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필론에게 야곱과 라반은 목자(a shepherd)와 사육사(a cattle-rearer) 구별을 위한 적합한 예시 중 하나이다. 야곱이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라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협상하여 방목하는 장면(창 30:25ff)에 대한 해석에서, 필론은 야곱은 양 떼를 바람직하게 양육하는 목자이므로 열악한 상황에서 자신의 재산을 증식했고, 라반은 탐욕스러운 주인이라서 양 떼를 올바로 양육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Philo, Agr. 10). 

Thus, for Philo, the human being will inevitably be subject to the passions and other evils that beset created beings. Yet God will ‘accomplish the work that is proper to him in proclaiming redemption and liberty to the souls who are his suppliants’ (Her. 272–3). It remains to define how to live in the least imperfect way in the world as it is. One of the most frequent answers to this question is the distinction, made paradigmatically in the De Abrahamo, among three types of men who strive toward the good. The first, Abraham, is characterized by the effort to know; the second, Isaac, by the simple fact of his happy nature; and the third, Jacob, by the practical struggle against everything in human nature that involves the senses and the passions.

(구글 번역) 따라서 필론에 따르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창조된 존재를 괴롭히는 정욕과 다른 악에 굴복할 것이다. 그러나 신은 '그의 간청자인 영혼에게 구원과 자유를 선포하는 데 있어서 자신에게 합당한 일을 성취할 것이다'(Her. 272-3). 세상에서 가장 불완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는 방법을 정의하는 것이 남았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빈번한 답변 중 하나는 De Abrahamo에서 패러다임적으로 선을 향해 노력하는 세 가지 유형의 인간을 구별하는 것이다. 첫 번째 아브라함은 알고자 하는 노력으로 특징지어지고, 두 번째 이삭은 행복한 본성이라는 단순한 사실로 특징지어진다. 그리고 세 번째 야곱은 감각과 정열을 포함하는 인간 본성의 모든 것에 대한 실제적 투쟁을 통해 태어났습니다.

출처 Kamesar, “3. Biblical Interpretation in Philo,” 164–165.


필론은 도덕적 진보와 목자-양 은유를 그리스 철학과 다른 방향으로 사용한다. 그리스 철학을 사용하지만, 히브리 전승에 더 권위를 부여해서 독자적인 해석을 도출한다. 필론은 목자-양 관계를 통해 도덕적 진보를 설명한다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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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이 저술한 Allegorical Commentary로 알려진 그리스어로 쓰인 히브리 전승 해설서를 살펴보면, 그가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mind (마음), soul (영혼), body (신체)와 같은 당대 그리스 철학 용어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필론은 Hellenistic Judaism 선구자라 할만하다.

필론은 그리스 철학을 사용하되 유대주의에 더 친화적이다. 내 연구 주제인 목자-양 은유에서 그 특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플라톤이 목자-양 은유를 통해 구시대(크로노스 시대)와 현시대(제우스 시대)를 구별하고, 구시대처럼 신의 은총으로 양육 받는 시대가 아닌 현시대 기술을 사용하여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필론의 목자-양 은유에서 구약 성경, 제2성전기 문헌, 그리스-로마 문헌 등 다른 문헌사에는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용례가 발견된다. 그중 하나는 목자-양 은유를 개인의 선행 혹은 하나님 말씀을 향한 순종에 적용하는 용법이다.

We do find, on the other hand, the hope for a better ‘near future’, a utopia within history, characterized by observance of the law. This may include the figure of a historical messiah, who has Moseslike traits. One may discern here the traditionalist bent in Philonic thought, because the ideas he expresses are rooted in a deuteronomic/ istic theology of retribution and in the message of the ancient prophets. 

(구글 번역) 반면에 우리는 더 나은 '가까운 미래', 즉 역사 속의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을 발견합니다. 이는 모세와 같은 특성을 가진 역사적 메시아의 모습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필로의 사상에서 전통주의적 성향을 알아볼 수 있는데, 그가 표현한 사상은 보복에 대한 신명기적/주의적 신학과 고대 선지자들의 메시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Philo’s more profound hope is in a human soul at peace with itself on the inside, which, with the sanction of divine blessing, is able to transform the realities in both the natural and the political worlds.

필로의 더 심오한 희망은 내면에서 자신과 평화로운 인간의 영혼에 있으며, 이는 신의 축복의 허가를 받아 자연과 정치 세계 모두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출처 Kamesar, “3. Biblical Interpretation in Philo,” 110, 111.


