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희년서는 출애굽 이후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역사를 가르치신다고 진술한다 (1:1-4).이스라엘이 징벌받고 포로로 끌려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 언약의 절기, 안식일 등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여호와의 언약의 절기"(the festivals of My covenent)는 절기의 특성을 잘 함축하고 있다. 절기는 여호와의 언약을 상기하는 목적을 가진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사유가 반복적으로 명시된다 (1:13). 이스라엘은 달력(정확히는 초승달[new moons]을 기준으로 삼은 달력), 안식일, 절기, 희년을,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때, 하나님의 성소에 그가 머무실 때, 이스라엘은 진리와 의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1:1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는 것은 진리와 의이다.

희년서에서 가장 먼저 제정되는 휴일(holidays)은 안식일(Sabbath)이다. 2장 전체가 하나님의 창조와 안식일을 기록하고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 이후 안식하셨고, 인류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에서 준수의 의무가 지워진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신 이후 다시는 이와 같이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노아에게 하셨고 (6:16), 그 이유로 칠칠절(The Feast of Weeks) 준수 명령이 주어진다 (6:17). 칠칠절은 희년서에서 가장 먼저 제정되는 절기이며, 달력의 셋째달(참조. 1절)에 언약 갱신을 위해 매년 기념해야 한다. 칠칠절 준수 명령은 당시 농경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저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 자녀들이 칠칠절을 지켰으나, 그 후손은 이 절기를 다시 기념하기 전까지 잊고 있었다 (6:19). 칠칠절은 초실절(the Feast of firstfruits)과 동일시하는 이유가 이 절기의 이중적 특성 때문이라고 밝힌다 (6:21). 후술하겠으나 절기의 특성으로 기쁨(joy)이 언급되지 않았음을 기억하자. 또한 노아 언약은 홍수 심판과 관련이 있으며, 노아 후손의 번영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언약의 절기(the feasts of the covenant)를 잊어버리고, 이방인의 절기(the feasts of the Gentiles)를 따른다 (6:35).

노아는 포도나무를 방주가 방치된 곳에 심고, 일곱 번째 달에 거두었다 (7:1). 노아는 그것으로 포도주를 만들고 15년 첫 달 첫날까지 보관하였다 (7:2). 그리고 그는 이를 기쁨으로 이 절기의 날을 기념하였다 (7:3). 이곳에서는 절기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는데, 이는 노아의 언약이 맺어진 달과 같은 때이며, 아브람은 그 절기를 갱신한다 (14:20). 아브람의 절기 갱신은 뒷부분에 기술된다. 아브람 언약은 그 자손의 번영에 대한 약속이다 (14:18).

아브람은 자신을 향한 언약을 인간의 방법으로, 정확히는 사래의 권유로, 성취하고자 한다 (16:22ff).

아브람은 하갈로부터 이스마엘을 낳고 (14:24), 초실절(The Feast of Firstfruits)을 기념한다 (15:1). 초실절은 희년서에서 칠칠절에 이어 두 번째로 이름이 명시된 절기이며, 득남 이후 실시된 절기라는 특징이 있다. 이스마엘의 출생과 초실적 기념 이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다시 한번 언약을 선포하신다 (15:3-4). 이로부터 아브람의 이름은 아브라함으로 바뀐다 (15:7). 아브라함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마엘을 통해 실현되리라 기대하지만 (15:18),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으로 지으라고 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시신다고 말씀하신다 (15:19, 21).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자녀라는 이유에 달려 있지 않으며, 그는 이스라엘과 그의 자손을 선택하셨다 (15:30). 하나님의 언약은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사라는 셋째 달에 아들을 낳는데, 저자는 이 시기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16:13). 이삭은 셋째 달 중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때, 초실절을 드리는 때에 태어난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할례를 실시하고 (16:14), 기쁨의 절기(a festival of joy)를 드리는데, 이 절기가 바로 초막절이다 (16:20-31). 저자는 아브라함이 지상에서 처음으로 초막절을 드렸다고 기록한다 (16:21). 아브라함을 이 절기를 "여호와의 절기 곧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축제"(the festival of the Lord, a joy acceptable to the Most High God)라고 일컫는다(16:2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셔서, 아브라함은 순종하고자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사를 멈추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상기시키신다 (18:1-16). 아브라함과 그의 어린 아들들이 맹세의 우물에 머물면서 이 절기를 기념하고, "여호와의 절기"(the festival of the Lord)라고 부르며, 기쁨의 절기(joy of festival)로 드린다 (18:17-19). 이 절기의 특정 이름은 지정되지 않는다. 또한 초막절과 유사성이 있지만, 둘이 동일한 절기라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삭이 르브가로부터 야곱과 에서를 낳는다 (19:12). 아브라함 언약이 이삭을 통해 성취된다는 약속이지만, 이삭의 자녀 출생에서는 언약과 절기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그의 열두 아들, 그리고 이삭과 그의 두 아들, 케투라(아브라함의 셋째 부인)의 여섯 아들과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지키라고 명령한다 (20:1-10). 그리고 이스마엘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케투라의 아들들에게 선물을 주고, 이삭과 그의 아들로부터 떠나게 하고, 이삭에게는 자신의 전부를 준다 (20:11). 

