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 이 글의 목적은 차후 연구를 위해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 있다. 그래서 사례나 근거 제시는 빈약하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21:20)이다. 그는 베드로의 죽음(21:19) 이후에도 살아 남았으며, 예수의 관한 증언을 위해 자신의 기록을 남겼다(21:24-25). 

요한복음, 생존자의 증언


저자는 예수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으며(특히, 19:26-30), 베드로와 함께 빈 무덤의 현장에 있었다(특히, 20:2-10). 또한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특히, 21:7, 20).

요한의 증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실제로 목격한 자신의 체험이자, 예수의 가르침이 실현된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죽음'과 '부활'이라는 상반되는 두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한복음의 대조 기법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무리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복음(=예수의 구속사 사역)이 곳곳에 전파되는 와중에도 여전히 그 사건을 부정하는 무리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유대인의 불신앙은 그들의 견고한 믿음과 사상에 기인한다. 예수의 제자들 역시 유대인의 전통에 익숙했으나 스승의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이후에 그의 가르침을 깨우셨다. 요한은 유대인의 불신앙과 자신의 증언 사이에 간격을 줄어야 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가장 강력한 위험으로 작용했다고 짐작된다. 요한은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성전 재건축과 맞물려 등장한 유대주의(Judaism), 그리고 다윗 계열의 메시아 사상(Davidic messianism)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즉 요한은 성전 파괴를 율법 준수와 결부시키려는 움직임과 다윗과 같은 메시아의 등장을 고대하는 메시아 사상의 고조를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두드러지는 모세에 관한 언급은 유대주의를 비판하는 기능을 하며, 다윗에 관한 언급을 자제하여 메시아 사상의 부상을 누그러뜨린다.

예수의 증언자, 모세

유대인의 믿음과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

요한복음에 나타난 모세 기독론과 다윗 기독론


여기에 절기는 예루살렘 성전과 긴밀하게 엮여있다. 요한은 성전 정화 사건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치환하며(2장), 절기를 통해 예수의 사역과 연결하여 유대주의를 끊어내는 동시에 예수의 사역을 하나님의 구속사적 성취로 결론내린다.

목자-양 은유와 수전절


요한은 더이상 유대주의와 전통적인 메시아 사상을 고수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에 의해 구속사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예루살렘 성전 중심적 사고를 예수로 대치해야 한다는 것이 요한복음의 핵심이다.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에 비해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이 영적인 복음서이기 때문이 아니다. 요한이 마주한 현실의 난관을 뚫고 헤쳐나가야 하는 증언자의 책무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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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주제(=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에 나타난 예수의 죽음)의 영향 탓인지, 요한복음을 분석할 수록 이 복음서가 구전되고 기록되었을 당시 상황은 매우 암울했다고 그려진다.

세례 요한이 예수를 일컬어 '하나님의 어린 양'(1:29, 36)과 '하나님의 아들'(1:34)이라는 모순적 표현이 중첩된다. 특히 요한복음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1:29)라는 문구를 통해 예수의 죽음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문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요한복음 저작 연대를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로 본다. 성전 중심의 신학을 공유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성전 파괴는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이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예루살렘 성전과 연결하는 중요한 의도가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유대인들은 오랫 동안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를 고대했다. 1세기는 헤스모니아 왕조 이후 메시아 사상이 고취되어가던 시기였다. 이때 예수는 유대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메시아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가르쳤고 실제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메시아 사상의 정점에 닿아 있는 다윗을 최대한 언급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유대인들의 기대를 자극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나는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이 그 정점에 있다고 본다.

요한복음의 마지막은 예수의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장면이다. 특히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21:15-17)고 명령하신 부분이 인상 깊게 남는다. 또한 예수께서 베드로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반면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는 살아남는다. 그는 사도들의 순교에도 살아남아서 요한복음서를 기록한다(21:24-25).

예수의 부활을 붙들지 않는다면, 요한복음을 읽는 독자들은 암울한 분위기에 사로잡힐 수 있다. 어쩌면 예수의 생애를 공유했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와 동일한 좌절감에 빠질지 모를 일이다.

이런 총체적인 상황에서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설득해야했다. 요한복음 1장이 로고스 기독론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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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저자를 사도 요한으로 보는 견해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 아래 요한복음을 해설하면서 요한계시록과 연결하는 시도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아래는 그 중 하나의 예이다.

이 예언적인 "만화"는 그 선지자가 독자적으로 작성한 것이었을 것이며 십중팔구 그 묵시로 통합되기 전에 요한 학파의 구성원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출처] 비슬리-머리, 요한복음, 443.


난 이미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목자 은유를 살펴 본 적이 있다. 내 관찰에 의하면,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은 스가랴 9–14장의 목자-왕 은유를 동일하게 적용한다.  

하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요한복음을 해석할 때 요한계시록을 배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현 연구에서 후대 자료는 언급을 자제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이 나에게 도움만 되는 건 아니다. 특히, '어린 양'과 목자-왕 전승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설명하려면, 요한계시록을 인용하는 편이 수월하다. 역으로, 요한복음에서 두 주제의 관계를 설명하려면, 요한복음의 흐름 전개를 아주 치열하게 분석해야만 한다.

