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본론에 앞서 현재 제가 읽고 있는 피터 R. 아크로이드의 『이스라엘의 포로와 회복』 일부를 읽어보겠습니다.

예레미야의 사상과 그와 연관된 전승의 몇몇 측면은 이미 검토되었다. 초기의 예언 자료, 특히 이사야 자료에 대한 수정과 재해석도 재앙을 반영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관성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갖고 있는 자료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가 누구에게 빚을 지고 있는지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태도의 어떤 면은 이미 언급하였다. 


[출처] 피터 R. 아크로이드, 이스라엘의 포로와 회복, 144. 


이 글에 의하면, 저자는 예레미야가 이사야 자료를 수정하고 재해석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 일관성이 없으며, 현존 자료의 한계로 인해 예레미야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불분명하다고 진술한다.

내가 볼 때 이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미흡한 선행 연구와 섣부른 가정.

첫 번째, 저자의 선행 연구는 미흡했다. 예레미야의 비교 대상이 이사야에 한정되어 있다. 예레미야에 앞서 남유다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한 예언자들이 있었다. 실제로 예언자의 발화에서 핵심은 '심판'과 '회복'이다. 저자가 비교군을 이사야 활동 시기 전후로 한정했다 해도 스가랴, 미가, 나훔 등이 있다. 마땅히 저자는 이사야 이외에도 세 선지자의 글을 분석하고 예레미야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추적해야 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게다가, 저자의 비교군 축소는 선지자에 국한되지 않고 전승에서도 나타난다. 인용한 부분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저자의 전승 연구는 신명기 사관이 주요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신명기 사관과 예언자의 메시지 사이의 교류를 인정하는데, 그만큼 예언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 전승 중 하나로 신명기 사관으로 보고 비교 분석을 하고 있다. 물론, 역대기 사관이나 기타 전승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지만, 그 비중은 현저히 낮다.

두 번째, 선행 연구 없이 섣부른 가정으로 결론을 도출했다. 비교군을 협소하게 한정했다는 건, 저자가 예레미야가 이사야의 영향을 받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는 암시일 수 있다. 나는 이런 경향성이 놀랍지 않다. 수많은 구약 연구자들이 대선지서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지금껏 내가 접한 자료는 그랬다.

정리하자면, 저자의 진술과 달리 우리가 가진 자료의 한계성이 문제가 아니다. 저자의 편견(혹은 고정관념)이 문제다. 예레미야는 이사야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그의 암묵적 전제가 선행 연구 범위를 축소했고, 필연적으로 부실한 연구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자신의 지식이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경우 이러한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지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연구자는 자신의 가정을 넘어서 선행 연구 범위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자신의 지식이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경우 이러한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지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연구자는 자신의 가정을 넘어서 선행 연구 범위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다룬 주제는 내 관심사와 깊이 관련이 있으며, 다음에 다시 다룰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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