필론은 목자-양 은유를 비중 있게 사용하며, 대다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한다. 참된 목자는 자신의 양 떼를 이롭게 하듯이, 사람의 마음은 그 개인을 선행 혹은 하나님 말씀을 향한 순종으로 나아가게 한다. 필론은 목자-양 은유를 왕권 사상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용례를 따르면서도, 개인을 향한 실천적인 측면에 적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내 과제는 이 특이성을 그리스 철학과 비교해 필론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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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은 목자-양 은유를 여러 작품에서 사용한다. 내 분석에 의하면, 11 작품이 그 범위에 해당한다.

1. Agr. De Agricultura (On Husbandry)
2. Fug. De Fuga et Inventione (On Flight and Finding)
3. Jos. De Josepho (On Joseph)
4. Legat. Legatio ad Gaium (Embassy to Gaius)
5. Mut. De Mutatione Nominum (On the Change of Names)
6. Opif. De Opficio Mundi (On the Creation of the World)
7. Post. De Posteritate Caini (On the Posterity of Cain and His Exile)
8. Prob. Quod Omnis Probus Liber Sit (Every Good Man is Free)
9. Sacr. De Sacrificiis Abelis et Caini (On the Sacrifices of Abel and Cain)
10. Somn. De Somniis (On Dreams)
11. Virt. De Virtutibus (On the Virtues)

라틴어 축약어 순서대로, 가장 먼저 『De Agricultura』를 분석하고 있다. 목자-양 은유는 총 여섯 단락에 나타난다 (6, 10–14). 이 작품에서 저자는 창세기 9:20에서 자신의 진술을 펼쳐 나간다.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저자는 노아의 농사직에서 출발하여, 농사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농부(husbandman)와 농인(soil-worker)를 구분한다. 농부는 단순히 작농하는 자가 아니라 영적 유익을 추구하는 자이며, 농인은 문자 그대로 근로자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 개념을 목자(a shepherd)와 사육사(a cattle-rearer)에 적용하고 (6) 그 실례를 뒤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10–14).

필로에게는 목자와 소양육사의 구별은 단순히 직무 수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하다 (6).

저자는 왕에게 목자의 직무에 빗대어 "백성의 목자"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관례가 타당하다고 진술한다. 저자는 목자와 양의 관계를 왕권 사상과 연결하는 관행에 동조한다. 저자는 야곱과 모세를 목자직을 합당하게 수행한 인물로 거론한다 (10). 여기서 저자가 목자-양 은유와 왕권 사상 간 연관성을 전제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통치자와 인도자로부터 방치된 양떼의 위험을 법을 무자비하게 무시하는 지도자에 비유한다. 법을 무시하는 무리는 소들이며, 그 주징은 사육사이다. 반면 목자는 자신의 양떼를 유익한 길로 인도하듯이, 참된 지도자는 백성을 위해 유익한 선택을 한다 (11). 여기서 저자는 지도자와 그 집단의 행실을 통해 참과 거짓 지도자를 구별한다.

저자는 목자로서 하나님의 통치에 관심을 돌립니다. 이와 관련하여 시편 23:1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만물 통치와 그의 대리인의 통치를 선하다고 평가한다 (12). 여기서 관행적인 신적 목자와 인간 통치자라는 개념이 나타난다.

저자는 다시 시편 23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통치와 그의 부르심을 말한다.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저항이 있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수용하는 자들은 충만함을 누린다. 저자는 부요의 개념을 참된 부요와 헛된 부요로 나누며, 두 개념을 목자와 양떼에 적용한다. 요셉과 재회한 가족을 바로에게 소개하는 장면을 그 예시로 제시한다 (13).

저자는 요셉이 자신의 가족을 바로에게 목자로 소개하는 장면을 상세히 설명한다. 이집트에서 목자는 하천한 직업으로 인식되어 요셉의 형제들이 자신을 목자라고 소개하길 꺼리지만, 요셉은 그들의 요청과 달리 목자라고 소개한다. 저자는 요셉의 대처가 목자에 대한 바른 이해에 기초한 자부심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그는 야곱의 자녀들이 이집트에 정착하지 않는 이유를 목자-양 은유를 통해 설명하고, 목자와 사육사 사이를 구별한다 (14). 마지막 두 단락에서는 하나님의 통치와 이스라엘 족장들의 목자직을 연결한다는 특징이 보인다. 야곱과 그 자녀가 목자로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통치을 수용하는 자들에게 허락된 참된 부요의 길이며, 반면 이집트는 거짓된 부요의 길이다. 따라서 요셉이 자신의 형제들을 목자로 소개한 것은 바람직하며, 탐욕의 땅인 이집트는 야곱의 자녀들이 정착할 곳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스라엘은 참된 부요를 추구하는 목자로, 이집트는 거짓된 부요을 추구하는 사육사로 비유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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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양 은유 역사에서 다루어야 할 알렉산드리아의 필론(Philo of Alexandria) 작품 목록이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용례 연구가 쏟아진다.