아브라함의 죽음을 앞두고 이삭과 이스마엘이 맹세의 우물에서 아브라함을 위해 칠칠절, 즉 초실절을 기념하고, 아브라함은 두 아들로 인해 기뻐한다 (22:1). 칠칠절 혹은 초실절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의 출생을 기념한 절기이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불화를 해소하기에 적합한 절기라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죽자,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축복하시고, 이삭은 환상의 우물(the Well of the Vision)에서 머무른다 (24:1). 아브라함의 맹세의 우물과 이삭의 환상의 우물은 이름에서 언약의 기능을 연상시키는 듯하다.

이삭이 열네 번째 날에 십일조를 드렸고, 라헬이 베냐민을 임신한다 (32:2-3). 이삭은 열다섯 번째 날에 제사를 드리는데 (32:4-31), 이 제사의 시작일 (32:4)와 설명(32:27-29)은 이 절기가 초막절로 밝혀지게 한다. 절기 동안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 언약과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 (32:18-19). 아브라함이 이삭의 출생을 기념한 절기가 초막절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언약이 이삭을 통해 성취된다고 말씀하셨기에, 이삭이 초막절을 지키고 아브라함 언약과 동일한 말씀을 듣는 것은 그가 언약의 계승자이기 때문이다. 이삭은 꿈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성소를 짖지 말라는 명령을 듣는다 (32:22). 다윗의 성전 건축과 유사한 기록인데, 초막과 성소 그리고 성전의 유사성을 의도하는 듯하다. 이삭은 자기가 본 꿈의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고, 하루를 더 기념하여 제사를 드리는데, 결과적으로 이레 동안 기념하는 절기에 하루가 더 추가된다 (32:26-27).

이스라엘은 이집트로 여행 중에 기근이 극심한 가나안 지역과 기근을 위해 묵은 곡식으로 초실절을 기념한다 (44:4). 여기서 초실절은 절기의 본연적 기능을 위해 기념된다.

희년서의 마지막 두 장(chs. 49-50)은 각각 유월절과 안식일을 다룬다. 49장에서는 유월절과 무교절에 관한 역사를 서술한다. 유월절은 밤에 시작되는데, 기쁨의 시작이라고 설명한다 (49:2). 기쁨은 유월절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희년서에서 절기는 "기쁨"이라는 특징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달리 말해 기쁨이라는 특징으로 절기의 특성을 구별할 수 없다. 구약성경에서는 절기 가운데 초막절이 유독 기쁨과 연관되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 이름이 적시되지 않은 절기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기쁨이 포함되기도 한다. 희년서도 초막절의 특징으로 기쁨이 강조되지만, 다른 절기에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독특한 특징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희년서에서 절기는 기명과 무기명으로 일차 구분이 가능하다. 기명 절기로는 칠칠절과 초실절, 초막절, 유월절이 있다. 무기명 절기로는 노아가 포도주를 만들고 기념한 절기와 일명 이삭의 희생 사건을 기념한 절기가 있다.

칠칠절, 초실절, 초막절은 농경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 절기 모두 아브라함의 자녀 출생과 관련이 있다. 칠칠절과 초실절은 이스마엘, 초막절은 이삭의 출생 이후 아브라함이 기념한 절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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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서의 초막절 본문으로 16:20–31와 32:4–29는 이견이 없다. 반면 18:18–19는 절기의 정체에 대한 이견이 있다. 내가 초안 완성을 앞두고, 18:18–19를 초막절 본문으로 분류한 이유는 이 구절과 다른 두 구절이 가진 유사성 때문으로 짐작된다. 나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일부 존재한다.

