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예수의 죽음은 세례 요한의 발화를 통해 처음 예고된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란 문구는 속죄와 관련해 이사야 53장의 "야웨의 고난받는 종"과 연결하는 해석이 대세를 이룬다. 53장에서 속죄의 역할과 "어린 양"이란 문구는 이러한 해석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53: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더구나 요한이 선지자 이사야를 언급한 구절에 의해 해석자들은 이런 경향을 강화한다.

12: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이사야 53장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사 53: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이러한 유사성은 예수와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 사이의 연결에 타당성을 부여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요한이 선지자 이사야를 언급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나는 현재 이사야 53장에 언급되는 야웨의 종을 메시아와 연결 짓지 않으며, 속죄는 이사야가 덧붙인 개념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사야 53장에서 종의 고난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이사야조차도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닫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사야는 종의 고난이 갖는 의미를 깨닫고 난 후 유대인들의 '고난'이라는 관념을 뒤집는다. 1절의 표현은 하나님의 역사, 그의 의지가 군중들이 예상하지 못한 인물을 통해 나타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이 구절에서 중요한 관점은 '예외성'이다.

요한복음 12장도 마찬가지이다. 유대 메시아사상의 스펙트럼이 넓었다고 해도, 예수의 가르침은 절대다수가 신봉했던 사상(들)과 결을 달리했다.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여기서 큰 무리가 모인 이유, 그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이유는 예수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왕은 다윗과 같은/다윗 계열의 왕(Davidic King)을 가리킨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과 다른 행보를 보이셨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12: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이 구절에서도 예수께서는 '예외성'을 말씀하신다. 선지자 이사야의 군중과 마찬가지로, 예수와 함께 했던 무리는 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직 예수의 제자들만이 예수의 부활 이후에 그의 가르침을 깨닫게 된다.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요한복음 12장 38절에 예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언급하신 이유는 '예외성'이라는 공통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지,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과 자신의 사역을 일치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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