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그말씀」[각주:1] 목차정리하면서, "사본을 통해 보는 하나님의 말씀 - 입다의 딸은 번제물로 죽었나"라는 글을 보았다. 아래 인용문은 저자가 작성한 글을 인터넷에서 찾아내 주요 내용만 복사하였다.

필자는 사사기 11장에 대한 위의 두 한글 번역본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그와 더불어 입다의 딸이 이때 번제물이 되어 죽은 것이 아니라 평생 처녀로 보냈을 가능성이 있음을 다음의 몇 가지 점을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가) 입다가 무모한 서원을 하여 결국 자기 딸을 죽이게 되었다고 보는 이들은 일반적으로 입다의 부도덕성 내지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지적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사기 11-12장을 자세히 살펴볼 때 입다는 그리 부도덕한 사람이 아니요 오히려 율법을 잘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입다가 기생에게서 태어난 서자였다고 해서 (11:1) 그가 부도덕한 사람이었다고 간주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는 적자들로부터 학대를 당하여 부당하게 집에서 쫓겨나서 돕이라는 곳에서 살 수 밖에 없었다 (11:2-3).

11장 3절 하반절의 한글판 번역 또한 독자로 하여금 입다가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끔 도와주는 구실을 한다. 이를 개역은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고 하였고, 표준 새번역은 "건달패들이 입다에게 모여들어 그를 따라다녔다"로 번역하였다. "잡류" 또는 "건달패"로 번역된 히브리어 문구는 '아나쉼 레이킴'이다. 형용사 '레이크'는 문자적으로 "비어 있는, 텅빈"이라는 뜻인데, 이 용법으로는 삿7:16 ("빈 항아리"); 창37:24; 41:27; 신32:47; 느5:13; 겔24:11; 사29:8; 왕하4:3; 잠12:11; 28:19에 등장한다. 두 번째로 이 문자적인 뜻이 연장되어 "빈털털이의, 천대받는, 경시되는, 경박한"이라는 의미로도 쓰이는데, 이런 용법은 삿9:4; 11:3; 대하13:7; 삼하6:20 네 곳에 등장한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아둘람 굴로 도망하였을 때 "환란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여 그와 함께한" 것처럼 (삼상22:1-2), 입다에게 모여든 사람들 역시 "잡류" 또는 "건달패"라기 보다는 일종의 천민 계급이었을 것이다. 입다는 자기에게 모여드는 천민들을 가지고 사병 (私兵) 조직을 구축하였겠고, 이때문에 정규군대 조직이 없었던 당대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암몬 자손의 침입을 받았을 때 입다를 통솔자로 초청하였던 것이다 (11:4-11).

입다는 출전에 앞서 암몬 자손의 왕에게로 사신을 보내어 야웨 하나님과 과거의 역사에 호소하면서 평화적 해결책을 종용한다 (11:12-13). 입다의 이러한 태도는 율법의 가르침에 부합된다. 하나님은 암몬, 모압, 에돔을 치지 말라고 명하셨다 (신2:5,9,19). 입다는 과거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간섭을 구체적으로 회고하면서 (11:12-27) 가급적 암몬 자손과의 전쟁을 피하고자 시도하였다. 11장 12-27절의 내용을 통하여 볼 때, 입다는 역사 속에 나타난 야웨 하나님의 섭리를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입다는 길르앗의 적자들로부터 쫓겨나서 돕 땅에 거하며 "건달패"의 두목이 된 불량배였으며, 따라서 이런 종류의 사람으로서 입다는 얼마든지 사람을 번제로 바치겠다는 어리석은 서원을 내뱉을 수 있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좀 지나친 해석이라고 하겠다.

나) 이제 입다가 서원한 일에 대하여 검토해 보기로 하자. 입다가 서원한 바를 (30-31절) 어떻게 지키느냐 하는 점은 두 가지 문구로 묘사되어 있다. 첫째 문구는 "야웨께 돌린다"는 것이요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그는 야웨께 속하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둘째 문구는 "번제로 바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문구의 결합 형식은 "갑 또는 을"로서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의심할 나위없이 "갑 곧 을" 또는 "갑, 다시 말해서, 을"의 형식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입다는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자기 집 문에서 맨먼저 나와 영접하는 자를 야웨의 소유로 인정하여 그를 번제로 바치겠다는 것이다.

번제의 히브리어 명사형 '올라'의 어근은 "오르다, 올라가다"를 뜻한다. '올라'에는 어원상 "태우다"라는 뜻이 없지만, 그 용법에 있어서는 거의 예외없이 "온전히 불살라 바치는 제사"를 의미한다. 삿11:31의 "번제로 바치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창22:2) 하신 것과 거의 동일한 표현이다. 이 명령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이 취한 조처를 통해 볼 때, 아브라함은 이 명령을 문자 그대로 이삭을 잡아 바치는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입다는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번제 명령을 염두해두고 자신의 서원을 발설하였는지도 모른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입다가 의도한 바는 가축이나 애완용 동물을 번제로 바치겠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입다의 서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그는 인신 번제를 서원한 셈이 된다.

전쟁에 임하여 급한 나머지 깊은 생각없이 부주의로 인신 번제의 서원을 하였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야웨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였다"는 기록을 (11:29) 미루어 볼 때, 입다가 언급한 "올라"는 다른 의미를 염두해둔 가능성도 있을 법하다.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에 그를 야웨께 드리겠다"고 서원하였고 (삼상1:11), 사무엘을 얻은 후 그대로 실천하였다 (1:28). 자식이 없어 구박받던 한나는 서원대로 아들을 얻자 전혀 망설임이 없이 그 아들을 성소에 바친 것이다. 야웨께 평생 바쳐진 사무엘은 번제물로 죽지도 아니하였고, 그렇다고 평생 총각으로 남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한나의 서원대로 "평생 야웨께 바쳐졌다"고 볼 수 있다. 입다와 한나의 서원을 동일한 성격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나의 서원을 통해서 볼 때, 입다의 서원도 어느 정도는 한나의 서원과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여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바울의 권면을 (롬12:1)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다) 11:34-40을 통하여 히브리어 원문 또는 각종 고대 번역본에 "죽는다"는 단어가 없다는 점은 입다의 딸이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큼을 입증해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중의 하나이다. 입다의 딸과 그녀의 친구들이 애곡한 바는 "그녀의 처녀됨을 위하여"였다. 이 표현을, 그 자체적으로 볼 때,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라고 해석해야 할 근거는 전혀 없다. 입다에게 있어서 무남독녀를 평생 처녀로 보내게 한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었을 것이다. 딸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특별히 39절의 "그는 자기가 서원한 바를 그녀에게 행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남자를 알지 못하였고, 이것이 이스라엘에서 하나의 관습이 되었다"는 문장 순서를 통해볼 때, 서원을 행한 결과가 바로 '그녀가 남자를 알지 못하였다'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말해서 입다와 같이 인신 번제를 서원할 경우 번제물로 뽑힌 그 사람을 평생 동정으로 보내게 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에서 하나의 관습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출처 : 구약 성경의 맥을 따라서 http://www.biblehome.net/korean/OTIntroduction.htm


이 글에서 나타나듯이, 성경해석과 성경번역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그럼에도, 그 중요도만큼이나 연구하고 설교하는 설교자가 드문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며, 그 반면에 사본학을 통한 원문복원작업의 소중함이 한층 더 깊게 다가온다.


사사기 11장 강해[ 입다]사본을 통해 보는 성경도 추가로 알아두자.
  1. 1995년 7월호, p.195~2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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