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1. 희년서와 창세기의 아브라함 언약
희년서(The Book of Jubilees)에서 초막절 본문은 두 구절(16:20–31; 32:4–29)이다. 첫 번째 초막절 본문은 16:20–31으로 이삭의 출생 이후 아브라함이 초막절을 축하하는 내용이다. 두 번째 초막절 본문은 32:4–29(세부적으로는 4–9절과 16–29절로 나눌 수 있다)이고, 라헬의 베냐민 임신 이후 야곱이 초막절을 지키는 내용이다.

1) 아브라함의 초막절 (16:20–31)
앞 10-19절은 이삭의 출생과 할례를 다룬다. 19절은 이삭을 출생한 아브라함과 사라의 크나큰 즐거움(they both rejoiced with exceeding great joy)을 서술하고 있다. 

이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짓고 그 앞에서 7일 동안 즐거움의 축제를 연다(20절). 그는 축제 기간 자신과 하인들을 위한 초막을 짓는데, 이로써 그는 지상에서 초막절을 축하한 첫 사례가 된다 (21절). 이 기간에 아브라함의 즐거움이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그는 번제로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한다 (22-28절).

28절에서 아브라함이 이 절기를 축하한 이유가 하늘 서판의 증언(the testimony of the heavenly tablet)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하늘 서판이 언급되는데, 29절에서도 그 서판이 이스라엘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을 매년 지켜야 한다고 진술한다. 두 구절은 희년서 저자가 이 단락의 배경으로 아브라함 언약을 설정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2) 야곱의 초막절(32:4–9, 16–29)
앞 2절에서 야곱은 14일에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물을 드린다. 3절은 라헬이 베냐민을 임신했다고 서술한다.

이어 야곱은 15일에 자신의 서원대로 십일조를 드린다(5절). 그리고 그는 번제를 7일 동안 드린다(6절). 여기서 초막절이란 용어는 등장하고 있지 않지만, 본문이 밝히는 시기는 초막절 시간이다.

이 배경이 초막절이라는 사실은 27-29절에서 명확해진다. 야곱은 추가로 하루(another day) 더 번제를 드리는데, 그 추가된 날은 '추가'(Addition)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앞서 초막절을 지칭하는 '그 절기'(The Feast)에 하루가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밝힌다(27절). 이어 이 그 절기(=초막절)의 칠일에 하루를 더해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한다(28절). 다시 그 여덟 번째 날을 '추가'(Addition)라고 부르며, 그 이유는 그 절기 시간 중 기록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29절).

야곱의 초막절(4–9절)과 추가된 하루(27-29절)에 관한 기록 중간에 하늘 서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초막절에 추가된 하루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시고(17절), 하늘 서판에 따른 아브라함의 후손을 향한 축복을 그에게 상기한 날이다. 이런 이유로 추가된 하루는 초막절의 연장선이며, 32장의 초막절 구절은 넓게 4–29절로 볼 수 있다.


3) 창세기 아브라함 언약 (15, 17장)
앞서 아브라함과 야곱의 초막절 모두 자손의 탄생과 일차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더 나아가 하늘 서판과 관련이 있다. 하늘 서판은 하나님의 아브라함의 후손을 향한 축복이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에서는 15, 17장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흔히 아브라함 언약으로 불린다.


2. 희년서와 사무엘상에 나타난 초막절
희년서에 나타난 초막절은 모두 자녀의 출생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사무엘상 1장 1절-2장 26절과 연결된다. 엘가나와 그의 가족은 매년 실로에 방문해 번제를 드렸다. 본문은 이 절기를 직접 밝히지 않으나, 초막절로 보는 견해가 있다. 희년서와 사무엘상에 나타난 초막절이 모두 자녀의 출생과 관련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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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연구자가 스가랴가 에스겔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내 연구에서는 스가랴 14장의 초막절 준수 명령과 에스겔 45장의 초막절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 나는 두 가지 기여를 가정했는데, 첫 번째는 에스겔 45장 25절의 초막절에 대한 강조이고, 두 번째는 초막절을 중심으로 에스겔과 스가랴의 관계를 비교하는 작업이다.

