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박사 학위 논문 이후 진행할 연구 주제 중 하나는 "신약의 목자 기독론"이다. 근래 이와 관련된 작업을 진행하며 관찰한 일부를 적어본다.

사복음서에서 대표적인(혹은 내가 발견한) 목자-양 은유 본문은 마태복음 9:36–38; 15:21–28; 마가복음 6:30–34; 요한복음 10:1–21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복음서를 공관복음서와 네 번째 복음서로 나누는데, 공관복음서 사이에는 유사성이 발견되지만, 그와 반대로 네 번째 복음서의 독특성이 두드러진다. 복음서 저자들의 목자-양 은유도 둘 사이의 차별성이 나타난다.

1. 마태복음 9:36–38과 마가복음 6:30–34에 나타난 목자-양 은유
먼저, 두 목자-양 은유를 살펴보자.

마태복음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마가복음 6:30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각 본문에서 확연히 드러나듯이, 마태와 마가의 목자-양 은유는 "목자 없는 양"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예수의 불쌍히 여기심"이 저자의 관심사이다. 독자가 간과하지 말하야 할 또 다른 저자의 강조점은 "예수의 가르침"이다. 마태와 마가는 목자-양 은유와 예수의 가르침을 의도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마태복음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가복음 6:30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1.1. 마태복음 15:21–28에 나타난 목자-양 은유
마태의 다른 용례는 15:24에 나타난다.

마태복음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여기서 목자-양 은유는 "이스라엘 집의 읽어버린 양"이란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앞서 9:36의 "목자 없는 양"과 동일한 맥락이라 볼 수 있다.

2. 요한복음 10:1–21
요한의 목자-양 은유는 마태와 마가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요한은 목자-양 은유의 전형적인 용례에 따라 양 떼를 보호하는 목자의 직무를 강조한다. 하지만 요한은 전통을 벗어나 선한 목자의 자발적인 죽음을 선포한다. 요한은 목자-양 은유를 통해 성도의 영생을 위한 예수의 죽음이라 선한 목자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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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마가는 당시 이스라엘의 목자-왕 전승을 자신의 복음서에 담을 생각을 못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 개연성은 마가복음에서 목자 은유가 사용된 빈도로 추정할 수 있다. 마가복음 이전에 Q가 존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존하는 기록 중 가장 오래된 복음서인 마가복음은 신학적 깊이 보다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담는데 집중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어쩌면 마가의 스승인 베드로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잠시 딴 이야기를 해보자면, 베드로전서의 목자 은유에 대한 연구도 있는데, 베드로 역시 목자 은유를 심도 있는 주제로 다루지는 않는다.

마태복음이 마가복음을 참조했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아마도 마태는 마가복음을 기초로 자신의 유대전승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녹아내어 마태복음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담겼을 거다. 

수많은 학자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목자-왕 전승은 고대 근동과 고대 이스라엘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레코-로만과 비교해도 꽤 연구 가치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복음서에서, 아니 신약에서 목자 은유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본문이 바로 마태복음이다. 실제로 신약에서 목자 은유로 가장 많이 연구되는 본문이 마태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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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가복음과 스가랴의 목자 은유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책을 읽고 있다. 저자는 "마가복음 13장은 스가랴 13:7과 14:5를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난 이 책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이유는 크게 네 가지이다.

1. 내 관심사는 요한복음이다.
박사 논문에서 목자-왕 전승의 발전사를 다루겠지만, 마가복음에 대해서는 다룰 생각이 없다. 신약 부분은 요한복음의 목자 은유로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2. 마가복음은 목자 은유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없다.
저자와 달리 나는 마가복음을 목자 은유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단어의 유사성'으로 '주제적 일치성'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나는 단어와 주제의 일대일 대응을 넘어 성경 저자의 이야기 전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저자 역시 이야기의 흐름을 중요한 기준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마가복음에서 '목자 은유'의 비중은 지극히 낮다. 내가 볼 때 마가복음의 목자 은유는 6:34이 유일하다. 앞으로 내 견해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마가복음 13장을 '목자 은유'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3. 이 책의 스가랴의 목자 은유 연구가 미흡하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스가랴의 목자 은유를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았다. 일단 수많은 학자들이 스가랴에서 제일 많이 언급하는 11장을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논쟁이 되는 14장은 선뜻 목자 본문으로 다루고 있다.

