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다. 나는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면서 선행 연구를 추적하기 위해 주석서를 읽는다.
분석하는 주석의 종류가 많을수록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복잡도가 증가할수록 본문 이해와 분석을 위한 시간이 많이 소요되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치게 된다. 힘겨움에 비례하여 투정(혹은 빡침)도 늘어난다. 작가들은 집필자장애(writer’s block)라는 현상을 겪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일종의 정체 구간에서 허우적거린다. 글은 안 써지고, 아이디어는 진척을 이루지 못하니 답답함만 더해간다.
이 같은 현상에 빠지는 이유가 있을 텐데, 내 견해와 동일한 혹은 비슷한 선행 연구를 찾지 못해서 그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납득할 만한 선행 연구를 찾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한몫 할지도 모른다.
이 정체 구간에서 헤어나오려면, 어떻게든 글을 쓰고 다른 자료를 읽고 분석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이미 읽었던 자료를 다시 읽어봐야 한다. 글을 고쳐 쓰고, 각주 자료가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완성된 문장이 늘어나고 문단이 만들어진다. 그림 전체가 그려지고, 세부적인 글이 조금씩 풀어 헤쳐지면서 그럴듯한 문장들로 채워져 간다. 결국 글은 고민의 집합이다.
다행이라면 성서학자는 어떤 의미에서 창작의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성경과 고대 자료, 선행 연구가 주어져 있다. 기존 자료를 퍼즐 조각이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기존 조각들을 재배열하고, 때로는 조각을 새로 만들어서 가장 완벽한 퍼즐을 맞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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