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필론은 이집트와 로마 제국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두 제국의 권력과 부요 등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의 반제국주의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필론은 『아벨과 카인의 제사』 (De Sacrificiis Abelis et Caini, On the Sacrifices of Abel and Cain)에서 야곱의 아들들이 파라오를 대면하는 장면에서 둘 사이를 대조한다 (Philo. Sacr.48–49).

Thus Jacob’s sons, trained under an all-wise father, may go down into Egypt the passion-loving body, and meet with Pharaoh the disperser of the good, who deems himself the sovereign of the animal and the composite; yet they will not be dazzled by his lavish pomp and splendour, but will confess that they are shepherds of sheep, and not only they, but their fathers also (Gen. xlvii. 3). 

And indeed no one could in power and sovereignty find so lofty a cause for boasting as these can in their office as shepherds. Surely to those who can reason it is a prouder task than kingship to have the strength to rule, as a king in a city or country, over the body and the senses and the belly, and the pleasures whose seat is below the belly, and the other passions and the tongue and in general all our compound being—aye and to rule them with vigour and with a right strong yet ever-gentle hand. For like the charioteer he must sometimes give the rein to his team, sometimes pull them in and draw them back, when they rush too wildly in unreined career towards the world of external things.

(구글 번역)
따라서 전지전능한 아버지 아래에서 훈련받은 야곱의 아들들은 열정을 사랑하는 몸으로 이집트로 내려가 동물과 합성물의 주권자라고 생각하는 선을 분산시키는 파라오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호사스러운 화려함과 화려함에 현혹되지 아니하고 자기들이 양치기임을 자백할 것이요, 자기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조상들도 양치기임을 자백할 것이니라(창 47:3).

그리고 실제로 권력과 주권에서 목자로서의 직책에서 이 사람들이 자랑할 만한 고상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왕권보다 더 자랑스러운 일이며, 도시나 나라의 왕으로서 몸과 감각과 배와 배 아래에 자리 잡은 쾌락과 다른 정욕과 혀와 일반적으로 우리의 모든 복합적 존재를 다스릴 힘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강하고 강하면서도 항상 부드러운 손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차꾼처럼 그는 때때로 자신의 팀에 고삐를 넘겨야 하고, 때때로 그들을 끌어당기고 다시 끌어내야 합니다. 그들이 외부 사물의 세계를 향해 너무 거칠게 돌진할 때 말입니다.


이와 유사한 대조는 요셉 일화에 잘 서술되어 있다(참조. Philo. Agr.14; Philo. Post.96). 요셉 일화에서는 이집트는 거짓 부요를 추구하는 곳이요 야곱의 아들들이 영원히 거주할 수 없는 곳이라 단언한다.

필론은 로마 제국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표출한다 (Philo. Sacr.45). 

After hearing this the mind turns away from pleasure and cleaves to virtue, for it apprehends her loveliness, so pure, so simple, so holy to look upon. Then too it becomes a shepherd of the sheep, one who guides the chariot and controls the helm of the unreasoning faculties of the soul, who does not suffer them to be swept away in disorder and discord, without a master or a guide, lest their unbridled instincts come to perdition, when they lack the protection and control of a father’s hand, and help is far away.

(구글 번역)
이것을 듣고 나서 마음은 쾌락에서 벗어나 덕에 집착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아름다움을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순수하고,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거룩한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또한 양치기가 되어, 전차를 인도하고 영혼의 비이성적인 능력의 키를 조정하며, 그들이 주인이나 안내자 없이 무질서와 불화에 휩쓸리지 않도록 합니다. 그들이 아버지의 손의 보호와 통제가 부족하고 도움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그들의 억제되지 않은 본능이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말입니다.


필론은 호메로스의 '백성의 목자'(shepherd of the people) 칭호를 알고 있다. 필론의 언급은 이 칭호가 당시 로마 목자-왕 사상에서 범용적이었다는 증거이다. 필론은 이 칭호에서 왕권에 대한 경계를 드러낸다. 즉 그는 로마 황제의 행실을 보면, 황제가 목자의 책임보다는 왕의 특혜에 젖어 탐욕에 길들어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그는 로마 황제 가이우스를 알현했을 때 그의 무절제함을 목격한 적이 있다 (Philo.Legat.44).

결론적으로, 필론은 이집트와 로마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노출한다. 그는 두 제국의 왕권과 부요에 대한 무절제함을 구전과 목격을 통해 알고 있고, 반제국주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의 유목 생활을 이상적으로 그린다.