초막절 연구에서 에스겔 45장 25절은 충분히 조명하지 못하고 있다. 초막절 연구에 귀중한 업적을 남긴 Jeffery L. Rubenstein은 『The History of Sukkot in the Second Temple and Rabbinic Periods』(Brown Judaic Studies 302; Atlanta: Scholars Press, 2020)에서 에스겔 45장 25절에 등장하는 '명절'이 초막절이라고 밝혔으나 그에 관한 연구는 개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박사 학위 논문에서 이 구절에 대한 관찰로 기여를 할 수 있어 보인다.

스가랴가 에스겔로부터 신학적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초막절에서 그 영향이 나타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껏 두 구절을 비교한 연구는 보지 못했다. 비교가 내 주요 관심사는 아니지만, 에스겔이 스가랴에 영향을 주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다. 이 지점에서 새로운 기여를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오늘 에스겔 45장 25절을 다룬 주석을 살펴보고 있다. 그 주석은 에스겔 45장 25절의 '명절'을 초막절로 보고, 그 구절에 관한 상세한 해석을 남겨두었다. 아래 내용은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에스겔 45장 17절은 군주의 본분을 말한다.

17 군주의 본분은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명절과 초하루와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명절에 갖추는 것이니 이스라엘 족속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 속죄제와 소제와 번제와 감사 제물을 갖출지니라

여기에서 군주는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명절'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족속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 속죄제와 소제와 번제와 감사 제물을 갖출지니라'고 선포한다. 예언자는 이스라엘 족속의 속죄를 강조하고 있다. 바벨론 유수를 겪고 있는 예언자는 이스라엘로 귀환한 이후에도 속죄를 지속해야 한다고 여겼다.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모든 명절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언급한 명절은 유월절(12절)과 초막절(25절)이다.

21 첫째 달 열나흗날에는 유월절을 칠 일 동안 명절로 지키며 누룩 없는 떡을 먹을 것이라

25 일곱째 달 열다섯째 날에 칠 일 동안 명절을 지켜 속죄제와 번제며 그 밀가루와 기름을 드릴지니라

유월절과 초막절은 모두 출애굽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절기이다. 예언자가 이스라엘 귀환을 출애굽과 동일시했다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스가랴 14장은 초막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스가랴는 다른 예언자들과 달리 초막절이 이방 나라들도 지켜야 할 명절로 규정한다. 또한 초막절 준수와 비를 긴밀하게 연결한다는 특징이 있다.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초막절은 추수 이후 감사제 성격이 뚜렷하다. 농경사회에서 비는 그 해 추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고로 비 내림은 여호와의 열방 통치의 증거이며, 초막절은 그의 통치에 대한 인정을 뜻한다.

스가랴는 유월절을 말하지 않는다. 성전 재건 역시 말하지 않는다. 스가랴는 에스겔과 이런 두 가지 차이가 있다.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자면, 초막절에 있어서 스가랴는 에스겔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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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한 자료 조사 과정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글이므로 차후 검증이 필요하다.

느헤미야 8장은 귀환 공동체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에 대한 요청으로 시작한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느헤미야 8장에 기록된 에스라의 강독은 그의 예루살렘 사역이 종료되는 시점이 아닌  시작으로 봐야 하며, 이 기록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사역에 관한 절정으로 자리를 잡는다 (Williamson, Ezra, Nehemiah, 285).

에스라는 낭독을 지속하던 중 초막절을 준수하라고 지시한다 (14-17절).

14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에 집중하고 싶은데, 첫 번째는 초막절 준수에 관한 근거이고, 다른 하나는 초막절의 기능이다.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초막절을 준수하라고 백성에게 명령했다면, 그 근거는 레위기 23:33-43과 신명기 16:16-17, 두 구절로 압축된다. 

