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이사야는 다윗 왕권 사상을 옹호하는 선지자이다. 그는 다윗 왕권의 정통성을 지지하는 동시에 후대에 나타날 통치자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37:35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그에 반해 이스라엘을 심판할 고레스의 등장에 관한 예언은 상당히 이색적이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왕/지도자에게 사용했던 '목자'와 '종'이란 칭호를 이방 왕 고레스에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이런 사례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이 정당하며, 그 수단으로 고레스가 쓰임 받았다는 깨우침을 통해서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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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이스라엘의 고정 관념, 혹은 신앙과 전승 등을 뒤집는다는 데 있다. 내가 다루는 주제에 한해서는 ‘고레스’와 ‘야웨의 종’이 그러하고, 이 두 인물은 유대 메시아 사상에서 독특한 궤적을 남긴다.

고레스는 이방 왕이지만, 이사야는 이스라엘 왕에 부여될 명칭으로 이 그를 부른다 (44:28; 45:1). 그리고 그의 업적은 마치 멸망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이상이 담긴 다윗 왕과 같다. 실제로 포로 공동체는 열방 심판과 이스라엘 재건 명령은 장차 나타날 다윗과 같은 왕의 업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일을 행한 인물은 이방 왕이었다. 이사야에게 이같은 모순적인 현실은 그로 하여금 기존 유대 전승을 뒤집어야 하는 도전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사야가 신적 계시에 순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별개로 그는 여전히 청중들로부터 극심한 저항에 마주하게 된다.

고레스 왕의 출현과 유대 포로민들의 저항

고레스와 다윗 계통의 왕

고레스의 등장과 열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


야웨의 종의 정체에 관한 연구들과 각종 견해들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논쟁이 가능한 영역으로 보인다. 연구 추세가 ‘종’의 정체를 역사적 인물에서 이스라엘로 해석하는 경향으로 넘어가듯 싶은데, 이런 변화마저 정체를 밝히는 어려움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현재 나는 그의 정체를 특정 인물로 보고 있으며, 추후 선행연구를 검토하면서 내 견해가 달라질 수 있다. 그의 정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사야가 그의 정체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사야 역시 군중들처럼 ‘종’의 정체를 가볍게 여겼지만, 어떤 특정 사건을 통한 유대 공동체의 상황이 변화되면서, ‘종’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 이같은 변화 역시 군중들과 불일치를 일으킨다.

이사야서에 나타난 '야웨의 종'의 정체


이처럼 ’고레스’와 ‘야웨의 종’에 대한 이사야의 시각은 유대 공동체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귀환 공동체의 이스라엘 재건으로 인해 고레스에 대한 이사야의 평가는 후대에 수용되지만, 아마도 ‘야웨의 종’에 대한 인식은 오랫 동안 극히 일부에게 통용되었다고 보여진다. 극적인 변화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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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대에도 각 국가의 상황에 따라 주변 국가들에 대한 인식이 현저하게 다르다. 한국인으로서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듯이, 이스라엘 역시 열국을 대하는 온도차가 존재했다. 더구나 전쟁이라는 실존적 위협이 언제든 발발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열국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킨 결정적 사건중 하나가 바로 고레스 왕의 등장이다.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이사야에서 고레스는 "내 목자"로 불리운다. 고대 근동에서 목자는 수호신과 그의 대리자인 왕에게 부여되었으며, 이스라엘도 이런 전통이 적용되었다. 목자는 대체로 이스라엘 왕을 가르쳤으며, 종종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특히,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상적인 왕으로 꼽혔던 다윗은 멸망한 이스라엘을 회복할 종말론적 왕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전승이 전해지는 가운데 이방 왕 고레스에게 "내 목자"라는 칭호가 부여되는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성전 재건 명령과 관련이 있다. 이렇듯 귀환 공동체(혹은 소수의 선지자들을 포함한 무리들)가 갖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의미는 남다르다. 성전 재건은 하나님의 예언이었기 때문에, 그 주체가 이방 왕이라 하더라고, 그 명령을 내리고 시행하도록 했다면 그는 하나님의 목자가 될 수 있다.

또한 고레스는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선지자가 고레스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사건은 실제하지 않았겠지만,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라고 담대하게 선포한다. 그 이유는 후술되어 있듯이, 열국을 정복할 왕이 등장할 예언을 성취할 자이기 때문이다. 오랫 동안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이후 남유다의 멸망 이후에는 다윗과 같은 왕이 등장하여 열국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리라는 신앙이 강화되었다(공동체의 신앙과 달리 예언자들의 선포가 강력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처럼 고레스의 등장은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Davidic Messianism)을 갖고 있었던 귀환 공동체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자리잡게 된다. 다윗 가문에서 조상에 버금가는 이상을 실현할 메시아가 등장하리라는 믿음을 고수했던 그들에게, 낯선 이방 왕이 그들의 오랜 신원을 성취하였다. 전쟁을 통해 정벌해야 할 대상 국가의 적장이 이스라엘의 열망을 실현시키는 현실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분명 고레스 왕을 향한 칭호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례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하지만 여기서 더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이 열국을 향한 인식에 대한 변화가 얼마나 될지는 또다른 영역의 문제이다.

학자들이 이사야서의 '네 번째 야웨의 종의 노래'라고 불리워지는 본문을 두고, '종'은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화자'는 '열국'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러한 해석은 당시 처한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의 척박한 상황을 '고난받는 종'에 투영한 결과로 보인다. 화자의 등장은 처참한 귀환 공동체를 바라보는 열국으로 제3자의 시선으로 처리한다. 앞으로 이사야서를 더 깊이 관찰해야 하므로 아직은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현 내 관점으로는 이러한 입장은 부자연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내가 고레스의 등장으로 인한 열국을 향한 인식의 변화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역사적으로 고레스 왕처럼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에게 호의적인 지배자는 드물었다. 이스라엘 멸망 이후 현지에 정착한 거주민들에 의해 성전 재건 공사가 중단되었고 다리오 왕에 의해 다시 공사가 재개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다리오 왕을 고레스 왕처럼 묘사하지 않는다. 그만큼 고레스 왕에 대한 이사야의 묘사는 이례적이다.

또한 고레스 왕 이후에도 이스라엘을 회복할 왕, 이번에는 이스라엘 혈통을 통한 왕의 등장을 고대하는 신앙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는 흔적이 발견된다. 다만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강조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지는 현상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이사야서의 독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열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극히 한정적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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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the Messiah? The Historical Background to Isaiah 45:1.
https://www.academia.edu/2450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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