관련글: 필론의 목자-양 유비와 목축 사회 이상주의

,

필론의 목자-양 유비에 관한 용례를 해설하고 있다. 내가 파악한 주요 특징은 필론이 왕권 사상이라는 전형적인 범주를 계승하면서도, 개인 윤리라는 새로운 범주에 더 빈번하게 사용한다.

또 다른 특징은 목축 환경을 이상향으로 그리는 듯한 그의 인식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목축 사회 이상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향후 적절한 용어를 발견하면 대체할 예정. 

필론은 왕권 사상의 주요 기법의 하나인 목자-양 유비를 통해 목자-왕 사상을 사용하며, 이성에 따른 윤리적인 삶이라는 개인 영역에 목자-양 유비를 사용한다. 개인 윤리와 사회 통치라는 두 영역에 목자-양 유비를 사용하는 흔치 않은 용법이 필론의 저작에서 나타난다. 더 나아가 필론은 목축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요셉이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을 바로에게 소개하는 장면이다 (Philo. Agr.14). 형제들은 이집트에서 목자를 경시하는 문화가 있어서 자기 직업을 달리 소개해 달라고 요셉에게 요청하지만, 요셉은 목자직에 대한 부심을 가지고 바로에게 형제의 직업이 목자라고 당당하게 소개한다. 반대로 이집트 사회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필론에 의하면, 야곱과 그 후손이 목자로 사는 이유는 하나님의 통치를 수용하는 자들에게 허락된 참된 부요의 길이지만, 이집트는 거짓된 부요의 길이다. 따라서 야곱과 그 후손은 이집트에 정착하지 않는다 (출애굽을 고려한 해석으로 보인다). 이집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가인 후손의 이름과 규율에 관한 진술에서도 나타난다 (Philo.Post.96).

관련글: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의 De Agricultura에 나타난 목자-양 은유

,

필론은 『가인의 추방과 그의 후손』 (De Posteritate Caini, On the Posterity of Cain and His Exile)의 첫 문장을 창세기 4장 16절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그는 먼저 "가인이 여호와앞을 떠나서"라는 말의 의미를 헤아리고, 나중에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를 살펴본다. 가인의 자발적인 행동과 그 결과는 필연적이다. 필론의 관점은 가인의 후손 이름에 대한 해설에서 도드라진다.

XX. This is why Gaidad is said to have a son Maiel (Gen. iv. 18), whose name translated is “away from the life of God.” For since the flock is without reason, and God is the Fountain of reason, it follows that he that lives an irrational life has been cut off from the life of God. 

(구글 번역) 
XX. 이것이 가이다드가 마이엘이라는 아들을 두었다고 하는 이유입니다(창세기 4장 18절). 마이엘의 이름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멀어졌다"로 번역됩니다. 양 떼는 이성이 없고 하나님은 이성의 근원이므로 비이성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졌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가인의 후손 중 마이엘이라는 이름을 설명할 때, 목자-양 유비를 사용하여 특징이 보인다. 필론은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창 4:16) 얻은 결과가 그의 후손의 이름에서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필론의 목자 양 유비는 전형적인 왕권 사상을 유지하는 동시에 윤리에 적용한다는 남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필론은 신-목자 (deity-shepherd/divine shepherd)라는 개념을 갖고 하나님을 궁극적인 목자로 지칭하며, 왕을 비롯한 지도자를 목자로 가리킨다. 이 용례에서 필론은 목자-양 유비의 계승자이다. 필론의 독특한 특징은 목자-양 유비를 개인에 적용할 때는 윤리라는 관점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

대체로 목자-양 유비는 왕과 백성 혹은 지도자와 군중 사이의 관계를 지도력이라는 관점에서 사용한다. 필론은 이 유비를 개인의 도덕에 적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필론은 인간이 mind (마음), soul (영혼), body (신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음 혹은 이성이 개인의 도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필론의 인간론(?)에 대한 개괄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임.

관련 글: 필론의 선행과 목자-양 은유, 필론의 선행과 목자-양 은유로 묘사된 야곱

가령, 필론은 De Posteritate Caini (On the Posterity of Cain and His Exile)에서 자기통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성은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기술한다.

자신의 본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마음에 얽매여 있는 사람은 비이성적인 능력을 낳아 필연적으로 큰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이 절차를 목자가 없는 양 떼로 설명한다. 필론이 지칭하는 목자와 양 떼가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음.

,

Jørn Varhaug은 시편 23, 구약,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로마 문헌 등을 토대로 목자 은유가 왕을 지칭하는 목자-왕 사상은 목축 사회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점차 사용 빈도수가 줄어들었으며, 그 용례에 관해 설명한다.