레 23:3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신 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에스라의 지침(15절)을 고려하면, 헌금 이외에 다른 지침이 없는 신명기 16장보다는 레위기 23장의 영향이 더 두드러진다. 여전히 느헤미야 8장과 레위기 23장 사이의 차이점은 존재한다.

느 8:15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레 23:4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그러나 에스라가 레위기 23장에 근거해 초막절 준수를 명했다면, 초막절 이전에 언급된 속죄일(레 23:26-32)이 문제가 된다. 여기서 신명기 16장을 선택하면, 속죄일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만, 에스라의 초막절 지침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에스라의 가르침이 신명기 16장의 영향을 받았으나 레위기 23장에 기반한다는 해석이 현실적인 타협점으로 보인다. 레위기 23장과 신명기 16장 사이의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 역시 타당하다 (Williamson, Ezra, Nehemiah, 295). 만약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모세의 율법책이 서로 다른 형태로 전승되었다고 하더라도, 에스라가 두 본문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추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스라엘 역사를 배우지 않은 유대인들이 많아서 몇 가지가 무시되었다는 주장(Batten, Ezra & Nehemiah, 363)이 있으나, 이스라엘 자손이 일곱째 달에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낭독하라고 요청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자손이 모인 시기와 에스라의 초막절 준수 명령이 이스라엘 자손과 에스라 모두 이스라엘 절기에 대해 알고 있다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여전히 속죄일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 지점에서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의 정체성을 고려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유수와 귀환을 통해 죄에 대한 심판과 회복을 경험했다. 그러므로, 고대 이스라엘의 영광을 재현하는 귀환 공동체에 속죄일은 당시 불필요하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을 수 있다. 이 부분은 차후 연구가 필요하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모세의 명령 이후 처음 초막절을 준수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17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초막절 준수에 관한 기록을 통해 이런 반응은 정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회중은 스스로 초막절 규정대로 절기를 지킨 첫 사례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스라엘 회중의 모세의 율법에 관한 요청은 앞서 성벽 건축(7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1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여전히 보수되어야 할 주요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자신의 터전은 건축조차 못 했으나 그들에게 성벽 건축은 남다른 의미로 작용했다고 보인다.

4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느헤미야의 감동과 계보 등록 사업이 그 증거이다.

5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시므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 거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초막절 동안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계속 낭독한다 (18절). 따라서 8장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사건은 에스라의 하나님의 율법책 낭독이라 할 수 있다 (Williamson, Ezra, Nehemiah,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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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를 적대했다. 그들은 예수께서 유대 전통을 어길 뿐 아니라 신성모독을 범했다고 판단한다. 반면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유대 메시아 사상이라는 렌즈를 통해 예수를 모세와 같은 기적의 선지자, 다윗과 같은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 등으로 믿기도 했다. 오늘날 사도로 불리는 예수의 제자들 역시 예수의 십자가 도상과 부활, 승천 이후에야 스승의 가르침을 깨달았다.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이 동시대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관례가 아니었고, 그들이 기대하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예수의 공생애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요한은 예수의 구속사를 설파하기 위해 유대 절기와 안식일와 같은 유대 규례와 전통을 사용했다. 유대인들의 선지식을 사용해 각각의 의미를 떠오르게 하고, 예수의 구속사를 통해 의미의 재부여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의 정체성을 규정해야 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은 흔히 '로고스 기독론'이라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예수의 선재성와 정체를 선포하며 시작한다. 예수의 구속사적 사역은 유대 관습에 익숙하지 않지만, 그의 사역의 핵심이기 때문에 세례 요한의 입을 빌어 그의 사역을 세상에 드러낸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유대 메시아 사상 가운데 메시아의 죽음에 관한 가르침은 전무하다. 그러나 예수의 사역이 그러했기 때문에 요한은 유대 절기 가운데 유월절을 밀착시킨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여섯 번의 절기 가운데 세 번이 유월절(2:13; 6:4; 11:55)이다. 나머지 세 번은 익명의 절기(5:1), 초막절 (7:2), 수전절 (10:22)이다.