세 구절 모두 이 절기의 특징으로, 매년 기념되는 절기로 칠 일 동안 기쁨으로 즐겼다고 서술한다. 또한, 아브라함이 이 절기를 "여호와의 절기"(The Festival of the Lord, 16:27; 18:18)라고 불렀다는 공통점을 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공통점이 두드러져서 셋 모두 초막절로 분류해도 가능해 보인다. 

이와 달리 VanderKam은 달력을 기준으로 무교절(the Festival of Unleavened Bread)이어야 하지만, 아브라함의 상황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이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자기 생각을 밝힌다. 그는 "여호와의 절기"라는 명칭은 성경에서 유월절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Jubilees 1, 577). 또한, 중단되었으나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 제사로 드리려고 했던 사건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연상시킨다고 주장한다 (Jubilees 1, 578). 하지만, 희년서가 성경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절기는 모세의 명령으로 제정되지만, 희년에서는 칠칠절(The Feast of Weeks)은 노아와 관련이 있고, 초실절(The Feast of Firstfruits)과 초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은 아브라함의 자녀 이스마엘과 이삭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 이 같은 희년서의 독특한 절기 사용으로 인해 그의 주장은 별로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초막절의 시작 이래 절기의 이름이 적시되지 않은 점과 절기의 시기를 밝히지 않은 점이 이 절기의 정체가 초막절이라는 주장에 의구심이 들 수 있겠으나, 두 사이의 공통점은 상당히 긴밀하다.

설령 18:18–19이 초막절이 아니라면, 희년서의 저자가 이 절기를 초막절을 연상하도록 의도했다고 해석해야 한다. 초막절이 이삭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면, 이 절기는 이삭의 두 번째 탄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초막절이 아브라함 언약의 실현을 기념했다면, 이 절기는 아브라함 언약을 재확인한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이 절기가 초막절이 아니라고 해도, 내 견해를 일부 수정해도, 내 연구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연구 분량이 줄어들 뿐 아니라 내가 전에 발견하지 못한 주장을 더 강력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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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45장에서 이스라엘의 군주가 주도하는 속죄는 이스라엘 족속을 위해서 드린다 (17절). 에스겔의 주요 관심사는 성소와 성전 정화이며(18-20절), 군주가 의무적으로 지켜야 할 명절에 대속죄일은 포함되지 않는다. 앞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본 대속죄일과 초막절"에서 "에스겔 45장에서 대속죄일은 성전 정화와 관련이 있으며,"라는 문구는 적합하지 않다. 반면 에스겔이 군주가 지켜야 할 명절로는 유월절과 초막절을 언급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신학이 요한복음에 흐른다(고 보인다).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첫 사역은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울 때에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노끈으로 장사꾼과 환전상을 내쫓은 일이다 (2:13-22). 가나의 혼례는 첫 표적이며, 내가 매번 강조하듯이 예수의 의지에 반하는 사건이다 (2:1-12). 예수의 구속사를 예수의 대제사장직과 대속죄일로 해석하는 경향과 다르게, 요한이 이야기 전개에서 유대 절기를 중요한 장치로 사용하지만, 그가 대속죄일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한은 이 사건 이후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많은 표적을 행했다는 기록(23-25절)으로 자신의 전개를 이어간다. 또한 요한은 유월절은 세 번 배치하고, 7:1-10:21은 초막절로, 10:22부터는 수전절로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한다.

요지는 에스겔의 성소와 성전 정화, 그리고 유월절과 초막절 준수 명령이 요한복음에서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다는 사실이다. 에스겔에서 대속죄일을 강조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반복적인 속죄제를 통해 정화하기 때문일 수 있고, 아니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명절"에 포함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 간에, 에스겔과 요한복음이 대속죄일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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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n Knochen soll gebrochen werden": Studien zu Bedeutung und Funktion des Pesachfests in Texten des frühen Judentums und im Johannesevangelium / Christine Schlund / Neukirchener Verlag