Consequently, it is possible to express the reason why the shepherd metaphor as a standard image for the ruler disappeared in the following three closely related points:
1. From Persian times, the international model monarchs were no longer related by traditions to the trade of shepherding.
2. In the pre-Persian times shepherd-imagery was demonstrated in significant acts of royal self-presentation, as coronation-rituals and royal correspondence. The Persian rulers did not use such imagery.
3. There were established an understanding of the pre-Persian shepherd-kings as abominable, characterized by violence, luxury, sloth and other vices. 

(구글 번역) 따라서 통치자에 대한 표준 이미지로서의 양치기 은유가 사라진 이유를 다음의 세 가지 밀접하게 관련된 요점으로 표현할 수 있다.
1. 페르시아 시대부터 국제적 모범 군주는 전통적으로 양치기 무역과 관련이 없었다.
2. 페르시아 이전 시대에 양치기 이미지는 대관식 의식과 왕실 서신과 같은 왕의 자기 표현의 중요한 행위에서 나타났다. 페르시아 통치자들은 그러한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3. 페르시아 이전 양치기 왕은 폭력, 사치, 게으름 및 기타 악덕을 특징으로 하는 가증스러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출처] Varhaug, “The Decline of the Shepherd Metaphor as Royal Self-Expression,” 22.


현재 목자-양 은유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논문 제출 후 공개될 내용이지만, 내 관찰에 의하면 목자-양 은유는 대체로 목자-왕 사상과 관련이 있고, 고대 근동부터 기원 1세기까지, 그리스-로마 문헌을 포함해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

필론에게 야곱과 라반은 목자(a shepherd)와 사육사(a cattle-rearer) 구별을 위한 적합한 예시 중 하나이다. 야곱이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라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협상하여 방목하는 장면(창 30:25ff)에 대한 해석에서, 필론은 야곱은 양 떼를 바람직하게 양육하는 목자이므로 열악한 상황에서 자신의 재산을 증식했고, 라반은 탐욕스러운 주인이라서 양 떼를 올바로 양육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Philo, Agr. 10). 

Thus, for Philo, the human being will inevitably be subject to the passions and other evils that beset created beings. Yet God will ‘accomplish the work that is proper to him in proclaiming redemption and liberty to the souls who are his suppliants’ (Her. 272–3). It remains to define how to live in the least imperfect way in the world as it is. One of the most frequent answers to this question is the distinction, made paradigmatically in the De Abrahamo, among three types of men who strive toward the good. The first, Abraham, is characterized by the effort to know; the second, Isaac, by the simple fact of his happy nature; and the third, Jacob, by the practical struggle against everything in human nature that involves the senses and the passions.

(구글 번역) 따라서 필론에 따르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창조된 존재를 괴롭히는 정욕과 다른 악에 굴복할 것이다. 그러나 신은 '그의 간청자인 영혼에게 구원과 자유를 선포하는 데 있어서 자신에게 합당한 일을 성취할 것이다'(Her. 272-3). 세상에서 가장 불완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는 방법을 정의하는 것이 남았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빈번한 답변 중 하나는 De Abrahamo에서 패러다임적으로 선을 향해 노력하는 세 가지 유형의 인간을 구별하는 것이다. 첫 번째 아브라함은 알고자 하는 노력으로 특징지어지고, 두 번째 이삭은 행복한 본성이라는 단순한 사실로 특징지어진다. 그리고 세 번째 야곱은 감각과 정열을 포함하는 인간 본성의 모든 것에 대한 실제적 투쟁을 통해 태어났습니다.

출처 Kamesar, “3. Biblical Interpretation in Philo,” 164–165.


필론은 도덕적 진보와 목자-양 은유를 그리스 철학과 다른 방향으로 사용한다. 그리스 철학을 사용하지만, 히브리 전승에 더 권위를 부여해서 독자적인 해석을 도출한다. 필론은 목자-양 관계를 통해 도덕적 진보를 설명한다는 특징이 있다.

,

필론이 저술한 Allegorical Commentary로 알려진 그리스어로 쓰인 히브리 전승 해설서를 살펴보면, 그가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mind (마음), soul (영혼), body (신체)와 같은 당대 그리스 철학 용어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필론은 Hellenistic Judaism 선구자라 할만하다.