요한은 유대 달력과 달리 자신의 의도대로 유월절을 세 번 배치하고 있으며, 특히 절기 시작은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가르침과 연결하고 있고, 세 번째 유월절은 수난 사화와 연결하고 있다.

'어린 양' (1:29)의 정체에 관해서는 유월절과 연결하는 게 가장 타당해 보인다. 여러 근거 중에서 19:31–36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 19: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유월절 규례와 관련된 구절들이 떠오르게 된다.

출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민 9:12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특히, 민 9:11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1 둘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

어쩌면 세례 요한이 선포한 '하나님의 어린 양'은 유월절 어린 양과 긴밀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물론 예수와 유월절 어린 양 사이에 존재하는 변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하나님의 어린 양' (1:29)과 이사야의 네 번째 노래에 등장하는 '고난받는 종'(52:13-53:12)을 연결하는 해석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선 나는 '하나님의 어린 양'과 '고난받는 종' 사이에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더라도, '고난받는 종'과 유월절 희생양과 연결짓는 해석에는 반대한다.

Paul M. Hoskins는 “Deliverance from Death by the True Passover Lamb: A Significant Aspect of the Fulfillment of the Passover in the Gospel of John”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1:29)과 유월절을 연결짓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요한복음에서 유월절과 초막절이 긴밀하게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이같은 접근은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과 유사하지만, 그는 유대 절기의 기능에 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유월절과 초막절이 긴말하게 연결되는 이유는 당연히 예수의 사역과 관련이 있다. 유대 전통에서 유월절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의 구별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11:5–7; 12:1–15). 초막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므로, 초막절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후대에 초막절은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을 기념하는 절기가 된다 (특히, 슥 14:16–21).

이러한 유대 전통이 예수에게 새로운 의미로 적용된다. 예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1:29). 이러한 선포에서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 양과 갖는 공통점과 차별점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된다. 요한은 유월절을 통해 예수의 대속 사역을 강조한다. 또한 초막절, 특히 스가랴 14장과 연결해 종말론적 회복을 선포한다. 유대 메시아 사상은 이스라엘의 영토 회복 이후 왕이 등장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 도상과 부활을 통해 세상 죄를 무르시고 인류에게 종말론적 회복을 가져오신다. 유대 전통에서 유월절과 초막절이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듯이 요한복음에서도 대속을 통해 두 절기가 연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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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목자 담론에서 "자기 희생"과 "유대 절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관련 글: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에서 자기 희생과 절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자기 희생에 관해서는, 세례 요한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는 가르침에 주목하고, 그 배경을 이사야 53장으로 결론짓는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앞서 "요한복음 10장에 나타난 예수의 죽음에 관한 가르침의 기원, 이사야 53장과 대안"에서 다루었듯이, 이러한 경향에 의문을 제기하는 해석자들이 있다.

나는 선한 목자의 "내어놓음"(lay down; vv. 15, 17, 18)이 1:29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 기원에 관해서는 이사야 53장을 포함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해야 한다.

절기에 관해서는, 우선 초막절을 언급해야 한다. 선한 목자 담론을 다룬 연구들을 보면, 7장에서 시작되는 내러티브의 연속성을 간과하고 초막절을 배제한 연구들이 많다. 반면 초막절을 언급하지만, 그 배경에 관한 연구가 미흡하다.

다음에는 유월절을 언급해야 한다. 현재 나는 1:29와 유월절을 연결하려고 한다. 선행연구에서 이미 1:29이 유월절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주장할 예정이다. 나는 단순히 유대적 배경으로서 유월절이 아니라, 요한의 절기 사용에 근거한 유월절과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할 예정이다. 아마도 내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논증이 될 수 있다.

