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한 자료 조사 과정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글이므로 차후 검증이 필요하다.

느헤미야 8장은 귀환 공동체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에 대한 요청으로 시작한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느헤미야 8장에 기록된 에스라의 강독은 그의 예루살렘 사역이 종료되는 시점이 아닌  시작으로 봐야 하며, 이 기록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사역에 관한 절정으로 자리를 잡는다 (Williamson, Ezra, Nehemiah, 285).

에스라는 낭독을 지속하던 중 초막절을 준수하라고 지시한다 (14-17절).

14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에 집중하고 싶은데, 첫 번째는 초막절 준수에 관한 근거이고, 다른 하나는 초막절의 기능이다.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초막절을 준수하라고 백성에게 명령했다면, 그 근거는 레위기 23:33-43과 신명기 16:16-17, 두 구절로 압축된다. 

레 23:3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신 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에스라의 지침(15절)을 고려하면, 헌금 이외에 다른 지침이 없는 신명기 16장보다는 레위기 23장의 영향이 더 두드러진다. 여전히 느헤미야 8장과 레위기 23장 사이의 차이점은 존재한다.

느 8:15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레 23:4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그러나 에스라가 레위기 23장에 근거해 초막절 준수를 명했다면, 초막절 이전에 언급된 속죄일(레 23:26-32)이 문제가 된다. 여기서 신명기 16장을 선택하면, 속죄일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만, 에스라의 초막절 지침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에스라의 가르침이 신명기 16장의 영향을 받았으나 레위기 23장에 기반한다는 해석이 현실적인 타협점으로 보인다. 레위기 23장과 신명기 16장 사이의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 역시 타당하다 (Williamson, Ezra, Nehemiah, 295). 만약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모세의 율법책이 서로 다른 형태로 전승되었다고 하더라도, 에스라가 두 본문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추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스라엘 역사를 배우지 않은 유대인들이 많아서 몇 가지가 무시되었다는 주장(Batten, Ezra & Nehemiah, 363)이 있으나, 이스라엘 자손이 일곱째 달에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낭독하라고 요청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자손이 모인 시기와 에스라의 초막절 준수 명령이 이스라엘 자손과 에스라 모두 이스라엘 절기에 대해 알고 있다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여전히 속죄일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 지점에서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의 정체성을 고려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유수와 귀환을 통해 죄에 대한 심판과 회복을 경험했다. 그러므로, 고대 이스라엘의 영광을 재현하는 귀환 공동체에 속죄일은 당시 불필요하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을 수 있다. 이 부분은 차후 연구가 필요하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모세의 명령 이후 처음 초막절을 준수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17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초막절 준수에 관한 기록을 통해 이런 반응은 정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회중은 스스로 초막절 규정대로 절기를 지킨 첫 사례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스라엘 회중의 모세의 율법에 관한 요청은 앞서 성벽 건축(7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1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여전히 보수되어야 할 주요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자신의 터전은 건축조차 못 했으나 그들에게 성벽 건축은 남다른 의미로 작용했다고 보인다.

4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느헤미야의 감동과 계보 등록 사업이 그 증거이다.

5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시므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 거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초막절 동안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계속 낭독한다 (18절). 따라서 8장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사건은 에스라의 하나님의 율법책 낭독이라 할 수 있다 (Williamson, Ezra, Nehemiah,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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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서에는 예루살렘 거주민들이 옛 영광이 훼손된 상황에서 간간이 생활하다가(1-2장) 느헤미야의 권면으로 재건 사업을 시작한 듯이 진술되어 있다(3장 이후). 성벽 건축과 문짝을 설치한 이후에야 거주민들의 족보를 살펴본다(7:1-5). 여기서 처음으로 귀환 공동체의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언급된다(7:6-7).

