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오늘 미국인 평신도로부터 "네 영어 글쓰기는 대체로 영미권 출신 신학자들과 교수들 그리고 미국인 동료들의 글에서 배운 듯 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 부분은 굉장한 칭찬으로 들리는데, 그 뒷말이 반전이다. "나는 평균 이상의 어휘력과 문법 실력을 갖고 있는데, 네 글은 따라잡기 어렵다." 덧붙여 그는 "글은 간결해야 하는데, 학자들은 종종 자신의 일을 더 중요하게 보이려고 글을 쓴다"고 말했다. 그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내 영작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1. 내 글은 분명 영미권 신학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목회학 석사 과정에 입학인지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당시 모교엔 국내에서 알아주는 성서학 전문가들이 있었고, 난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주석들을 원서로 읽으면서 주해 연습을 부단히 했었다. 늦깍이 군 입대를 해서도 영문 소논문들을 틈틈이 읽으며 주해 연습을 하기도 했다. 성서연구의 기본적인 틀은 졸업논문을 통해 다질 수 있었다. 신학석사 과정에서도 원서 중심으로 글을 읽었고, 지금도 부단히 읽고 있다. 난 영미권 신학자들의 글을 열심히 읽으면서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해왔고 지금도 나만의 글을 쓰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 2. 철저한 인용 표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내가 목회학 석사 과정에서 공부할 때 성서학 교수님들은 이렇게 말했다. "각주가 많아도 상관 없으니, 인용한 부분은 다 표기하라." 표절에는 얄짤 없는 교수들 덕분에 각주 처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다만 신학자들의 글을 많이 읽다 보니, 나만의 글로 소화를 해도 글의 구조가 복잡해진다. 글의 구조를 단순화하려면, 그만큼 각주가 늘어나게 된다. 내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본문과 각주가 엇비슷하다. 지금도 각주가 많아서 줄일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데, 글을 단문으로 줄인다면 본문 보다 각주가 더 많아질거다. 아마도 지금의 내 글쓰기는 이 같은 고민의 타협점일지 모른다. 학자들의 견해를 최소한으로 반영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최대한 많은 글을 읽고 나만의 글로 쓰면서 동시에 독창적인 글을 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서 당분간 내 글쓰기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지 모른다. 3. 난 전문가 과정을 훈련 받고 있다 난 쉬운 글쓰기를 지향한다. 어휘나 문장력이 고급지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평소 나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난 엄연히 신학, 그중에서도 신약학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과정은 석사. 난 이미 한국에서 신학 석사를 마친 상태인데, 몇 전 년 졸업논문 심사과정을 통과한 후에 지도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이제 준 전문가가 된 걸 축하한다" 학문의 벽.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지만, 결국에는 전문가가 아니면 도달하기 어려운 지식의 장벽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견해를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하지만, 해당 분야는 학계에서도 지극히 전문적이다 보니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애물이 존재하는 듯 하다. 낯설다 못해 난해한 글이 된걸까? 반면 내 글은 교수들을 위한 글이기도 하다. 내 글을 가장 자세히 읽는 사람은 담당교수들이다. 내가 문법오류나 단어선택에서 지적을 받고는 있지만, 때로는 원어민의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을 듣기도 하지만, 글에 대해서는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4. 글을 쉽게 쓸 방법은 있다 궁극적으로 학문성을 유지하면서 대중을 위한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반복적인 퇴고를 거쳐야 가능하다. 아쉽게도 지금은 내 학문성을 인정 받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해서 간결한 글로 전환하는데 한계가 있다. 결론은, 내 글쓰기를 정당화하는 글이 되어 버렸다.


'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언의 계승과 익명성  (0) 2019.02.12
해석자의 의무, 채움  (0) 2018.11.09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0) 2018.05.18
도서관과 학교 수준  (0) 2018.05.18
내가 성서학자로 존재하려는 이유  (0) 2018.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