필론은 그리스 철학을 사용하되 유대주의에 더 친화적이다. 내 연구 주제인 목자-양 은유에서 그 특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플라톤이 목자-양 은유를 통해 구시대(크로노스 시대)와 현시대(제우스 시대)를 구별하고, 구시대처럼 신의 은총으로 양육 받는 시대가 아닌 현시대 기술을 사용하여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필론의 목자-양 은유에서 구약 성경, 제2성전기 문헌, 그리스-로마 문헌 등 다른 문헌사에는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용례가 발견된다. 그중 하나는 목자-양 은유를 개인의 선행 혹은 하나님 말씀을 향한 순종에 적용하는 용법이다.

We do find, on the other hand, the hope for a better ‘near future’, a utopia within history, characterized by observance of the law. This may include the figure of a historical messiah, who has Moseslike traits. One may discern here the traditionalist bent in Philonic thought, because the ideas he expresses are rooted in a deuteronomic/ istic theology of retribution and in the message of the ancient prophets. 

(구글 번역) 반면에 우리는 더 나은 '가까운 미래', 즉 역사 속의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을 발견합니다. 이는 모세와 같은 특성을 가진 역사적 메시아의 모습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필로의 사상에서 전통주의적 성향을 알아볼 수 있는데, 그가 표현한 사상은 보복에 대한 신명기적/주의적 신학과 고대 선지자들의 메시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Philo’s more profound hope is in a human soul at peace with itself on the inside, which, with the sanction of divine blessing, is able to transform the realities in both the natural and the political worlds.

필로의 더 심오한 희망은 내면에서 자신과 평화로운 인간의 영혼에 있으며, 이는 신의 축복의 허가를 받아 자연과 정치 세계 모두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출처 Kamesar, “3. Biblical Interpretation in Philo,” 110, 111.


필론은 목자-양 은유를 비중 있게 사용하며, 대다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한다. 참된 목자는 자신의 양 떼를 이롭게 하듯이, 사람의 마음은 그 개인을 선행 혹은 하나님 말씀을 향한 순종으로 나아가게 한다. 필론은 목자-양 은유를 왕권 사상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용례를 따르면서도, 개인을 향한 실천적인 측면에 적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내 과제는 이 특이성을 그리스 철학과 비교해 필론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해야 한다.

,

필론은 목자-양 은유를 여러 작품에서 사용한다. 내 분석에 의하면, 11 작품이 그 범위에 해당한다. (연구 진행 상황에 따라 목록은 달라 질 수 있다.)

1. Agr. De Agricultura (On Husbandry)
2. Fug. De Fuga et Inventione (On Flight and Finding)
3. Jos. De Josepho (On Joseph)
4. Legat. Legatio ad Gaium (Embassy to Gaius)
5. Mut. De Mutatione Nominum (On the Change of Names)
6. Opif. De Opficio Mundi (On the Creation of the World)
7. Post. De Posteritate Caini (On the Posterity of Cain and His Exile)
8. Prob. Quod Omnis Probus Liber Sit (Every Good Man is Free)
9. Sacr. De Sacrificiis Abelis et Caini (On the Sacrifices of Abel and Cain)
10. Somn. De Somniis (On Dreams)
11. Virt. De Virtutibus (On the Virtues)

라틴어 축약어 순서대로, 가장 먼저 『De Agricultura』를 분석하고 있다. 목자-양 은유는 총 여섯 단락에 나타난다 (6, 10–14). 이 작품에서 저자는 창세기 9:20에서 자신의 진술을 펼쳐 나간다.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저자는 노아의 농사직에서 출발하여, 농사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농부(husbandman)와 농인(soil-worker)를 구분한다. 농부는 단순히 작농하는 자가 아니라 영적 유익을 추구하는 자이며, 농인은 문자 그대로 근로자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 개념을 목자(a shepherd)와 사육사(a cattle-rearer)에 적용하고 (6) 그 실례를 뒤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10–14).

필로에게는 목자와 소양육사의 구별은 단순히 직무 수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하다 (6).

저자는 왕에게 목자의 직무에 빗대어 "백성의 목자"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관례가 타당하다고 진술한다. 저자는 목자와 양의 관계를 왕권 사상과 연결하는 관행에 동조한다. 저자는 야곱과 모세를 목자직을 합당하게 수행한 인물로 거론한다 (10). 여기서 저자가 목자-양 은유와 왕권 사상 간 연관성을 전제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통치자와 인도자로부터 방치된 양떼의 위험을 법을 무자비하게 무시하는 지도자에 비유한다. 법을 무시하는 무리는 소들이며, 그 주징은 사육사이다. 반면 목자는 자신의 양떼를 유익한 길로 인도하듯이, 참된 지도자는 백성을 위해 유익한 선택을 한다 (11). 여기서 저자는 지도자와 그 집단의 행실을 통해 참과 거짓 지도자를 구별한다.

