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미가서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는 미가의 기도(8-20절)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미가의 네 번째 목자 은유(14-17절)가 나타난다.

미가의 기도는 대적을 향한 심판으로 시작한다 (8-13절). 하나님의 대적을 향한 논쟁과 심판은 곧 이스라엘에게는 광명에 이르는 길이요 공의의 실현이다 (11절).

성벽 건축은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볼 수 있다 (11절).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될 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본국으로 돌아온다 (12절). 반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머물렀던 타지는 심판으로 인해 황폐하다 (13절).

이제 미가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목자 은유가 시작된다.

14 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주의 백성은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와 같다. 

갈멜은 풍요로운 지역의 상징으로, 목자들에게는 최상의 목초지로 여겨졌다. 이 사실은 갈멜에서 목축을 생업으로 했던 한 사람의 예에서 명백해진다.

삼상 25:2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심판 선포에서 갈멜이 등장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지역의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훔 1:4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암 1: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사 33:9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레바논은 부끄러워하고 마르며 사론은 사막과 같고 바산과 갈멜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도다

반대로 회복 선포에 갈멜이 등장하는 이유 역시 그 지역이 갖는 풍요로움이라는 상징성 때문으로 보인다.

사 35: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또한 양 떼가 홀로 갈멜에 있는 이유는 그 지역이 안전지대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암 9:3 갈멜 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뱀을 명령하여 물게 할 것이요

미가의 기도에서 갈멜이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그가 예레미야의 선포를 인용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렘 50:19 이스라엘을 다시 그의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그가 갈멜과 바산에서 양을 기를 것이며 그의 마음이 에브라임과 길르앗 산에서 만족하리라

갈멜은 양 떼에게 최상의 목초지이자 안전지대이지만, 중요한 사실은 삼림에 홀로 거주하고 있다. 즉 양 떼에게는 목자가 없다. 그래서 미가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라고 간청한다.

미가는 이 양 떼를 "주의 기업의 양 떼"라고 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시시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이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양이다. "옛날 같이"는 이러한 사실을 강조한다. 미가는 목자 은유를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회복을 간청하고 있다.

미가의 네 번째 목자 은유의 또 다른 특징은 출애굽 모티프와 결합에 있다.

15 이르시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이적을 보이리라 하셨느니라

목자 은유와 출애굽 모티프의 결합은 목자의 '인도'와 '보호'라는 역할과 출애굽의 '구원'이라는 상징이 잘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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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들 사이에서도 계파라고 할 수 없지만, 개인에게 좀 더 영향을 많이 준 선대 예언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일례로, 스가랴는 에스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이 있다. 예레미야의 경우는 아마도 미가가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렘 26:18)

예레미야는 당시 공공의 적이었다. 비참하게도 고향 사람부터(11:21. cf.1:1), 제사장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죽이고자 했다(18:18-23; 26:8).

이런 분위기에서 예레미야를 변론하는 무리가 있었다(26:16-24). 흥미롭게도, 예레미야의 선포를 뒷받침하는 예언자로 모레셋 사람 미가가 언급된다(26:18).

학계 선행 연구에서는 영향력의 근원을 찾을 때 대선지서를 언급하는 경우가 흔하다. 아마 이런 상황이라면 이사야를 언급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학계의 관행에 따른 예상과 달리, 그 지방의 장로의 일부는 미가를 언급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 지방에서는, 최소한 그 지방의 장로들 사이에서는 미가의 예언이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미가와 예레미야 사이에 목자-왕 전승을 대입해 보면 그 개연성은 더 커진다. 이사야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미가는 목자-왕 전승을 두드러지게 사용한다. 예레미야는 목자-왕 전승을 여러 차례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23장은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대표적인 목자-왕 전승 본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미가와 예레미야가 목자-왕 전승을 사용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이 지점에서 이사야 역시 목자-왕 전승을 사용했으나, 그의 관심과 메시지가 갖는 독특한 위치를 강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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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분석 중이라 단언할 수 없지만, 미가서의 특징이 보이는듯 하다.


1. 선지자 미가는 다윗 전승을 두드러지게 사용하지 않는다.

2. 목자 은유와 다윗 전승의 연관성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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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미가서 4장 1-6절을 읽으면서, 스가랴서와 연관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주석을 발견했다. 내 구상에서 미가서의 위치와 가치가 어느 정도나 될지 애매했었는데, 뭔가 기여점을 찾은 느낌이다.


* 미국 미시간 주 기준 11월 6일 오후 4시 50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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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에서 다윗 전승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본문은 5:1-5이다.


Now it becomes clearer that the to bring back kingly rule to Jerusalem is also intended to include a Davidic figure. David himself is not named, but who else could it be? The associations of Bethlehem, especially the use of the old name Ephratha along with other allusive language, could have no other intention. - Francis I. Andersen and David Noel Freedman, Micah: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Bible, Vol. 24E (New York: Doubleday, 2000), 431.