"Kein Knochen soll gebrochen werden": Studien zu Bedeutung und Funktion des Pesachfests in Texten des frühen Judentums und im Johannesevangelium
https://www.amazon.de/dp/3788720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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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를 적대했다. 그들은 예수께서 유대 전통을 어길 뿐 아니라 신성모독을 범했다고 판단한다. 반면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유대 메시아 사상이라는 렌즈를 통해 예수를 모세와 같은 기적의 선지자, 다윗과 같은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 등으로 믿기도 했다. 오늘날 사도로 불리는 예수의 제자들 역시 예수의 십자가 도상과 부활, 승천 이후에야 스승의 가르침을 깨달았다.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이 동시대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관례가 아니었고, 그들이 기대하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예수의 공생애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요한은 예수의 구속사를 설파하기 위해 유대 절기와 안식일와 같은 유대 규례와 전통을 사용했다. 유대인들의 선지식을 사용해 각각의 의미를 떠오르게 하고, 예수의 구속사를 통해 의미의 재부여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의 정체성을 규정해야 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은 흔히 '로고스 기독론'이라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예수의 선재성와 정체를 선포하며 시작한다. 예수의 구속사적 사역은 유대 관습에 익숙하지 않지만, 그의 사역의 핵심이기 때문에 세례 요한의 입을 빌어 그의 사역을 세상에 드러낸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유대 메시아 사상 가운데 메시아의 죽음에 관한 가르침은 전무하다. 그러나 예수의 사역이 그러했기 때문에 요한은 유대 절기 가운데 유월절을 밀착시킨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여섯 번의 절기 가운데 세 번이 유월절(2:13; 6:4; 11:55)이다. 나머지 세 번은 익명의 절기(5:1), 초막절 (7:2), 수전절 (10:22)이다.

요한은 유대 달력과 달리 자신의 의도대로 유월절을 세 번 배치하고 있으며, 특히 절기 시작은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가르침과 연결하고 있고, 세 번째 유월절은 수난 사화와 연결하고 있다.

'어린 양' (1:29)의 정체에 관해서는 유월절과 연결하는 게 가장 타당해 보인다. 여러 근거 중에서 19:31–36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 19: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유월절 규례와 관련된 구절들이 떠오르게 된다.

출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민 9:12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특히, 민 9:11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1 둘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

어쩌면 세례 요한이 선포한 '하나님의 어린 양'은 유월절 어린 양과 긴밀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물론 예수와 유월절 어린 양 사이에 존재하는 변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하나님의 어린 양' (1:29)과 이사야의 네 번째 노래에 등장하는 '고난받는 종'(52:13-53:12)을 연결하는 해석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선 나는 '하나님의 어린 양'과 '고난받는 종' 사이에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더라도, '고난받는 종'과 유월절 희생양과 연결짓는 해석에는 반대한다.

Paul M. Hoskins는 “Deliverance from Death by the True Passover Lamb: A Significant Aspect of the Fulfillment of the Passover in the Gospel of John”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1:29)과 유월절을 연결짓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요한복음에서 유월절과 초막절이 긴밀하게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이같은 접근은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과 유사하지만, 그는 유대 절기의 기능에 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유월절과 초막절이 긴말하게 연결되는 이유는 당연히 예수의 사역과 관련이 있다. 유대 전통에서 유월절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의 구별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11:5–7; 12:1–15). 초막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므로, 초막절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후대에 초막절은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을 기념하는 절기가 된다 (특히, 슥 14:16–21).

이러한 유대 전통이 예수에게 새로운 의미로 적용된다. 예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1:29). 이러한 선포에서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 양과 갖는 공통점과 차별점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된다. 요한은 유월절을 통해 예수의 대속 사역을 강조한다. 또한 초막절, 특히 스가랴 14장과 연결해 종말론적 회복을 선포한다. 유대 메시아 사상은 이스라엘의 영토 회복 이후 왕이 등장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 도상과 부활을 통해 세상 죄를 무르시고 인류에게 종말론적 회복을 가져오신다. 유대 전통에서 유월절과 초막절이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듯이 요한복음에서도 대속을 통해 두 절기가 연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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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목자 담론에서 "자기 희생"과 "유대 절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관련 글: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에서 자기 희생과 절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자기 희생에 관해서는, 세례 요한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는 가르침에 주목하고, 그 배경을 이사야 53장으로 결론짓는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앞서 "요한복음 10장에 나타난 예수의 죽음에 관한 가르침의 기원, 이사야 53장과 대안"에서 다루었듯이, 이러한 경향에 의문을 제기하는 해석자들이 있다.

