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절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헤로디아가 요한을 죽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알다시피 헤로디아에게는 요한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오직 헤롯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정작 헤롯은 요한을 두려워했다. “헤롯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했다는 언급은 없지만, 헤롯은 요한을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1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 2di,kaioj)와 경건(a[gioj)은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덕목이므로, 헤롯은 요한을 두려워했고 그의 지적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헤롯은 요한의 지적에 매우 당혹스러워하면서도(polla. hvpo,rei) 기꺼이(h`de,wj) 그의 말을 들었다. 경건한 유대인은 아니었으나, 타당한 비판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로마 교육을 받았고 로마문화에 익숙하더라도 그 역시 유대인이므로, 헤로디아와의 결혼이 율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헤롯의 태도는 세례 요한의 결백을 증명한다. 3 4 헤롯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한은 선지자로 여겨졌으며(15절), 역사적으로 선지자들은 왕의 죄를 간과하지 않고 고발해왔다(참조. 삼하 12:1-15; 왕상 21:17-29). 더구나 헤로디아에게 청혼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으므로 반론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헤로디아와 이혼을 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어야 한다. 하지만 헤롯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순적인 태도는 마치 돌밭에 뿌려진 씨앗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연상시킨다(4:16-17). 5
돌밭에 뿌려진 씨앗은 흙이 얇아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므로 싹이 빨리 터도 빛이 비추면 말라버리고 만다(참조. 4:4-6). 뿌리가 짧은 만큼 자생력이 없다. 이렇듯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외부의 압력에 쉽게 무너진다. 헤롯 역시 요한의 비판을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거부하지 않고 듣지만, 그의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헤로디아에게 요한을 죽일 기회를 제공하고 만다(참조. 21절 주해). 분명 헤롯의 상반되는 반응은 그의 갈등을 내비쳐 준다. 그는 율법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돌이킬만한 믿음이 없었다. 한 사람의 믿음 결핍이 요한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이러한 헤롯의 태도와 비극적인 결과는 빌라도를 연상시킨다(15:1-15). 빌라도 역시 예수의 무죄를 확신했었다(15:10).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고소한 실제적인 이유가 그들의 시기였음을 간파한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다(15:9-10). 하지만 대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한 무리의 반복적인 요구를 수용하여 예수에게 십자가 형을 선고한다 만다(15:11-15). 유다 지역을 관할한 총독으로서 올바른 판결을 통한 정의실현 보다는 민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비극적인 선택을 해버린다(15:15). 6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살려두었을 가능성도 있다. 요한의 공개적인 비판이 자신의 비위에 거슬린다 하더라도 유대인들 역시 이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요한의 행동은 정당하게 여겨졌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은 요한을 선지자로 여겼으므로 그를 죽인다면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을 수도 있다. 비록 유대인들이 왕 대접을 했을지라도 로마로부터 통치권한을 위임 받은 분봉왕이라는 신분은 그로 하여금 소극적으로 대처하도록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헤롯은 자신의 정치적 안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을 터이다. 비록 당시의 상황에 부합한 해석이라고 여겨지지만, 마가의 의도에는 부합하지 않다. 본문에서는 명확하게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알았기 때문에 보호했다고 밝히고 있다. 헤롯이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두려움의 대상은 민란으로 자신을 위협할 지도 모를 백성이 아니라 요한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적인 해석을 배제해야 한다.