|목차 번호| 약어 | 라틴어 제목 | 영어 제목
2.2.6.1. Agr. De Agricultura (On Husbandry)
2.2.6.2. Fug. De Fuga et Inventione (On Flight and Finding)
2.2.6.3. Jos. De Josepho (On Joseph)
2.2.6.4. Legat. Legatio ad Gaium (Embassy to Gaius)
2.2.6.5. Mut. De Mutatione Nominum (On the Change of Names)
2.2.6.6. Opif. De Opficio Mundi (On the Creation of the World)
2.2.6.7. Post. De Posteritate Caini (On the Posterity of Cain and His Exile)
2.2.6.8. Prob. Quod Omnis Probus Liber Sit (Every Good Man is Free)
2.2.6.9. Sacr. De Sacrificiis Abelis et Caini (On the Sacrifices of Abel and Cain)
2.2.6.10. Somn. De Somniis (On Dreams)
2.2.6.11. Virt. De Virtutibus (On the Virt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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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양 비유에서 다윗을 이상적인 왕으로, 그의 후손은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 즉 종말론적 구원을 실현할 지도자로 등장한다. 또한 다윗의 후손은 그의 종말론적 사명으로 인해 메시아로 등장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이 같은 묘사는 일률적이지 않으며 변형들이 나타난다.

왕이란 칭호는 이스라엘과 이방 모두에게 적용된다 (12:20; 13:40; 15:16, 20, 33). 칭호 자체는 중립적이다. 저자는 목자나 다윗에게 왕이란 칭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목자-양 비유는 다윗과 연결되지 않는다. 저자는 목자-양 비유를 통해 목자를 양 떼를 늑대 무리에 넘겼다고 표현하여, 이스라엘의 부패한 왕 혹은 지도자의 실상을 폭로한다 (5:18). 그러나 본서에서 목자와 왕을 동일 선상에서 다루는 구절은 없다.

아들의 등장과 행동에 관한 묘사는 그를 초월적 존재처럼 남다른 면모를 부각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13:32, 37, 52; 14:9; '그 사람'에 관해서는 13:1-13을 참조하라). 그는 하나님의 열국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수행하는 기간에만 지상에 존재한다. 그의 과업은 마치 다윗의 후손을 연상시킨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된다 (7:28, 29). 본서에서 메시아는 목자-양 비유나 왕, 다윗(의 후손)과 연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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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4서에서 '아들'은 총 네 번(13:32, 37, 52; 14:9) 사용된다. 이 글에서 아들에 관해 다루기 전에, '인자'(the Son of Man)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본서에서 인자는 단 한 번(6:1) 등장한다. 

6:1 And HE said to me, "At the beginning of the circle of the earth, at first by the Son of Man, and afterwards I MYSELF. For the earth and the lands were created, and before the portals of the world were in place, and before the assembled winds blew,

이 구절에서 인자는 지상 창조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 인자는 지상적 존재가 아닌 천상적 존재로 창조 사역에 개입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이다. 이로써 인자는 아들과 다른 존재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아들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장면은 세 번째 환상이며, 그는 메시아로 묘사된다 (7:28, 29). 그는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여하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인간이다. 아들과 다윗이 가진 공통점이라면, 그 둘 다 열국 심판이라는 동일한 과업을 시행한다.

7:28 For MY Son the MessiYah shall be revealed with those that be with Him, and they that remain shall rejoice within four hundred years.
7:29 After these years shall MY son MessiYah die, and all men that have life.

아들이 등장하는 두 번째 장면은 여섯 번째 환상이며, 그곳에서 세 번(13:32, 37, 52) 발생한다. 첫 번째 구절에서 아들은 앞서 본 '한 남자'(a Man)와 연결하고 있다.

13:32 And the time shall be when these things shall come to pass, and the signs shall happen which I showed you before, and then shall MY Son be revealed, whom you saw as a Man ascending.

일단 여기에서 두 존재를 동일 인물로 가정하고,  그 남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사람과 같은 형상'(the figure of a Man)을 하고 있으며, 바다의 중심에서 등장한다 (13:2). 그는 등장 이후 줄곧 '그 사람'(the Man)으로 지칭된다 (13:3, 5, 12).

13:2 And I looked, and behold, this wind made something like the figure of a Man come up out of the heart of the sea.