나는 선한 목자의 "내어놓음"(lay down; vv. 15, 17, 18)이 1:29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 기원에 관해서는 이사야 53장을 포함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해야 한다.

절기에 관해서는, 우선 초막절을 언급해야 한다. 선한 목자 담론을 다룬 연구들을 보면, 7장에서 시작되는 내러티브의 연속성을 간과하고 초막절을 배제한 연구들이 많다. 반면 초막절을 언급하지만, 그 배경에 관한 연구가 미흡하다.

다음에는 유월절을 언급해야 한다. 현재 나는 1:29와 유월절을 연결하려고 한다. 선행연구에서 이미 1:29이 유월절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주장할 예정이다. 나는 단순히 유대적 배경으로서 유월절이 아니라, 요한의 절기 사용에 근거한 유월절과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할 예정이다. 아마도 내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논증이 될 수 있다.

"자기 희생"과 "유대 절기"라는 주제는 선한 목자 담론과 세례 요한의 "어린 양" 선포에서 모두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박사 과정에서 이 연구를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나는 더나아가 요한복음을 설명하는 기둥으로 "자기 희생"과 "유대 절기"를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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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첫 번째 유월절(2:13)과 세 번째 유월절(11:55)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하지만 두 번째 유월절(6:4)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는 기록이 없다. 이 시기에 예수께서 활동하신 무대는 갈릴리(6:1)와 가버나움(6:24)이다. 이후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시기는 초막절(7:2, 10)이다.

유월절은 순례 절기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두 번째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으셨으므로, 이 유월절은 연례 절기(annual feasts)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Daise).

이 주장은 추후 검토하겠지만, 현재 내 질문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첫 번째, 왜 예수께서는 유월절에 갈릴리와 가버나움에 계셨나? 두 번째, 왜 예수께서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쯤 되는 사람들을 먹이시는 이적을 베푸셨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예수의 가르침에서 얻을 수 있다(22-59절).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적의 배경인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1절)에 위치한 산(3절)은 광야를 연상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49절).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첫 번째 해답과 연관되어, 광야 시절 만나 사건과 대비하여 예수의 사역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다(50-51절).

두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다음과 같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예수께서는 유월절의 성취자로서 생명의 떡이 되신다. 그 성취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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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절기가 갖는 기능을 분석하고 있다. 지난 번에 "요한복음에 언급된 절기의 기능과 의문점들"이란 글을 남겼는데, 요한복음을 분석할 수록 의문점이 더 쌓여간다.
 

요한복음에 언급된 절기의 기능과 의문점들

 
그 이유를 간략하게 말하면, 요한이 유대 전통에 따른 절기의 의미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자로서 창조적으로 변형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 나열된 절기는 다음과 같다.
 
1. 첫 번째 유월절(the first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2:13)
 
2. 유대인의 명절(a feast of the Jews)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5:1)
 
3. 두 번째 유월절(the second Passover)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6:4)
 
4. 초막절 (the Feast of Tabernacles)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7:2)
 
5. 수전절(the Feast of Dedication)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10:22)
 
6. 세 번째 유월절(the third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11:55)
 
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은 요한복음의 절기 순서가 유대 달력과 맞지 않는다는 의문이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유월절, 칠질절, 초막절 순서로 나열되어야 한다. 참고로, 이 세 절기는 유대 3대 절기이다(신 16:1-17). 하지만, 두 번째 유월절의 위치는 요한이 예수의 공생애를 1년 주기로 기록했는지 2년 주기로 서술했는지 다루도록 한다.
 
그 다음은 절기의 기능이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지만, 요한복음 2장에서는 성전청결이 주요 사건으로 배열된다.
 
칠칠절은 추수감사절이라고도 하며, 일년 농사의 열매를 거두는 시기에 하나님께 감사과 응답하는 절기이다. 하지만 5장에서 베데스다 사건 이후 안식일 논쟁이 핵심으로 자리매김한다.
 
두 번째 유월절은 본문의 위치부터 논쟁이 되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릴 지역에 있었다는데서 또다른 논쟁거리가 된다. 또한 6장에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모세의 만나 사건과 연결짓고 있다.
 
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하나님의 구원과 임재를 기념하는 절기이지만, 7장부터 유대인의 적대감과 모세의 율법에 관한 논쟁이 증폭되고 있다. '생수의 강'(7:38)은 초막절과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주지만, 전통 유대인들의 사고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취된다. 내 관심사인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에서 예수의 죽음은 전통적인 목자-왕 전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르침이다.
 
