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에스겔 34장에서 다윗 언약 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시내산 언약이다. 여러 학자들이 시내산 언약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다윗 언약 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지고 주장한 경우는 없었다.


Twice, however, Ezekiel took up the topic of the Messiah directly. In Ezek. XXXIV. 23-4 a shepherd is mentioned whom God is to set over his people, his “servant David,” and in Ezek. XXXVII. 25ff. the prophet again speaks in exactly the same way of the shepherd, the servant David, who is to rule over “Judah and Joseph,” now finally reunited as one nation. There is, of course, no mistaking the fact that in Ezekiel also the topic of the Messiah and the traditional concepts specific to it are not altogether properly drawn. He is strangely unable to expound the Davidic tradition. One looks in vain in Ezekiel for an exposition of the subjects connected with it: instead, in both passages he glides into the wording of the Exodus covenant tradition. In Ezek. XXXIV. 23f. the formula belonging to the Sinai covenant-I their God, they my people-follows upon the heels of what is said about the Messianic advent of the king, and in Ezek. XXXVII. 23 it immediately precedes it. How then is the covenant concept which appears in both places to be understood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history of tradition? Is it a renewal of the covenant with David, or of the Sinai covenant? Undoubtedly the latter. We have just seen how little Ezekiel expounds the once-widespread Messianic-Davidic tradition. Thus Ezekiel fuses the Sinai tradition and the David tradition which Jeremiah still kept essentially separate. But the Sinai tradition dominates his thought-under the new David, Israel will obey the commandments (Ezek. xxxw. 24). - G. von Rad, Old Testament Theology, Vol.2,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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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에스겔이 목자 모티프를 통해 선포하고 싶었던 내용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이다,


Then, however, a final expansion makes it quite indubitably clear how much God’s desire for salvation really means the complete deliverance of his people, a deliverance in which those who hunger and thirst will be satisfied (Lk 6:21; Mt 5:6), those who are in danger of losing their peace receive “peace on earth” (Lk 2:14; Jn 16:33) and in which every heavy yoke of constraint and enslavement is done away (Jn 8:36). In the removal of all shame, God’s people will find their full glory (Jn 17:22). In all this, however, there is no question of the establishment of human dominion, but of the event in which God reveals himself as the God of his people. “Your God—among you.” Such a future is proclaimed to God’s people by his prophet.- Walther Zimmerli, Ezekiel 2: A Commentary on the Book of the Prophet Ezekiel Chapters 25–48, Hermeneia: 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Translated by James D. Marti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3)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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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서는 에스겔과 스가랴의 연관성을 분석하고, 두 본문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려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아래 출처는 Mark J. Boda, Haggai, Zechariah, The NIV Application Commenta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9) 201이다. 각주 20번에 언급된 자료들은 나중에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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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서 다윗 계열의 메시아 사상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 사상은 지도자들을 향한 심판과 새로운 지도자의 등극이라는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독자들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목자 모티프를 사용하는 경우가 잦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셉 블렌킨솝(Joseph Blenkinsopp)은 『David Remembered: Kingship and National Identity in Ancient Israel』에서 다윗 계열의 메시아 사상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었다. 

마지막 9장은 로마 제국에 대한 저항에 대해 다룬다. 일부 자치권이 보장되는 지역이 있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로부터 해방되기를 염원했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다윗과 같은 메시아의 등장을 고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메시아의 표적들을 행하셨고 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메시아로 여겨졌지만, 하나님의 구원사를 위해 십자가형벌을 짊어지셔야 했다. 바로 이 지점이 오늘 날까지 수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이다.

다윗 계열의 메시아 사상에는 지도자들을 향한 심판과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주제는 목자 모티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비유에서는 목자의 자기희생을 말한다. 오랜 전통과 달리 목자 모티프를 사용하면서 지도자들을 향한 심판과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우리는 요한복음의 선한 목자 비유의 독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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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몇 일 전 에스겔과 스가랴의 연관성에 대한 글을 썼는데, 오늘 제 주장을 뒷받침해 줄 근거를 찾았습니다. 출처는 가장 최근에 출간된 마크 J. 보다(Mark J. Boda)의 스가랴 주석서입니다. 보다 교수는 현재 캐나다 맥매스터대학교에 재직 중이며, 스가랴 전문가입니다.