"자기 희생"과 "유대 절기"라는 주제는 선한 목자 담론과 세례 요한의 "어린 양" 선포에서 모두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박사 과정에서 이 연구를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나는 더나아가 요한복음을 설명하는 기둥으로 "자기 희생"과 "유대 절기"를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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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절기가 갖는 기능을 분석하고 있다. 지난 번에 "요한복음에 언급된 절기의 기능과 의문점들"이란 글을 남겼는데, 요한복음을 분석할 수록 의문점이 더 쌓여간다.
 

요한복음에 언급된 절기의 기능과 의문점들

 
그 이유를 간략하게 말하면, 요한이 유대 전통에 따른 절기의 의미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자로서 창조적으로 변형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 나열된 절기는 다음과 같다.
 
1. 첫 번째 유월절(the first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2:13)
 
2. 유대인의 명절(a feast of the Jews)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5:1)
 
3. 두 번째 유월절(the second Passover)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6:4)
 
4. 초막절 (the Feast of Tabernacles)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7:2)
 
5. 수전절(the Feast of Dedication)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10:22)
 
6. 세 번째 유월절(the third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11:55)
 
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은 요한복음의 절기 순서가 유대 달력과 맞지 않는다는 의문이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유월절, 칠질절, 초막절 순서로 나열되어야 한다. 참고로, 이 세 절기는 유대 3대 절기이다(신 16:1-17). 하지만, 두 번째 유월절의 위치는 요한이 예수의 공생애를 1년 주기로 기록했는지 2년 주기로 서술했는지 다루도록 한다.
 
그 다음은 절기의 기능이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지만, 요한복음 2장에서는 성전청결이 주요 사건으로 배열된다.
 
칠칠절은 추수감사절이라고도 하며, 일년 농사의 열매를 거두는 시기에 하나님께 감사과 응답하는 절기이다. 하지만 5장에서 베데스다 사건 이후 안식일 논쟁이 핵심으로 자리매김한다.
 
두 번째 유월절은 본문의 위치부터 논쟁이 되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릴 지역에 있었다는데서 또다른 논쟁거리가 된다. 또한 6장에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모세의 만나 사건과 연결짓고 있다.
 
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하나님의 구원과 임재를 기념하는 절기이지만, 7장부터 유대인의 적대감과 모세의 율법에 관한 논쟁이 증폭되고 있다. '생수의 강'(7:38)은 초막절과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주지만, 전통 유대인들의 사고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취된다. 내 관심사인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에서 예수의 죽음은 전통적인 목자-왕 전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르침이다.
 
수전절은 1세기 유대인들에게는 안티파네스와 마카비 항쟁을 연상시키는 절기로 성전성결과 하나님의 임재를 기념한다. 하지만 11장에서는 선한 목자 담론에 대한 논쟁으로 번져 예수의 정체성을 다투고 있다.
 
세 번째 유월절은 나사로의 부활 이후에 위치하여 예수의 죽음을 향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익숙한 해석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 요한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를 증언하기 위해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하였으며, 본인의 의도대로 유대 절기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요한의 유대 절기를 변형적으로 사용하여 해석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유대 절기의 역사를 조사하는 차원에서 선행연구가 끝나지 않는다. 요한이 이같은 구조를 사용한 의도를 파악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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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지낸 절기이다. 초막절은 후에 예루살렘 성전 건축 이후 중요성이 덜 강조되다가, 유다 왕국 멸망 이후 포로기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는 에스겔과 스가랴와 같은 선지자들에 의해 초막절이 언급된다. 신약에서는 요한복음 만큼 초막절을 강조하는 성경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토세프타(Tosephta)에서 초막절에 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2세기 후기부터 유대 구전 율법을 수집했다고 알려져 있다.
 
