한다면 한국 신학교 목회학 석사를 추천합니다. 목사 안수와 교단이 추후 진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가급적이면 안정된 교단 신학교(장신, 총신, 고신 등)에 진학하는 편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이 반영된 부분이기도 하고요. 

한편 미국 신학교 중에서 웨스트민스터나 칼빈처럼 한국 신학교에서 선호하는 곳이라면 달리 생각해 볼 수 있기도 합니다. 특히나 보수적인 한국 신학교에서 선호하는 웨스트민스터에서 전액 장학금을 제의 받았다면, 그 제안을 수락하는 쪽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큰 액수가 아닐 수 있지만, 장학금은 여러모로 중요합니다. 향후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 지원시 장학금 수상 내역을 기입하므로 중요한 사항입니다. 우선 그 학교에서 학위와 목사 안수까지 마치시고, 한국에서 사역을 시작할 무렵 편목 과정을 하셔도 됩니다. 편목은 상황에 따라 선택하시면 됩니다.

정황상 영어는 상당히 잘하실 거라 추측되어 별 영향은 받지 않으시겠지만, 석박사 과정을 위해서라면 영미권에서 수학하는 편이 확실히 더 유익합니다.

정리하자면, 일반적으로 한국 목회학 석사 과정을 추천하지만, B님의 상황은 미국 웨스트민스터 전액 장학금을 수락하는 쪽이 더 낫다는 판단입니다.

좋은 제안을 받으신 것 축하드리고요. 제 대답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혹여나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연락주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이광수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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