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성경의 최종 형태에 관한 다양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실재를 바탕으로 기록되는 결론이 마땅하다고 본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을 선언하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이 자신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즉 하나님의 언약이 아니고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설명할 길이 없다. 예레미야는 이전에 보지 못한 강대국들이 출현하던 시기였고, 그 제국조차도 멸망의 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살아남았다.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난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관점은 언약이라는 신앙의 언어였다.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구약에서 언약과 목자의 출현에 관한 예언은 자주 결합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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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예레미야는 목자-양 비유를 약 17번 정도 사용하였는데, 이 빈도는 성경에서 가장 많은 활용이고, 그 용례는 다양하게 적용된다.

예레미야는 '목자'라는 칭호를 이스라엘 왕 혹은 지도자와 하나님만이 아니라 이방 민족에게도 사용한다. 목자의 '선함'과 '악함'은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 모두에게 적용된다. 심판이란 주제도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 모두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예언에 있어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예레미야는 목자-양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리지만, 바벨론을 향해서는 철저한 심판을 선포한다. 대표적으로 23:1-8은 전자에 속하고, 50장은 후자에 속한다. 흥미롭게도 목자-양 비유의 빈도는 후자가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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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왕과 이방 왕에게 동일하게 '목자'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이방 왕을 '목자'로 지칭하는 사례는 모두 이스라엘 심판과 관련이 있다(6:3; 12:10).

6:3 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12:10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헐며 내 몫을 짓밟아서 내가 기뻐하는 땅을 황무지로 만들었도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내 종'이라고 부르신다(25:9; 43:10).

25:9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3:10 그리고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종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불러오리니 그가 그의 왕좌를 내가 감추게 한 이 돌들 위에 놓고 또 그 화려한 큰 장막을 그 위에 치리라


이러한 예시들은 전형적으로 이스라엘 왕에게 사용되었던 '목자'와 '종'이란 칭호가 이방 왕에게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방 왕들이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신념이 그 당시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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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목자-양 비유를 살펴보면, 이 비유가 다양한 용례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중 하나는 자신의 직분과 위기를 표현할 때 목자-양 비유를 사용하는 사례이다.

이 중 첫 번째로, 예레미야는 자신의 직분을 목자에게 비유한다(17:16).

16 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따랐사오며 재앙의 날도 내가 원하지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


전통적으로 목자는 하나님, 그리고 이스라엘 왕과 지도자들에게 사용되었다. 예레미야는 예언자로서 자신이 목자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 두 번째로, 예레미야는 죽음의 위기에 처한 자신의 처지를 양에 빗대어 표현한다(11:19; 12:3).

11:19 나는 끌려서 도살 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12: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구별하옵소서


이러한 두 용례는 목자-양 비유를 전형적인 목자-왕 전승에 한정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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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자질

성찰 2022. 5. 17. 21:41

*이 글은 내 생각을 정리하는 성격을 갖고 있어서 순전히 내 사고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는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해 요한복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 연구 범위 내에 예언서가 주요 본문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차후 기회가 된다면 예언에 관한 연구를 개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는 구약 예언자들 중 예레미야를 최고의 예언자로 꼽는다. 내가 볼 때 예레미야는 예언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다 가지고 있다.

예언자는 미래를 말하는 사람이다. 이스라엘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계시하신 미래를 선포했다. 예언자가 선포하는 미래는 현재 상황과 맞물려 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와 타락의 길을 걷고 있으면, 다가올 미래는 심판이라고 선포한다. 반면 청중이 현재 고난과 압제에서 신음하고 있다면, 미래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다고 선포한다. 즉 예언자의 미래는 이스라엘 백성의 현재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에 더하여 예언자의 현실 인식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먼저, 예언자의 미래 인식(Prophetic Futurology)을 파악해야 한다. 예언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는다.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알고 있으므로, 앞으로 발생하게 될 일들에 대한 독자적인 인식이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에서 도출된 예언자의 인식에 맞추어 말과 행동으로 표출하게 된다.

다음, 예언자의 현실 인식 능력을 파악해야 한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심판을 선포해야 할 때에 축복을 선포한 거짓 예언자들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심판의 때에 속했는지, 축복의 길에 서 있는지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던 시대에 수많은 예언자들이 있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멸망 위기 속에서 바벨론과 유대해야 한다고 선포하지만, 수많은 예언자들은 오랜 동맹인 이집트의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레미야, 그리고 그를 적대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위기라는 현실을 공유했지만, 현실을 인식하는 능력에서 차이가 있었다. 나는 예레미야의 현실 인식이 순전히 하나님의 계시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국제 정세를 내다볼 수 있던 능력에서 기인했는지 궁금하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계시에서 출발한다고 보지만, 예레미야의 현실 자각 능력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예언자의 역사관을 파악해야 한다. 예언자의 미래 인식은 현실 인식 능력만이 아니라 역사관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다. 예레미야와 거짓 예언자들은 유사한 역사관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선조들의 역사에 해박했고, 이집트를 의지해서 생존했던 과거를 알고 있다. 이같은 과거에 의존한 이들이 거짓 예언자들이다. 그들과 달리 예레미야는 더이상 과거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역사가 전개된다고 믿었다. 이런 새로운 미래를 보는 힘은 바로 하나님의 계시에서 출발한다.