비록 C.H. Dodd, Barnabas Lindars, F.F. Bruce, Douglas Moo, Joel Marcus, Craig A. Evans 등을 언급하며 스가랴 9-14와 마가복음의 관계 연구에 대한 타당성을 주장하지만, 가장 먼저 다뤘어야 할 스가랴 9-14의 목자 은유에 대한 연구 자체가 미흡하다.

4. 내가 A 학교에 합격하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내가 이 책을 일고 있는 이유는 B 학교에 지원하기 위해서다. 그 학교에 박사지도를 해주겠다는 교수가 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연구제안서를 수정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1 순위었던 A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으니, 2 순위인 B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다행이라면 몇 일 동안 읽기가 지루했었는데, 오늘부터 흥미로워지고 있다. 내 차후 연구를 위해서 몇 번 더 언급하고자 한다.

최근 마가복음과 스가랴의 목자 은유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책을 읽고 있다. 저자는 "마가복음 13장은 스가랴 13:7과 14:5를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난 이 책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이유는 크게 네 가지이다. 

1. 내 관심사는 요한복음이다. 
박사 논문에서 목자-왕 전승의 발전사를 다루겠지만, 마가복음에 대해서는 다룰 생각이 없다. 신약 부분은 요한복음의 목자 은유로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2. 마가복음은 목자 은유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없다. 
저자와 달리 나는 마가복음을 목자 은유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단어의 유사성'으로 '주제적 일치성'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나는 단어와 주제의 일대일 대응을 넘어 성경 저자의 이야기 전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저자 역시 이야기의 흐름을 중요한 기준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마가복음에서 '목자 은유'의 비중은 지극히 낮다. 내가 볼 때 마가복음의 목자 은유는 6:34이 유일하다. 앞으로 내 견해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마가복음 13장을 '목자 은유'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3. 이 책의 스가랴의 목자 은유 연구가 미흡하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스가랴의 목자 은유를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았다. 일단 수많은 학자들이 스가랴에서 제일 많이 언급하는 11장을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논쟁이 되는 14장은 선뜻 목자 본문으로 다루고 있다. 

비록 C.H. Dodd, Barnabas Lindars, F.F. Bruce, Douglas Moo, Joel Marcus, Craig A. Evans 등을 언급하며 스가랴 9-14와 마가복음의 관계 연구에 대한 타당성을 주장하지만, 가장 먼저 다뤘어야 할 스가랴 9-14의 목자 은유에 대한 연구 자체가 미흡하다. 

4. 내가 A 학교에 합격하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내가 이 책을 일고 있는 이유는 B 학교에 지원하기 위해서다. 그 학교에 박사지도를 해주겠다는 교수가 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연구제안서를 수정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1 순위었던 A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으니, 2 순위인 B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다행이라면 몇 일 동안 읽기가 지루했었는데, 오늘부터 흥미로워지고 있다. 내 차후 연구를 위해서 몇 번 더 언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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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학교는 미국 아이비리그에 소속된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입니다. 공개강좌(OCW)에 가장 앞장서는 곳이기도 하지요. 신학부(Divinity School)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데, 예일성경공부 시리즈 중 <마가복음> 강좌가 공개되어 있네요.


YDS Bible Study: The Gospel of Mark 
http://godsacre.org/education/adult-education/bible-study/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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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우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의 마가복음 주해서 <메시아 예수의 복음>이 출판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강의와 연구를 토대로 완성된 만큼 마가복음 필독서로 자리매김할 책이 되리라고 봅니다.