이제 예루살렘에 왕의 통치를 되돌려 놓는 것 역시 다윗과 같은 인물을 포함하도록 의도 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다윗이라는 이름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베들레헴의 연관성들, 특히 다른 암시적인 언어와 함께 옛 이름 에브라다의 사용은 다른 의도를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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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을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신학자들은 미가서 2장 12-13절이 산헤드립의 북이스라엘 침공이 이미 시작되어 피난민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든 상황을 목격한 직후에 적합하다고 해석하며, 복음주의 신학자들 조차도 예언과 역사를 끼워 맞추려다 보니 가끔씩 역사비평가들의 해석을 수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가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장래의 일을 미리 예측했다고 봐도 해석적 장애가 전혀 없다. 만약 장래에 주변 국가와 전쟁이 발생한다면, 현 국내외 정세를 파악하고 있다면, 대략적으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중 어느 왕국이 먼저 침략 당할지 알수 있다. 당시 북이스라엘이 먼저 전쟁을 치뤄야 하는 상황이라면, 해당 지역 거주민들이 남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중에서도 남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피난민들이 대거 모일 여지는 크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시온신학에 대한 간절함으로 투영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미가서의 언어가 애매모호하다고 지적한다. 내가 몇 달 동안 미가서를 읽고 분석해도 그의 기록은 불투명한 구석들이 존재한다. 나는 이러한 애매모호함이 미가서가 사건 후 예언(vaticinium ex eventu, “prophecy after the fact”)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미가서에 사건 후 예언이 반영되어 있다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보존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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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를 읽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특이점들이 있다. 아직 내 견해를 뒷받침해줄 자료는 찾지 못해서, 지금은 개인적인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1.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하나의 국가로 인식한다. 비록 분열왕국 시대를 살고 있지만, 두 왕국은 여전히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인식이 있다.


2. 남왕국의 정통성을 전제하고 있다. 미가 자신이 유다 지역 출신이라서 그런지 예루살렘 중심적 사고가 나타난다.


3. 다윗 왕조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비록 미가는 다윗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미래에 다윗 왕조의 회복된다고 선포한다.


4. 언약을 언급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간구할 때 보통 기도자는 언약에 기대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미가는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름을 언급하는 정도에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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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을 예고한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에 유래 없는 처첨한 멸망을 예언하지만, 그는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이 곧 왕조 체제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다윗과 같은 왕의 부재가 왕국의 멸망을 가져 왔다고 생각했다. 다윗이 왕으로 등극한 이후 통치이념으로 사용했을 다윗 왕조 사상(Davidic royal ideology)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간주할 수 있고, 후대 사가들의 영향을 무시할 수도 없다. 하지만 다윗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탁월한 왕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고, 그를 역대 왕들의 행적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아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즉 다윗은 이스라엘 왕들의 이상향이자 지향점이었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을 거점으로 사역했으므로, 그들이 새로운 다윗 계열의 왕(a new Davidic king)의 등장을 선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달리 미가는 남유다에서 예언사역을 했기에 다윗의 후손이 다시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고 선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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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와 호세아, 미가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선지자들이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지역에서 예언 사역을 감당했으며, 미가는 남유다를 주활동무대로 삼았다. 세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구원 등 비슷한 내용을 선포했지만, 몇 가지 차이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다윗 계열의 왕의 등장이다.


The themes of remnant, a good shepherd gathering a scattered flock, salvation from exile, and divine kingship find expression in the other prophets (Amos 9:11–15; hos 1:11; 3:1–5). But Micah's contemporary to the south develops more fully this sketch of Micah. Following a description of a new Davidic king who is a peace-bringer, there is the following prophecy:


(이하 생략)


- Stephen G. Dempster, Micah, The Two Horizons Old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7), 105–6.


이러한 차이점은 다윗 왕조의 정통성에 대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지만, 그는 이스라엘 왕국을 상징하는 왕이다. 솔로몬 이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분리를 겪게 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윗 왕조의 정통성에 대한 논란이 빚어진다. 남유다는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부각한 반면 북이스라엘은 그러지 않았다. 이러한 영향으로 아모스와 호세아는 새로운 다윗 계열의 왕이 등장을 선포할 수 없었다. 반면 미가는 새로운 왕조의 등장을 다윗 왕조의 부활과 연관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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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리는 자신의 책에서 미가서를 다루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미가의 적용이 그의 전제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가의 활동 시기는 예레미야를 앞선다. 시기적으로 예레미야는 미가서를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예레미야가 미가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려면 둘 사이의 목자 은유를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베일리는 이 과정을 생략했다. 아마도 베일리는 미가서의 목자 은유가 시편 23편의 전통을 따르지 않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만약 내 짐작대로, 베일리가 미가서를 다루지 않는 이유가 시편 23편과 다른 목자 은유의 사용에 있다면, 후대 선지자들과 신약 저자들이 미가서가 아닌 예레미야의 전통을 따른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예레미야의 전통을 따르도록 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면 미가서의 목자 은유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The study of the Good Shepherd in the Holy Bible of Kenneth E. Bailey is impressive for many modern readers. He deals with several texts in his book, of which the Old Testament texts he covers are Psalm 23 (ch. 1), Jeremiah 23:1–8 (ch. 2), Ezekiel 34 (ch. 3) and Zechariah 10:2–12 (ch. 4). He believes that the personal confession of Psalm 23 has turned into a communal confession through Jeremiah. And he thinks that Ezekiel and Zechariah reinterpreted the tradition of Jeremiah according to the theology of each one. He also covers Luke 15:1–10 (ch. 5), Mark 6:7–52 (ch. 6), Matthew 18:10–14 (ch. 7), John 10:1–18 (ch. 8), and 1 Peter 5:1–4 (ch. 9) in the New Testament. I wonder why Bailey does not deal with shepherd motifs of Micah in his book. I think the reason is that Micah’s applications do not meet his premises. The period of Micah’s activity precedes Jeremiah’s. Jeremiah would have known Micah. Perhaps it is possible that Jeremiah was influenced by Micah. To understand the commonal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two prophets, it is necessary to compare the shepherd metaphor between the two texts. But Bailey skipped this process. Perhaps Bailey has determined that Micah’s shepherd metaphor did not follow the traditions of Psalm 23. If my guess is correct, then it is necessary to analyze why the later prophets and the New Testament writers followed the tradition of Jeremiah, not Micah. What made them follow the tradition of Jeremiah? To answer these questions, we need to know what features Micah’s shepherd metaphor h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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