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예언자의 자질 세 가지를 설명해야 하지만, 예레미야라는 한 인물을 통해서 대략적인 요지는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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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들 사이에서도 계파라고 할 수 없지만, 개인에게 좀 더 영향을 많이 준 선대 예언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일례로, 스가랴는 에스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이 있다. 예레미야의 경우는 아마도 미가가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렘 26:18)

예레미야는 당시 공공의 적이었다. 비참하게도 고향 사람부터(11:21. cf.1:1), 제사장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죽이고자 했다(18:18-23; 26:8).

이런 분위기에서 예레미야를 변론하는 무리가 있었다(26:16-24). 흥미롭게도, 예레미야의 선포를 뒷받침하는 예언자로 모레셋 사람 미가가 언급된다(26:18).

학계 선행 연구에서는 영향력의 근원을 찾을 때 대선지서를 언급하는 경우가 흔하다. 아마 이런 상황이라면 이사야를 언급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학계의 관행에 따른 예상과 달리, 그 지방의 장로의 일부는 미가를 언급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 지방에서는, 최소한 그 지방의 장로들 사이에서는 미가의 예언이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미가와 예레미야 사이에 목자-왕 전승을 대입해 보면 그 개연성은 더 커진다. 이사야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미가는 목자-왕 전승을 두드러지게 사용한다. 예레미야는 목자-왕 전승을 여러 차례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23장은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대표적인 목자-왕 전승 본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미가와 예레미야가 목자-왕 전승을 사용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이 지점에서 이사야 역시 목자-왕 전승을 사용했으나, 그의 관심과 메시지가 갖는 독특한 위치를 강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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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지서에서 다니엘서를 제외하고, 이사야서는 후대에 등장하는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와 차별화된 특징이 있다.

다윗의 자손들 특히, 왕 같은 메시야가 이방인들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하나님이 정하신 왕으로 묘사되는데 반하여,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하여 다스리시는 온 열방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요, 그가 친히 창조하신 온 세상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출처] 이승현, 성령, 50-51. 


이 진술에서 이사야의 특징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 구원자의 성격. 두 번째, 구원의 대상.

첫 번째, 구원자의 성격.
이사야가 내다본 메시야는 다윗 계열의 왕이 아닌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이다. 여러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을 선포한다. 회복 이후 이스라엘은 다윗 언약에 근거해서인지, 새 다윗 왕조를 재건한다고 선포한다. 하지만 이사야는 이러한 흐름과 달리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이라는 전례 없는 개념을 등장시킨다.

두 번째, 구원의 대상.
이사야가 선포한 메시야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인도 구원하신다. 구약은 민족주의적 성경이 강하다. 예언서에 반복되는 '심판'과 '회복'이란 주제는 대부분 이스라엘(북이스라엘 멸망 이후에는 남유다를 중점으로)을 대상으로 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을 향해 있어서인지, 구원 역시 온 이스라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새로운 이스라엘의 등장은 새로운 다윗 왕조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공식과 달리 이사야의 새 창조에는 이방인도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이 강했던 히브리인들에게 열방 구원이라는 개념은 낯설기만 하다.

이러한 독특성은 내게 큰 과제를 안겨준다.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에서, 예수의 '내어줌'(lay down)이란 가르침을 이사야의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으로 연결 짓는 견해가 많은 탓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요한이 이사야를 사용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자신을 목자로 지칭하고 있다는 점 역시 유의해야 한다. 다윗 계열의 메시야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 새로운 왕국을 통치한다는 오랜 믿음과 달리 다윗의 후손이 열방을 구원하신다는 개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기원을 밝혀야 한다. 예수의 구원 대상이 유대인으로 한정되지 않고 이방인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을 유의 깊게 관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관련글:
[연구주제/요한복음의 목자 은유] - 이사야, 에스겔, 스가랴 그리고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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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jamin A. Foreman의 연구에 의하면, 예레미야서에서 목자 은유는 총 6번(3:15; 10:21; 23:1–4; 31:10; 50:6–8, 17–19) 나타난다. 이 중에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본문은 23장이며, 나는 Foreman와 달리 23:1-8을 범위로 설정한다. 지난 주에 이 구절에 대한 본문해석과 목자 은유의 특징을 분석했고, 어제는 다른 본문들을 대충 살펴봤다. 대략 훑어봐서 단정하긴 어렵지만, 예레미야의 목자 은유에 대한 윤곽이 그려진다.

1. 예레미야서에서 목자 은유의 특징은 23:1-8에서 잘 나타난다.
2. 예레미야의 목자 은유는 고대 이스라엘 목자-왕 전승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기본에 충실한 형태를 갖고 있다.

박사 과정에서 연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예레미야의 목자 은유를 전부 살펴보고자 한다. 한 달 정도면 기본적인 분석은 마칠 수 있을 듯 하다.

Benjamin A. Foreman, Animal Metaphors and the People of Israel in the Book of Jeremiah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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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와 에스겔은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서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둘 사이의 침묵 이면을 탐구한다.


Dalit Rom-Shiloni, “Ezekiel and Jeremiah: What Might Stand Behind the Silence?,” Hebrew Bible and Ancient Israel 1 (2012): 203–230. 

https://english.tau.ac.il/sites/tau.ac.il.en/files/media_server/imported/15/files/2012/10/Rom-Shiloni.HeBAI-2-2012203-3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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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nant Motif in the Context of Judgment and Salvation in the Book of Jeremiah by Dr. Kenneth D. Mulzac

https://digitalcommons.andrews.edu/dissertations/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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