저자는 목자로서 하나님의 통치에 관심을 돌립니다. 이와 관련하여 시편 23:1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만물 통치와 그의 대리인의 통치를 선하다고 평가한다 (12). 여기서 관행적인 신적 목자와 인간 통치자라는 개념이 나타난다.

저자는 다시 시편 23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통치와 그의 부르심을 말한다.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저항이 있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수용하는 자들은 충만함을 누린다. 저자는 부요의 개념을 참된 부요와 헛된 부요로 나누며, 두 개념을 목자와 양떼에 적용한다. 요셉과 재회한 가족을 바로에게 소개하는 장면을 그 예시로 제시한다 (13).

저자는 요셉이 자신의 가족을 바로에게 목자로 소개하는 장면을 상세히 설명한다. 이집트에서 목자는 하천한 직업으로 인식되어 요셉의 형제들이 자신을 목자라고 소개하길 꺼리지만, 요셉은 그들의 요청과 달리 목자라고 소개한다. 저자는 요셉의 대처가 목자에 대한 바른 이해에 기초한 자부심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그는 야곱의 자녀들이 이집트에 정착하지 않는 이유를 목자-양 은유를 통해 설명하고, 목자와 사육사 사이를 구별한다 (14). 마지막 두 단락에서는 하나님의 통치와 이스라엘 족장들의 목자직을 연결한다는 특징이 보인다. 야곱과 그 자녀가 목자로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통치을 수용하는 자들에게 허락된 참된 부요의 길이며, 반면 이집트는 거짓된 부요의 길이다. 따라서 요셉이 자신의 형제들을 목자로 소개한 것은 바람직하며, 탐욕의 땅인 이집트는 야곱의 자녀들이 정착할 곳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스라엘은 참된 부요를 추구하는 목자로, 이집트는 거짓된 부요을 추구하는 사육사로 비유하는 듯하다.

,

목자-양 은유 역사에서 다루어야 할 알렉산드리아의 필론(Philo of Alexandria) 작품 목록이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용례 연구가 쏟아진다.

|목차 번호| 약어 | 라틴어 제목 | 영어 제목
2.2.6.1. Agr. De Agricultura (On Husbandry)
2.2.6.2. Fug. De Fuga et Inventione (On Flight and Finding)
2.2.6.3. Jos. De Josepho (On Joseph)
2.2.6.4. Legat. Legatio ad Gaium (Embassy to Gaius)
2.2.6.5. Mut. De Mutatione Nominum (On the Change of Names)
2.2.6.6. Opif. De Opficio Mundi (On the Creation of the World)
2.2.6.7. Post. De Posteritate Caini (On the Posterity of Cain and His Exile)
2.2.6.8. Prob. Quod Omnis Probus Liber Sit (Every Good Man is Free)
2.2.6.9. Sacr. De Sacrificiis Abelis et Caini (On the Sacrifices of Abel and Cain)
2.2.6.10. Somn. De Somniis (On Dreams)
2.2.6.11. Virt. De Virtutibus (On the Virtues)

,

이사야서 5장은 "포도원의 노래"로 불릴 만큼 포도원 심상을 중점적으로 사용한다. 이사야 시대에 예루살렘은 포도원 경작이 보편적이었거나, 그의 청중이 포도주에 익숙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님은 이스라엘(=포도원)의 정의 실현(=좋은 포도)을 바라셨으나, 그들은 악행(=들포도)을 행하였다 (1-2절). 

이사야가 직접 설명하듯이, 포도원 비유는 이스라엘의 행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지도층의 쾌락 향유와 직무에 대한 무관심은 백성에게 고통을 가져온다 (11-13절).

다만, 이들을 향한 심판과 백성을 향한 위로(14-17절)는 두 가지 이유로 다소 의아스럽다. 첫 번째는, 심판과 위로로 전환되는 주제가 갑작스럽다. 5장 전체가 심판을 일관적으로 선포하는데, 유독 이 단락에서 위로(16-17절)가 자리하고 있다. 두 번째는, 심판과 위로라는 주제에 적용한 언어의 전환이 갑작스럽다. 5장 전체가 포도원 비유를 사용하는데, 심판을 위한 스올(14-15절)과 야웨-목자의 정의(16-17절)는 이질적인 언어 전환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질감은 14-17절이 후대 삽입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내 관심은 포도원 비유가 적실한 시대 상황에도 목자-양 비유를 회복 선언으로 사용할 만큼 목양 심상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