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예수의 속죄 사역, 즉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두고 예수의 대제사장 사역을 강조하는 흐름이 있다. 요한복음 19-20장을 대속죄일과 연결하는 해석이 있지만, 앞으로 요한복음 전체를 더 세밀히 살펴봐야겠지만, 현 이해에 따르면 요한복음은 이러한 흐름에 동조하지 않는다. 비록 요한복음 1장 29절에 기록된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는 세례 요한의 선포는 예수의 대제사장직과 대속죄일과 거리가 멀다. (관련 글: 요한복음의 예수와 대속죄일; 속죄일과 초막절)

대속죄일을 강조하는 이들의 기대와 달리 구약 성경은 이 절기를 그렇게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막절을 더 강조한다. 에스겔 45장에서 대속죄일은 성전 정화와 관련이 있으며, 군주가 집례해야 할 명절에 포함되지 않는다. 에스겔이 군주가 지켜야 할 명절로는 유월절과 초막절을 언급하고 있다. 느헤미야 8장에서 에스라가 이스라엘 재건 과정에서 성문에 모여 지킨 절기는 초막절이며, 대속죄일은 언급하지 않는다. (관련 글: 에스겔 45장 25절과 스가랴 14장 16절에 나타난 초막절; 에스겔 45장에 나타난 초막절; 느헤미야 8장에 나타난 이스라엘 귀한 공동체의 정체성과 초막절)

그 이유는 성전 신학과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군주제의 등장으로 종교와 정치의 영역이 나눠지고, 솔로몬의 성전 봉헌과 관련하여 초막절이 지켜지면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성전과 관련지어지며, 대속죄일의 중요성은 낮아졌지만 초막절의 위상은 올라간다. 성전 파괴와 재건 과정에서 그 위상은 더 명확해진다.

요한복음의 예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성전과 자주 연결 짓는다. 예를 들어, 2장 성전 청결 사건을 통해 자기 죽음과 부활을 처음 암시하셨으며, 7장 37-39절은 예수의 죽음과 성령에 관한 가르침을 통해 성전과 생수의 강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요한복음은 유대 절기를 아주 중요한 장치로 사용하며, 요한의 절기 사용에서 초막절은 7~10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대속죄일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본문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성전 신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이러한 배경에서 요한복음이 예수를 성전으로 묘사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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