그는 수많은 무리(a multitude of men)와 전쟁을 치르는데, 그의 무기는 일반적인 전쟁 도구가 아닌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이다 (13:5~11). 대결 이후 수 많은 사람이 그에게로 나오는데 그 모습은 제각각이다 (13:13).

13:13 And there came many people to Him, whereof some joyful, some sorry, and some of them bound, and some were bringing others as offerings.

새로운 존재의 등장은 마치 그를 인자와 같은 천상적 존재로 묘사하려는 의도가 담긴 듯하다. 만약 이 단락이 묵시적 표현이라면, '그 사람'과 '인자'는 다른 존재이며, 다만 그 사람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그의 업적은 수많은 무리와 전쟁을 통해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 환상에서 그의 죽음은 언급하지 않는다.

다시 아들로 화제로 돌아가자. 여섯 번째 환상에 나오는 아들의 두 번째 언급은 사악한 열국의 심판에 대한 내용이다.

13:37 And He, MY Son shall rebuke the wicked inventions of those nations, which for their wicked checedlessness life which have fallen into the tempest; (this was symbolized by the storm)

마지막 사례는 그 사람이 어떻게 바다 가운데서 등장할 수 있냐는 에스라의 질문(13:52)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에서 아들이 언급된다.

13:52 And HE said to me, Like as you can neither seek out nor know the things that are in the deep of the sea: even so can no man upon earth see MY Son, or those that are with Him, except in the time of His day.

이 구절에서 '그 사람'과 '아들'은 동일한 존재를 가리킨다.

아들이 등장하는 세 번째 장면은 일곱 번째 환상이며, 그곳에서 한 번(14:9) 나타난다.

14:9 For you shall be taken away from all, and from henceforth you shall remain with MY Son, and with those such as be like you, until the times are ended.

이 구절에서 아들은 남은 자들과 함께한다. 다만 그 기간은 시간이 끝날 때까지이다.

이제 도달한 결론적으로 아들은 메시아이며, 죽음을 경험하는 지상적 존재이다. 그의 사역은 다윗과 동일하다. 본서에서 아들과 다윗을 연결하지 않지만, 둘 사이의 유사성은 둘이 동일 인물이라고 짐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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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4서에서 '왕'이란 칭호는 총 다섯 번(12:20; 13:40; 15:16, 20, 33) 등장한다. 다섯 사례는 5~7번째 환상에서 발생한다. 이 칭호는 이스라엘과 이방 군주 모두에게 적용된다. 다만 저자는 다윗이나 목자에게 왕이란 칭호를 적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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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4서에서 '다윗'은 총 세 번(3:23; 7:108; 12:32) 등장한다.

본서에서 '종'은 대체로 에스라에게 사용되는데, 단 한 번 다윗에게 적용된다. 

3:23 So the times passed away, and the years were brought to an end: then YOU raised up for YOURSELF a servant, named David

이 구절에서 다윗은 이스라엘 자신을 위해 등장한 종이다. 앞서 이스라엘은 악에서 떠나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토라를 그들 안에서 열매를 맺게 하셨다. 저자는 다윗은 그 열매 중 하나로 간주한다.

3:20 And yet YOU did not take away from them their evil heart, so that YOUR Torah might bring forth fruit in them.

또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기를 극복한 인물 중 하나이다. 사울의 때에 사무엘이 그러했듯이, 다윗은 열병이 만연할 때 제 역할을 해냈으며,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완성한 인물이다.

7:108 And Samuel in the days of Saul, and David for the plague: and Solomon for those in the sanctuary,

마지막으로 다윗의 후손은 후대에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악인들을 책망하는 일을 맡게 된다.

12:32 This is the anointed, which the Most High YAHWEH has kept until the end of days, who will arise from the posterity of David, and will come and speak to them; He will denounce them for their checedlessness and for their wickedness, and will cast up before them their contemptuous dealings.

앞으로 다윗의 후손이 군사적 메시아로 등장하는지, 본서에 등장하는 '아들'이 다윗의 후손을 지칭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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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4서에서 야웨의 창조 기사를 자세히 서술한다. 그 이유는 야웨를 창조주로 고백하는 신앙을 기반으로 하고자 함이다. 야웨는 창조주로서 피조 세계, 특히 이스라엘에 가득한 불의를 향해 심판을 예정한다. 에스라는 청중을 향해 불의에 의한 심판과 정의 구현을 통한 행위의 돌이킴을 요구한다.

야웨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도구로 열국, 특히 바벨론을 사용하신다. 또한 창조주로서 자연재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대표적으로 16:8, 14).

본서의 주인공은 아시리아와 바벨론을 향한 심판을 선포한다. 그는 두 국가의 등장과 멸망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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