세례 요한의 비판에 대한 헤로디아와 헤롯의 반응이 대조된다. 헤로디아는 요한을 죽이고 싶어 했다(19절). 하지만 헤롯은 헤로디아의 소원대로 요한이 죽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헤로디아와 달리 의롭고 경건한 요한을 두려워한 헤롯은 보복을 원하지 않았다. 7 그래서 요한을 잡아들여 감옥에 가두었다(17절). 요한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지만 그 덕분에 헤로디아의 살해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잠시나마 감옥이 죽음에서 벗어나는 피난처가 된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세례 요한은 자신이 비판한 헤롯 덕분에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다. 8 하지만 헤로디아는 헤롯의 조치에 불만스러웠다. 9 10
헤로디아가 요한을 죽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알다시피 헤로디아에게는 요한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오직 헤롯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정작 헤롯은 요한을 두려워했다. “헤롯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했다는 언급은 없지만, 헤롯은 요한을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1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 2di,kaioj)와 경건(a[gioj)은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덕목이므로, 헤롯은 요한을 두려워했고 그의 지적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헤롯은 요한의 지적에 매우 당혹스러워하면서도(polla. hvpo,rei) 기꺼이(h`de,wj) 그의 말을 들었다. 경건한 유대인은 아니었으나, 타당한 비판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로마 교육을 받았고 로마문화에 익숙하더라도 그 역시 유대인이므로, 헤로디아와의 결혼이 율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헤롯의 태도는 세례 요한의 결백을 증명한다. 3 4 헤롯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한은 선지자로 여겨졌으며(15절), 역사적으로 선지자들은 왕의 죄를 간과하지 않고 고발해왔다(참조. 삼하 12:1-15; 왕상 21:17-29). 더구나 헤로디아에게 청혼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으므로 반론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헤로디아와 이혼을 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어야 한다. 하지만 헤롯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순적인 태도는 마치 돌밭에 뿌려진 씨앗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연상시킨다(4:16-17). 5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4:16-17)
돌밭에 뿌려진 씨앗은 흙이 얇아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므로 싹이 빨리 터도 빛이 비추면 말라버리고 만다(참조. 4:4-6). 뿌리가 짧은 만큼 자생력이 없다. 이렇듯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외부의 압력에 쉽게 무너진다. 헤롯 역시 요한의 비판을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거부하지 않고 듣지만, 그의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헤로디아에게 요한을 죽일 기회를 제공하고 만다(참조. 21절 주해). 분명 헤롯의 상반되는 반응은 그의 갈등을 내비쳐 준다. 그는 율법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돌이킬만한 믿음이 없었다. 한 사람의 믿음 결핍이 요한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이러한 헤롯의 태도와 비극적인 결과는 빌라도를 연상시킨다(15:1-15). 빌라도 역시 예수의 무죄를 확신했었다(15:10).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고소한 실제적인 이유가 그들의 시기였음을 간파한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다(15:9-10). 하지만 대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한 무리의 반복적인 요구를 수용하여 예수에게 십자가 형을 선고한다 만다(15:11-15). 유다 지역을 관할한 총독으로서 올바른 판결을 통한 정의실현 보다는 민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비극적인 선택을 해버린다(15:15). 6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살려두었을 가능성도 있다. 요한의 공개적인 비판이 자신의 비위에 거슬린다 하더라도 유대인들 역시 이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요한의 행동은 정당하게 여겨졌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은 요한을 선지자로 여겼으므로 그를 죽인다면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을 수도 있다. 비록 유대인들이 왕 대접을 했을지라도 로마로부터 통치권한을 위임 받은 분봉왕이라는 신분은 그로 하여금 소극적으로 대처하도록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헤롯은 자신의 정치적 안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을 터이다. 비록 당시의 상황에 부합한 해석이라고 여겨지지만, 마가의 의도에는 부합하지 않다. 본문에서는 명확하게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알았기 때문에 보호했다고 밝히고 있다. 헤롯이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두려움의 대상은 민란으로 자신을 위협할 지도 모를 백성이 아니라 요한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적인 해석을 배제해야 한다.
세례 요한의 비판에 대한 헤로디아와 헤롯의 반응이 대조된다. 헤로디아는 요한을 죽이고 싶어 했다(19절). 하지만 헤롯은 헤로디아의 소원대로 요한이 죽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헤로디아와 달리 의롭고 경건한 요한을 두려워한 헤롯은 보복을 원하지 않았다. 7 그래서 요한을 잡아들여 감옥에 가두었다(17절). 요한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지만 그 덕분에 헤로디아의 살해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잠시나마 감옥이 죽음에서 벗어나는 피난처가 된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세례 요한은 자신이 비판한 헤롯 덕분에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다. 8 하지만 헤로디아는 헤롯의 조치에 불만스러웠다. 9 10
- Guelich, Mark 1-8:26, 332 [본문으로]
-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Mark’s Gospel, 252 [본문으로]
- Guelich, Mark 1-8:26, 332 [본문으로]
-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Mark’s Gospel, 253 [본문으로]
-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8 [본문으로]
- France, The Gospel of Mark, 257; Brooks, Mark, 105 [본문으로]
-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Mark’s Gospel, 252 [본문으로]
- Donahue and Harrington, The Gospel of Mark, 198 [본문으로]
- Guelich, Mark 1-8:26, 332 [본문으로]
- Hendriksen, Exposition of the Gospel according to Mark, 237; Gundry, Mark, 318-319 [본문으로]
'연구주제 > 실패한 지도자, 헤롯'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가복음 6장 22절 주해 (0) | 2010.12.13 |
---|---|
마가복음 6장 21절 주해 (0) | 2010.12.06 |
마가복음 6장 19절 주해 (0) | 2010.11.22 |
마가복음 6장 18절 주해 (0) | 2010.11.15 |
[등장인물] 헤로디아 (0) | 2010.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