[구매링크] 알라딘 예스24

마가복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세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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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요한의 제자들은 2:18에서 언급되는데, 이 구절에서는 금식규례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의 발단이 된다.[각주:1] 분명 이들은 요한이 구속 된 이후에도 계속 활동하고 있었다.[각주:2] 그러나 요한의 구속(1:14)은 죽음으로 끝난다.[각주:3] 그러므로 요한의 시체매장은 그의 사역이 종결을 의미한다.[각주:4] 하지만 예수의 매장(15:42-46)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음이 끝은 아니다.[각주:5]

사실 세례 요한의 순교 이야기는 다소 어색하게 마무리되는데
, 그 이유는 이 이야기의 기능과 관련이 있다
.[각주:6] 본문에서 요한은 대부분 헤롯과 헤로디아, 살로메, 심지어 시위병의 대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18절에서만 주체로 등장할 정도로 배역의 비중이 매우 낮다.[각주:7] 무엇보다 다른 순교자들의 기록과는 다르게 요한에게는 박해자들과의 대면과 심판예언에 대한 언급이 없다(18).[각주:8] 요한은 무대 뒤에서 살해 당하고 제자들에 의해 매장된다.[각주:9]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전쟁에 패배한 이유가 헤롯이 세례 요한을 살해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Josephus, Ant. 18.5.***). 그 이유가 무엇이든 요한의 모욕적인 죽음에 독자들은 당황스러울 터이다.[각주:10]

세례 요한은 사역의 대가로 보복을 당한다
.[각주:11] 요한의 가르침은 간과되고 잔인한 죽음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전개는 예수의 죽음과 평행이 된다.[각주:12] 우선, 청중들은 두 사람의 가르침을 열심히 들었고(20; 12:37) 그 영향력은 지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정도였다(6:12; cf. 15:9-10, 14-15).[각주:13] 하지만 이 지도자들은 이들을 구해주지 못한다(6:20; cf. 15:4, 9-14).[각주:14] 대적들의 살해모의는 실패로 돌아가지만(6:19; cf. 3:6; 14:1 ), 체포되어(6:17; cf. 14:46; 15:1) 죽음 당하고 매장된다(6:27-29; cf. 15:16-47).[각주:15] 여기서 마가의 의도가 드러난다.[각주:16]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머릿돌로 삼으셨다(12:10).[각주:17] 그러므로 요한의 죽음 역시 헛되지 않다. 실제로 제자들의 매장은 요한이 사람들의 존경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15:42-46).[각주:18] 사울과 요나단을 매장한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삼상 31:11-13)과 예수의 시체를 매장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15:42-47)과 마찬가지로, 요한의 제자들은 적대자들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만큼 스승 요한을 존경했다.[각주:19] 그래서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요한을 함부로 대했다고 가르치셨다(9:12-13).[각주:20] 이러한 경향은 헤로디아와 살로메의 요구에도 반영되어 있다(특히, 27).


