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반유대주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4.08.30 요한복음의 고기독론과 유대인/기독교인
  2. 2022.05.03 요한복음과 유대주의

요한복음을 에스겔 환상의 네 동물 중 독수리로 규정하는데, 그 이유는 영적인 복음서라는 특징 때문이다.

요한복음은 그 시작부터 심오하다. 예수를 태초의 하나님과 존재했던 로고스로 규정하고 그의 성육신을 선포한다. 이 외에도 요한복음은 고기독론(the high christology)으로 분류되는 남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혹자는 요한의 고기독론에 최상급 the highest를 사용하기도 한다.

요한복음 기독론은 독특하다. 내 연구 주제인 선한 목자 담론만 하더라도, 예수는 제 죽음과 부활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공관복음서에서 예수의 죽음을 수동적으로 그린다면, 요한복음은 그것을 예수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묘사한다.

요한의 고기독론은 요한 공동체를 구별하는 신학이기도 하다. 혹자는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유대인이 요한의 고기독론을 수용하지 못하는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해석은 반셈족주의(=반유대주의)에 대한 또 하나의 극단적인 반항으로 보인다. 확실한 것은 요한의 고기독론이 요한 공동체와 유대인을 가르는 지표로서, 유대주의와 기독교의 분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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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내 구상을 정리하는 목적을 위해 작성되었으므로 자세한 인용은 생략한다.

요한복음에서 "헬레니즘과 유대주의"과 "반유대주의와 유대주의"는 주요 논쟁에 속한다. 

1. 헬레니즘 논쟁
요한복음이 헬레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주장의 근거로는 로고스, 이원론(생명과 죽음, 어둠과 빛 등), 시간 등이 있다.

하지만 로고스는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그 기원으로 설정할 수 있고, 지혜문헌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원론은 지혜 문헌이나 기타 유대 문헌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고, 이러한 대조는 인류 보편적 사고이므로 헬레니즘에 종속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야기의 전개가 로마식 시간을 사용한다는 주장은 요한이 강조하는 "Jesus' hour"로 반박이 된다. 대표적인 예는, 가나 혼례식에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2:4)라는 말씀에서 나타난다. 이후 예수께서는 이적을 행하시는데 주저하지 않으신다. 또 다른 예로는,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박해로 인한 살해 시도에는 물러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죽음의 시기를 조절하셨다. 내 기준에서는 절기가 요한복음의 유대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2. 반유대주의 논쟁
요한복음이 반유대주의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모세의 율법과 대립되는 양상, 회당 축출(9:22) 등으로 인해 고립된 기독교 공동체의 상황을 상정한다. 

하지만 예수는 모세의 율법과 자신의 가르침이 어긋나지 않다고 가르치신다. 대표적으로 5:45-46이 그 근거가 된다.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회당 축출의 역사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예수의 사후와 예루살렘 성전 파괴 사이 30년 정도 기독교 공동체를 형성한 상황에서, 회당이 큰 의미를 가질지 의문이다.


3. 요한의 유대주의적 사고
요한복음이 유대주의를 긍정적으로 사용한다는 단서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유대 전통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변형적으로 사용하여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 한다는 특수성을 유념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Davidic Messianism)과 유대 절기를 예로 다루어본다.

내가 '다윗 계열의 구원자 사상'이라고 풀어 쓰는 Davidic Messianism은 분열 왕국의 멸망 이후 예수의 지상 생애 당시까지 이어졌다. 요한복음에는 10:1-21과 12:12-16에서 그 사상이 나타난다.

10:1-21은 흔히 '선한 목자 담론'로 불리며, '새로운 다윗과 같은 왕'의 등장을 고대하는 목자-왕 전승을 사용했다. 다만 요한은 이 전통적인 목자-양 은유를 사용하여 대적을 물리치고 새로운 왕국을 세울 왕이 등장한다고 기술하지 않고, 예수의 가르침을 토대로 목자의 희생을 설파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12:12-16도 동시대 유대인들이 Davidic Messianism를 갈망했다는 단서가 된다.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유대인들은 다윗의 후손 중에, 아니면 다윗과 같은 지도자가 등장하여 열국을 제압하고 왕으로 추대되어 예루살렘에 입성한다고 믿었다(12-15절). 예수의 제자들도 그렇게 믿었었으나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제자들은 이 예언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다(16절).

요한복음의 저자는 유대인들이 갈망했던 Davidic Messianism를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절기는 또다른 유대주의의 증거이다. 요한의 예수는 절기에 맞추어 움직이신다. 물론 예수의 가르침과 행위는 유대인들로부터 반박을 일으키지만, 결과적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확고한 두 기둥을 위한 의도적인 장치로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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