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구약 분과에서 이사야서만큼이나 스가랴서도 단일저자설보다는 복수저자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더 많아 보인다. 이사야서의 복수저자설을 주장하는 경우 학자마다 견해 차이가 있는데 저자에 따라 본문을 둘(제1이사야와 제2이사야) 혹은 셋(제1이사야, 제2이사야, 제3이사야)으로 나눈다. 스가랴서는 두 저자설(제1스가랴: 1-8장, 제2스가랴: 9-14장)로 통일되어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복수저자설이 성경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회의주의자들은 문서설이나 사본학 등 역사비평과 문헌비평 방법론을 이용해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기록된 거룩한 문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집단의 편집을 거쳐 형성된 문서로 치부한다.

복수저자설을 주장하는 진영의 논리와 의도는 자명하다. 혹자는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며 기독교의 허구성을 전파하는게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고 있으며, 간혹 후대 편집 없는 원 계시를 찾는게 성경을 연구하는 목적인 사람도 있다. 이외에 그런 용어들을 서슴없이 사용하면서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는데, 나에게 그들은 호기심의 대상이다(혹시 나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난 지금도 단일저자설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복수저자설을 지지하면서도 선지자의 예언이나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주제는 십 년 넘게 이어온 고민인데, 얼마 전부터 한 방향으로 초점이 모이고 있다.

지금껏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성경은 매우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근동부터 헬레니즘까지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에, 동시대적 특징을 반영하는 유사성을 가지면서도 성경 고유의 이질적인 특성이 있다. 그래서 성경을 그 자체로 읽으려면 어떠한 선입관이나 관점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물론 한 개인은 시대정신과 특정 문화와 집단의 영향을 거쳐 사유를 형성하므로, "성경을 있는 그대로" 혹은 "저자의 의도대로" 읽고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지만 우리는 몇 가지 시도를 통해 조금이라고 객관적으로 성경에 접근할 수는 있다.

1. 후대에 형성된 개념을 버려야 한다. 
가장 큰 실수는 성경을 그 시대적 사고로 읽지 않고, 현 시대적 사고로 분석하고 평가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오늘날 '저작권'이란 개념을 버려야 한다. 난 회의주의자들이 불붙이는 저작권 논쟁이야말로 가장 흔한 시대착오적 발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 성경 고유의 특성을 인정해야 한다
다시 복수저자설로 돌아가서, 우리는 단일저자의 저작권을 의심할 게 아니라 질문을 달리해야 한다. '후대 저자는 왜 그 본문을 선택했는가?' 스가랴서를 예로 들면, '왜 제2스가랴라는 개인 혹은 집단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스가랴서를 확장하려고 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대다수 학자가 인정하듯이, 스가랴서 1-8장과 9-14장은 장르가 다르다. 장르적 차이에서 파생되는 여러 변이가 있지만, 학자들은 스가랴서가 '성전 건축'이란 일관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게 중요하다. 주제적 일치성.

스가랴의 '성전 건축'을 강조할 필요를 느꼈던 특정 인물 혹은 집단은 이스라엘 백성의 변화를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묵시라는 장르를 선택했다. 후대 저자는 앞서 존재한 여러 예언 중에서 현시대를 혹은 그들이 직감한 미래를 자신의 언어로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는 본문을 선택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공동체가 스가랴서를 하나의 저작물로 간주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즉, 이스라엘인들은 특정 저자의 메시지를 계승한 개인 혹은 집단을 원저자와 동일시했다. 현대 학자들은 제1스가랴니 제2스가랴니 저자의 활동 시기와 그 정체를 규명하는데 더 많은 관심이 있지만, 당시 이스라엘인들은 스가랴서의 메시지에 주목했다.


이런 독특성을 이해하지 못해서(혹은 고려조차 하지 않아서), 개인의 틀을 계속 주입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제 읽고 공유한 글에서는 '익명성'과 '위조설'이란 단어가 거침없이 나왔다. 그 글을 계기로 내가 고민하고 있던 생각을 정리했다. 설익은 글이지만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 할 주제이고, 내 언어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글로 남겨본다.

[끄적] - 예언의 계승과 익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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