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서에는 예루살렘 거주민들이 옛 영광이 훼손된 상황에서 간간이 생활하다가(1-2장) 느헤미야의 권면으로 재건 사업을 시작한 듯이 진술되어 있다(3장 이후). 성벽 건축과 문짝을 설치한 이후에야 거주민들의 족보를 살펴본다(7:1-5). 여기서 처음으로 귀환 공동체의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언급된다(7:6-7).
7:5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시므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 거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7:6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와 각기 자기들의 성읍에 이른 자들 곧
7:7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사랴와 라아먀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왜와 느훔과 바아나와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
느헤미야서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활약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반면 느헤미야의 등장으로 인해 성전 재건 사업이 주도되고(1-7장), 그 후에는 에스라가 등장하여 모세의 책에 따라 살아가기로 헌신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그린다(8장 이후)
에스라서에서는 귀환 공동체의 족보를 앞에 배치한다 (2장).
2: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2: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그리고 예수아와 스룹바벨의 주도로 제단부터 시작해 본격적인 재건 사업이 진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3:2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3:3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이 구절 이외에도 에스라서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활약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성전봉헌식(6:16ff)을 기점으로 두 인물은 더이상 등장하지 않고, 에스라가 주목을 받는다(7장 이후).
느헤미야서와 에스라서는 재건 사업이 최대 과제로 놓여 있고, 여러 인물 가운데 에스라가 중심 인물로 그려진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에 대한 집중도는 다르지만, 그들은 결정적인 활약을 한 인물로 조명받지 못한다.
내 관심사는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에 있다. 이사야 52-53장의 '고난받는 종'은 역사적인 단서를 남기지 않는다. 구약 성경은 의도적으로 본문의 선명성을 날리기도 하는데, 그 경우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연상시키되 열린 해석을 가능하도록 하려는 의도를 가진 경우가 잦다.
나는 이사야의 네 번째 '야웨의 종의 노래 '(52:13-53:12)도 그러한 의도를 가진 본문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저자와 동시대 청자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와 관련된 특정 인물과 사건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후대 사건에 적용 가능하도록 종의 정체를 명시하지 않는다.
이사야가 염두에 둔 인물이 스룹바벨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허나 분명한 것은 귀환 공동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인물은 희생당했고(아마도 정치적 지도자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귀환 공동체는 죄악 가운데 행하며 지도자의 뜻을 따르길 거부했고, 이는 모세의 율법에 합당치 않았다. 이사야는 이같은 현실에 애통하고 통곡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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