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앞서 살펴본 대로, 구약성경에서 '비'는 왕권 사상, 특히 야웨 신앙과 관련이 있다. 제2 성전기 문헌 중 하나인 솔로몬의 시편(The Psalms of Solomon)에도 이 같은 사상이 나타난다.

17:18 They were scattered over the whole earth by lawless men, for heaven withheld the rain from falling on the earth.
17:19 Everlasting springs out of abysses were held back from high mountains, for there was none among them who did righteousness and justice.

17:18 하늘이 땅에 내리는 비를 거두었기 때문에 그들은 무법자들에 의해 온 땅에 흩어졌습니다.
17:19 심연에서 솟아나는 영원한 샘물이 높은 산에서 막혀 있었으니, 그중에는 의와 정의를 행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위 번역은 DeepL Translate를 이용한 결과이다.

두 구절은 '비'와 '영원한 샘물'이 부재한 이유를 악인에게 돌리고 있다. 반대로 의와 정의를 행한다면 비와 영원한 샘물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게 된다.

시편 기자는 의와 정의가 다윗과 같은 왕이 등장해야 가능하다고 믿는다.

17:40 He shall be strong in his works and mighty in fear of God, shepherding the flock of the Lord faithfully and righteously, and he shall not let any among them become weak in their pasture.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Davidic Messianism)과 목자-양 비유의 결합은 다윗 왕권 사상(Davidic Kingship)에서 자주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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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이스라엘에 팽배한 우상숭배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또한 우상숭배는 공의의 부재를 낳는다. 역설적이지만 우상숭배가 팽배하고 부정이 만연한 시대에 하나님을 향한 제사와 절기, 기도는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행위를 역겨워하셨다 (1:11–15).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이사야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정의라고 외친다 (1:16–17).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정의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에서 출발하며 의로운 행실을 가져오며 사회의 정의를 실현한다.

에스겔은 이사야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한다. 그는 악인과 의인의 대가가 생명/영혼과 관련이 있다고 선포한다 (2:18–21 등). 또한 회복된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은 정의와 공의를 행해야 한다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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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서를 읽다보면 이스라엘이 경고받는 이유는 대개 '우상숭배'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여기에 이사야서의 특이점은 '정의'에 대한 반복적인 요청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이었으나, 그것은 외적인 모습일 뿐 실상은 공허한 예배이었다. 이사야서를 보면 이스라엘은 번제와 제사를 드렸다(1:10-13). 그들은 헌금을 드렸고 절기를 지켰다(1:14).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들을 싫어하셨다(1:14bff).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1:16-17).

1: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외적으로 드러나는 '번제'를 드리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고(43:23-24),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듣기도 하였다(56:1-7; 58:13).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가장 강력하게 요청한 것은 '공의'이다(특히, 64:5).

64: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이사야에게 공의는 이스라엘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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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에서 목자-왕 전승은 왕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은유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이러한 전통이 있었고, 신약에도 곳곳에 목자-왕 전승이 나타난다.

연구 본문이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이라서 목자-왕 전승은 내 연구의 핵심 주제이다. 그래서 목자-왕 전승에 관한 선행 연구를 제법 검토했는데, 흥미롭게도 이사야를 언급한 연구를 본 적이 없다. (내 기억에만 없을지도 모른다)

이사야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미가는 목자-왕 전승을 여러 차례 사용한다. 이 둘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나훔도 목자-왕 전승을 사용한다(3:18). 이사야 후대에 활동한 예레미야, 에스겔, 스가랴도 목자-왕 전승을 아주 중요하게 사용한다. 목자-왕 전승을 사용한 선지자들은 이 은유를 통해 지도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들의 방임을 책망한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심판의 명분이 된다. 반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참 목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신다. 여기서 내 질문은 시작된다.

'왜 이사야는 목자-왕 전승을 사용하지 않을까?'

밤늦게 이사야서를 통독하며 정답의 근사치를 얻은 듯하다. 내 질문이 잘못되었다. 내가 이사야서를 읽을 때 목자-왕 전승에 주목하지 않은 탓이지, 이사야는 곳곳에 단서를 남겨 두었다. 정말 흥미로운 건, 이사야의 용례에 특이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선지자들은 대체로 목자-왕 전승으로 심판과 회복 선포라는 공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러한 공식을 자신의 예언에 사용하지 않는다. 목자-왕 전승의 틀을 사용하지만, 그만의 특정 공식이 되기에는 적용 범위가 부분적이다.

대신 이사야는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공평과 정의가 그것이다. 많은 선지자들이 목자-왕 전승을 은유로 사용하여 시각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하지만, 이사야는 공평과 정의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이 부분은 차후 연구로 발전 시켜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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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편의 표제는 저작배경을 다윗이 왕정에 있을 때로 설정하도록 한다. 


다윗은 인자(헤세드)와 공의를 노래하겠다고 말한다. 인자(헤세드)는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지칭하며,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언약에 비추어 노래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정의도 노래하겠다고 말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고 있다(1절).


다윗은 완전한 길에 주목하고자 한다. 다만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라는 질문을 통해 그가 정치적 위기에 놓여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윗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져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있다. 그는 완전한 마음으로  자신의 집에서 행동하리라고 다짐한다(2절).


이러한 다짐은 개인에게 적용할 뿐만 아니라(3-4절),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이스라엘(6절에는 "땅", 8절에서는 "여호와의 성")도 포함된다.


다윗은 곤란에 처했을 때에 그는 자신의 권력과 술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와 정의를 기억해낸다. 다윗은 자신만이 아니라 통치자로서 인자와 정의를 노래함으로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통치자로서 곤란에 처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교회와 사회 전반에 위기가 가득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도자들의 대처방안을 보고 있노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참고문헌
Allen, Leslie C. Psalms 101-150. WBC 21. Revised. Dallas: Word, 2002.
Gerstenberger, Erhard S. Psalms, Part 2, and LamentationsThe Forms of the Old Testament Literature,  Vol. 15. Grand Rapids: Eerdmans,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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