결국 이 이야기는 헤롯이 세례 요한과 예수의 유사성을 인식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6:14-16), 예수의 최후를 암시하는 요한의 죽음으로 마무리 된다
.[각주:21] 그러므로 마가복음에서 요한의 구속은 예수의 사역과 연결하여(1:14), 요한의 순교는 예수의 메시야 사역과 연결하여 해석해야 한다.[각주:22]
  1. Collins, Mark, 314;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200 [본문으로]
  2. France, The Gospel of Mark, 259 [본문으로]
  3. Collins, Mark, 314 [본문으로]
  4. France, The Gospel of Mark, 259 [본문으로]
  5. France, The Gospel of Mark, 259 [본문으로]
  6. Marcus, Mark 1-8, 403 [본문으로]
  7. Marcus, Mark 1-8, 403-404 [본문으로]
  8. Marcus, Mark 1-8, 404 [본문으로]
  9. Marcus, Mark 1-8, 404 [본문으로]
  10. Marcus, Mark 1-8, 404 [본문으로]
  11. Marcus, Mark 1-8, 404 [본문으로]
  12. Marcus, Mark 1-8, 404. 11:32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진정한 선지자로 인정한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본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본문으로]
  13. Marcus, Mark 1-8, 404 [본문으로]
  14. Marcus, Mark 1-8, 404 [본문으로]
  15. Marcus, Mark 1-8, 404 [본문으로]
  16. 참조. Marcus, Mark 1-8, 404 [본문으로]
  17. Marcus, Mark 1-8, 404 [본문으로]
  18. Edwards, The Gospel according to Mark, 189;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200 [본문으로]
  19. Edwards, The Gospel according to Mark, 189 [본문으로]
  20. Guelich, Mark 1-8:26, 333 [본문으로]
  21. Marcus, Mark 1-8, 404 [본문으로]
  22. France, The Gospel of Mark, 35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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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이 시위병은 살로메의 요구를 그대로 실행한다.[각주:1] 살로메는 요한의 머리가 담긴 소반을 헤로디아에게 건네준다.[각주:2] 헤롯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장은 끔찍한 광경으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각주:3] 여기에서 헤롯이 그 머리를 보았다거나 헤로디아의 반응에 대한 언급은 없다.[각주:4] 헤로디아의 입장에서 보면 요한의 구속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자신의 승리로 끝난 셈이다.[각주:5]
  1. Collins, Mark, 314 [본문으로]
  2. Guelich, Mark 1-8:26, 333; Marcus, Mark 1-8, 403 [본문으로]
  3. Marcus, Mark 1-8, 403 [본문으로]
  4.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200 [본문으로]
  5. Guelich, Mark 1-8:26, 33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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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살로메의 요구만큼이나 헤롯의 명령 역시 즉각적이다. 명사 spekoula,twr간첩혹은 정찰병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각주:1] 이 시위병은 헤롯의 신변 보호를 위해 연회장 부근에 머물렀기 때문에,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즉시 실행할 수 있었다.[각주:2] 헤롯은 시위병을 보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한다.[각주:3] 여기서 시위병의 등장은 연회장의 분위기를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각주:4] 마가가 사용한 목을 베다라는 의미의 동사 avpokefali,zw는 생소한 단어로, 동사 peleki,zw가 더 보편적으로 사용된다.[각주:5] 요세푸스에 따르면, 안토니는 안티고누스의 목을 베어 유대인들의 지지를 누그러뜨리려고 했다(Ant. 15.9-10).[각주:6] 참수가 십자가 처형에 비견되는 경우도 있는데(War 2.241), 이러한 처벌은 처벌 받는 사람을 비방하고 모욕을 주는데 목적이 있다.[각주:7]

  1. Collins, Mark, 314;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9; Cranfield,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rk, 212 [본문으로]
  2.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9 [본문으로]
  3. Collins, Mark, 314 [본문으로]
  4.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9 [본문으로]
  5.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9 [본문으로]
  6.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9 [본문으로]
  7.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9-2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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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이 장면은 헤롯의 진심이 밝혀지는 순간이자 이 이야기의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각주:1] 살로메의 요구를 들은 헤롯은 매우 슬펐다.[각주:2] 형용사 peri,lupoj
매우 슬픈이라는 의미로, 헤롯의 슬픈 감정의 강도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각주:3] 또한 이 단어는 예수께서 세 명의 제자에게 하신 당부에도 사용되었다(“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14:34).[각주:4] 부자 청년은 예수의 가르침에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10:22).[각주:5] 헤롯은 살로메가 자신의 입장과 상반하는 요구를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참조. 19-20).[각주:6] 사실 살로메의 요구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만큼이나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그래서 헤롯은 자신의 맹세가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에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각주:7] 그렇다고 약속을 취소하거나 다른 요구를 하라고 말할 수 없다. 헤롯은 자신의 체면을 살려야 하는가 아니면 요한의 목숨을 살려야 하는가, 즉 자신의 약속을 지키리라고 기대하는 왕실후원자들의 기대와 요한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각주:8]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든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살로메의 요구를 거절하면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터이고, 수락하면 유대인 사회에 크나큰 파장을 가져올 터이다.[각주:9] 이러한 상황에서 헤롯은 현실적 이해에 따른 선택을 하고 만다. 자신의 맹세와 연회장에 초대된 사람들 때문에 살로메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그는 명목상 에 지나지 않았다.[각주:10] 예전에는 요한의 목숨을 건지고자 노력했지만 이제는 사형을 선고한다.[각주:11] 살로메의 섬뜩한 요청에 매우 슬퍼하면서도, 주위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동의하고 말았다.[각주:12] 이러한 감정은 요한의 말에 대한 그의 태도를 떠오르게 한다(20).[각주:13] 여기에서도 돌밭에 뿌려진 씨앗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연상시킨다(4:16-17).[각주:14] 또한 이러한 선택의 배경을 고려한다면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과도 같다(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4:19).[각주:15] 더구나 이 선택은 세상이냐 영혼이냐는 문제로 이어진다(8:36).[각주:16] 요한의 죽음에는 헤로디아의 원한이 직접적으로 작용했지만, 그럼에도 그 책임은 헤롯에게 있다.[각주:17] 여기서 헤롯의 어리석은 맹세는 입다의 서원을 떠오르게 한다.[각주:18]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11:35)