Interestingly, 12:2–13:6 follows 11:4-16, which, as noted in the commentary on that section, is heavily influenced by Ezekiel 34 and 37. Thus, the battle/spirit unit in Ezekiel 36–37 follows after the shepherd unit in Ezekiel 34, and the battle/spirit unit in Ezekiel 38–39 follows after the shepherd unit in Ezekiel 37.- Mark J. Boda, The Book of Zechariah,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Eerdmans, 2016)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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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 매카이(Cameron Mackay)은 "Zechariah in relation to Ezekiel 40–48"란 소논문에서 스가랴가 에스겔 40–48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는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번째는, 스가랴의 생존연대이다. 스가랴는 포로의 귀환을 목격한 세대이다. 두번째는, 스가랴서와 에스겔 사이에 존재하는 본문의 유사성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과 회복 등 서로 중첩되는 주제가 존재한다. 세번째는, 지형적 배경이다. 두 본문 모두 예루살렘이 지형적으로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의 글은 매우 흥미로우며, 실제로 그의 주장대로 스가랴가 에스겔 40–48장에 대한 이상을 계승 받았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현재 내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나는 에스겔 34장의 이스라엘 목자들을 향한 예언이 스가랴 9–14장의 목자 모티프와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의 근거는 두 본문 모두 동일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데 있다. 첫번째, 이스라엘 목자들을 향한 심판. 두번째, 여호와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신다.

만약 내 전제가 옳다면, 이스라엘 목자들을 향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구조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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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1-18절를 보면, 예수께서는 자신을 "문"(7, 9절)과 "선한 목자"(11, 14절)로 표현한다. 예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동시에 "문"과 "목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해석적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관련 연구자료들을 읽어보면, 이 구절들을 우화(allegory)가 아닌 비유(parable)로 해석해야 하며, 각 단락마다 예수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되리라 예상되지만, 만약 "문"과 "선한 목자"의 연관성에 대한 선명한 답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매우 보람된 공헌이 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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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본문을 읽을 때 다른 성경 구절들이 연상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목자들을 향한 심판과 새로운 목자의 등장이라는 주제의 경우에는 에스겔 34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본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 학기 요한복음의 연구주제인 "COVENANT AND GOOD SHEPHERD IN JOHN 10:1–21"에 인용할 자료들을 찾고 있는데, 주제와 연구방법론은 저마다 달라도 연구자들 모두 예외 없이 에스겔 34장을 언급하고 있다. 선한 목자의 죽음("내 목숨을 버리는 것", 17절)은 이사야 53장을 관련 구절로 제시힌다. 이처럼 특정 주제를 접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본문이 있기 마련이다.


내 고민은 '성경 저자들 그리고 그들과 동시대에 살았던 청중들도 현대인과 동일한 본문을 떠올렸을까?'하는 의문에 있다. 두 본문간의 유사성을 고려한다면 의문의 의지가 사라질만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구약성경(혹은 신약성경이 기록되기 이전의 구전이나 기록들을 포함한)에 대한 이해에 대한 확신은 아직 단언할 수 없다. 더구나, 요한복음의 저자는 구약 인용에 대한 단서를 명확하게 남겨두지 않았다.


내 이해에 의하면, 물론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목자들을 향한 심판과 새로운 목자의 등장이라는 주장은 스가랴 9-14장에서도 두드러진다. 특히 내 주안점은, 스가랴 9-14장에 나타난 목자 모티프에 대한 이해에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에 대한 비유를 설명할 때에는 스가랴 9-14장을 언급하지 않는다. 에스겔 34장이 간략하게 그러나 명확하게 이 주제를 담고 있는 반면에 스가랴 9-14장은 방대한 분량을 살펴봐야 하므로, 간결성이란 측면에서 에스겔 34장이 더 선호되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이번 연구에서 시도해 보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비유와 스가랴 9-14장을 연결한 해석이다. 스가랴 9-14장의 목자 모티프는 이미 연구를 해놓았기 때문에 요한복음 10장과 연결하는 작업은 어렵지 않으리라 예상 되지만, 과연 내 가정만큼이나 두 본문의 긴밀성이 잘 설명될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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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as J. Köstenberger, Jesus the Good Shepherd Who Will Also Bring Other Sheep (John 10:16): The Old Testament Background of a Familiar Metaphor, Bulletin for Biblical Research 12.1 (2002) 67-96.

https://www.ibr-bbr.org/files/bbr/BBR_2002a_05_Kosetenberger_John10Shepherd.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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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ome H. Neyrey, The "Noble Shepherd" in John 10: Cultural and Rhetorical Background,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Vol. 120, No. 2 (Summer, 2001), 267-291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를 그리스-로마 문화의 배경으로 해석한 글이다. 저자의 연구에 의하면, 둘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연구는, 그가 밝힌대로, "선한 목자"의 유대적 배경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헬레니즘적 영향을 밝히는데 공헌하고 있다.

이 논문은 저자의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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