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에 논문작성법을 배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히 기억나는건, 졸업필수자격이었던 논문이 시험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이다. 신대원 시절에 배운 기록만 따지면, 총 3번 수강했다. 목회학 석사(M.Div.) 과정에서 1번, 신학 석사(Th.M.) 과정에서 각 1번씩, 이렇게 총 3번이다. 그렇다. 난 신학석사 과정을 두 번째하고 있다.
보통 입학과 동시에 첫 수강과목으로 논문작성법이 배정되어 있다. 교수마다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소논문(essay)은 공통적인 요구사항이다. 소논문은 작성자의 지식과 논리적 사고를 평가하는데 최적의 평가방식 중 하나이다. 언어적 감각에 대한 평가는 덤으로 이루어진다. 여러 평가방식들 가운데 소논문만큼 짧은 시간에 비평가자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그래서 상위교과과정일수록 글쓰기를 매우 중요하게 간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경험상 논문작성법을 성실하게 지도하는 교수를 만나본 적이 없다. 신대원 목회학 석사 과정에서는 불성실한 태도를 반복적으로 지적 받는 교수를 배정 받았고, 학생들이 반복적으로 불만을 토로해서 졸업필수였던 논문이 선택과목으로 바뀌었다. 신학 석사 과정 때는 일대일 수업을 진행했는데, 연구주제를 찾기 어려워서 수업진행이 잘 안되었다. 현 칼빈신학교에서는 불성실한 강의로 몇 년째 지적을 받다가 계약종료를 앞둔 교수에게 마지막 수업을 배웠다. 역설적이게도,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 받았던 두 교수들 모두 글쓰기에 있어서는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다른 한 분은 나와 관련성이 별로 없는 분야에 계신 분이라 잘 모르겠다.
내 논문작성 실력은 목회학 석사 시절 수강한 주해방법론 시간을 통해 기초를 다듬었고, 목회학 석사 졸업논문을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이후 주해는 자심감은 생겼다. 물론,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리고 주위 학생들의 경험을 들어 보면, 논문작성법 시간에 담당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연구주제를 찾아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논문작성법 책들을 몇 권 소개해주고, 그 중 몇 가지를 다룬다. 그리고는 학생들이 선택한 주제들을 최종결과물로 발전 시킬 수 있도록 지도해준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첫번째, 학생들은 무엇을 연구해야 할지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학교에 입학하는 이유는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지 연구할 주제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내 경우만 해도 글쓰기 보다 연구주제를 찾는게 더 어렵다. 이번 학기에 고생한 이유 중 하나가 데살로니가전후서의 과제물로 어떤 주제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서 그렇다. 주제와 범위를 선정한 이후에는 비교적 금방 끝냈다.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Rhetoric Center의 교정까지 반영해서 말이다. 요한복음은 '초막절'이냐 '목자기독론'이냐를 두고 고민해서 그렇지, 방향을 선정한 이후 실제로 작성을 시작하고는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학생의 연구주제선정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분명 논문작성법과 동시에 훈련되어야 할 능력이어야 한다. 그러나 연구주제를 찾다가 정작 논문작성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는 함정이 있다. 다행히 웨신대는 논문작성규정이 명확했고, 그 규칙에 따르면 되었다. 물론, 칼빈신학교는 튜라비안 메소드라고 해서 『A Manual for Writers of Research Papers, Theses, and Dissertations, Eighth Edition: Chicago Style for Students and Researchers』를 표준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규정대로 배운 적은 없다.
두번째, 교수들은 학생의 연구주제에 대해 잘 모른다. 지금껏 논문작성법을 지도해준 교수들의 전공은 조직신학, 기독교교육, 역사신학이었다. 설령 자신의 분과라도 해도 전공분야가 아니면,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내 경우 전공과 관련된 글쓰기를 배우길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지도교수들은 학생들의 연구주제에 대해 평가하는게 아니고, 결과물이 얼마나 '틀'을 갖추었는지만 본다.
담당교수와 학생의 전공이 불일치하면, 학생들은 연구주제를 선별하는 능력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다. 내 경우 졸업논문을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도교수들의 안목 덕분이었다. 주제선정을 두고 상담할 때 가지치기를 잘해주신 덕분에 내 안목 역시 자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본 대안은 이렇다.
첫번째, 담당교수와 학생의 전공이 일치해야 한다. 이 부분은 학생의 주제선별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가령 성서학의 경우 담당교수의 전공이 구약이든 신약이든 상관 없이 주해를 중심으로 연구하도록 하면 된다. 어떤 본문이든 간에 실질적인 연구방법을 배울 수 있다.
두번째, 실습위주의 수업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주제선정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교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주제를 좁히세요"이다. 그래서 주제를 찾다가 제출기한이 다가오면 닥치는대로 쓴다. 그러면 교수들이 학생들의 글을 지도해 줄 시간은 없다. 주제선정에 진을 쏟다가 논문작성법이란 수업의 목적은 어디로 가버린다.
이런 반복적인 실수를 피하려면, 실습 위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요새는 시청각 시설이 잘 갖추어서 있으므로 이 시설을 잘 이용하면 된다. 교수가 실제 글 한편을 화면에 띄우고, 오늘 가르쳐 줄 내용을 실제로 보여주면 된다. 가령, 각주처리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싶으면, 여러 사례들을 나열해 두고, 실제로 교정하면서 모범사례를 보여주면 된다. 너무 쉽다.
그리고 학생이 논문작성법에 익숙하다고 판단이 되면, 해당 과목을 제외 시켜주고 다른 과목을 수강하도록 해야 한다. 내 경우 영문으로 글을 써 본적이 없어서 기존 졸업논문을 번역하는데 시간을 보냈다만, 정말 하나도 배운게 없어서 열 받았었다. 혹시나 박사과정에서도 논문작성법을 수강하라고 하면...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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