요한복음의 어린 양과 목자-왕 전승

내 추정에 의하면, 요한복음에서 '어린 양'과 목자-왕 전승은 유대 절기라는 또다른 장치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 절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폭넓게 인정되고 있는데, 과연 내 관찰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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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예수의 죽음을 통한 대속 사역을 말하는 동시에 차후 요한공동체에 닥쳐올 (이미 현실로 마주하고 있는) 요한공동체의 수난을 암시할 수 있다.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여기서 목자-양 은유를 사용하고 있다. 독특하게도,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과 마찬가지로, 목자의 죽음을 진술하고 있다.

두 구절은 예수의 죽음 이후 초대교회, 좁게는 요한복음의 청중들이 마주하고 있는 수난을 담은 본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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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예수께서는 일관적으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치셨으나, 청중들은 도무지 믿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도리어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이적을 베푸는 메시아에 대한 환상이 커져만 간다.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이 구절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예언된 다윗의 후손, 즉 다윗 계열의 메시아(Davidic Messianism)로 간주했다는 증거가 된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사건을 해석하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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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선한 목자 담론'으로 일컬어지는 요한복음 10:1-21에 이어 10:22-42에도 목자-양 은유가 사용된다.

예수께서는 앞서 강도와 목자의 구분, 목자의 희생 등을 가르치셨고 (1-18절), 유대인 사이에 벌어진 분쟁(19-21절)이 벌어졌다. 이 분쟁에 대한 답을 얻으려는 일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확답을 얻고자 질문을 던지고 예수께서 대답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22-42절).

유대인의 질문은 "당신이 ...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24절). 요한복음은 모세와 율법 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다윗 계열의 메시아 사상(Davidic messianism)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새로운 다윗의 등장이라는 사상을 통해 군중이 기대하게 되는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상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크다. 아마도 이 '그리스도'라는 언급은 오랫 동안 예언되어 온 다윗의 후손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당시에는 누구든지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해도 종교 심판을 받지는 않았다.

예수는 유대인들의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불신앙을 지적하신다(25절). 더나아가 목자-양 은유를 사용해 그들이 자신의 양이 아니라고 지적하신다(26-27절).

그리고 다시한번 목자-양 인유를 통해 예수와 유대인들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신다. 예수는 신앙의 대상이시며, 우리는 그를 따르는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유대인들과 예수 사이에 어긋한 대화는 유대인들이 원하는 것, 즉 로마로부터 이스라엘 독립을 이룰 군사적 메시아(24절)와 예수의 긍극적인 사역, 즉 영생을 주는 것(28절)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이 관계로 예수께서 답을 마치신다(28-30절).

여기서 배경으로서 '수전절'(22절)을 이해해야 한다. 요한복음에서 절기는 문맥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수전절에 관해서는 구약과 중간기 문헌을 살펴봐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짥막한 인용으로 대신한다.

"수전절의 제정은 제1마카비서 4:59에서 묘사된다. ... 그런데 그것의 목적은 이제 안디옥으로부터의 구출과 성전 예배의 갱신을 기념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비슬리-머리, 요한복음, 383).

유대인의 질문과 예수의 답변 사이에 수전절의 기능이 드러난다. 즉 영적 죽음에 놓인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예수의 사역을 통해, 그리고 더이상 예루살렘 성전이 존재하지 않는 지상에서,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 예수를 예배의 대상으로 섬겨야 한다는 가르침이 10:22-42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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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메시아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모세를 이상적인 지도자로 그리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필로의 저술을 바탕으로 표면적인 해석을 수용하지 않고, 로마 제국의 통치라는 그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노출되지 않은 이면의 의도를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들에 따르면, 필로는 메시아라는 정치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에 지도자의 덕목을 다루면서 모세를 이상적인 메시아로 제시했다. 만약 이들의 주장이 옳다면, 필로가 다윗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설명된다.

요한복음에서 모세는 아주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특히 율법의 수여자로서 유대인이 예수를 정죄하는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유대인 집단과 갈등이 증폭되지만, 동시에 예수를 선지자이자 메시아로 고백하는 개인과 집단도 커져간다. 메시아사상을 관점으로 요한복음을 보면, 12장은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Davidic Messianism)을 믿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0장의 선한 목자 담론에서 목자-왕 전승 역시 그 증거가 된다. 그러나 요한은 끝끝내 다윗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의도가 메시아사상의 반작용을 고려했다고 짐작하고 있으며, 내가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오늘 필로의 메시아 사상에 관한 논증을 통해서, 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은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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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장은 예수의 정체성과 사역을 설명한다. 요한은 자신의 독특한 어휘를 사용해 예수의 성육신, 십자가와 부활을 설명하는데, 그 목적은 "예수는 메시야시다"라고 선포하는 데 있다. 3-4장은 유대인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이스라엘 전체를 포괄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5장은 갈등 국면으로 접어든다. 예수께서 베데스다에서 행한 이적이 그를 적대하는 무리가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5:16)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과감하게 드러내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5:17)


예수님의 반응은 유대인에게 극단의 적대감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된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5:18)


분명 유대인은 모세의 율법에 충실하려는 선한 의도가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행위가 모세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5:45)


예수께서는 모세 율법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유대인들에게 모세가 너희를 하나님께 고발한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선포는 요한복음의 전개, 그리고 예수를 향한 유대인의 적대감만큼이나 극적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진정한 모세의 후계자라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5:46)


요한은 유대인들이 직면한 믿음의 장벽을 서술하고 있다. 요한 공동체와 오늘날 신앙 공동체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믿는다. 하지만 예수 생존 당시나 지금이나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거부하는 자들이 있다. 더구나 본문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은 예수의 구속 사역을 경험하기 전이다. 