7:5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시므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 거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7:6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와 각기 자기들의 성읍에 이른 자들 곧

7:7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사랴와 라아먀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왜와 느훔과 바아나와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

느헤미야서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활약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반면 느헤미야의 등장으로 인해 성전 재건 사업이 주도되고(1-7장), 그 후에는 에스라가 등장하여 모세의 책에 따라 살아가기로 헌신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그린다(8장 이후)

에스라서에서는 귀환 공동체의 족보를 앞에 배치한다 (2장).

2: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2: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그리고 예수아와 스룹바벨의 주도로 제단부터 시작해 본격적인 재건 사업이 진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3:2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3:3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이 구절 이외에도 에스라서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활약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성전봉헌식(6:16ff)을 기점으로 두 인물은 더이상 등장하지 않고, 에스라가 주목을 받는다(7장 이후).

느헤미야서와 에스라서는 재건 사업이 최대 과제로 놓여 있고, 여러 인물 가운데 에스라가 중심 인물로 그려진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에 대한 집중도는 다르지만, 그들은 결정적인 활약을 한 인물로 조명받지 못한다.

내 관심사는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에 있다. 이사야 52-53장의 '고난받는 종'은 역사적인 단서를 남기지 않는다. 구약 성경은 의도적으로 본문의 선명성을 날리기도 하는데, 그 경우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연상시키되 열린 해석을 가능하도록 하려는 의도를 가진 경우가 잦다.

나는 이사야의 네 번째 '야웨의 종의 노래 '(52:13-53:12)도 그러한 의도를 가진 본문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저자와 동시대 청자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와 관련된 특정 인물과 사건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후대 사건에 적용 가능하도록 종의 정체를 명시하지 않는다.

이사야가 염두에 둔 인물이 스룹바벨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허나 분명한 것은 귀환 공동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인물은 희생당했고(아마도 정치적 지도자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귀환 공동체는 죄악 가운데 행하며 지도자의 뜻을 따르길 거부했고, 이는 모세의 율법에 합당치 않았다. 이사야는 이같은 현실에 애통하고 통곡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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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유대교의 기원으로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꼽는다. 흥미롭게도 포로기 문학에서도 이 둘의 영향은 지대하다고 한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관료로 아닥사스다 왕을 섬겼다(1:1; 특히 2:1-10). 우리는 그가 유대 포로민 중 엘리트 계층에 속한 가문 출신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그가 모세의 율법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1:7-9).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 출신이다 (7:6-9, 그의 가문에 관해서는 7:1-5를 보라).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7:6)이었고,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7:10)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 모두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의 성전 재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 관료로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으로 성전 재건을 가능케 하는 공헌을 했고, 에스라는 율법 교사로 귀환 공동체가 성전 재건 이후 야웨 신앙 공동체로 회복되도록 이끈다. 둘 다 모세의 율법에 익숙했었다. 바벨론 유수 이후 로마 제국의 통치 이전까지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의 정착과 신앙 회복이란 측면에서 이 둘의 공헌은 역사에 길이 남을만하다.
 
그런데도 이 두 거인의 의도와는 무관한 부정적인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예루살렘 멸망과 포로민의 바벨론 이주 이후 팔레스타인 거주민을 적대시하는 소위 "텅 빈 땅 신화" 그중 하나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역사 해석에서 신명기사관이 과도하게 영향력을 갖도록 한 것이다.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이스라엘 엘리트 가문 후손이자 바벨론 포로민의 후예라는 출신 성분과 모세의 율법에 익숙했다는 공통점이 바로 이 두 지점에서 한계로 나타난다. 에스라가 "주의 종 선지자들"(9:11)의 말씀을 인용하지만, 그 의도는 이방인으로 인해 예루살렘 땅이 더러워졌다는 비판을 하기 위해서다. 이어서 에스라는 통혼 금지 조치를 취한다.   

