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스가랴가 에스겔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법 많다. 내 연구 범위에 한정해도, 에스겔의 예언을 스가랴가 발전시킨 흔적들이 발견된다. 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면 제법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스가랴 1-8장이 에스겔 40-48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9-14장의 묵시적 배경이 충분히 설명되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스가랴 9-14장이 에스겔 34-37장을 매우 중요하게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스가라가 에스겔 전통을 계승한 이유는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질문에 관해서는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은 모두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을 예언하는데,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목자-왕 전승을 사용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고 있지만, 이사야는 이 은유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이외에 여러 면에서 이사야의 독자적인 위치가 눈에 뛴다.

현재 내 관심사 중 하나는 요한복음에서 이사야의 역할이다. 분명 요한은 이사야를 잘 알았고 그의 복음서에 이사야를 연상시키는 본문들이 여럿 존재한다. 특히,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에서 예수의 자기 희생에 대한 가르침이 이사야 53장에서 유래했다는 기존 견해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목자-왕 전승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목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린다. 나 역시 연구제안서를 작성할 당시에는 이 견해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아쉽게도 아직까지 이 과정에 대한 설득력 있는 주장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예수의 자기 희생에 대한 다른 대안은 이사야 53장이 아닌 스가랴 9-14장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이 견해를 처음 접했을 당시에 나는 매우 생소하게 들렸다. 내 분석에 의하면 스가랴 9-14장 자체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예수의 자기 희생과 연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가와 마태의 사례를 통해 그 같은 주장을 개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차후 이 부분에 집중할 계획이다.

쉽게 말하자면 요한복음 10장이 어느 본문의 영향을 받았는지 밝히려면 이사야, 에스겔, 스가랴를 다루면서 세 선지서 중에서 누가 요한복음과 가장 밀접한지 추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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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F.F. “The Book of Zechariah and the Passion Narrative.” Bulletin of the John Rylands Library
(March 1961): 336-353. 

https://biblicalstudies.org.uk/pdf/bjrl/zechariah_bruc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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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왕 전승은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의 주요 배경이다. 예수의 가르침과 유대인들의 반응은 당시 목자에 대한 공통적인 이해가 있다는 증거이다. 실제로 요한복음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다윗적 구세주(Davidic messiah)로 믿었다.

목자-왕 전승은 다윗적 구세주 사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나,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미흡하단 상황이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기본적으로 목자는 양 떼를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하고 물과 초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 둘 사이의 관계를 백성을 위한 왕의 의무로 규정한 것이 바로 목자-왕 전승이다. 그래서 목자나 왕의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다윗적 구세주 사상은 목자-왕 사상을 근간으로 한다. 다윗은 그 누구보다 목자-왕 전승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어린 시절 다윗은 목자로서 양을 지켰다. 또한 전통적으로 목자와 양 떼, 즉 목자라는 한 개인과 양 떼라는 집단으로 비유되는 관계를 시편 23에서는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로 적용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들이 영원히 이스라엘을 통치한다고 약속하셨고(다윗언약), 이스라엘 백성은 그 약속에 기대어 새로운 다윗의 등장을 기대했다. 이것이 바로 다윗적 구세주 사상이다. 그래서 다윗적 구세주 사상에서 목자의 죽음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께서 목자-왕 전승과 달리 선한 목자의 죽음을 가르치셨고, 그로 인해 유대인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도대체 예수는 어떤 근거로 선한 목자의 죽음을 가르치셨는가? 이것이 나의 질문이자, 박사 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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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Hamilton 교수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요한복음에 대한 이사야의 영향"이란 제목의 글이다. 비판할 내용이 많지만, 참고문헌들은 매우 유용해 보인다.