 

그의 경솔한 서원은 되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했지만 정작 자신의 딸은 죽음으로 몰아내고 말았다. 이 사건을 통해 입다는 우둔하고 잔인하며 야심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인물로 남게 된다.[각주:19] 전투의 승패가 달려 있는 다급한 상황이었더라도 감당하지 못할 서원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비록 자신의 서원이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섣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 되었다(“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5:2). 헤롯 역시 허세에 지나지 않은 맹세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을 죽인 왕이라는 오명을 역사에 남기게 된다.

  1. Marcus, Mark 1-8, 403 [본문으로]
  2. Collins, Mark, 313; Hooker,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rk, 161 [본문으로]
  3.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9 [본문으로]
  4.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9 [본문으로]
  5.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9 [본문으로]
  6. Glancy, “Unveiling Masculinity,” 40 [본문으로]
  7. Guelich, Mark 1-8:26, 333; Collins, Mark, 313; Hooker,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rk, 161; Glancy, “Unveiling Masculinity,” 40 [본문으로]
  8. Guelich, Mark 1-8:26, 333; Marcus, Mark 1-8, 403 [본문으로]
  9. Collins, Mark, 313-314 [본문으로]
  10. Marcus, Mark 1-8, 403. 맹세에 대해서는 23절 주해를 읽어보라. [본문으로]
  11. Marcus, Mark 1-8, 403; Collins, Mark, 313-314 [본문으로]
  12. Marcus, Mark 1-8, 403 [본문으로]
  13.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9 [본문으로]
  14.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9 [본문으로]
  15. Marcus, Mark 1-8, 403 [본문으로]
  16. Marcus, Mark 1-8, 403 [본문으로]
  17.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9, Glancy, “Unveiling Masculinity,” 40 [본문으로]
  18. Collins, Mark, 314 [본문으로]
  19. Block, Judges, 37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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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살로메의 재등장은 이 이야기를 절정에 달하게 한다
.[각주:1] 원문에서는 즉시(euvqu.j
)”, “서둘러서(spoudh/j)”, “지금(evxauth/j)”과 같이 성급함과 화급(urgency)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사용되었다.[각주:2] 이러한 표현들은 살로메의 신속한 반응을 보여주고, 이야기가 재빠르게 전개되도록 한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살로메는 헤로디아의 연장선이자 어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원하는 소녀로 묘사된다”.[각주:3] 실제로 살로메의 요구는 헤로디아의 소원을 반영하고 있다. 헤로디아를 대신하여 소원을 성취해주는 살로메는 헤로디아의 분신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살로메의 요구에는 소반에 담아달라는 엽기적인 주문이 추가되어 있다.[각주:4] 12세 남짓한 어린 소녀가 마치 요한의 머리를 음식을 다루듯이 소반에 담아 달라고 요청한다.[각주:5] 이런 즉흥적인 요구는 섬뜩할 정도로 가학적이며, 이런 성격은 헤로디아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진다.[각주:6] 헤로디아와 마찬가지로 살로메 역시 세례 요한의 존재가치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으며, 오로지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을 따름이다.[각주:7] 이와 반대로, 살로메의 지체된 반응은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각주:8] 살로메가 헤로디아에게 소원을 묻는 순간 독자/청자들은 요한의 끔찍한 결말을 예상하게 되고, 헤롯은 살로메의 예상 밖의 행동으로 마음을 졸이게 된다.[각주:9] 또한 이 장면은 헤롯과 살로메가 거래를 하는듯하다.[각주:10] 살로메는 헤롯과 주요 참석자들을 기쁘게 한 대가를 정당하게 요구한다.[각주:11] 즐거움의 대상이었던 어린 소녀가 단 한 번의 섬뜩한 요구로 인해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뀌게 된다.[각주:12] 후기 Esther Rabbah에 따르면,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거절한 와스디 왕후는 참수 당하게 되고, 그녀의 머리는 소반에 담겨 왕에게 바쳐지는데 이러한 내용은 본문과 평행을 이룬다.[각주:13] 물론 에스더와 마가복음에는 주요한 차이점이 있다.[각주:14]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차이점으로는, 헤롯과 헤로디아는 부정적인 인물인 반면 아하수에로 왕과 에스더는 긍정적으로 서술되어 있다.[각주:15] 또한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을 만족시켜서 하만의 유대인학살계획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지만, 살로메는 헤롯을 만족시켜서 세례 요한을 죽음에 몰아넣는다(J. Anderson, “Dancing Daughter,” 128).[각주:16]