예언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원인이라고 수없이 말한다. 아마도 느헤미야와 에스라, 그리고 후대 신명기사관 편집자는 이 지점에 주목했음이 분명하다.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은 신명기사관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회복은 신명기사관으로 해석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예언자들이 언약을 선포하는 이유이다. 신명기사관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심판은 필연적 결과이지만, 이스라엘의 회복은 그 어디에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반대로 언약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렇듯 신명기사관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래서 나는 신명기사관에 대한 의구심이 들고 있다. 또한 내가 언약 신학의 기능에 일차적 관심을 두고, 더하여 신명기 사관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연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언서의 위치는 어디인가? 모세의 율법은 신명기사관으로 요약할 수 있는가?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비롯해서 수많은 후대 해석자들이 신명기사관에 집착하는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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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느헤미야 개론』 (H.G.M. 윌리암슨, 민경진 역, CLC)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한 권의 책으로 여기고 그 역사성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저작연대와 본문배열에 대한 연구는 그리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주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저자인 윌리암슨은 기존 연구에 대한 비평과 함께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데, 그 근거는 치우침 없이 균형을 잡고 있다고 보인다. 1-3장은 별 이견 없이 읽었다.


4장은 신학에 대해 다룬다. 이 부분이 내 관심사였다. 설교자로서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담긴 '저자의 의도'와 '본문에 의미'를 파악하고 설교하고 싶었다. 윌리암슨에 의하면,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연속성과 정당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두 본문은 바벨론 포로기의 단절된 역사에 대한 고민에 대한 해답이라 할 수 있다. 귀환민들에 대한 표현, 성전 재건에 대한 표현, 율법에 능숙한 에스라의 등장은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봐야 한다. 이러한 견해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전통적인 관점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에스라 느헤미야 개론
국내도서
저자 : H.G.M. 윌리암슨 / 민경진역
출판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201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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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기원

추천도서 2016. 6. 6. 19:42

『유대교의 기원』(조셉 블렌킨소프, 소형근 역, 대한기독교서회)


포로기신학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가 이방 땅에 살아가면서 형성된 신학을 의미한다. 그 기간은 바빌론 포로 당시부터 옛 이스라엘 영토로의 귀환까지로 볼 수 있다. 시대구분에서 쟁점이 될만한 사항은 귀환 이후 언제까지 포로기신학으로 봐야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 되겠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바로 포로의 귀환과 그 이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본문에 기록된 성전재건과 공동체를 회복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포로 당시에 형성된 신학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다. 당연히 주요인물인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어떤 신학을 갖고 있었는지 유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유대교의 기원에 어떤 역할을 했을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제안은 네 가지이다.


첫번째, 유대교의 기원은 헬레니즘이 아니라 바빌론 제국을 중심으로 살펴봐야 한다. 두번째,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바빌론 유수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다. 세번째,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성전재건을 통해 야웨신앙을 중심으로 한 종교국가를 세우고자 했다. 네번째, 느헤미야는 하스모니안 왕조의 체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제안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앞으로 연구를 통해 내 자신의 견해를 정립해야겠지만, 저자의 견해대로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유대교의 기원을 탐색할 수 있는 본문이며, 어쩌면 포로기신학은 유대교의 뿌리일지 모른다.


유대교의 기원
국내도서
저자 : 조셉 블렌킨소프(J. Blenkinsopp) / 소형근역
출판 : 대한기독교서회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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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기 신학과 성전


포로기 신학와 관련된 구약본문 중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성전재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신명기 사관과 차이를 보이는 신학적 견해가 드러난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바벨론 유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학적 혁명을 가능한 토대이다. 그리고 포로 귀환 이후 성전재건은 그 변화를 현실로 적용하는 과정이었다.


이스라엘의 멸망, 더 정확히는 성전파괴에 대한 이스라엘인의 충격은 그들의 신앙에 회의를 가져오는 사건이었으며, 바벨론 유수는 그에 이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이스라엘인들은 야웨 신앙에 대한 괴리감을 보였으리라 짐작이 되고, 소수는 비극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였다. 현실의 고난 가운데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며 신학적 진보를 이룬 자들이 바로 포로기 신학의 주요인물들이다. 그리고 성전재건은 신앙회복과 새로운 신학의 정립을 상징하는 표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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