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하는 직업 중에 성직자와 교육자가 상위 순위를 가지하고 있다. 개인 역량에 더하여 대인관계가 핵심 역량을 차지하는 직업군이라 최신 기술조차도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이유를 달고 있다. 나는 목사 안수를 받은 교수 희망자로서, 내 직업군을 향유할 가능성이 높다.
신자가 목회자에게 기대하는 최우선 순위는 인격이라는 최근 조사가 말해주듯이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람을 통한 위로라는 욕구는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다. 학생이 교수에게 친절과 실력을 기대하지 않을까 싶다. 학업과 관련해 최상의 지식을 학생에게 전달할 수 있고, 학생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는 교수를 기대할 듯싶다. 학생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면 더 좋아하겠으나 이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아 보인다.
인공지능이 화두이다. 학생은 인공지능으로 과제를 쉽게 처리해서 높은 점수를 받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으로 수업을 준비하 는 선생에 호의적인 학생이 없다. 선생은 학생이 인공지능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역량으로 매사에 임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인공지능의 혜택을 누리려고 할 수 있다.
The Professors Are Using ChatGPT, and Some Students Aren’t Happy About It
https://www.nytimes.com/2025/05/14/technology/chatgpt-college-professors.html
나는 교육자라면 단순히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공부의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지식 습득 단계에서 허덕이는 학생이 대다수겠지만, 학습 영역과 방법을 스스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켜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인적으로 인공지능 사용에 그닥 호의적이지 않으며,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도구는 DeepL Write 정도이다. 앞으로 강단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모르겠으나, 현재로서는 학생들에게 인공지능에 의존하지 말하고 할 가능성이 높다.
내 판단에 신학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영역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다가 아니라 대체할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쉽게 말해 신학은 인공지능을 투자할 만큼 돈이 되지 않는다. 설령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학습자는 인공지능에 견줄 실력을 배양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의 학위는 인증서에 지나지 않게 된다.
더 큰 위기는 대학의 종말이다. 인공지능의 보편화와 함께 근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인구 감소는 대학의 종말을 가속화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학 전공과 취업의 상관성이 일치하지 않은지 꽤 되었고, 학교마다 차별성 없이 유행을 뒤쫓는 행태는 대학 본연의 의미를 퇴색하다 못해 학위 무용론까지 이르고 있다.
The death of the university may soon be upon us. Good riddance
https://www.telegraph.co.uk/news/2025/05/17/death-of-university-may-soon-be-upon-us-good-riddance/
결국 신학교육에 한해서는 기술이 아닌 본질에 충실하는 학교와 교단이 생존하리라 기대한다. 신학교육이 방향성을 확고히 한다면, 교회는 기술에 지배되지 않는 영역으로 남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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