이러한 연회장 장면은 에스더와 상당히 유사하며
, 이러한 묘사는 다른 자료에서도 나타난다
.[각주:17] 예를 들어, 외경 유딧(Judith)에서 유딧은 자신의 매력을 아시리아군의 총사령관인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고 그의 목을 베는데 사용했다.[각주:18] 이 사건을 통해 유딧은 아시리아와의 전쟁으로 멸망할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해낸다.[각주:19] 이러한 전개는 에스더와 매우 유사하다. 페르시아에서 왕은 왕실연회장에서 나온 요구들을 수용해야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크세르크세스 왕의 아내인 아메스트리스는 시누이를 굴복시키려고 계속해서 고문하고 불구로 만들었다(Herodotus, Histories 9.108-13).[각주:20] 이는 마치 헤롯의 연회를 자신의 적을 제거하는 기회로 사용한 헤로디아를 떠오르도록 한다(참조. Gnilka, “Martyrium,” 88).[각주:21] 칼리굴라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아그리파1세는 예루살렘 성전에 황제 상을 세우려던 계획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러한 요청은 황제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유대인들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 수락하고 만다(Josephus, Ant. 18.289-304). 칼리굴라 역시 헤롯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말을 번복하고 싶지 않았다(26).[각주:22]

  1. Marcus, Mark 1-8, 402 [본문으로]
  2. Guelich, Mark 1-8:26, 333; Hooker,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rk, 161;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9 [본문으로]
  3. Collins, Mark, 313 [본문으로]
  4. Guelich, Mark 1-8:26, 333; Marcus, Mark 1-8, 402; Collins, Mark, 313 [본문으로]
  5. Collins, Mark, 313 [본문으로]
  6. Marcus, Mark 1-8, 402 [본문으로]
  7. Guelich, Mark 1-8:26, 333 [본문으로]
  8. Marcus, Mark 1-8, 402 [본문으로]
  9. Marcus, Mark 1-8, 402 [본문으로]
  10. Marcus, Mark 1-8, 403 [본문으로]
  11. Marcus, Mark 1-8, 402 [본문으로]
  12. Glancy, “Unveiling Masculinity,” ** [본문으로]
  13. Guelich, Mark 1-8:26, 333; Marcus, Mark 1-8, 401 [본문으로]
  14. Marcus, Mark 1-8, 401 [본문으로]
  15. Marcus, Mark 1-8, 401-402. 엄밀히 말해 아하스에로 왕을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성경에서 아하스에로 왕은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주위사람들에게 쉽게 설득 당하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 무능하지만 사악하지는 않은 인물이다(Berlin, Esther, 5). 하지만, 헤롯과는 대조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므로 이러한 견해도 가능하다. [본문으로]
  16. Marcus, Mark 1-8, 402 [본문으로]
  17. Marcus, Mark 1-8, 402 [본문으로]
  18. Marcus, Mark 1-8, 402. 이러한 내용은 유딧 12:10-13:10에서 기록되어 있으며, 한글성경에서는 공동번역성서에서 읽을 수 있다. [본문으로]
  19. Berlin, Esther, xxxiii [본문으로]
  20. Marcus, Mark 1-8, 402 [본문으로]
  21. Marcus, Mark 1-8, 402 [본문으로]
  22. Marcus, Mark 1-8, 40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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