요한복음은 성전 파괴 이후 기록되었다고 함의를 보고 있다. 토세프타의 저술 시기 역시 성전 파괴 이후이다. 요한복음과 토세프타의 저술 목적은 다르지만, 저술 시기가 성전 파괴 이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유월절처럼 성전 중심의 절기는 더이상 지속하기 어렵겠지만, 초막절은 자신의 집 지붕에 초막을 만들어 준수할 수 있다. 요한복음이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면, 토세프타는 옛 절기를 준수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길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록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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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박사 학위 논문에서 결정적인 논증은 유대 절기(Jewith festivals)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여전히 선한 목자 담론(10장)을 주요 본문으로 설정하겠지만, 몇 가지 논의를 위해 목자-왕 전승의 중요성을 덜 부각시킬 예정이다.
* 이 글은 내 구상을 정리하는 목적을 위해 작성되었으므로 자세한 인용은 생략한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절기는 총 여섯 가지이다.

1. 첫 번째 유월절(the first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2:13)

2. 유대인의 명절(a feast of the Jews)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5:1)

3. 두 번째 유월절(the second Passover)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6:4)

4. 초막절 (the Feast of Tabernacles)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7:2)

5. 수전절(the Feast of Dedication)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10:22)

6. 세 번째 유월절(the third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11:55)

유월절이 여섯 번의 절기 중 처음과 나중에 등장하고, 중간에도 언급되어 있다. 그만큼 요한복음은 유월절을 강조하는데, 이를 통해 저자가 유월절과 예수의 구속사를 연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요한복음은 유월절을 통해 예수의 죽음을 강조해야 한다. 군사적 메시아를 고대하던 유대인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의 죽음이 갖는 차별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후에 펼쳐지는 예수의 부활이라는 사건을 위해서 더욱 그렇다. 현재로서는 유월절의 기능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문제는 나머지 절기와 관련되어 있다. 첫 번째, 요한이 두 번째로 언급한 명절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유대인의 명절'(a feast of the Jews)이라고 일컫은 이유에 대한 의문이다. 선행연구에서는 이 명절을 '익명의 명절'(anonymous festival)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초막절과 수전절에 대한 언급이다. 앞서 '유대인의 명절'에서 명절의 이름을 고의로 생략했다면, 이번에는 특정 명절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두 절기가 선한 목자 담론과 연관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 두 절기와 선한 목자 담론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 글에서는 '유대인의 명절'(5:1)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초막절과 수전절, 그리고 선한 목자 담론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두 절기와 선한 목자 담론을 같이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한 목자 담론의 앞부분이 초막절(7:2-10:21)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고, 그 이후 발생한 예수의 선한 목자에 관한 가르침에 대한 논쟁은 수전절(10:22-39)과 관련이 있다.

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시작된 절기이다. 절기의 의미는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의 통치를 기념하는데 있다.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은 광야로 나가는 대신 자신의 집 지붕에 천막을 치고 이 절기를 지켰다.

수전절은 마카비 가문을 필두로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에피파네스가 모독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한 사건에서 시작된 절기이다. 이 절기는 성전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두 절기는 예루살렘 성전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념하는 절기적 기능을 한다.

여기서 요한이 예수의 성전 파괴와 회복에 관한 가르침을 2장에 배치한 이유가 설명이 된다. 독자들이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연결짓도록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앞으로 각 절기의 유래와 요한복음 내에서의 기능을 더 분석해야 한다. 그럼에도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여섯 절기는 모두 '순례'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는 건 분명하다. 각 구절마다 예루살렘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유대인들은 특정 절기를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야 하는 종교적 의무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요한복음이 구전되고 저술될 시기는 성전이 파괴된 이후로 합의를 보고 있다. 여기서 다시 요한복음의 핵심 주장이 명백해진다. 즉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유지했던 유대인들에게, 성전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이처럼 요한복음에서 절기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독특성을 파악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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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J. Wensinck, Arabic New-Year and the Feast of TabernaclesAmsterdam : Koninklijke Akademie van Wetenschappen, 1925.


http://menadoc.bibliothek.uni-halle.de/ssg/content/pageview/836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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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yndalehouse.com/TynBul/Library/TynBull_1970_21_02_Hillyer_1PeterFeastTabernacle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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