수전절은 1세기 유대인들에게는 안티파네스와 마카비 항쟁을 연상시키는 절기로 성전성결과 하나님의 임재를 기념한다. 하지만 11장에서는 선한 목자 담론에 대한 논쟁으로 번져 예수의 정체성을 다투고 있다.
 
세 번째 유월절은 나사로의 부활 이후에 위치하여 예수의 죽음을 향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익숙한 해석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 요한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를 증언하기 위해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하였으며, 본인의 의도대로 유대 절기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요한의 유대 절기를 변형적으로 사용하여 해석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유대 절기의 역사를 조사하는 차원에서 선행연구가 끝나지 않는다. 요한이 이같은 구조를 사용한 의도를 파악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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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박사 학위 논문에서 결정적인 논증은 유대 절기(Jewith festivals)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여전히 선한 목자 담론(10장)을 주요 본문으로 설정하겠지만, 몇 가지 논의를 위해 목자-왕 전승의 중요성을 덜 부각시킬 예정이다.
* 이 글은 내 구상을 정리하는 목적을 위해 작성되었으므로 자세한 인용은 생략한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절기는 총 여섯 가지이다.

1. 첫 번째 유월절(the first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2:13)

2. 유대인의 명절(a feast of the Jews)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5:1)

3. 두 번째 유월절(the second Passover)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6:4)

4. 초막절 (the Feast of Tabernacles)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7:2)

5. 수전절(the Feast of Dedication)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10:22)

6. 세 번째 유월절(the third Passover)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11:55)

유월절이 여섯 번의 절기 중 처음과 나중에 등장하고, 중간에도 언급되어 있다. 그만큼 요한복음은 유월절을 강조하는데, 이를 통해 저자가 유월절과 예수의 구속사를 연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요한복음은 유월절을 통해 예수의 죽음을 강조해야 한다. 군사적 메시아를 고대하던 유대인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의 죽음이 갖는 차별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후에 펼쳐지는 예수의 부활이라는 사건을 위해서 더욱 그렇다. 현재로서는 유월절의 기능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문제는 나머지 절기와 관련되어 있다. 첫 번째, 요한이 두 번째로 언급한 명절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유대인의 명절'(a feast of the Jews)이라고 일컫은 이유에 대한 의문이다. 선행연구에서는 이 명절을 '익명의 명절'(anonymous festival)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초막절과 수전절에 대한 언급이다. 앞서 '유대인의 명절'에서 명절의 이름을 고의로 생략했다면, 이번에는 특정 명절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두 절기가 선한 목자 담론과 연관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 두 절기와 선한 목자 담론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 글에서는 '유대인의 명절'(5:1)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초막절과 수전절, 그리고 선한 목자 담론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두 절기와 선한 목자 담론을 같이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한 목자 담론의 앞부분이 초막절(7:2-10:21)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고, 그 이후 발생한 예수의 선한 목자에 관한 가르침에 대한 논쟁은 수전절(10:22-39)과 관련이 있다.

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시작된 절기이다. 절기의 의미는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의 통치를 기념하는데 있다.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은 광야로 나가는 대신 자신의 집 지붕에 천막을 치고 이 절기를 지켰다.

수전절은 마카비 가문을 필두로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에피파네스가 모독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한 사건에서 시작된 절기이다. 이 절기는 성전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두 절기는 예루살렘 성전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념하는 절기적 기능을 한다.

여기서 요한이 예수의 성전 파괴와 회복에 관한 가르침을 2장에 배치한 이유가 설명이 된다. 독자들이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연결짓도록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앞으로 각 절기의 유래와 요한복음 내에서의 기능을 더 분석해야 한다. 그럼에도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여섯 절기는 모두 '순례'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는 건 분명하다. 각 구절마다 예루살렘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유대인들은 특정 절기를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야 하는 종교적 의무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요한복음이 구전되고 저술될 시기는 성전이 파괴된 이후로 합의를 보고 있다. 여기서 다시 요한복음의 핵심 주장이 명백해진다. 즉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유지했던 유대인들에게, 성전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이처럼 요한복음에서 절기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독특성을 파악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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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의 변천사를 표로 구분해 설명해 놓았네요.


Passover Symbols
http://www.jewsforjesus.org/judaica/passover/resources/symb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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