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솔로몬의 실정으로 왕국이 분열하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일 공동체의 역사를 향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열 왕국 시대에는 서로 다른 사회 정치 종교 등 문화적 환경에 균열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유다 왕국의 구두 전승과 기록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현재 구약성경은 유다 왕국의 사관이 지배적으로 반영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첫 번째 증거는, 북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부정적 평가이다. 북이스라엘 오므리 왕조는 남유다 보다 부강했지만, 그들의 업적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악행에 주목하여 신랄하게 비판한다.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엘리야와 엘리사를 비롯한 여러 예언자가 두각을 드러냈지만 그들의 예언자 전통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다. 북이스라엘은 사마리아 오경이라 하여 모세오경을 강조하는 신앙적 강직성을 보여주었지만, 이에 대한 남유다의 평가는 냉랭하다.


두 번째 증거는, 남유다 왕국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이다. 이스라엘의 분열은 전적으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탓이지만, 다윗 왕조를 통해 분열된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고 믿었다. 또한,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과 회복 선포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선지자들이 먼저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관심은 조명되지 않고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이후 남유다 왕국에서 동일한 메시지를 선포한 선지자들이 더 많은 조명을 받았다. 물론 종교개혁을 단행한 히스기야와 요시야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하지만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이 없었다면, 남유다 왕국은 스스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또한 기록이 역사적 사실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남유다 왕국은 북이스라엘 왕국보다 더 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어서 더 많은 선지자의 예언과 각종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 있었을 뿐, 진정 그들이 북이스라엘보다 더 나은 신앙적 전통을 가졌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이 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내 신앙과 학문적 여정은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리고 '참된 신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내 관심사에 대한 연구들을 많이 남겨 두었는데, 나는 언제 그 뒤를 밟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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