청중/독자는 이러한 전개에 당황할 수 있으나, 이러한 반전은 필연적이다. 세례 요한과 예수의 선포가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19)


예수와 유대인의 갈등은 예수의 고난을 위한 필연적인 장치이다. 유대인의 적대감은 예수의 죽음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그의 부활을 위한 필연적인 선행 과정이므로, 요한은 갈등을 자신의 고유한 수사적 기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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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기자는 자신의 목적의식을 명확하게 밝힌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0:31)

그러나 이 구절만으로는 요한복음의 저술 시기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J. 루이스 마틴(J. Louis Martyn)의 『요한복음의 역사와 신학』(류호성 역, CLC)이 탁월하다. 우리는 여전히 요한복음의 저술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회당 축출 사건과 성전 파괴(AD 70)가 주요 저술 동기라는 사실은 명확해 보인다. 

유대인에게 성전은 민족적 정체성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공관복음서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성전 파괴 이후 새로운 복음서를 기술할 필요성을 느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전제에 동의한다면, 요한복음이 성전을 강조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이러한 의도가 1~2장에서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장에 등장하는 로고스(1-18절)는 성육신을 위한 소재일 뿐 요한이 헬레니즘에 더 익숙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세례 요한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는 말은 예수의 사역을 선포하는 기능을 하며, 속죄제에 익숙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2장의 성전 파괴에 관한 말씀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요한이 1~2장에서 사용하는 개념은 오늘날 신자에게 덜 익숙하지만, 유대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개념을 사용하여 예수의 사역을 설명한다. 이것을 우리가 통용하는 단어로 말하면,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이다. 더 나아가 요한은 이 세 개념을 모두 성전과 연결짓고 있다. 이러한 독법은 성전 파괴(AD 70)라는 시대적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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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차별화된 특징을 많이 갖고 있지만, 성전 청결 사건은 그중에서도 이례적으로 꼽힌다. 성전 청결 사건은 일회적인 사건으로, 하나님의 대속사를 암시하는 예언자적인 사건이었다. 연대적으로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도달한 이후 발생한 사건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요한은 의도적으로 역사적 연대를 무시하고, 예수의 사역 초창기에 배치한다. 이러한 나열에는 요한 나름의 신학적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은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기록된 성경이다. 더구나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유대인 집단은 회당에 출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요한 공동체는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고, 예전과 같지 않은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예루살렘 성전 이후 유대인 내부에 로마를 향한 투쟁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 운동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을 개연성이 크다. 오래전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 포로 생활을 거쳐 이스라엘로 돌아온 귀환 공동체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느헤미야와 에스라처럼 율법을 강조하는 지도자들이 등장했을 개연성 역시 크다. 아마도 요한 공동체가 마주한 상황이 이러했을 거다. 그래서 요한은 모세의 율법과 다윗 메시아 사상에 반하여 예수를 메시아로 선포하는 고도의 전략을 사용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요한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더는 성전과 회당이 없이도 우리는 신앙 공동체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재유행 단계에 돌입했다. 지금은 주일 예배를 교회에서 드릴 수 없는 상황이고, 교육이나 친교 등 각종 모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상황이 악화하도록 만든 몇몇 주범들, 그리고 평소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시민에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역은 내 소관이 아니다.

현 상황과 요한복음의 메시지를 연결해보면, 우리는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우리의 신앙과 신앙생활, 공동체의 의무 등을 말이다.

예수님이 성전이라고 외치면서도 여전히 교회 중심의 예배를 사수하려는 목회자들, 두세 사람이 모여 예배하는 곳에 성령님이 함께 한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교회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말하는 목회자들과 신자들.

2천 년 전 친교와 서신 교류 이외에는 마땅한 수단이 없었음에도 신앙을 고수하고 때로는 순교마저 당당하게 감당했던 믿음의 선배들과 달리 카카오톡이나 줌 등 온갖 최신화된 기술로 안전하게 교제와 모임을 진행할 수 있고, 현금은 계좌 이체로 대체할 수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새벽 예배와 주일 예배 등 예배는 교회에서 드려야 하고, 친교 모임은 직접 만나야 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사고에 벗어나지 못할수록 현 상황은 더 악화하고 장기화한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나는 이러한 행태에서 요한 공동체의 각성과 신앙을 위한 본질적인 투쟁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과 다윗 메시아 사상을 고집했던 유대계 기독교인의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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