The Influence of Isaiah on the Gospel of John

https://jimhamilton.info/2007/11/19/the-influence-of-isaiah-on-the-gospel-of-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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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어거스틴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담화는 에스겔 34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두 본문 사이의 주제적 유사성이다. 에스겔 34장에서는 불성실한 목자와 이스라엘의 참된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대조가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고, 요한복음 10장에서는 도둑과 강도를 선한 목자와 대조하고 있다. 더나아가 수많은 학자들은 스가랴 11장은 요한복음 10장과 반대되는 악한 목자를 묘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C. K. Barrett은 C. H. Dodd의 글을 인용하여 스가랴 11장은 에스겔 34장과 함께 요한복음 10장의 배경이 된다고 주장한다. 스가랴 11장에 나타나는 두 목자에 대한 기술은 악한 목자와 선한 목자를 대조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악한 목자에 대한 심판과 선한 목자에 대한 기술은 요한복음 10장의 주제와 일치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결국, 스가랴 11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요한복음 10장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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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eschen, Charles A. "The Death of Jesus in the Gospel of John: Atonement for Sin?" Concordia Theological Quarterly 72. No. 3 (2008): 244-261.


https://media.ctsfw.edu/Text/ViewDetails/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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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로날드 클레멘츠의 글을 인용해서 선지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자.


Probably such a political possibility could not readily have been envisaged; a popular democracy was not then a recognized ideal in Israel. Instead, the full weight of responsibility is placed by Israel's prophets on the institution of kingship—and by implication on all related offices of public leadership—as a form of commitment and service for the benefit of others. - Clements, Ezekiel, 155-6.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중민주주의가 이상적인 체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언급은 시대착오적이다. 그 당시 대중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생성되어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므로, 클레멘츠의 진술은 부적절하다. 그러나 선지자의 역할에 대한 언급은 타당하다. 이스라엘에서는 왕조 체제라 하더라도 선지자는 왕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래서, 왕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했을 때 그 앞에 서서 그들을 꾸짖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다. 이러한 사실을 오늘날 적용해보면, 목회자들은 선지자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제사장 역할만 부각시키고 선지자의 책무는 다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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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날드 클레멘츠(Ronald E. Clements)는 자신의 『에스겔』 주석에서, 다윗 왕조의 몰락 이후 다시 등장하는 다윗 계열의 왕조에 대해 주해하면서 대중민주주의(a popular democracy)를 언급한다.
Probably such a political possibility could not readily have been envisaged; a popular democracy was not then a recognized ideal in Israel. Instead, the full weight of responsibility is placed by Israel's prophets on the institution of kingship—and by implication on all related offices of public leadership—as a form of commitment and service for the benefit of others. - Clements, Ezekiel, 155-6.
비단 고대 이스라엘 시대만이 아니라 중세시대에도 왕권신수설처럼 왕의 권한을 강조하는 이론들이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해왔다. 이는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만이 아니라 일부 세력의 강력한 권력이 민중들을 압박해온 탓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단순히 특정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지도탓의 탓이 더 큰 문제로 작용할 때가 많다. 엄밀히 말해서, 체계(system)가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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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remains, however, an incomplete account of Ezekiel’s picture of the new Israel, for God’s people are once more to be led by a monarch. - Gerhard von Rad, Old Testament Theology Volume Ⅱ: The Theology of Israel’s Prophetic Traditions, Translated by D. M. G. Stalker (New York: Harper & Row, 1965) 235.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이스라엘에 대한 에스겔의 그림이 불완전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번 더 왕조의 통치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기를 거쳐 이스라엘 본토로 복귀한 선지자 에스겔은 목자 모티프(34장)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비록 목자 모티프를 통해 야웨께서 이상적인 목자가 되신다는 희망적인 선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바벨론 포로기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을 말하고, 야웨의 회복을 말해야 할 때 그는 그야말로 처참한 심경에 빠질 수 밖에 없었을거 같다.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 평가 받는 다윗 조차도 궁극적인 왕으로 간주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왕조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한계성을 절감했을 때 에스겔이 느꼈을 참담함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거다. 그리고 그에 반하여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갈망은 얼마나 절실했을지 생각하면 내 가슴이 울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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